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 아픈 거 아니예요?”라고 문자를 보내주신 미녀분 때문에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재가 생긴 뒤 제가 이토록 오래 서재를 비운 적이 없는 것처럼,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뭐가 많은 날도 드물 것 같네요. 그 와중에 술은 꾸준히 마셨고, 책도 전혀 안읽은 건 아닌지라 밀린 글들이 꽤 있습니다만, 노트에만 끄적여 놓고 글로 옮기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이젠 전설이 되어버린 진x맘님처럼 추억 속의 존재가 되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납니다. 그냥 근황 몇가지만 말씀드릴께요. 일단 개강을 했구요, 그간 제가 한다고 했지만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해 대가를 치룰 시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동안에도 편히 잔 건 아니지만 요즘은 하루하루가 무섭습니다.
1. 괴롭히는 사람은 여전히 많습니다. 말은 많지만 “그렇다면 좀 도와주세요”라고 하면 황망히 도망가는 교수들 때문에 ‘코피 빵!’ “난 강의가 체질에 안맞아”라며 강의 요청을 거절하는 교수들 때문에 다시 ‘코피 빵!’ 그래서 엊그제 애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교수는 다 변태고 이무기고 어쩌고 저쩌고..” 이러면서 성토를 했었지요. 지난주 언젠가는 여러 개 대학이 연합을 해서 뭔가를 도모하는-모의환자를 가지고 시험을 보는 일인데, 혼자 하기엔 능력이 딸려서 연합을 하죠-모임에 갔었습니다. 잔심부름을 할 대학의 임기가 다 되었다고, 다음에 새로 뽑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남의 일이려니 앉아 있는데 나랑 같이 간 교수가 갑자기 “우리가 하겠다”고 합니다. 놀라서 바라보니 “이런 거에서 계속 빠지면 중심이 될 수 없다”고 하시네요. 거기까지는 좋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 선생님은 저한테 이러십니다. “마선생, 할 일이 많겠어.” 저보다 한참 선배이신 그 분이 잡스럽기 짝이 없는 그 일들-통장관리 및 모의환자들 챙기기, 공문발송 등..-을 할 리는 없으니 저 혼자 해야 합니다. 변방이 되어도 괜찮으니 제가 좀 바쁜 이번 학기엔 참아 주셨으면...
2. 그래도 기분 좋은 일은 있습니다. 이번에 의학교육실에서 의대 선생들이 가르치는 백몇십개 과목들의 만족도를 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과목이 1등인 줄 아십니까? 제가 가르치는 기생충학 및 실습이었습니다. 음하하하. 대개는 ‘매우만족’이 가장 적고, 과목에 따라서 ‘만족’이 많거나 ‘보통’이 많은 수준이었습니다만, 저희 과목은 ‘매우만족’이 하늘을 찌르더군요. 강의의 질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학생들이 얼마나 미숙한지를 보여 주는 사건이기도 하지만, 하여간 1등은 좋은 거 아니겠어요.
3. 조직 관리의 어려움
생각 같아서는 매일 천안에서 숙식하면서 일을 하고 싶지요. 하지만 매일 저녁 포진한 술약속 때문에 꾸역꾸역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는 거~~ 토요일엔 애들이 모의환자 시험 보는데, 저를 감독으로 집어넣어 놨더군요. 오후 한시부터 다섯시 넘어까지 붙잡혀 있어야 한답니다. 요즘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랍니다...ㅠㅠ
4. 어제는
종합병원 2의 두 번째 모임이 있었습니다. 현재 <시골의사>의 판권을 MBC가 샀고, 일본 책을 원작으로 한 의학드라마가 2개나 만들어지고 있다네요. 작가의 말입니다. “젊은 애들의 사랑을 그린 트렌디 드라마가 더 이상 시청률이 안 나오는 탓에 다들 의학드라마에 매달리는 것 같다.” 그래서 좀 위기감을 느꼈는지 어젠 세상에, 새벽 1시 40분까지 마라톤 회의를 했답니다. 하지만 통일된 의견을 내는 게 쉽지가 않더군요. 이재룡을 멋지게 그릴 것이냐 아니면 내면의 상처를 간직한 음울한 사람으로 할 것이냐부터,부터 시작해 ‘리얼리티’를 살릴 것이냐 아니면 있을 법한 얘기를 그릴 것이냐까지, 의견을 모으는 게 힘이 들었습니다. 그 와중에 제가 낸 의견, “주인공 중 한 사람은 취미가 국악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병원 뒷산에 올라가 퉁소를 불며 슬픔을 달랜다.” 모인 장소가 센트랄시티 옆 ‘놀부명가’고, 국악 공연 때문에 회의에 지장이 있었던 데서 힌트를 얻었지요. 물론 제 의견은 호평을 받았는데요, 거기서 퉁소나 뿔피리를 부는 사람이 나오면 제 아이디어려니 생각해 주세요.^^
5. 세상일에 깜깜해졌습니다. 주말에 친구들과 어디 좀 다녀왔는데요, 뉴스에서 ‘바다이야기’ 어쩌고 하는 말이 나오더군요. 전 솔직히 전 SES의 바다인가 싶었어요. 명계남 이름이 나와서 바다랑 명계남이 사귀었나 하는 생각도 했는데, 그건 아니더군요. 요즘 신문을 통 못봐서 그런 건데요, 제 친구들도 바다이야기를 모르는 건 마찬가지더라구요. “어느 바다 이야기냐?”고 묻는 거 보세요.^^ 그래서 제가 이랬죠. “돌아가면 전모를 조사해 메일로 보내 주겠다”고요. 40대가 되면 이렇듯 사회에 무관심하게 되는 걸까요?
6. 가장 큰 문제, 제가 살이 더 쪄버렸습니다. 체중은 무서워서 못 재겠고, 속상해 죽겠는데 배가 왜 그렇게 나왔다고 주위에서 지적들을 많이 해주시네요. 너무 슬퍼요 엉엉.
7. 여러 가지로 죄송합니다.
여러분들 글도 읽어보고 싶고, 야클님 소식도 궁금하고, 토트님 이벤트도 결국 참가를 못할 것 같고, 가을산님 이벤트는 아예 몰랐고, 여우님과 염소는 잘 지내는지 궁금하고.... 아무리 바빠도 하루 한시간은 알라딘을 해야 한다는 게 우리 서재인들의 불문율 아니겠어요. 바쁘다는 핑계로 며칠씩 서재를 비우는 분들을 보면서 “치, 잘 거 안자고 하면 되지 그런 게 어딨어?”라고 맘 속으로 비난했었는데, 이젠 제가 비난받을 차례네요. 제가 고비를 넘기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어 주세요. 제 마음은 늘 이곳에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