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가 바보같아서 벌어진 일이고, 다른 사람을 원망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러니 내가 이 글을 쓰는 건 남 탓을 위함이 아니다.


<앵무새 죽이기>를 영등포역 근처의 서점에서 구입한 건 한달쯤 전 일이다.

'지금 읽는 책만 읽고나면 그걸 읽어야지' 하면서 가방에 넣었는데

학교에 뒀는지 집에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어디 있는데 못찾는 것 역시 '잃어버림'의 범주에 속하는지라

과감하게 알라딘에서 주문을 했다.


나중에 배달된 책을 보니 뭔가가 이상하다.

"왜 이렇게 얇지?"

책을 열어보니 작품의 개요, 줄거리, 등장인물이 나오고 책 뒤쪽으로 가니까

'실전연습문제'까지 있다.

그렇다. 난 <앵무새 죽이기> 대신 '논술 가이드'를 사버린 거다....

하도 어이가 없어 5분 정도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이왕 온 거니 읽어는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가지고 있는데, 좀 씁쓸하다.

책값을 날려서가 아니라, 요즘 청소년들이 이런 류의 책을 보면서 논술준비를 한다는 생각에.



 

 

왼쪽 게 논술가이드다.

 

 

양서가 좋은 책인 이유는 줄거리가 아름다워서라기보단

인물들의 캐릭터가 입체적이고, 상황 묘사가 잘 되어 있어서,

그리고 눈물이 날 것 같은 감동을 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안읽고 논술가이드를 읽는다면 도대체 무슨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영화와 마찬가지로 책은 독자의 마음속에서 완성이 되며,

100명이 읽는다면 100가지의 다른 느낌이 있게 마련이다.

책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이 저자의 의도와 다르다고 해도 그게 오답은 아니다.

하지만 논술 가이드는 책에 정답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럼으로써 독자의 사고를 한쪽으로 몰아넣는다.

언젠가 우리 학교 입학생들의 논술답안지를 채점하다가 천편일률적인 글들에 짜증이 난 적이 있는데

그런 획일적인 글들의 배후엔 논술가이드를 비롯한 학원들의 명강의가 있었던 거다.

이런 가이드를 읽고 직접 책을 찾아 읽는 학생은 과연 얼마나 될까?

<월든>, <분노의 포도>, <멋진 신세계>, <신곡> 등등으로 이어지는 '다락원 명작노트'의 리스트를 보고 있자니 한숨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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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8-02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어쩌다가 저런 실수를... 근데 실수마저도 너무 마태님 다운것 같아서 재밌어요. ㅎㅎ
근데 정말 저런 논술 가이드가 책별로 나온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대한민국 입시 가이드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Mephistopheles 2008-08-02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따위를 읽는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단 이야기겠죠..
기본적인 교양과 소양이 배제된 채 사회에 나온 아이들이 한국에서는 모르겠지만
과연 월드글로벌 인재에 적합할까요?? 코앞의 단수만 보는 우리나라 교육은 언제쯤이나
개선될런지..허허허허

비로그인 2008-08-02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술답안지가 학원에서 가르쳐준 뻔한 내용이라는 말은 들었는데 이런 식으로 '공부'를 시키는 모양이네요.
답답합니다.

최상의발명품 2008-08-02 0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앵무새 죽이기 읽으시기까지 그렇게나 많은 사연이 있었군요.
제가 사실 어리버리하고 뭔가를 좀 잘 잃어버리고 하는데 그런포스가 마태님한테까지 닿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ㅠㅠ 제가 추천해드린 책이니까요......
그래도 이런 우여곡절 겪으신 끝에 읽으신 책이라 마태님의 기억에 더 오래 남을 거 같네요.
비가 오네요.
좋은 주말 되세요^^

BRINY 2008-08-02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동네에서 잘나가는 논술학원은 그런 식으로 지도해서 내신성적이나 수능성적만으로 갈 수 있는 대학보다 좋은 대학 보낸 경우가 있긴 있더라구요. 비록 소수긴 하지만, 늘 그 소수의 예가 자기 일인양, 자기 아이일인양 생각하는 게 요즘 세태 아니겠어요.
그리고 실례될 지 모르지만, 마교수님 계시는 과 지원하는 저희학교 애들 얘기로는 어차피 논술이고 면접이고 다 필요없다, 수능이 최고다라고 하던걸요. 지역의학우수자로 지원해도, 수능최저등급 통과 못하면 끝이라고 말입니다.
저도 한숨만 쉽니다.

무스탕 2008-08-02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들은 강남엄마가 권하는 권장도서목록에 들어있겠군요 --

다락방 2008-08-02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어떡해. 저..저....저런 책이 있단 말입니까!
마태님 삽질하셨군요. orz


춤추는인생. 2008-08-02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님 그런책이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씁쓸한 일이지만, 하필이면 내가 좋아하는 마태우스님께서 그런일을 당하셨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요^^
제게 웃음을 주셔서 감사해요. 비가오네요. 고즈넉한 주말 보내시길요^^

마노아 2008-08-02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씁쓸한 오주문이군요. 그나저나 저 책을 무에 쓸까요. 그냥 반품 시키셔요. 고객의 단순 변심에 의한 반품...;;;

순오기 2008-08-03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학부모독서회 8월도서가 '앵무새 죽이기'인데, 푸른색의 앵무새는 이미 봤는지라 일부러 논술가이드를 주문했어요. 대체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 비교해 볼려고요. 제가 세계문학 다이제스트나 한국문학이 어린이용으로 나오는 걸 결사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저런거라고요~ 저런 걸 읽고 책 읽었다고 정말 봐야 할 시기에 봐야 할만한 책으로 안 보거든요.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 수준이지요.ㅜㅜ

마태우스 2008-08-02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맞습니다. 저도 돈키호테 같은 거 계림문고 축약본으로 봤거든요. 그걸 보고 느낀 건, 돈키호테 좀 한심한 인간이다 이런 거... 알고보니 세르반테스의 의도는 그게 아니더군요. 하지만 어릴 적 읽었으니 커서 안읽잖아요. 저도 그랬지만요...
마노아님/호호, 어젯밤에 논술 문제 좀 풀다 잤습니다 정리가 되던데요 호호.
춤인생님/어머머 제가 좋아하는 춤인생님이시다! 님이 웃으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세상엔 참 별의별 책이 많지요?
다락방님/맞습니다. 삽질! 적절한 단어입니다 !
무스탕님/아마도 그렇겠죠? 속독이 아무 효과 없다는 게 발표된 적 있잖아요. 그럼에도 속성교육은 각광받고 있더군요
브리니님/그니까 어떤 이들에겐 도움이 되는 거군요... 글구 님 말씀이 맞습니다. 수능최저등급을 통과해야 하는데, 거기 통과가 어렵죠... 그 중에서는 결국 면접과 논술이 중요하겠지만, 갑자기 죄송하단 말밖에 생각이 안나네요...
최상의 발명품님/그런 일이 없었다해도 무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님이 추천해주셨다는 것두요^^ 근데 저 우산은 잘 안잊어버립니다^^
승연님/제마리그말입니다... 세상은 넓고 책은 많아요
메피님/아..님이 교육감선거에 나왔다면...... 미국에 있다가도 와서 투표했을 거예요.
바람돌이님/입시가이드 정말 대단하죠? 갑자기 논술공부 하고 싶더라구요^^

노이에자이트 2008-08-02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술은 논에서 마시는 술 아닌가요?

하루(春) 2008-08-03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웃겨. 얼마나 급히 주문했길래... 원래 그러신 건 아니죠?

비연 2008-08-03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큭큭...마태님. 오랜만에 크게 웃었습니다..^^

마태우스 2008-08-04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아직 제 유머가 안죽었군요!
하루님/어..저 원래 그런 놈은 아니어요! 아닌가...^^
노이에자이트님/안녕하세요. 그렇게 심오한 댓글을 달아주시다니... ^^ 다음 댓글을 기대합니다 꾸벅.

무해한모리군 2008-08-12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논술채점 아르바이트를 한적이 있습니다. 한 논술학원 수강생들이 쓴 답안지를 읽는데, 처음에는 깜짝 놀랬습니다. 고등학생들이 알기어려운 철학서들이 언급이 되어 있어서요.. 그러다 나중엔 화가 버럭 나더라구요.. 모두 비슷비슷한 답들.. 아마 환경문제에 대해 지문이 나오면 이렇게 저렇게 쓰라고 가르친 모양이더군요. 어찌나 씁쓸하던지..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열장만이라도 한번 보세요. 너무 재밌거든요."

알라딘서 알게 된 '최상의 발명품'님이 <앵무새 죽이기>를 추천하며 하신 말씀이다. 우여곡절 끝에 책을 구해 읽기 시작했는데, 초반부엔 "이거 성장소설이잖아? 난 다 컸는데..."란 생각에 약간의 회의를 갖기도 했지만, 내가 책에 빠져들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이 책을 다 읽은 건 지하철 의자에 앉아 있을 때였다. 주인공 '스카웃'이 그토록 무서워하던 래들리 씨 집의 현관에 서서 마을을 바라보는 대목을 읽을 때부터, 난 연방 손가락으로 눈가를 훔쳐야 했다. 개가 나오는 책을 제외하곤 소설을 읽고 울어본 건 꽤 오랜만이다. 대체 난 왜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을까? 눈물의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내가 책을 읽기 전보다 더 컸다는 생각을 했다.


1박2일의 회의 때 이 책을 들고 다녔더니 누군가가 이런다.

"그 책 이제 읽으시나봐요? 난 아주 어릴 때 읽었는데... 스카웃인가 하는 애 나오죠?"

어릴 적 읽어야 할 책을 어른이 되어 읽는 건 결코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물론 어릴 적 읽어야 더 좋은 책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호밀밭의 파수꾼>은 지금의 내겐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잖는가? 하지만 이 책, <앵무새 죽이기>는 언제 읽더라도, 심지어 야오밍이 읽더라도 그를 더 자라게 만드는 책이다.


사람들은 때론 실수를 한다. 쥐가 치즈를 훔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그런 이유다. 하지만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책들엔 뭔가가 있다. <앵무새 죽이기>를 아직 읽지 않았다면, 이제라도 그 책을 보면서 뭔가를 느껴 보길 권한다. 당신이 흘리는 눈물의 양만큼, 당신은 자라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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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8-02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적 읽어야 할 책을 어른이 되어 읽는 건 결코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맞아요.
오히려 나이를 먹고 작가의 생각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읽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요즘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너무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책을 읽혀서 머리로만 읽고 마음으로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쓰럽더라구요.

최상의발명품 2008-08-02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몇 달 전 제가 추천해드렸을 때 이렇게 리뷰까지 올라오길 크게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좋게 읽으셨다니 저도 좋아요.
저도 이 책 울면서 읽었답니다. 아마 착한 흑인이 누명을 쓰는 그 쯤인가 부아저씨 얘기를 읽을 때 쯤인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리고 많이 웃으면서도 봤어요.
저는 평생 한 번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어요. ㅎㅎ
성장소설 얘기하시니 생각나는데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도 제가 읽을 때마다 눈물을 줄줄 흘리는 소설이랍니다. 그에 이어지는 책도 두 권인가 더 있어요. 제제가 조금 더 컸을 때의 이야기.

무스탕 2008-08-02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서 보면 절대 성장소설 같지 않은데 제가 잘못 생각했나봐요.
최상의 발명품님이랑 마태님덕분에 흥미가 생겼어요 ^^

다락방 2008-08-02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을 광고때문에 꺼려했더랬어요. 성서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어서 말이죠. 물론 읽고 났을때는 아 진작 읽을걸, 편견 갖지 말걸, 하는 생각을 했지만 말입니다.

이 책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아주 기가 막힌 문장이 많이 나오죠. 이를테면,


언젠가 아빠는 나에게 형용사를 몽땅 빼버리고 나면 사실만 남게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p.116)


아빠는 잠을 푹 자지 않고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기 때문에 그 날은 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pp.140~141)


이런 문장들이요.
:)

마노아 2008-08-02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정독 도서관에 금요일마다 가서 하루 3시간씩 총 9시간에 걸쳐 이 책을 읽었어요. 정말 최고였죠. 영화도 있던데 보지는 못했어요^^

마태우스 2008-08-02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오아님/최고란 말에 동의해요. 갑자기 영화도 보고 싶네요. 책만큼은 아닐 것 같긴 해두요. 그나저나 님같은 분들은 다 중학교 때 읽으셨군요ㅠㅠ 전 그때 야구장만 다녔는데..
다락방님/와 님은 안읽은 책이 없군요! 그 아빠, 정말 멋지죠. 그런 아빠라면 다시 태어나고 싶단 생각도 듭니다^^
무스탕님/오오 님 아직 안읽으셨군요 겁나 반갑습니다 꾸벅.
최상의발명품님/님께 감사하단 얘길 리뷰에 안썼군요! 님은 제 은인입니다 꾸벅. 글구...라임오렌지 나무 그 후편, 둘 중 하나 읽었는데요 1편의 모방 같아서 별 느낌이 없었는데 제가 너무 무뎌서 그런 걸까요?
승연님/맞습니다. 나이들어 읽는 게 더 좋은 경우가 많더라구요 요즘 읽는 명작들, 어릴 때 읽었음 잘 몰랐을지도 몰라요.

최상의발명품 2008-08-02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고 그렇게 말씀해주시다니요! 저야말로 감사하죠.
라임오렌지 바로 뒤편 마음속의 두꺼비는 (제목이 생각 안나네요)
그래도 저에겐 감동적이었어요.
물론 라임오렌지와는 비교되지 않지만......
그 후편은 재미없어서 읽다 말았구요^^
(수줍어서 망설였지만 무스탕님 저 때문에 앵무새 죽이기 관심 생겼다고 해주셔서 감사해요^^)


비로그인 2008-08-03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무리 다시 읽어도 호밀밭의 파수꾼이 왜 그리 위대한 작품인지 모르겠어요. 제가 아는 모든 미국인들은 좋아 미칠 지경이라는데 전 아무리 봐도 지루하고 이해 안가는 작품이었으니. 대신 저도 앵무새 죽이기는 좋았습니다. 아직도 작품 속 아버지가 좋아요. 읽을 때도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멋있는 사람.

마태우스 2008-08-04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상의 발명품님/앵무새로 인해 님의 신뢰도는 거의 최상이 되었지요. 앞으론 말 잘들을께요^^
주드님/오오 저랑 의견이 같으시군요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해서는 제가 나이들어 읽은 탓이라고 생각할래요 기냥. 질풍노도의 시기엔 그 주인공에게 공감할 수 있잖아요...! 주드님도 멋진 어머니가 될 것 같은데요?^^

무해한모리군 2008-08-05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덕에 줄거리가 어렴풋이 생각나네요~ 다시 읽고 싶어서 생투남기고 갑니다.

마태우스 2008-08-07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모리님/어어멋 이게 얼마만의 생스투인지요 제 인기가 예전같지 않아서 님의 생투가 더 감사하네요^^
 


1박2일의 회의에 끌려갔다 왔다. 중복이라 더웠다는데 이틀간 시원한 회의실에 있었으니 좋았다,고 생각하려 했지만, 할 일이 태산이라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1. 뒤집기

2007년, 당시 총장님은 우리 학교 학생들이 교양을 갖춘 훌륭한 사람이 되어 졸업하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나온 게 바로 '교양확대 정책!'

그 결과 우리 학교 학생들은 타학교에서 보기 힘든 강도 높은 교양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모든 일에는 그림자가 있기 마련, 그 정책은 약간의 부작용을 양산했다. 교양과정의 확대로 인해 강의실이 모자라는 사태가 발생했고, 강사를 구하느라 많은 돈이 추가로 들어갔다. 게다가 교양의 확대는 전공교육의 부실을 불러와 '내가 교양 배우러 여기 왔나'는 학생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게다가 '교양확대'를 부르짖던 총장님은 우리 학교 법대가 로스쿨에서 빠진 것에 항의해 올해 2월, 그만두신 상태였다.


우리가 모인 건 비대해진 교양과정을 줄임으로써 2008년 이전으로 돌아가고자 함이었다. 우린 몇 개의 교과목을 없애거나 '선택'으로 돌렸다. 전임총장이 만든 '교양확대' 정책은 시행한 지 1년도 못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시점에서 나와야 할 질문, "왜 그때 반대하지 않았을까?"

그 과정에 참여했던 어느 분의 말씀이다.

"그땐 5공 시절이었다."


2. 말

난 회의 때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글로 쓰라면 모르겠지만, 말을 하려고 마음만 먹어도 벌써 가슴이 뛴다. 게다가 말에 조리가 없어, 설득력 있게 내 의견을 펼치지도 못한다. 그래서 난, 말을 잘하는, 특히 짧게 할 수 있는 말을 길게 하는 교수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한다.


이번 회의도 예외는 아니었다. 첫날만 다섯시간을 넘긴 그 회의에서 난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회의를 주관하던 처장님이 날 지목한다.

"마교수, 한마디도 안했는데 의견 좀 얘기해봐요."

난 놀라서 이렇게 말해버렸다.

"저...지금 사탕 먹고 있는데요."

이게 오늘까지 이틀 동안 내가 했던 말의 거의 전부였다.


3. 가관

회의 중 문자가 왔다.

"하이드님 서재 좀 가보세요."

"왜요? 지금 못가는데."

"최상의 발명품님이 그 서재에 댓글을 남겼는데요, '지나가다'라는 이가 '너 마태우스잖아!'라며 막 욕하고 있어요."


길게만 느껴지던 일정에서 해방되어 이제야 컴 앞에 앉았다.

지인의 권유대로 하이드님의 서재에 가봤다.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지나가면서 2008-07-29 18:26   수정 | 삭제 | URL


도둑이 제발 저린다죠. ㅋㅋㅋ
털어서 먼지나는 주제에 하이드님을 왜 깠나요?

털어서 먼지나는 짓을 하지 않으면 떳떳할텐데.

리뷰의 미녀타령을 하시는 분이기에 이런 병맛리뷰도 있구나해서
검색해보니 나오더군요. 저 리뷰는 더 우습네요. 리뷰인지 외모칭찬인지 분간이 가지 않습니다.
리뷰어께서는 결혼정보업체에 근무하시는 분도 아니실 듯 한데 저 어설픈 사탕발림은 ^^

하이드님께는 좋은 리뷰어인 알케님과 나귀님의 정보를 가르쳐주신데 감사드립니다.
까칠하게 구는 사람은 그냥 무시하시고 무더운 나날 잘 보내시길.









지나가다가 2008-07-29 20:40   수정 | 삭제 | URL


털어서 먼지나는 사람이면 반성해야지 무슨 자격으로 타이르나요?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던데 맞네요. ㅋ
하이드님께 사과하긴 커녕 익명으로 누가 자기 욕하나 훔쳐보고 익명으로 달고 ㅋㅋ






지나가다가 2008-07-29 22:45   수정 | 삭제 | URL


그렇게 익명을 쓰면 누군지 모를 것 같아요? ㅋㅋ

여기저기 쑤셔댔던 분이더군요. 정말 경력이 지저분하던데요. ㅎ
간신히 자리잡았으면 가정에나 충실하세요.

 




지나가면서 2008-07-30 07:01   수정 | 삭제 | URL


로그인된 님 자신의 서재에서 반박하세요. 추태 그만부리시고 ㅋ

로그인된 서재에서는 잘난 척 어흠어흠 타이르면서 체신머리 유지하고
누가 자기 욕하나 하면서 슬그머니 기어들어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다는 소리나 하니 ㅋㅋ

누군지 다 아는데 말을 못 하네요 ㅋ 닉 바꿔서 최상의 발명품이라고 고치면 헷갈릴 줄 아나 ㅎ

첫째, 둘째 댓글은 티나니까 지우셨네요.

 




지나가면서 2008-07-30 12:20   수정 | 삭제 | URL


"필요하시면 님이 씹으시는 그 분 서재에"

도둑 본인이 아니면 모르는 사실인데 어떻게 아셨을까요? ㅋㅋㅋ
처음 서재에 와보았다는 분이 "필요하시면 님이 씹으시는 그 분 서재에"라고 말하다니.
진실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정에나 충실하세요. 방황은 그만 멈추셔야지요. ㅎ
속 빈 강정처럼 남에게 으시대면서 터줏대감 질 하시다가 비로그인으로
맘에 안 들면 타이르시는 사기질이 들통나셨으니 ㅋ

 


'최상의 발명품'님이 누군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분은 꾸준히 내 서재에 댓글을 다셨고

내가 지금 재미있게 읽고 있는-383쪽까지 읽었어요!-<앵무새 죽이기>를 추천해주신 분이기도 하다.

그러니, '지나가다'가 내 <침대와 책> 리뷰를 복사해 갈 때

이왕 오신 김에 그분의 댓글들도 좀 읽었다면 좋았을 뻔했다.

사람은 지 스스로 책을 추천하고 지가 고마워하고 그런 짓을 잘 안하지 않는가?

그리고 '지나가다'야 시간이 워낙 남아도니 실시간으로 댓글을 달았겠지만,

난 익명으로 댓글을 다는 건 별로 안좋아하고 (그건 하이드님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지나가다란 작자는 결코 하이드님이 될 수 없다)

그 반응이 궁금해 수시로 서재를 들락거릴만큼 한가하진 못하다.

누군가를 나라고 단정해 윽박지르려거든 아이피 주소를 확인한다든지 하는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하지만,

대개 무식하고 할 일없고 인생이 찌질한 사람일수록 용감한 법이다.


정말 안타까운 건, 그런 용감무식한 댓글들은 당사자에게 별반 상처를 주지 못한다는 것.

혼자놀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저 댓글들의 향연에 난 그냥 웃고 말았는데,

지금 이순간에도 행여 자신에 대한 글이 올라오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그를 생각해서 이 글을 쓴다.



옛다,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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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8-07-31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오래간만에 실시간 댓글놀이나 해요. 참 1박2일 회의면 오늘 투표못하셨겠네요. 부인이라도 보내서 투표하게 하셨나요? 아니 무슨 회의를 투표하는날 해요. 이건 음모야..

Mephistopheles 2008-07-31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은 뻥쟁이.
회의하면서 그림도 그렸으면서!(아님 말고)

마태우스 2008-07-31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아니... 제가 그림 그린 거 어케 아셨죠? 괜찮은 놈으로 한 다섯장 정도 그렸어요. 마침 미대 교수가 있었는데 저 보고 소질이 아주 많대요. 근데 나이 마흔 둘에 소질 많으면 어따 쓰죠?^^
파비님/제가요 지금까지 모든 선거에서 투표를 했거든요. 군대 땐 부재자투표... 근데 이번에 처음으로 투표 못했어요. 사실 회의가 아니었다면 했을까, 이것도 사실 의문입니다. 댓글놀이는.... 호호 다음에!

마태우스 2008-07-31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이틀간 인터넷 못했더니 안좋은 일 천지네요. 두산 두번 내리 지고-한번은 정작가, 한번은 늘 그렇듯이 김선우, 보스톤도 이틀 내내 지고-양키스랑 동률인가...?-마음을 비워야 하려나봐요. ㅠㅠ

최상의발명품 2008-07-31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참 마태님이라는 오해를 다 받게 되다니......
하도 못볼 리플을 달길래 뭐라고 했더니 바로 마태님이냐는 소리가 나오더군요.
저 아이디 하나 만들어야 할까요?
그래도 마태님이 만든 다른 아이디라는 소리 듣는 거 아닌지, 원.
아이피 공개하는 법 없나요?
알라딘 서재를 안 것은 얼마 안되었지만 다른 인터넷공간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이 신선했는데 저런 분이 다 계시더군요.
(앵무새 죽이기 읽으셨군요! 리뷰 많이 기다릴게요~ 스카웃의 로맨스도 귀엽지 않나요? ㅎㅎ)

soyo12 2008-07-31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도 음......별 일이 많은가보네요.^.^
나름 속 상하셨겠네요.^.^
마태우스님은 대범하셔서 괜찮으시려나?
전 소심해서 이런 사건을 한번 맞이하면 심장이 벌렁벌렁하는 사람이랍니다.^.~

조선인 2008-07-31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멈머, 하기 싫어도 투표 했어야죠. 미래의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님에게도 분명 '미래'가 있을 겁니다. =3=3=3

무스탕 2008-07-31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핑크빗 관심을 선사하셨네요? :)
그리고 마흔둘에 소질을 발견하셨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무려 마흔셋도 아닌 마흔둘인데요, 뭘.. ^^


비로그인 2008-07-31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도 관심받고 싶어요 그것도 핑크빛으로 호호호

순오기 2008-08-01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재미있어요~~ 아침부터 핑크빛 관심이 급 부러워졌어요!^^
간신히(?) 자리잡았다는 가정엔 충실하신거죠?ㅋㅋㅋ

무스탕 2008-08-01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저 어제 티비에서 마교수님 뵜어요 :)
미라 다룬 EBS 프로있죠? 아는 얼굴이 나와서 순간 어어~~ 하다가 앗-! 마교수님이닷! 했지요. (정작 티비엔 서교수님으로 나왔긴 하지만요 ^^)
즐거웠습니다 :)

마태우스 2008-08-0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스탕님/안그래도 누군가가 얘기해 주더군요. 전 몰라서 못봤어요^^ 근데 저 너무 말 못했죠... 버버버버벅거렸어요 흑.
순오기님/그럼요 제가 하고자 했던대로 살고 있답니다 간신히라도 자리 잡길 잘했어요^^
주드님/앗 님같은 미녀분껜 늘 관심이 있답니다!!!
무스탕님/호호 그런가요? 이젠 소질에 그칠 게 아니라 좀 발전시켜서 전시회도 해볼까봐요 호호호.
조선인님/오랜만이어요! 근데 과연 제게도 미래가 있을까요? 우리 강아지들을 보니 교육감과 크게 상관없는 삶을 살 것 같은데..^^ 담번엔 꼭 투표할께요
소요님/어, 저는 인터넷으로 쌈질을 오래 해서, 저런 일은 신경도 안쓰입니다. 님도 강해지셔야죠!!!
최상의 발명품님/그러게 말입니다 하여간 저 대신 저 화상 응징하시느라 애쓰셨네요. 앵무새 죽이기 다 읽고 리뷰 썼습니다 저 착하죠?
 

 

 

 

 

 


 

인터넷 서점이 처음 생겼을 때, 내가 찬양해 마지않았던 건 바로 독자리뷰였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남들도 즐겁게 읽었을 때의 기쁨은, 이국만리 타향에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난 기분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책 선전의 기능을 하고 있는 리뷰도 있는데, 예컨대 다음 리뷰가 그렇다.


[SF와 하드보일드의 결합은 새로운 일은 아니다만, <차탈레 타운>에는 무언가 재미난 것이 있다....웰메이드 하드보일드가 아니더라도 마음을 끄는 것은 심지어 한번 더 읽을 마음이 드는 것은 이 소설이 가진 키치한 SF하드보일드로서의 매력이다.]


'웰메이드' '키치'같은 난해한 용어를 삽입하긴 했지만, 누가 봐도 이건 책을 사보라는 강력한 권유에 다름 아니다. 차탈레 타운을 읽을 때 한숨을 푹푹 쉬며 무미건조하게 책장을 넘겼던 나로서는, 독자를 현혹시키는 저런 류의 리뷰를 읽고 나면 의심의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다. 찌르르!


내가 리뷰의 세계에 입문할 때, 차이코프스키라는 별명을 가진 은사가 내게 해준 말이 기억난다.

"혹평을 쓰는 것은 돈 안 받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찬사로 점철된 호평을 쓰는 건, 하다못해 찹쌀떡이라도 받아먹지 않은 이상 어려운 일이다. 넌 정녕 찹쌀떡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날 이후 난 찹쌀떡을 끊었다. 하지만 찹쌀떡은 여전히 많이 팔린다. 그 찹쌀떡의 매출액에도 난 의심의 눈길을 던진다. 지금 어디선가, 찹쌀떡의 댓가로 찬사 일색의 리뷰를 쓰는 이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물론 이런 변명은 가능하다.

"난, 난 정말 <차탈레 타운>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특히 우주선에서 그러는 장면은 내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 줬어. 정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의 입가에 떡고물이 묻어 있다면, 그 변명은 과연 얼마나 진실된 것인가?

이상 비아냥거림이었습니다.


아주 형편없는 책이 아닌 이상, 그 책에 매혹되는 것도,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 사람의 자유입니다.

자신이 정말 그렇게 느꼈다면, 그 느낌을 솔직히 쓸 수 있는 자유는 누구나 갖고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다른 사람이 별로라고 생각하는 책을 좋게 읽었다는 게 '알바'의 혐의를 받아야 할 중대한 범죄일까요?

전 진심어린 비판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비아냥거림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비판은 당사자를 더 높은 세계로 이끌지만, 비아냥이 남기는 건 상처 이외에는 없다고 믿어서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위에서 비아냥거린 이유는, 사람들이 비아냥을 할 줄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리고 비아냥의 당사자가 되면 어떤 기분인지를 비아냥의 일인자인 그분이 깨달았으면 해서입니다.

* 추신: 이 글은 하이드님의 글에 대한 제 답변입니다. 하이드님은 제게 편지를 쓰지 않으셨지만, 제가 원래 오지랍이 넓어서요^^

* 추신 2: 제가 인용한 차탈레 타운은 실제 책과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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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백합니다. 사실 나는 출판사 알바입니다.
    from little miss coffee 2008-07-29 09:15 
    하이드를 오래 알아온 사람이라면, 이 서재를 오래 방문해 온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출판사 알바다.... 두둥- 한때는 알랭 드 보통을 출판하는 출판사들의 알바를 뛰었고, 한때는 존 버거를 출판하는 출판사들의 알바를 뛰고 있다. 그것이 너무 티난다고 하여, 요즘은 미야베 미유키를 출판하는 출판사의 책들에는 혹평과 호평을 버무린다. 나의 알바변천사..라고나 할까.   사실, 요즘 소비자들이
 
 
마립간 2008-07-29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별 5개와 나귀님의 별 1개 ; 책의 내용 및 수준에 대한 논란이 흥미진진 합니다.

2008-07-29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8-07-29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개와 별 한 개에 그런 의미를 부여하게 될 줄 몰랐네요.
저는 그냥 제 느낌이 제일 중요한데요.

2008-07-29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30 0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da 2008-07-29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해당 페이퍼를 읽고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시간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고 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못 본 척했더랬죠.
오지랖 넓으신 마태님, 긁어주셔서 고마워요.^0^
전 이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저자의 전작을 읽었어요.
한 마디로 취향의 호오가 홍해 바다처럼 쩍 갈릴 수 있는 책이더군요.
아마 두 번째 책도 마찬가지이지 싶습니다.
이를테면, 나귀님 같은 분은 그 책을 읽고 혹평을 쓰실 게 아니라, 실은 아예 그 책을 사지도 읽지도 말아야 했던 거였어요.
그래야 그토록 자부하시는 본인의 안목과 식견에 대한 자신감이 더욱 빛나지 않았을까요?
(전 리뷰를 읽기도 전에 나귀님이 이런 책을? 하고 의아해했을 정도니까요.)
그랬더라면 적어도 저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는 지킬 수 있었을 테고, 그 책을 좋게 읽은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일도 없었겠죠.
정혜윤 씨가 '수준 이하의 저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준 이하의 인간은 아니지 않습니까.
도대체 그 이름도 흔한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게, 어떤 사람들한테는 뭐가 그렇게 어려운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내가 그 입장이라면 어떨까? 정도만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요.
독자 권력이란 게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꼴난 독자 신분이라는 사실 자체가 이 세상 모든 저자를 비판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동적으로 부여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말이 많았네요.
"사람들이 비아냥을 할 줄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리고 비아냥의 당사자가 되면 어떤 기분인지를 비아냥의 일인자인 그분이 깨달았으면 해서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도 딱 이 한 문장인데 말이죠.
사람이란 게, 시간이 너무 많으면 쓸데없는 일을 하게 되어 있죠. 앗, 이건 비아냥거림이네요.- -;;


덧.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저는 정혜윤 씨 책에 대한 애정 때문에 이런 댓글을 쓴 건 아니구요. 저자에게는 인간적인 모멸감을, 선의의/중립적인 독자들에게는 불쾌감을 유발할 정도로 심한 혹평을 쓸 '자격'이 과연 독자에게 있는가, 란 문제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독자가 대체 뭐라고. 독자가 스스로 품위를 잃으면 그야말로 소비자(알라딘 시스템으로 치자면, '구매자')밖에 안 되는 거죠.

Mephistopheles 2008-07-29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쯤되면 별점 5개를 달은 구독자와 별점 1개들 달은 구독자는 4주 후에 다시 만나 이야기해야 하는 건가요?? 그리고 시청자 의견으로 한 번 올려보고...

마태우스 2008-07-31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문제는 별점이 아니어요. 이건 줄기세포처럼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니, 별점 1개든 다섯개든 다 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제가 문제삼은 건 하이드님이 '혹평 리뷰 보니까 속이 시원했다'에 그치지 않고 별 다섯개 준 사람을 알바 취급해서였어요.
꽃양배추님/오오 님 댓글이 아니었다면 전 울어버렸을지도 몰라요! 흑흑, 언젠가 님의 댓글에 감동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사실 이 책이 잘 팔리는 책이 아니었다면 그래도 별 한개를 줬을까, 란 생각을 해요. 우린 대개 리뷰 쓸 때 재밌는 책은 별 네다섯, 아니다 싶은 책은 두개 뭐 이렇지 않습니까. 근데 이게 별 한개짜리 정도일까, 아무리 취향에 안맞아도 정말 그럴까 이런 의문은 듭니다. 앗 말이 빗나갔구요 여러가지로 감사드려요. 꾸벅
속삭님/얼마나 지겨웠음 그랬겠소. 글구 느낌이 제일 중요하지요^^
어머나 속삭이신 ㅁ님/정말 반가워요!!!! 하시는 일은 어떠신지요?? 언젠가 맥주집에서 뵜을 때가 기억나네요. 그게 벌써 몇년 전.... 하여간 제 말이 그말이어요. 제가 바라는 그말씀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립간님/글쎄요 별점은 제 페이퍼의 이슈는 아니었는데... 사람이 백명이면 백가지 느낌이 있는 거죠 뭐.

marine 2009-10-28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마태우스님. 핵심은 그거인 거 같아요. 호평한 사람을 알바 취급한 거, 그건 충분히 불쾌할 수 있고 섣부른 단정이죠. understand... 그렇지만 자유롭게 혹평할 수 있는 권리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간혹 알라디너들이 책냈을 때 이웃들이 호평 일색으로 쓰면 왠지 돌맞을 것 같은 분위기라 혹평 쓰기가 무서울 때가 있어요. 아님 저자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라고 평가받을 때 신념이 아닌 글 자체를 평가하기가 무서울 때가 있어요.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요즘 책을 읽는 사람은 희귀종이다. TV는 더 재미있어졌고, 인터넷은 한번 들어가면 두세시간 날리는 건 기본이다. 출퇴근시간에는 다들 휴대폰만 들여다보는지라 책은커녕 신문도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이런 게 아니라해도 학생들은 입시와 취직공부에 목을 매야 한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친해지는 게 우리네 세상이지만, 책을 읽고 나서 같이 얘기라도 나눌 사람이 주위엔 없다. 그런 와중에 나온 <침대와 책>은 책 이야기에 목마른 독서가들을 열광시켰다. "나 어릴 적 이런 책 읽었는데, 그 책은 이 대목이 좋아."라고 할 때 그들은 반가움을 느꼈고, "비가 오면 파전에 막걸리를 먹으며 이런 구절을 떠올리곤 해."라고 하면 그들은 자신의 기억을 대입해가며 깊이 공감했다.


그 책의 저자인 정혜윤 피디가 두 번째 책 <그들은 한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문난 책벌레들을 찾아다니며 일합을 겨루는데, 이런 식이다.

고수: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이 내 청춘을 장식한 책이다...내가 행복하지 못하니까 세상과 싸우는 거더라.

저자: 그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자신들의 동질성의 실현,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한바탕 꿈이다.

대부분의 무공 대결이 상대를 해치는 것이지만, 책을 매개로 한 대결은 서로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보는 이를 더 높은 경지로 이끈다. 책의 장면 장면들은 오비완-아나킨의 대결보다 아름답고, <와호장룡>의 대나무숲 결투보다 우아하다.


"진중권이 독서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추천도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맥락 속에서 자기만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30쪽)."는 저자의 말은 저자 자신에게도 오롯이 돌아간다. <침대와 책>에서 그간 읽었던 수많은 책들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맥락과 의미를 만들어낸 저자는 이번 책에서 한층 더 세련된 배치를 통해 읽는 이를 몰입시킨다. "몰락하는 일만 남았"기에 딱 한권의 책만 세상에 남긴 하퍼 리같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저자는 책이 거듭될수록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 독서광들에겐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나처럼 문학소년의 시기를 겪지 않은 사람에겐 책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 주는 이 책이 '서재가 사랑한 책' 1위에 올라간 건 당연한 소치다. 저자의 화려한 무공을 보고 있노라면 젊은 시절 야구만 봤던 내 삶을 되돌리고 싶어지지만, 그게 불가능하니 저자의 세 번째 책을 기다리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련다.


한마디 더. 내용으로 보나, '이진경' '박노자' '공지영' 등의 이름으로 보나 이 책은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더해 저자는 자신의 모습을 표지에 싣는 '미녀마케팅'을 펼쳐, 미녀에 약한 독자들마저 끌어들인다. 판매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표지는커녕 책 날개에도 저자 사진을 싣지 못하는 나와 대조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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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7-27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증이 생기게 하는 리뷰네요.

이매지 2008-07-27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평이 극과 극이더군요.
별 다섯 아니면 별 하나.
그래서 되려 더 궁금해지는 책 ㅎㅎ

Kitty 2008-07-27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매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표지는커녕 책 날개에도 저자 사진을 싣지 못하는 나와 대조되는 점이다. <- 너무나 마태님다운 마무리 ㅎㅎ 잘 지내시죠?

BRINY 2008-07-28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궁금증이 생기는데요. 책을 몰아서 사는 월초가 다가오고 있는데.

2008-07-28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8-07-29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어 아닌데, 제가 힌트 안줬어요. 글구 전 페더러가 몰락한 이후부터 테니스가 덜 좋아졌어요...
브리니님/어....이건 순전히 제 견해일 뿐인데, 슬슬 걱정되는데요^^
키티님/호호 제가 저다워야죠 부리스러우면 되겠습니까^^
이매지님/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다 다른 거 아니겠어요
승연님/부끄럽습니다. 그간 잘 계셨는지요..^^

무해한모리군 2008-07-29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대한 책, 서평을 다룬 책은 참 추천하기 어렵고 사람마다 감흥의 정도가 천차만별인듯 합니다. 어떤 형식일지 궁금하네요.. 서점가서 한번 쓱 봐야겠습니다 ^^

세실 2008-07-29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침대와 책은 읽으면서 심드렁했는데 님의 리뷰 읽으니 끌립니다. 찹쌀떡 드신거 아니죠? ㅎㅎ

캐서린 2008-07-30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책을 읽어왔다]라는 책에선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을 선별해나가는 과정이 상세히 나와있습니다..
그래도 요즘엔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조금은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같아
행복하답니다..얼마전만해도 전철에서 책들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다들 잠자기바쁜
세상이었는데..그나마 신문이라도 광고지라도 읽을거리를 찾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태우스 2008-07-31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캐터린 남님/다치바나 씨의 책을 언급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더이다. 읽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그 사람은 정말 대단한 다독가지만 책을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고 그러는데, 그게 저랑은 안맞더라구요. 앗 별반 중요한 얘긴 아니었구요 근데 요즘에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많아졌나요? 흠, 요즘 전철에선 핸펀만 보던데.... 글구 참 초면인데 안녕하셨어요. 꾸벅. 잘부탁합니다.
세실님/아니어요 침대와 책이 재미없으셨다면 이것도 안읽으시는 게 좋습니다. 이게 더 낫긴 하지만 그 연장선에 있는 거잖아요.
휘모리님/사실 전 장정일의 독서일기보다 더 재밌게 봤어요. 하여간 미리 좀 읽어보시고 취향이 맞는지를 확인하시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숲노래 2008-08-01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똑같은 '유명인사'만 우려먹는 책은 꽤 신물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