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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7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술을 많이 마셨는지라 집에 오자마자 잤다. 그때가 10시 반쯤 되었을 거다. 지나친 술 때문인지 악몽을 꿨다. 난 프랑스 파리였고, 가방을 잃어버렸고, 소매치기를 만났다. 배경이 파리인 건 아마도 최근 <리진>을 읽은 탓일 거다. 워낙 일찍 잔데다 악몽까지 꿔서 새벽에 눈이 떠졌고, 책상 옆에 버티고 있는 밀린 리뷰 한편을 쓸 수 있게 됐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7’은 장정일의 독후감을 모은 책이다. 이 시리즈의 첫권을 읽은 이후 난 그때까지 나와있던 독서일기를 모조리 샀고, 그 후부터는 독서일기가 언제 나오는지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만큼 독서일기는 내 책읽기와 글쓰기의 전범이었는데, 나도 이런 리뷰를 쓰고 싶다는 일념에서 장정일의 문체를 따라하던 시기가 있었다. “어떤 필요에 의해 이러이러한 책을 읽다”라든지, 13쪽에 나온 것처럼 “....라는 전언은 장준하의 삶에 두 가지의 큰 마디를 만든다”는 표현들이 그 예인데, 글쓰기 책을 보면 모방은 글을 잘쓰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코스란다. 그래서 내가 지금 리뷰를 잘쓰게 됐느냐면 그게 전혀 아닌 것 같아 심히 안타깝다. 알라딘에 제일 먼저 썼던 리뷰는 지금 찾아보니 <설국>이던데, 횡설수설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장정일이 뛰어난 이유는 한 책을 읽고나서 그와 연관된 말이나 책을 인용할 수 있는 능력, 그런 건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건 아니다. 그러니 리뷰를 잘쓰기 위해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읽어서는 안될 것 같다. 그냥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고, 못읽고 지나간 보석들을 발견하는 재미로 이 시리즈를 읽는다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저자가 읽은 책 중 내가 읽은 책과 겹치는 경험을 시리즈 초기보다 더 많이 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반갑다. 책에 중독된 지 10년이 막 지난 내게 장정일의 다음 구절은 더더욱 반갑다.
“식욕이나 성욕처럼 독서 자체도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자 매번 다시 채워야 할 결핍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그 밑에 사족으로 달아놓은 글은 음미해볼 가치가 있는 듯하다.
“책에 대한 내 관념은 몇 차례나 바뀌어다. 젊었을 때는 그저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수단으로 책을 읽었다. 그때 책은 아파트 평수를 넓혀가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다른 사람과 이해와 사랑을 나누는 방법으로 책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지식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책을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어가게 된 것이다”
아직 책을 아파트 평수의 개념으로 읽고 있는 난 언제쯤 되어야 장정일의 경지에 도달하게 될지 아득하다.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가끔씩 “모든 습관이 지나치면 해롭듯이 독서도 지나치면 해롭다. 지나친 독서는 왕따의 지름길이다”라고 말하곤 한다. 아는 게 많아지면 주위 사람들이 한심하게 보이는 현상을 말한 것인데, 장정일의 말은 다르다.
“무엇엔가 중독된다는 말은 곧 외로움으로 통하지만, 책에 중독된다고 해서 외로워지지는 않는다.”
이 구절을 읽고 생각해보니 나 역시 책을 통해 잃어버린 사람보다 새로 관계를 맺은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앞으로는 학생들에게 다르게 얘기하련다. “왕따가 되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책을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