
신문선이 귀국 후 가진 인터뷰-월드컵에서 중도 귀국한 사연을 담은-를 읽다가 황우석 사태와 연관을 지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두 사건 다 실체적 진실을 외면한 채 국익이라는 추상적 괴물만 쫓은 결과일 테니까. 원래 글이란 게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개를 잘 연결시키는 게 아니던가. 하지만 글은 더디게 씌어졌고, 완성된 글도 그리 만족스럽진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황우석과 신문선’이란 제목이 워낙 훌륭하고 시사성도 높아, 그럭저럭 무난할 것으로 생각했다.
“다음에 잘 쓰면 되지 뭐.”
늘 하던대로 난 마감시한보다 48시간이 빠른 화요일 오전 글을 보냈다. 그리고나서 거기에 대해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목요일 오후 갑자기 연락이 왔다.
“어쩌죠? 내일 실릴 글 세편이 좀 비슷하네요.”
“네?”
“xx씨가 황우석에 대해서 썼구요, xx는 신문선을 가지고 글을 썼어요. 우연이긴 하지만 이렇게 나가면 좀 문제가 있을 듯...”
난 내 글을 안싣겠다는 줄 알고 “제 꺼 빼셔도 됩니다.”라고 말을 했는데, 이럴 수 있던 건 순전 내가 썼던 글이 마음에 안들었던 탓이다. 하지만 신문사에선 제목만 바꾸면 될 것 같다고, 좋은 제목 없냐고 말했다.
“국민정서라는 것, 이렇게 하면 어때요?”
기차 안에서 난 두 번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냥 의견인데요, ‘이 죽일 놈의 국민정서’는 어때요?”
“‘오프사이드 함정에 빠진 국익’은 어떤가요?”
답이 왔다. “헷갈릴 때는 처음 써낸 게 답이죠.”
난 다시금 칼럼에 대해서 잊어버렸다. 열나게 술을 마시던 9시 10분, 다시금 한겨레에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비슷한 글이 나가는 게 부담스럽다고, 내 글이 하루 늦춰져서 나가는 건 어떠냐고 한다. 내가 말했다.
“지금이라도 다시 쓸까요? 30분이면 쓰는데.”
그 말에는 농담이 50%쯤 섞여 있었는데, 그는 무척이나 놀라며 말했다.
“정말 그럴 수 있어요?”
난 두 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PC방은 보이지 않았다. 난 게임방-경마 같은 걸 주로 하는-에 들어갔고, 거기서 인터넷을 할 수 있냐고 했다.
“5천원 드릴 테니 30분만 인터넷 쓰면 안될까요?”
고개를 젓는다.
“만원 드릴께요.”
옆에 있던 사람이 말한다. “저쪽으로 조금만 가면 PC방이 있어요.”
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내가 쓰고 싶었던 건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건 가능한가?’라는 제목의 글로, 선풍기를 틀고 자다 죽는 일에 대한 내용이었다. 결론만 말하면 그건 우리 언론이 오랫동안 세뇌를 시킨 결과로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30분은 너무 짧았고, 난 그다지 정신이 맑지가 않았다. 별 수 없이 전날 써놓은 글을 짜깁기해서 메일로 전송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인터넷엔 내가 보낸 새 글이 떠 있었다. 원래의 ‘단 거 먹으면 당뇨에 걸리나?’ 대신 ‘인터넷 너무 믿지 말자’는 제목으로. 물론 새 제목이 지금 보니 더 낫다.
이 해프닝의 원인은 내게 있었다. 내 나름의 독특한 글을 써야지, 누구나 쓸 수 있는 걸 쓰려면 굳이 내가 거기다 글을 실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몇 번 쓰지도 않아놓고선 매너리즘에 빠졌는지 요즘 쓰는 글들은 “하나하나가 맘에 안들어”다. 다음번에, 선풍기 얘기를 근사하게 써 보리라. 갑자기 전에 칼럼을 쓰시던 김두식 선생이 경외롭게 느껴진다. 그분은 어떻게 그리도 멋진 글을 매번 쓸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