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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좋은 일 - 책에서 배우는 삶의 기술
정혜윤 지음 / 창비 / 2018년 5월
평점 :
지난 7월 7일 토요일, 은평구에 있는 서울혁신센터에서는
의미있는 축제가 열렸다.
‘동축반축’이라고, ‘동물축제에 반대하는 축제’의 줄임말이다.
취지는 이랬다.
그간의 동물축제는 해당 동물을 위한 것이 아닌, 오직 인간을 위한 축제였다.
함평 나비축제를 보자.
이 축제는 어린이날이 있다는 이유로 5월 초에 열리는데,
이때는 나비가 훨훨 날기엔 기온이 좀 낮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비를 잡아다 나비축제를 여는데,
사람들이 돌아가고 밤이 찾아오면 그 나비들은 죽어서 바닥에 떨어지며,
그 수가 워낙 많아 낙엽이 지는 것을 방불케 한단다.
고래축제는 불법으로 잡은 고래를 먹는 축제이며,
산천어축제 역시 당사자인 물고기들이 인간의 노리개 & 먹이가 될 뿐이다.
나비축제가 열리는 함평이나 산천어축제가 열리는 화천이 사실은 이들 동물이 살지 않는,
뜬금없는 장소라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동축반축은 인간만을 위한 이따위 축제를 하지 말자는 퍼포먼스였다.
이 축제는 놀랍게도 한 사람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CBS 피디인 정혜윤이 이 축제를 기획했는데,여기에 동감해준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축제가 성공적으로 열릴 수 있었다.
축제가 제대로 자리잡는다면 축제의 주인공인 동물들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싶다.
정피디로부터 이 축제에 협조하라는 부탁을 받기 전까지
내 꿈은 고래축제에 한번 가보는 것이었다.
고래가 대부분 불법으로 잡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런 데 가서 고래고기를 먹으면 운치가 있을 줄 알았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운데,
이왕 깨달음을 얻었으니 앞으로는 그런 축제가 잘 안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이밖에도 정혜윤은 세월호 가족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가장 애쓴 사람이며,
이 사회의 진보를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 비결이 뭘까?
언젠가 정혜윤이 했던 세바시 강연에 그 답이 있다.
책을 읽었으면 이젠 책에서 얻은 지식을 어떻게 실천할지 궁리해야 한다는 그 말에
난 놀랐었다.
내게 책은 지식을 얻고, 그럼으로써 잘난 체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었을 뿐,
그걸 가지고 실천할 생각은 안했는데,
둘째라가라면 서러울 독서가인 정혜윤은 책에서 읽은 것들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동축반축 역시 그 실천의 일환일 터, 어찌 그녀를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혜윤의 신작 <뜻밖의 좋은 일>도 책을 읽는 것이 지적 유희가 아닌,
세상과 맞서 싸우도록 자신의 힘을 키우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가장 공감되는 대목은 다음이었다.
[... 불행을 겪은 사람들은 단 한 단어로 규정된다. 그 사람은 전쟁용사야, 전쟁 때문에 아주 망가졌대...알고 보니 입양아래..성소수자였다는군.
“아, 그래서 그랬구나. 이제 이해된다.”
우리는 한 사람을 얼마든지 축소한다.
그 순간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아, 알겠어. 그래서 그랬군!” (244쪽)]
정혜윤은 그 다음에 쿤데라의 말을 언급한다.
“그는 한 사람의 개성, 정체성, 가치, 이것들을 파괴하여 무의미한 획일성으로 만드는 것이 악마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에 대한 존중은 한 사람을 하나의 원인으로, 당위로 환원시키지 않는 것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245쪽)
이것 역시 내가 자주 해오던 것이라, 어쩔 수 없이 진한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물론 책을 읽으면서 부끄러워지는 건 나쁜 게 아니다.
책을 안읽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게 나쁜 것이다.
그러니 책을 많이 읽고, 많이 깨닫고, 그걸 실천하려고 노력하자.
그런다고 내가 동축반축을 기획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 축제에 가서 멋진 연설을 하는 사람은 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