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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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도 않고 아는 체를 하다간 실수하기 십상이다. <달과 6펜스>에 대해 어디서 주워들은 게 있어서 "어, 그거? 고호 얘기지"라고 잘난 체를 했다가 한동안 그 사람을 피해다닌 쓰라린 경험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서머싯 몸을 이제라도 읽어서 아는 체를 할 수 있게 된 스스로가 대견해 보인다. '6펜스'보다 달의 가치를 더 높게 생각할 나이에 읽었다면 훨씬 좋았겠지만 말이다.




난 이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실존했던 인물을 대상으로 했고, 내가 원래 천재나 영웅의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라 더더욱 재미있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만 해도 난 고갱에 대해 안좋은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언젠가 고호에 관한 책을 읽었을 때, 고갱이 ‘이기적’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왔었던 탓이다. 게다가 고호의 그림들이 “아, 과연 천재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반면 고갱의 그림은,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의 반응이 그랬던 것처럼, 대체 그게 왜 명화인지 의아했었다. 그래서 난 “고갱이 고호와 동시대 인물이고 같은 성씨라 같이 뜬 게 아닐까?”라는 바보같은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나란 놈이 원래 아는 게 별로 없고, 남의 한 마디에 생각이 왔다 갔다 하는지라, 이 책을 읽고 난 뒤엔 고갱에 대해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이 고갱의 실제 모습과 다르다 해도,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미술계로 투신하는 그의 용기와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림을 그린 인내심은 정말 존경할만하다.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

생을 망치는 일일까?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259쪽)’

예쁜 아내에 대해서는 좀 생각이 다르지만, 주인공의 이 말은 이 책이 주장하는 바를 함축하고 있다. 돈이 있다는 게 곧 훌륭함과 동일시되는 요즘 같은 시대일수록 이런 책이 더 읽혀야 할 것 같지만, 같은 이유로 부모들은 아이들이 <달과 6펜스>를 읽는 걸 싫어하지 않을까 싶다. 자기 자식이 “영혼이 날 부른다”며 미술을 하겠다고 할 때, 그걸 허락하는 부모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을까? 그러고보면 과거와 달리 요즘 유명한 화가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색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심화된 탓이 아닐까? 자본주의, 미술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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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보름 2008-09-05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워요. 진정 내가 원하는 일이 뭔지도 사실 모르겠는데,
안다고 한들,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지...
그리고 끊임없이 경쟁하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 낙오되면 안된다는 조바심, 열등감...
그래서 맘 편히 살기는 참 어려운 사회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읽고 싶어지네요.

paviana 2008-09-06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예전에 분명히 읽은 책인데 도무지 좋은 책이었다는 거 빼놓고는 기억이 별로 안나네요.흑흑흑 좋아하던 샘이 읽으라고 해서 열심히 읽었던 무지 두꺼운 책이었는데...
늙었나봐요.

2008-09-06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이였던 돈이 목적이되버린.. 슬픈 우리시대의 자화상..

최상의발명품 2008-09-07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루할 것 같다는 편견으로 안 읽었는데
재밌게 읽으셨다니 신뢰하고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주말 되세요~

마태우스 2008-09-17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상의 발명품님/어...재미없어도 너무 많이 원망하심 안되요 좋은 추석 보내셨나요?^^
오델로님/글게 말입니다. 근데 처음 뵙는 듯...앞으로 잘 부탁해요
파비님/그다지 두껍진 않지만, 세계명작은 이상하게 두꺼운 책으로 각인되어 있어요 모방범은 안그런데^^
섣달보름님/정말 그렇습니다 맘 편히 살기 어려운 세상이죠. 어딜 가나 남을 이겨야 한다는 경쟁심만 가득한 듯 싶어요. 책동네에 오면 좀 덜하지만, 하여간 세상이 무서워요.
 


1) 이해의 한계는?

아산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원 1인실 방값이 너무 비싸 비어있는 2인실로 입원을 시켜드렸다.

첫날은 무사히 넘어갔지만 그 다음날 저녁, 빈 침대에 70대 할머니 한분이 입원을 하셨다.

그때 난 병실에 있었는데, 민폐가 거의 확실했기에 보호자에게 말씀을 드렸다.

"저희 할머니가 밤에 잘 못주무시거든요. 소리도 좀 지르시구요. 폐를 끼칠까봐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할머니의 아들로 짐작되는 보호자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유, 폐라뇨. 다들 아파서 병원에 왔는데, 서로 이해하며 돕고 살아야죠."

다음날, 며느리로 짐작되는 보호자는 병원 측에 입원실을 바꿔주지 않으면 나가겠다고 얘기했고,

결국 할머니는 1인실로 옮기셨다.

하루 방값 293,000원을 감당할 수 없어 거기 며칠 계시다 일산병원으로 가셨는데,

할머니를 본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6인실은 안됩니다. 이 상태면 1인실에 계셔야 합니다."

지금도 할머니는 일산병원 1인실에 있는데,

그곳 1인실도 25만원이니 결코 만만치는 않다.

다행히 수술 부위가 다 나아 다음주 월요일엔 퇴원하실 수 있다지만,

그 다음에 가실 노인요양병원에선 어떻게 지내실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지난번 호수병원처럼 쫓겨나는 건 아닐까...


2) 신앙의 힘

간병인에게 병실을 맡기고 나오면서 불안불안했다.

'저 간병인은 도대체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일단 안주무시고 계속 소리를 지르는 게 한가지 불편이고,

낮에도 하루종일 그러시니 밥 먹을 시간도 내지 못하는 게 또 한가지다.

그래서 한번은 불고기뚝배기 한그릇과 치즈케잌을 잔뜩 사가지고 갔더니

안그래도 종일 굶었다며 정신없이 드신다.

식사 후 몇마디 얘기를 나눴다.

"여러가지로 죄송합니다. 많이 힘드시죠?"

간병인이 말한다.

"사실 첫날밤 지내고 많이 놀랐어요. 그만두자는 생각도 했구요.

월요일날 그만둔다고 말해야지 했는데(그 사람은 토요일부터 근무했다)

할머니 짐에 묵주가 있더라구요.

알고 보니까 천주교 신자시던데, 저도 그렇거든요.

그래서 생각했죠.

다 주님의 뜻이다, 같은 신자끼리인데 내가 성심껏 돌봐드려야겠다고요."

평소 종교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해왔던 나지만

그 말을 듣고는 좀 감동했다.

고맙다고 백번 절하고 그곳을 나왔는데,

다음날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민아, 큰일났다. 간병인 그만둔단다."


주말에 퇴원을 하시니 그때까지만 봐달라, 섭섭지 않게 해드리겠다고 빈 끝에

간병인은 며칠만 더 있겠다고 했는데,

그 후 새벽 두시, 세시를 가리지 않고 계속 엄마에게 전화를 해댔단다.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내지는

"지금 소리 지르는 거 들리시죠? 이러니 제가 잘 수가 있나요?"


같은 환자들간의 이해심도, 신앙의 힘이란 것도 우리 할머니 앞에서는 별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같다.

남에게 손톱만큼의 폐도 끼치기 싫어하시던 할머니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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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8-31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아프네요. 마태우스님 얘기속에서 느껴지던 그 단아하던 모습의 할머님이 병으로 고생하시는 모습을 들으니.... 좀 나아지셔야 할텐데,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그나저나 서울의 병원들은 정말 살인적인 가격을 자랑하더군요. 저도 전에 어머님이 아산병원 입원하셨었는데 수술후 상태가 많이 안좋으셔서 2인실 계셨거든요. 정말 돈이 악소리가 절로 나더라구요. 밥값도 왜 그렇게 비싼지... 먹기도 힘들게 맛도 지질이도 없더니... 부산 왠만한 병원의 딱 두배더라구요.

최상의발명품 2008-08-31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태님을 예뻐하시는 정 많은 할머님, 빨리 나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순오기 2008-08-31 0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님께서 빨리 좋아지셔야할 텐데...잘 늙고 잘 가는 게 복이라는 노인들 말씀이 새삼 새겨지네요. 신앙을 말씀하신 간병인이었으면 조금 더 견뎌주셨으면 좋았을 걸~ 말의 책임을 지는 게 참 어렵죠.ㅜㅜ

BRINY 2008-08-31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상시 쓸 현금이 많이 있어야겠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세실 2008-08-31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꼿꼿하고 남에게 폐 끼치기 싫어하시던 분이.....
할머님도 많이 힘드신가 봅니다.
남은 여생 편안하게 사셔야 하는데....

마노아 2008-08-3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안타까운 일이에요. 할머님도 가족들도 많이 힘들텐데, 꼭 좋아지셨으면 합니다. 맘이 아프네요...

비로그인 2008-09-01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가지 이야기를 썼다가, 다 지워버렸습니다. 어느 것도 위로가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김 훈의, 위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가 이럴 때 쓰일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쪼록 기운 내셔야 합니다.

조선인 2008-09-01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 내세요.

레와 2008-09-01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 내세요. 마태우스님!

물만두 2008-09-01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 내세요.

2008-09-01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깜소 2008-09-02 0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가족분들 모두 힘내시길~ 할머님도 쾌차 하시길....먼저 보낸 형님의 3개월 병수발중 마지막 한달동안 의식도 없이 내지르는 고통의 신음소리와 링겔 호스와 코로 삽입한 호스를 무시한 뒤척임을 겪어봐서 그런지 간병인의 심정도 이해가 갑니다

2008-09-02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메르헨 2008-09-04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그저 그 말밖에는...

마태우스 2008-09-05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르헨님/네 감사합니다. 사실 전 별로 하는 게 없어요 엄니가 힘드시지...
속삭님/어맛 그렇구나. 마주칠 뻔하다니!! 그나저나 살짝 서재 오고, 고생이 많구나.
깜소님/아...형님을 먼저 보내셨군요. 필경 아직 젊으실텐데요. 전 아버님을 그렇게 보내봐서, 할머니가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아버님에 비하면 할머니는 좀 덜하신 편인데, 느끼는 고통은 어째 더 큰 것 같아요.
속삭님/네 감사합니다. 엄니가 많이 힘들어하셔서 걱정이어요. 엄니도 70이신데 이제, 인생을 좀 즐기셔야 할텐데요
물만두님/어맛 안녕하셨어요.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레와님/반갑습니다 힘 낼께요!! 할머니가 좀 편안해지시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
조선인님/말씀 감사드립니다. 님도 많이 바쁘시지요? 둘 키우는 거, 그게 얼마나 힘든데요..
주드님/공감하는 댓글이네요. 늘 위로와 격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노아님/할머니를 보면서 나이듦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세실님/그러게 말이어요 당신을 위해 사신 적이 별로 없으신 분인데, 말년도 그리 편하진 않네요... 말씀 감사드립니다
브리니님/맞아요, 절대적으로 공감합니다.
순오기님/어...저는 그 간병인이 이해 가요. 웬만한 사람이라면 견디기가 쉽지 않지요. 잠 안자는 거, 큰 고통이자나요...'
발명품님/님 댓글에늘 감사드려요..참, 제가 말씀 드렸나요? 할머니 대퇴골 목이 부러졌어요... 그 바람에 큰수술을 하셔야 했고, 요즘 황달도 있답니다..
바람돌이님/그러게 말입니다. 방값이 왜 그렇게 비싼지요...지금은 다른 병원으로 옮기셨어요. 휴.... 어찌되었건 댓글 감사드립니다. 꾸벅.
 

"따르릉"

잠을 깬 마태우스는 턱에 고인 침을 닦았다. 그 동안에도 전화벨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아이 씨, 새벽 두시에 전화하는 놈이 어딨어?"

마태우스는 거칠게 수화기를 들었다.

"큰일났습니다. 박태환 선수가 위험합니다."

박태환? 그 마린보이? 마태우스는 술기운이 확 깨는 걸 느꼈다.

"아니, 박태환 선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전화건 사람의 말은 이랬다. 박태환 주변 사람들 중 첩자가 있는 것 같다, 박태환에 대한 정보를 호주의 그랜드 해켓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그러니 마태우스 탐정이 조사를 좀 해주면 좋겠다, 박태환이 금메달을 따면 너도 좋지 않으냐...

"알겠습니다. 조사해 보죠. 근데 댁은 누구십니까?"

전화는 뚝 끊어졌다. 긴급 추적장치로 확인해보니 그 전화를 건 사람은 박태환이 선전하는 '블루마린' 홍보부 직원이었다.

"이 사람, 박태환 걱정하는 게 아니라 자기 회사 생수판매를 더 염려하는 거겠군!"

마태우스는 약간 기분이 상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금메달을 따도록 돕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올림픽이 불과 일주일도 남지 않았고, 선수단은 이미 중국으로 떠난 후였다. 마태우스는 서둘러 박태환이 연습을 하던 북경대 체육관으로 향했다. 박태환은 물개처럼 수영을 하고 있었고, 주변 경비는 제법 삼엄했다. 마태우스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당신은 누구죠?"

"전 박태환의 마사지사입니다."

"흠, 그럼 당신은요?"

"기록원입니다."

"당신은?"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는 자신이 코치라고 한 뒤 마태우스에게 물었다.

"그럼 당신은 누구인가요?"

뜻밖의 질문에 당황한 마태우스는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뭔가가 있어...'


다음날 다시 경기장에 간 마태우스는 곧장 코치에게 갔다.

"혹시 박태환 선수가 400미터 결승에서 어떤 작전으로 임할지 정해진 게 있나요?"

코치는 한참 동안 마태우스를 째려봤다.

"그건 왜 묻죠?"

마태우스는 세게 나가기로 했다.

"물을 만하니까 묻는 거죠!"

코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마태우스의 귀에 입을 갖다댔다.

"하아..."

코치가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자 마태우스는 펄쩍 뛰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마태우스가 저항하자 코치는 얼굴을 붉혔다.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태환이가 어떤 작전을 쓸지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코치의 정중한 태도에 마태우스도 예의를 갖추었다.

"아, 그렇군요. 그런 건 대체 언제쯤 정해지죠?"

"대회 하루 전날입니다."

노민상 감독


대회 전날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기에 마태우스는 중국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야, 저게 말로만 듣던 천안문이구나!"

천안문의 웅장한 규모에 감탄하던 도중,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아니, 저 친구는!"

그는 수영장에서 봤던 기록원이었다.

'이 시간에 대체 어딜 가는 거지?'

마태우스는 기록원의 뒤를 밟았다. 그는 초조한 듯 연방 뒤를 돌아보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두시간 남짓 걸은 뒤 그는 허름한 문으로 들어갔다. 마태우스도 따라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말소리가 들렸다. 평소 영어에 능통했기에 그는 이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Is no one follow you?"(따라온 사람 없었지?)

"Yes"(네)

"Did you know about Park?"(박에 대해 알아낸 거 있어?)

"No, yet. But..."(아직요. 하지만....)

그 후의 말은 너무 작아서 들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 기록원이 나왔고, 외국인 하나도 잠시 후 문을 나섰다. 마태우스는 그 외국인을 쫓아갔다. 그가 팔레스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마태우스는 웬 여자와 부딪히고 말았다.

"Oh, you are sorry!"(당신 잘못이어요!)

여인이 워낙 미인이었기에 마태우스는 따지려다 그만두기로 했다.

"Yes, I'm sorry.(그래, 미안해요.)

말을 마치고 주위를 보니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잉? 그 사람이 어디 갔지?"

순식간의 일이었다. 낭패다,라고 마태우스는 생각했다. 30분을 더 헤매다 혹시나 싶어 프론트로 간 마태우스는 유창한 중국어로 물었다.

"쯔부샤...즈씨 므물야 센수 스야.?"(혹시 여기 머물고 있는 선수가 있나요?)

"쫭미란 쏀수이쓰. 드신 보 랄라이 헤이야"(장미란 선수라고 있습니다. 당신도 보시면 좋아할 겁니다)

마태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쯔 센수마이고 수센센수 라이라?"(그 선수 말고. 수영 선수는 없나요?)

안내원이 투숙객 명단을 훑었다.

"호이호이 쓰메잉 리라이라. 호쓰이 콰잉 타이양콰이(廣 太陽猫)쓰요"(아, 한명 있네요. 호주의 그랜드 해켓이요.)<--이상 중국어 대화는 메피스토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후부터 마태우스는 기록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하지만 기록원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우스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그 바람에 코칭스탭으로부터 첩자가 아니냐고 의심을 사기도 했다.

"이봐요! 전 마태우스라고요! 마침내 태어난 우리들의 스타~!"


시간은 흘러 대회 전날이 되었다. 박태환 선수 주변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지금쯤은 아마도 박태환 선수의 전략이 세워졌을 것이다. 그 전략은, 이변이 없는 한 우리나라에 금메달을 안겨줄 것이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께요."

기록원이 이렇게 말하고 사라진 뒤 3분 후에야 마태우스는 비로소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화장실에 가는 사람치고 얼굴에 조급함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어! 게다가 화장실은 그쪽이 아냐!"

마태우스는 서둘러 그가 간 방향으로 갔다. 기록원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런, 내가 너무 늦은 걸까? 그러면 안되는데..."

그때 마태우스는 皮示房이라는 간판을 보았다.

"피시방이라... 혹시 저기에?"

마태우스는 피시방의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3분간 눈을 부라린 끝에 마태우스는 기록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만두지 못해!"

마태우스는 기록원의 목덜미를 붙잡고 그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아이구...나 죽네.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마태우스는 그를 무시한 채 컴퓨터 화면을 보았다. 모니터는 기록원이 메일을 작성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박태환의 작전은 150미터부터 치고나가 전력질주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해켓이 미리 치고나가야만...."

마태우스는 자리에 앉은 뒤 글을 다 지워버렸다. 그리고 다시금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박태환의 작전은 지난 세계선수권 때처럼 350미터를 돈 뒤부터 스퍼트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해켓도 그때까지는 천천히 달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보내기'를 누른 뒤 마태우스는 기록원의 멱살을 쥐었다.

"너, 내일까지 입 다물고 있지 않으면 네가 어떤 짓을 했는지, 그리고 네 싸이월드 주소가 어딘지 네이버에 공개할 거야!"

마태우스의 협박에 기록원은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대회 2일째인 일요일 11시 21분. 국립 아쿠아틱 센터. 박태환은 150미터부터 질주를 시작, 1위로 나섰다.

"네, 박태환 선수, 1위로 나섭니다. 해켓 선수, 눈에 띄게 당황한 듯 처지기 시작하네요!...네, 네. 박태환 1위로 달립니다.... 금메달! 금메달입니다!"

아나운서의 흥분한 목소리가 고함으로 바뀌었다. 터치패드를 가장 먼저 찍은 박태환은 만면에 웃음을 띄고 두 손을 흔들었다. 중국의 장린이 2위, 해켓 선수는 6위였다. 전원을 끄려는데 해설자의 목소리가 마태우스의 귀에 들려왔다.

"박태환 선수가 세계선수권 대회 때와는 달리 일찍부터 치고나간 게 적중을 했어요. 이번 금메달은 작전의 승리입니다."

TV를 보고 있던 마태우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 박태환이 나오는 400미터 경기를 전 밥집에서 소주를 먹으면서 봤습니다. 그걸 보고 집에 오다가 이 소설을 구상했는데요, 여건이 안되서 글로 옮기지 못하다 오늘 써서 올립니다. 겁나 유치하지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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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8-08-27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간만에 넘 잼있었어요 ㅎㅎㅎ
근데 이거 3류 소설로 가야하는 거 아닌가요 ?? ㅎㅎ

(마태님 재기에 여러번 속아 카테고리 부터 확인하고 보는 매직 ㅎㅎㅎ)

마태우스 2008-08-27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그렇군요 3류소설로 바꿔놓을께요^^ 잼있다고 해주셔서 감사! 님의 냉정한 평가가 있었으니 마음놓고 자렵니다^^

Mephistopheles 2008-08-27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에 중국어 명기가 좀 소홀하기에 첨부합니다.


혹시 여기 머물고 있는 선수가 있나요?"
(쯔부샤...즈씨 므물야 센수 스야.?)

"장미란 선수라고 있습니다. 당신도 보시면 좋아할 겁니다."
(쫭미란 쏀수이쓰. 드신 보 랄라이 헤이야)

"그 선수 말고. 수영 선수는 없나요?"
(쯔 센수마이고 수센센수 라이라?)

"아, 한명 있네요. 호주의 그랜드 해켓이요."
(호이호이 쓰메잉 리라이라. 호쓰이 콰잉 타이양콰이(廣 太陽猫)쓰요)

마태우스 2008-08-27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메피님/오오오 고맙습니다. 안그래도 중국어를 좀 해볼까 했는데, 생각이 안나서 그냥 썼었어요. 감사합니다. 님이 해주신 걸로 바꿔치기하겠습니다. 꾸벅.

paviana 2008-08-27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메피님이 도와주신거군요.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마태님이 산속에 가서 수련이라도 하고 오신줄 알고요.ㅋㅋ

Mephistopheles 2008-08-27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태님을 양궁장으로 파견했으면 중꿔 응원단들 중에 호루라기 삼키는 인간들 많았을텐데 말입니다..

레와 2008-08-27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추천~!! ^^

마노아 2008-08-27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만나는군요. 마태우스님표 소설! 메피님 자막 제공 멋졌어요^^

최상의발명품 2008-08-27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귀에 입김을 불어넣는 부분이 가장 좋았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혹시 야구편은 없나요? ^^

비로그인 2008-08-28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림픽 메달 종목별로 다 나오는건가요?
재밌네요.

마태우스 2008-08-31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연님/헤헤, 재밌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종목별로는...글쎄요...
최상의발명품님/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 귀에 입김을 부는 걸 좋아하시는군요!! 야구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아이디어가 없네요 생각해볼께요!
마노아님/그러게 말입니다. 중국어가 들어가니 훨씬 더 그럴듯해보여요!!
레와님/어맛 감사합니다.
메피님/그렇죠?^^ 박성현 지는 순간 어찌나 속상하든지요. 그게 짜증나 이틀간 올림픽을 아예 안봤다니깐요...
파비님/중국도 안가본 제가 어찌 중국말을...호홋.

하얀마녀 2008-10-20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보는 3류 소설이네요. 아직 건재하신 것 같아 저도 기쁩니다. 흐흐흐.

2009-05-29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방범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일요일인 어제는 매우 슬픈 날이었다. 올림픽이 끝나서 그런 건 아니다. 물론 올림픽, 특히 야구가 내게 2주간의 즐거움을 주긴 했지만, 내 슬픔의 원인은 다른 데 있다.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모방범>을 다 읽어버렸기 때문. 시작 무렵부터 난 그 책에 빠져들어 허우적댔는데, 읽는 내내 스토리에 대한 궁금증과 '다 읽으면 어쩌나'는 허무함 사이에서 갈등을 했었다. 승리하는 건 언제나 전자였음에도 내가 그다지 슬퍼하지 않았던 건 그 책이 3권으로 되어 있고, 한 권이 500쪽에 달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제 저녁을 먹을 무렵, 3권이 거의 끝나가는 걸 본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거의 다 읽었네? 이제 무슨 재미로 살려구?"


정말 그렇다. 세권을 다 읽은 지금의 심정은 허무 그 자체다. 다음에 읽을 책을 선정하려 책장에 갔지만, 이것도 아닌 것 같고 저것도 아닌 것 같다. 지나치게 재미있는 책은 이런 지대한 후유증을 준다. 아내는 "3권째 되니까 지루하더라"라고 했다. 나도 그랬다면, 이 책과의 이별이 이렇게까지 아쉽지 않았을텐데, 어찌된 게 난 3권으로 갈수록 더 흥미진진해지는지! 이 책에서 가장 모골이 송연하던 장면은 범인으로 지목된 다카와의 여동생 유리코가 한 남자의 차에 탔을 때였는데, 그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네 오빠나 친구들은 나를 '피스'라고 불렀어."


미미여사의 추리소설을 대체로 좋아하지만, 이번 책은 거의 혁명에 가깝다. 어떻게 이런 파격적인 추리소설이 다 있는지, 그리고 어쩜 그렇게 몸서리칠 정도의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난 정말 궁금하다. 이렇다할 추리도 없이, 범인을 식당에서 마주쳐 검거하는 류의 추리소설을 썼던 과거가 무지하게 부끄러워지는데, 앞으로 바르게 살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가끔씩 "네 책 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 삶의 평화가 깨진다. 이러니, 나중에 바르게 살 생각을 하는 대신, 처음부터 나쁜 길에 빠져들지 않는 게 좋다. 철없던 그 시절, 난 왜 그랬을까 열심히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와, 이 책 정말 재미있다"는 리뷰를 많이 쓰게 된다. 내 기준이 낮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는 매혹될 만한 책들이 끝도 없이 많다. 그런 책을 써준 글쓴이들에게 감사할 일이고, 또한 그 책들이 내 눈앞에 오게끔 해준 사람들에게도 감사드릴 일이다. 죽어라고 책만 읽어도 그 아름다운 책들 중 몇%나 읽을 수 있을지 모르는 판에, 요즘 너무 책읽기를 게을리했다. <모방범>은 그런 내 나태함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계기가 될 듯하다. 미미여사님, 고마워요. 전 당신 팬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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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8-25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장면에서 저도 등골이 오싹! 이제 낙원 보셔야지요 ㅎㅎㅎ

바람돌이 2008-08-25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팬이에요. ㅎㅎ 저는 2권이 약간 지루하고 3권은 오히려 더 흥미진진... ^^
후속편으로 나온 낙원은 어떨지 기대돼요. ^^

비로그인 2008-08-25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이 심하게 지루할 때 이 책을 볼까 봐요. 이런 책을 저는, 비상 상비약 두듯 아껴놓곤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다락방 2008-08-25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께서 낙원을 읽으시기 전에 제가 읽어야 할텐데요. 그래야 마태우스님의 리뷰를 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훗.

모방범은 정말 매우 재미있었어요!

마냐 2008-08-2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와 이 책 정말 재미있다"는 리뷰를 많이 씁니다. 저도 제 기준 탓을 간혹 하는데...그래도 재미있는 건 재미있다고 눈치안보고 떠드는게 좋을 거 같습니다. 서로 리뷰를 참고하면서 어느 시점엔 눈높이와 취향이 보이면 되죠. ^^ 여튼, 이 슬픔에 대해서 만큼은 "마태님, 낙원이 있잖아요~"라고 말할 수 있어 좋네요. ^^

sweetmagic 2008-08-25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넘 재미있게 읽었어요. 책장이 어떻게 넘어가는 지 모르겠더라구요 !

최상의발명품 2008-08-26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태님의 추리소설 인터넷 검색으로 본 적 있어요.
아마 주인공이 식당에서 쫄면을 먹었었지요?
너무 재밌었는데!
다 읽은 게 슬플 정도로 재밌는 책이라......
추리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마구 호기심이 생기네요.

비로그인 2008-08-26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이미 읽은 책에 대한 리뷰를 볼 때는 여유가 생기지요.
그래서 리뷰를 쓰기가 더 까다로운건지도요.
저도 님께서 이야기하신 그 장면에서 가장 오싹했어요.
그래서 숨도 못 쉬고 다음을 찾아봤던 기억이 나네요.

마태우스 2008-08-27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연님/님은 제가 읽은 책은 다 보신 듯... 글구 저랑 같은 곳에서 오싹함을 느꼈군요 반갑습니다
최상의발명품님/헤헤 제 책은 모방범과의 비교하면 너무도 부끄럽죠 자꾸 그러심 아니되옵니다^^ 모방범은 정말 캡이어요
스윗매직님/오랜만이어요 다음 장면이 너무도 궁금해 책장을 마구마구 넘겼던 며칠이었지요. 반갑습니다!
마냐님/호호 기준과 소신이 비슷하니 반갑네요 글구 저 어제 낙원 주문해 버렸습니다. 이제부터 두달간 무지 바쁠 거 같은데, 그래도 책은 거르지 말고 읽으려 합니다!
다락방님/제 아내가 지금 읽고 있는데요 다 읽으면 제가 이어서 읽으려구요. 제가 먼저 읽을 확률 73%^^
주드님/다 읽고보니 아직 안읽으신 주드님이 부럽습니다... 전 황금달걀을 꺼내려 암닭을 죽였나봐요 ㅠㅠ
바람돌이님/그죠?저도 2권보다 3권이 더 좋았어요 낙원은 제가 금방 가르쳐드릴께요
웬디양님/그럼요 낙원은 벌써 저희집에 있습니다. 시케고가 또 나오더군요 기대만빵!

sheris 2008-09-01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같은 느낌을 받으셨네요... 저도 모방범의 3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너무나 아쉬운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이런 재미있는 책이 어디 또 없나 열심히 찾아보고
미미여사의 대부분 책을 봤지만 모방범만한 작품을 찾기는 너무 어렵네요 ㅡㅡ
너무 좋은 작품을 읽어서 다른게 눈에 안들어오는건지 에휴...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X의 헌신도 꽤 괜찮은 작품이었지만 뭔가 머리를 때리는 파격적인 맛은 없더라구요...

낙원은 이미 몇개월전에 예약해서 사놨는데 일+밀린 책들이 너무 많아 아직 못읽구 있습니다.
모방범같은 느낌을 다시 받을 수 있을지... 어서 빨리 봐야겠네요 ^^
 


우리 네 식구는 밤마다 마루에서 모여 잠을 잔다.

누운 채로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미모로운 생명체를 볼 수 있다는 게 난 행복하다.

하지만 우리 넷의 적성이 모두 같은 건 아니어서,

나와 털이 있는 두 딸은 더위에 약한 대신 추위에 강하고,

아내는 추운 걸 못참는다.

그래서 난 요즘도 선풍기를 틀고 잠을 자고,

아내는 날이 추워졌다며 캐시미어 이불을 덮고 잔다.


연구비 회의 때문에 진주에 다녀왔다.

아내와 개들이 눈에 밟혀 "하루 자느니 새벽에라도 올라가자"는 생각이 들어 심야버스를 탔고,

새벽 세시가 넘었을 무렵 스위트 홈에 도착했다.

셋이 뭉쳐 자는 틈에 끼어들어 자는데,

어제따라 바람이 많이 불었는지 으슬으슬 춥다.

선풍기를 껐지만 여전히 추웠다.

따스한 이불이 생각나 옆을 보니 아내는 캐시미어 이불을 몸에 둘둘 말고 있다.

이불을 꺼내려니 영 귀찮고 해서, 아내 옆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아내가 이불을 말고 자는 탓에 내가 확보할 수 있는 이불은 정말 손바닥만했다.

이불을 조금이라도 더 덮으려고 두어시간 몸부림을 쳤지만

이불은 내 쪽으로 1미리도 오지 않았다.

결국 난 이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치사하다, 치사해. 같이 덮어도 되겠구만..."






아침에 깼더니 아내는 수영을 하러 나가고 딸들만 열나게 자고 있다.

내가 일어나서 왔다갔다 해도 깨지 않고 잠을 자는 저 뚝심(무슨 개들이 그래?)

아마도 그건 이불을 절대 빼앗기지 않는 아내한테서 배운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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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08-22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야, 다 눈 뜨고 자는거에요? ㅎㅎ 눈 살짝 뜨고 안 일어나는게 더 구엽구만요-

마태우스 2008-08-22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사진 찍으려니 눈을 떴답니다. 데칼꼬마니 자세^^

조선인 2008-08-22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하 데칼코마니 자세.

Mephistopheles 2008-08-22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은 분명 아내님이 수영하러 가시기 전에 찍은게 맞습니다.
설마 마태님이 발톱에 매니큐어를 바르진 않으시겠죠..

비로그인 2008-08-22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하 손을 맞잡고 잠들어 있어요. 뚝심이 되려면 저정도는 기본이죠 흐흐흐

마립간 2008-08-22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집과 비슷하네요. 저는 12월과 1월만 난방을 하고, 저의 안해는 7월, 8월에도 난방을 합니다.

하루(春) 2008-08-22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얘네 쌍둥이에요? 두분 모두 강아지를 좋아하시는군요. 귀여워라.

무스탕 2008-08-22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헤헤... 저도 신랑이 깨거나 말거나 혼자 막 자요 ^^a
좌청룡 우백호 필요 없으니 양쪽에 저런 이뿐이들 끼고 잤으면 좋겠어요..

BRINY 2008-08-22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방에서 주무셔야겠어요 호호호~
강아지들이 너무 귀여게 자는군요~ 사이도 아주 좋나봐요~

순오기 2008-08-23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불 둘둘 말고 자는 사람, 여기도 있어요~~ ㅎㅎㅎ
우리도 처음부터 이불은 따로 덮고 잤다는...내가 거실에서 자니까 이젠 방도 따로 쓰지만...ㅋㅋㅋ

마냐 2008-08-24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부가 온도가 안 맞는건 약간 슬픈 일....이다가 어느새 그냥 귀찮은 일...정도.

마태우스 2008-08-25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약간은 슬프지만, 그걸 만회할만한 즐거움이 아주 많아서리 말입니다^^
순오기님/헉...각방을 쓰시는군요. 어떤 연유로 그러신지 나중에 말해 주세요.
브리니님/호호 강아지들 사이 좋다 안좋다 그래요. 질투가 어찌나 심한지... 그래도 귀여워 죽겠어요
무스탕님/그죠? 귀여운 것들이 제 배 위에서, 혹은 옆에서 자니까 어찌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하루님/강아지 좋아하는 것 때문에 제가 미녀와 결혼할 수 있었지요. 개 두마리와 미녀, 그리고 저. 즐거운 가족입니다
마립간님/어...7,8월에 난방을! 심각하시군요!!!
주드님/늘 그런 건 아닌데요 우연히 발견하고 찍었습니다^^
메, 메피님/정말 예리하십니다. 그니까 글에 맞는 사진을 아내 사진첩에서 몰래 퍼와서 올린 겁니다^^
조선인님/저게 인형이라도 귀여울텐데, 살아있다니깐요^^

순오기 2008-08-25 02:09   좋아요 0 | URL
각방 쓰는 거 나중에 말할 필요도 없어요. 경제상황이 최악일때 둘째를 낳고 집을 반 막아서 세를 놨어요. 방이 네 개에서 두 개가 되니까 한방은 물건 쟁여놔야 했고, 일찍 자는 남편 혼자 작은방에서 자고...애가 둘인 나는 넓은 거실에서 애들 끼고 자게 되더라고요. 이게~~ 길들여지니까 옆에서는 잠을 못자요.ㅎㅎㅎ 처음부터 이불도 따로 덮었는데~ 방도 따로 쓰니 정말 심야는 자유시간이라서 이렇게 알라딘 놀이터에서 놀잖아요.ㅋㅋㅋ그래도 우린 삼남매나 두었다고요.ㅎㅎㅎ

전호인 2008-08-26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하게 데펴놓았는 데 식어버림 짱나니까 주고 싶지 않은 거져.
아~ 다른 이불 내려서 덮으면 되지 나원참 누가 치사한 건지.....
글지말고 당신의 따뜻한 품이 그리워 했음 쉽게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다 경험에서 오는 노하우니까 새겨 들으세요. ㅋㅋ

마태우스 2008-08-27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호인님/어, 일방적으로 미녀아내 편만 드시다뇨^^ 그게 말입니다 새벽에 이불 가지러 가려면 얼마나 귀찮은데요!!!!!! 글구 경험은 더 쌓아볼께요
순오기님/마음 아픈 사연이 있으셨군요 그래도 그 덕분에 알라딘 놀이터 이용이 가능하셨다니, 님과 제가 그렇게 만날 수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