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아는 어떤 여의사.
친선 테니스 대회에 나갔다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저렇게 예쁜 의사도 있구나” 싶었다.
미녀에겐 눈도 잘 못 마주치는지라 얘기를 나눠본 기억은 없다.
딱 한번 노래방에 같이 간 적이 있는데
“노는 것도 잘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그때 했었다.
그는 지금 프랑스에 있다(나라 이름이 틀렸을 수도 있다)
거기서 의사 자격증을 따려고 무지 노력을 했고
지금은 거기서 의사로 일한다.
“얘 양육비 대느라 고생이 많더라.”
프랑스에 놀러 갔다가 그를 만나고 돌아온 친구의 말이다.
내가 놀랐던 건, 그가 이.혼.했.다.는. 것.
그런 미녀와 결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난 놀라웠다(아, 나의 미녀 지상주의란...)
개업의로 그럭저럭 먹고는 살 수 있었던 우리나라를 떠난 이유를 그제서야 알았다.
의사 자격증을 딴 지금도 생활이 어려운 이유는
딸이 발레를 원하기 때문.
“발레 가르치는 게 돈이 많이 드나 보더라. 근데 딸이 발레를 그렇게 좋아해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난 그 딸을 원망했다.
자식과 엄마는 공동운명체인데 자기만 살겠다는 거 아냐?
내 결론은 자식은 필요없다는 걸로 치달았다
지난 달, 한국에 온 그녀를 우연히 만났다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가 딸 얘기를 했다
“발레의 화려함 뒤에는 돈을 대는 어머님의 고생이 있다는 걸 님 때문에 알았어요.”
내 말에 그는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있을 때도 그렇게 발레를 하고 싶어했어요.”
일하느라 잠도 잘 못잔다는 그는 한숨을 쉬며 그 말을 했지만
그 얘길 듣는 순간 난 더 이상 그 딸을 원망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 중엔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죽을 때까지 모르는 수가 있고
그래서 적성에 안맞는 일을 하면서 짜증을 부린다.
그런 걸 더 모르는 어린애들은 부모의 욕망을 투사받아
좋아하지도 않는 바이올린을 켜고 피아노를 치며 그림을 그린다.
어느 책에서 읽은 것처럼
진짜로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면 “레슨 시간 외에는 절대 연습을 하지 않는다”
근데 그의 딸은, 아직 어린 그 딸은
발레를 평생 해야 할 일로 결정했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 뜻을 꺾지 않고 있다.
“발레를 못하면 죽어버릴 거다”라는 말을 할만큼 발레를 좋아하는 그 소녀가
나중에 어떻게 자랄지 짐작이 간다.
물론 어머님의 고생은 마음아픈 대목이다.
하지만 딸은 알고 있다.
지금 이 때를 놓치면 자기는 평생 발레를 하지 못한다는 걸
그리고 어머니가 조금만 고생을 한다면 자신의 발레비를 댈 수 있다는 사실을.
미녀 선생님, 힘들어도 견뎌 내셔야 해요.
따님이 유명 발레리나가 되면 그 힘듦이 보람으로 바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