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VD 시대 개막 어쩌고 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지만, DVD를 산 첫날을 제외하곤 영화를 통 보지 못했다. 자주 술을 먹고 들어오니 보기가 힘들기도 했지만, 월드컵 때문에 그랬다는 게 더 주된 이유리라. 월드컵이 마무리되는 시점이라 이제부턴 진정한 DVD 시대를 열어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얼마 전 구입한 영화CD를 넣었다. 자막이 안나온다. 리모컨으로 ‘한글자막’을 클릭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친 나, 필사적으로 리모컨을 찾았다. 없다. 하기사, 뭐 없애시는 데 일가견이 있는 할머니가 계시고-할머니는 깊숙한 곳에 정리해 놓으신 거지만-, 조카들이 뻑하면 왔다 가는데 그게 있을 턱이 있나. 40분을 찾다가 엄마에게 말씀드렸다.
“엄마, DVD 리모컨이 없어. 마음이 너무 아파.”
엄마도 열심히 마루를 뒤지신다. TV 밑의 서랍서 이상한 리모컨을 발견하신 엄마, “이거 아니냐?”고 물으신다. 그건 나도 봤는데, 아주 옛날에 있던 기계의 리모컨이다.
“그건 아니어요. 지금 못쓰는 건데, 헷갈리니 갖다 버려야겠네요.”
결국 난 리모컨을 못 찾았고, 삼성 AS센터에 주문을 넣었다.
“내일 열시 이후에 찾으러 오세요.”
돈을 챙겨들고 약속된 시각에 삼성 이대점을 갔다.
“여기 있습니다.”
직원이 리모컨을 건넬 때, 난 놀라자빠질 뻔했다. 그 리모컨은 엄마가 내게 ‘이거 아니냐’고 하셨던, 그리고 내가 서랍을 뒤지다 봤던 그 리모컨이었다. 난 리모컨을 서랍에 얌전하게 넣어 둔 거였고, DVD를 쓴 지가 오래되어 제 리모컨을 몰라봤던 것. 아깝디 아까운 6찬5백원을 주고 리모컨을 받아들었는데, 직원이 한마디 덧붙인다.
“건전지는 따로 사서 넣으셔야 해요.”
미니스톱에서 2천원을 주고 건전지를 샀으니, 도합 8천5백원과 교통비, 시간 등을 손해본 셈이다. 이렇게 합리화했다.
“그래도 리모컨이 두 개니, 든든하구나.”
집에 가서 서랍을 열어보니 그 리모컨이 없다. 엄마를 불러 여쭤봤더니 이러신다.
“니가 버리래서 버렸다.”
망했다. 난 새대가리고, 그 중에서도 머리가 가장 나쁜 붉은개똥지바퀴의 뇌를 가졌다. 리모컨을 버리라고 하기 전에 한번이라도 자세히 들여다봤다면, 그래서 ‘재생’ ‘자막선택’ ‘정지’ 등의 버튼을 봤다면 그런 실수는 안했을 텐데. 괜히 할머니를 의심한 것, 그리고 조카들에게 혐의를 둔 게 미안해진다.
“어쩐지 리모컨이 새거 같더라고.”
어찌되었건 오늘부터는 신 DVD 시대다.
* 붉은개똥지바퀴의 머리가 가장 나쁘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홧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