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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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이후 쏟아져 나오다시피 한 오쿠다 히데오가 지겨워져 버렸다. 그래서 "난 오쿠다 히데오가 멀미나서 멀리할 거예요"라고 했더니 순오기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그래도 '남쪽으로 튀어'까지는 괜찮았죠?"


한달쯤 전 미녀 선생님 댁에 식사를 하러 갔을 때, 그 선생님이 책을 좋아하는 분인지라 책장 앞에서 구경을 좀 했다. 근데 책꽂이에 <남쪽으로 튀어>가 있는 거다. 순오기님 말씀이 생각나 그 책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이러신다. "읽고 싶은 거 있으면 가져가세요." 미모에 친절하기까지, 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그 책을 가방에 넣었다.


<제2의 성> 때문에 지친 내 머리를 식히려는 목적으로 어느날 문득 그 책을 집어들었고, 자기 직전에만 본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책으로 인해 난 번번이 잠을 설쳤다. 학원폭력이 주가 되는 1권을 읽을 땐 내 중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날 괴롭히는 질 나쁜 애들, 정말 그네들은 대책이 없다. 선생님한테 말해봤자 별 소용이 없고, 그렇다고 부모님한테 말하는 것도 도움이 안된다. '일진회'니 뭐니 하는 말이 나도는 걸 보면 지금도 학교폭력은 존재하고 있을텐데, 안그래도 고단한 중고교 시절이 그로 인해 더 힘들다. 주인공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었는데, 1권 말미에 주인공이 아버지와 함께 남쪽에 있는 섬으로 이사를 가버린다. 갑자기 허무해졌다.

"이게 뭐야!"


하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역시 오쿠다 히데오였다. 조금 지나니 그 섬에서의 삶에 푹 빠져서 학원폭력 일은 잊어버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1권에서 내내 그럴 듯한 소리만 할 뿐 일은 하지 않는다. 알게 모르게 국가의 보호를 받으면서 세금 같은 건 거부한다. 심지어 애들에게 학교를 뭐하러 매일 가냐고 한다. 참 형편없는 아버지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2권을 다 읽고 나니 그 아버지, 정말 멋지다. 국가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걸 당연하게 알아왔던 내게 <남쪽으로 튀어>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문화적 자본을 놓치기 싫어 힘든 서울에서의 삶만 고집하던 내게 남쪽에 섬이 없는지를 찾아보게 만들었다. 내가 <제2의 성>을 결국 완독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중간중간에 읽은 이 책이 내 머리를 맑게 해줬기 때문이다. 오쿠다 히데오님, 앞으로 잘 지내 봅시다. 지난번에는 제가 좀 오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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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1-17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해 아녜요. 남쪽으로 튀어는 정말 굉장하지만 그 이후의 책들은 또 좀 심드렁해요. ㅎㅎ

마노아 2008-11-17 0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공중그네로 환호하고 남쪽으로 튀어로 열광하다가 그 다음엔 좀 실망해서 요새 잠깐 멀리하고 있어요. 나중에 애정이 회복되면 다시 만나려구요^^ㅎㅎㅎ

비로그인 2008-11-17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종 주식 상승-하강 곡선을 그리듯 어느 작가에 대한 나의 선호도도 널뛰듯 오락가락한 때가 있었어요. 오쿠다 히데오는,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안도의 한숨.

가시장미 2008-11-17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 오쿠다 히데오랑 형이랑 친구같네요. ^^ 어쩜 이렇게 능청스러운 리뷰를 쓰시는거예요~! 인더풀 이후로는 안 읽어봤는데.. 기회되면 보고싶네요. 근데 두권이라니 좀 ㅋㅋ

형~! 날씨 추운데 따뜻하게 입으시고,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다락방 2008-11-17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깐요 마태우스님. 저는 이것까지는 괜찮았다가 [걸]부터 딱, 심드렁해지더라니깐요.

순오기 2008-11-17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가 나와서 깜딱~ 놀랐잖아요.ㅎㅎㅎ
우리 애들도 모두 남쪽으로 튀어! 까지만 좋았다고~~ㅎㅎㅎ
요즘 다들 국민을 그만두고 싶지 않으신가요? 아~ 이런 동감과 교감이라니!!^^

무스탕 2008-11-17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러니까 공중그네 읽고 그 다음엔 여론에 밀려 오쿠다를 멀리하고 있는데 요기까진 괜찮다 이거죠?
팔랑귀랑 갈대맘이 또 요동을 치고 있어요. ㅎㅎ

연두부 2008-11-17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서재명은 '파이파티로마'ㅎㅎㅎ

하늘바람 2008-11-17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나름 재미나게 읽었어요 앗 아직 스무살을 안읽었네요 집에 있는데 잊고 있었습니다

마태우스 2008-11-18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늘바람님/앗 스무살도 재미있나봐요? 흠, 글쿤요. 감사합니다
연두부님/앗 연두부님이닷. 그간 안녕하셨어요? 이 책은 저만 빼곤 다들 읽으셨더군요 리뷰가 150개가 넘던데...
무스탕님/근데 저만 그런 게 아니군요 네 맞습니다. 딱 여기까지만 읽으시구요^^
순오기님/님께 감사드립니다. 글구 요즘 시기랑 책이 맞아떨어지는 면도 있군요^^
다락방님/제가 오해한 게 아니라니, 정말 반갑습니다. 앞으로 많은 정보교환을...호홋.
가시장미님/앗 신혼은 즐겁나요? 어제 학교서 잤는데 얇게 입고 와서 망했다는...
주드님/그러게 말입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한숨(2)
마노아님/글쿤요. 근데 애정은 어떻게 회복되는가요? 전 노통과 결별했는데 새 작품을 읽지 않으니 오해를 풀 기회도 없던데...
바람돌이님/흠, 글쿤요 최근작 위주로 보면 어떨까요. 과거 작품은 지금만큼 세련되지 못했을테니..... 그것도 좀 아닌 것 같구나. 하여간...서로 정보교환을 많이 하자구요^^

홍수맘 2008-11-18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 <공중그네>, <면장선거>, <걸> 등등을 읽다가 이젠 좀 심드렁 해질려는 찰나인데 갑자기 손이 또 근질근질 해지고 말았어요.
책임져용~. ㅎㅎㅎ

마태우스 2008-11-18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안녕하셨어요 사업은 잘 되시나용?? 이 책은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사옵니다. 저만 믿어 보세요!

뻐꾸기 2008-11-23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제2의 성 - 상 - 세계의문학 17
시몬느 드 보부아르 지음, 조홍식 옮김 / 을유문화사 / 199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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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 아직도 읽고 있어?"

아는 사람이 내게 한 말이다. 석달째 <제2의 성>을 들고 다녔으니 그런 소리를 들을 만도 했다. 그 책을 드디어 다 읽었다. 다 읽고 나면 무지하게 기쁠 것 같았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내 머리에 남은 게 별로 없어서일 수도 있고, 고된 책읽기에 지쳐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난 상, 하 각 500여페이지에 이르는 페미니즘의 고전을 다 읽었고, 언젠가 토론이 벌어질 때 "너 제2의 성 읽었어? 그러니까 네가 그딴 소리를 하는 거야!"라고 말해줄 수 있다.


하여간 이 책은 강적이었다. 46페이지를 하루에 읽은 게 기록일 정도로 진도가 더디게 나갔다. 읽는 데 보름이 걸린 <장미의 이름>은 이 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지막 장인 '결론'에 도달했을 때 이제야 끝나는구나 싶었지만, 무려 23쪽에 걸친 결론을 읽는 데만도 이틀이 걸렸다. 예과 강의 때 학생들한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이제 석달 있으면 본과에 가죠? 본과 가서 공부를 잘하려면 예과 때 놀던 버릇을 버리고 인내심을 길러야 합니다. 본과 공부는 누가 더 오래 책상에 앉아 있는지의 싸움이니까요.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제2의 성>을 읽는 것입니다. 이 책을 다 읽는다면 여러분은 인내심을 최대한도로 기를 수 있습니다."

그럼 나도 인내심이 길러졌을까? 그런 것 같다. 얼마 전 입에 궤양이 생겼는데, 그전만큼 아프지 않고 넘어간 걸 보면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연구도 열심히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주옥같으면서도 난해한 말로 점철된 이 책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겠지만, 내 식대로 대충 써보면 이렇다. 보부아르가 보는 세상은 남자가 지배하고, 여자는 노예상태에 있다. 여자가 해방되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하지만, 세상은 여자가 뭔가를 하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를 언제까지나 사슬에 매어 두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속임수를 열심히 고집하고 있다." 그러니 진정한 자유의 도래를 위해서는 남녀가 "우애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보부아르의 결론이다. 책이 나온 지 60년이 지난 지금, 보부아르가 2008년의 세상을 본다면 뭐라고 말할까? 조금은 나아졌다고 좋아할까? 아니면 '내가 바라던 게 이게 아니었다'고 탄식할까. 11월 13일자 AM7을 보니 이런 기사가 실렸다. 세계경제포럼 성격차보고서에 의하면 "한국 남녀평등은 130국 중 108위"란다. 그 옆의 기사를 보니 성균관 기획실장이란 자가 "조성민 친권 주장 일리 있다"라는 말을 했단다. 정말이지 우리나라야말로 보부아르의 재림이 필요한 듯하다. 보부아르, 환생할 거면 부디 우리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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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11-15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부아르, 한국 사정을 들으면 관 안에서 돌아눕지 않을까요! 전 보부아르의 필력보다도 마태우스님의 리뷰가 더 좋습니다. 남들 다 좋다는 책을 난 지루해요, 라고 말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리뷰를 써주시다니요! 전 요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고 있는데, 저도 꼭 한 번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첫번째 추천은 참고로 접니다. 흐흐

다락방 2008-11-15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인내심이 바닥이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는 건 고려해봐야겠어요. 그렇게 힘들게 읽으시고서는 이토록 간단하게 정리해주셨다니, 저 역시 마태우스님의 리뷰를 읽는게 즐겁기만 합니다. 흣.

순오기 2008-11-16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세번째 추천은 접니다.
마태님 글을 기다렸어요. 이 양반이 요새 바쁜가~ 꿈도 꾸었다니까요.^^
자칭 문학소녀를 꿈꿀때 보기 봤는데 뭔소린지 몰랐던 책, 그냥 나 이 책 봤다~ 라는 한마디가 하고 싶어서 보는 책이었더랬죠. 사르트르와 더불어~ ㅜㅜ

마태우스 2008-11-17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맛 순오기님, 제 글을 기다리셨다니 감사합니다. 님도 그러셨군요! "이 책 봤다"고 한마디 하고 싶어서...호홋.
다락방님/어맛 늘 제 허접한 리뷰에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님밖에 없다니깐요!!
주드님/어맛 주드님도 계시군요! 첫번째로 댓글 달아주시고, 추천까지 해주시다니! 글구 재밌다는 말씀까지 해주시니 일석삼조네요^^ 근데 이 책에 도전하시는 건 말리고 싶어요. 시작을 했다 하면 두달간 서재활동을 못하니깐요!
 
배신 - 21세기를 사는 지혜 인터뷰 특강 시리즈 5
김용철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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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21세기를...'로 시작하는 한겨레 특강 시리즈의 팬이다. 직접 가서 듣진 못하지만, 책이 나오면 꼬박꼬박 사보는 편이다. 강사진이 내가 좋아하는 분들이고, 거기 걸맞게 강의도 재미있으니까. 근데 <배신>을 주제로 한 이번 책은 평소보다 더 흥미로웠다. 3회 연속 사회를 본 오지혜의 풍부한 교양과 언변에 매번 놀라게 되고, 정태인의 강의는 FTA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무섭다는 걸 느끼게 해줬다. 다른 강사들도 다 배신에 대해 각자의 전공을 살린 좋은 얘기들을 해줬지만, 특히 감탄한 건 정혜신의 강의였다.


"우리가 흔히 '배신당했다'고 말하는 경험 중에는 사실 유사배신이 많아요."

유사배신이 뭘까? 정혜신에 의하면 "내 욕망이나 기대를 상대에게 투사함으로써 나타나는 결과"라고 한다. 공부 잘하는 아들이 판검사가 될 것으로 믿었는데 막상 연극영화과를 지원하자 "아들이 나를 배신했다"고 말하는 엄마가 그 한 예다. "배신은 상호합의한 약속을 깼을 때 발생하는 것"일진대, 이 경우에 상호합의가 있기나 했을까? 배신을 당한 사람은 많은데 정작 배신을 한 사람이 드문 이유는, 다들 이런 유사배신을 '배신'의 범주에 넣고 '뒤통수를 맞았다'고 얘기하기 때문이란다. 배신당한 사람이 더 많은 또다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에게 관대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교통사고가 났을 때 상대방과 5대 5의 쌍방과실인 경우 사람은 보통 상대에게 7의 과실이 있고, 내게는 3 정도의 과실이 있다고 느낀단다. 객관적으로 8대 2로 내가 확실하게 과실이 있는 사고를 냈을 때에는 5대 5 정도의 쌍방과실로 상황을 인식하게 마련이다. 왜 그럴까? "내 행동은 동기부터 이해하고, 타인의 행동은 현상을 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란다. 나의 배신은 합당한 이유가 있는 거니 배신이 아니고, 상대는 동기가 어떻든 배신이라는 거다. 이걸 읽고 나니 배신에 대한 모든 것을 다 깨달은 기분이다.


또 하나 느낀 점. 강의에 참가한 청중들의 질문 수준이 참 높다는 거다. 예컨대 이런 질문.

"유사배신임에도 불구하고 배신감에 고통당하고 있다면 이것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성찰력의 문제가 아닐까요?"

난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질문을 한 적이 거의 없다. 꼭 질문을 해야 하냐고 하겠지만, 학회에 가서 하루 종일 질문을 한 개도 안하고 있으면 좀 없어 보인다. 내 지도교수도 나한테 "질문 좀 해!"라고 하는데, 정말 질문을 할 게 없다. 내가 모르는 내용이면 몰라서 못하고, 아는 거면 아는 거니까 질문할 게 없다. 근데 남들은 어쩜 그렇게 날카로운 질문들을 해대는지, 부러워 죽겠다. 오죽하면 발표자에게 미리 찾아가 "질문거리 좀 주세요"라는 말까지 했을까? 여기 실린 청중들의 질문을 보고 나니 이 사람들은 어쩜 저리도 적절한 질문을 하는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다음 한겨레 특강 제목은 '좋은 질문하는 방법'이면 정말 좋겠다. 나도 학회 때나 회의 때, 질문 좀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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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8-11-0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질문할 게 없을 만큼 다 아시는건가요?
이주의 마이리뷰 후보에 오르셨던데, 되시면 한턱 쏘세요.

그나저나 김현수는 어쩐대요.

2008-11-09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8-11-15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어머머 제 답변이 넘 늦었죠? 죄송해요. 저도 늘 이번이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공연 같은 거 보구 그래요. 홀몸이 아니니 영화 한편 보는 것도 참 어렵더이다. 참 이번주에 저 웃음의 대학이란 연극 봅니다. 황정민 나오는 연극이랍니다. 글구 연재는 저얼대 안할 겁니다. 왜냐면... 그 기간 동안 심적으로 넘 힘들었거든요!! 죄송.
파비님/추천 하나만 있음 후보가 되는거라, 당첨은 힘들것 같군요^^ 그리 잘 쓴 리뷰도 아니니깐요. 글구 김현수는 내년에도 계속 잘하겠죠 이런 시련에 굴복할 선수가 아니니깐요
 


작년 초, 마음잡고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실 말고 실험실에도 컴퓨터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노트북을 하나 샀다.

노트북은 도난의 염려가 있는지라 아는 사람에게 문의했더니,

'켄싱턴'이라는 첨단장비를 가르쳐 준다.

암호로 된 자물쇠를 테이블 같은 데 연결해 노트북을 묶어놓는 장비,

난 세자리 숫자로 된 번호를 입력했고, 켄싱턴 덕분에 도난 걱정이 없이 살았다.

구글에서 퍼온 사진입니다


 

얼마 전부터 노트북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았다.

참고 쓰려고 했지만 논문을 쓰려고 해도 인터넷이 필요하고,

연구원 선생님이 여가 시간에 고스톱도 쳐야 하는지라 하루빨리 고쳐야 했다.

아는 분한테 말했더니 노트북을 가져오란다.

노트북을 가져가려고 했더니 켄싱턴이 발목을 잡는다.

내가 아는 모든 번호를 동원해 봤지만 켄싱턴은 열리지 않았다.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봤더니 "000부터 다 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되어 있고

파는 쪽 홈페이지엔 "비밀번호 분실은 책임지지 않는다"고 친절하게 씌여 있다.


그래서 난 마음을 잡고 앉아 000부터 하나하나 번호를 맞추기 시작했다.

000부터 100번까지 하는 데 대략 7분이 걸렸다.

이런 식이면 1시간이면 하겠구나 싶어 더 열심히 했다.

500-그러니까 목표치의 60%-까지 돌렸을 때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999까지 다 해봤는데 안되면 어쩌지?" 하는 마음 말이다.

이론적으로야 1000가지 조합 안에 비밀번호가 있지만,

숫자의 줄을 잘 안맞춰서 안열린 것이라면 처음부터 다시 해봐야 하잖는가?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는데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더해져 짜증이 확 치밀었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숫자판을 아무렇게나 돌렸다.

"덜컹!"

그 소리가 내게는 너무도 크게 들렸는데,

난 그때만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켄싱턴이 열려 있다.

만세를 부르다 번호를 확인해보니,

그 번호는 연구원 선생님의 전화번호였다.

내가 아는 번호를 죄다 투입해도 안된 이유가 거기에 있었는데,

마음을 차분히 먹고 조금 더 돌렸다면 금방 열릴 거였다.


숫자가 세자리니 다행이지, 네자리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낯익은 연예인을 보고 "쟤가 누구지?" 하는 기억력을 믿고 적어놓지도 않은 자신을 책망하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켄싱턴이 있다해도 누군가 이걸 훔쳐갈 마음만 있다면,

한시간 정도만 마음잡고 번호를 돌리면 훔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

그러고보면 비밀번호의 첫 자리가 후반부인 건 참 다행이다.

당장 마음이 급한데 한시간이나 번호를 돌리고 있을 도둑은 없을 테니 (999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돌려보는 도둑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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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발명품 2008-10-12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얼마 전에 지금까지 작업한 모든 음악 자료가 담긴 하드를 도둑 맞은 사람 얘기를 들었는데 참 안쓰럽더라구요. 켄싱턴이란 건 좋은 거 같은데 비밀번호가 3자리인 건 좀 찜찜하네요.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순오기 2008-10-12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고생하셨어요.
우린 여행가방 비번을 잃어버려서 아들녀석이 죄다 맞춰가며 찾아낸 적이 있었지요. 번호가 후반부라 한참 했었죠~ㅋㅋㅋ

세실 2008-10-12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딸내미 휴대폰 사줬더니 비밀번호 걸어놓고는 잊어버려 제가 30분동안 번호 조합한 끝에 극적으로 성공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아 열받아~~)
님 우리 나이엔(뭐 한살 정도야 ㅎㅎ) 수첩에 적어 놓는것이 필요합니다.

마법천자문 2008-10-12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빈집털이들이 쓰는 수법인데, 비밀번호를 누르는 번호판에 특수물질(그냥 밀가루라던가 어쨌든)을 뿌려서 손자국 흔적이 많이 보이는 키를 중점으로 조합해서 알아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방법을 처음 고안해낸 사람이 대도 루팡 선생인지 조세형 선생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stella.K 2008-10-12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질랜드나 북유럽의 어느 도시 이름인 줄 알았어요. 그래도 뭐 다행이네요.^^

비로그인 2008-10-13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래서 비밀번호를 아예 친구 생일로 해두었어요. 친구 한 명 딱 잡아서, 그 친구의 생년월일과 그 친구의 이름과 생년월일로 한 것이지요. 그 친구가 알면 `왜 하필 나를?' 하겠지만 혹여나 비번을 잊더라도 시침 뚝 떼고, `네 생일이 언제였더라?'하면 되니까요. 실은 이건 하루키의 소설에서 빌려온 기법이에요. 역시 책에선 배울 것이 많아요.

마태우스 2008-10-27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드님/역시 책에서 배울 게 많군요! 근데 어느 친구인지 그게 헷갈리면 어떡한답니까.... 전 그럴지도 몰라요 ㅠㅠ
스텔라님/안녕하셨어요. 저도 켄싱턴이란 말, 그때 첨 알았어요.
prelude님/이미지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프리루드님 안녕하셨어요. 글고보니 님 루팡 같아요
세살님/맞아요 수첩에 좀 적어놔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죠... 글고 우리나이라고 같이 묶어줘서 고마워요 친하게 지내요!
순오기님/호홋 그런 경험은 다 있으시군요!! 정말 우리나이란.....ㅠㅠ
발명품님/그죠? 3자리라는 게 좀 그렇죠? 네자리 켄싱턴도 있긴 있지만, 그랬다면 전 아직도 비번 못알아냈을 거예요...
 
백마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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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정 살인사건을 뛰어넘는 재미,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소설의 진수"

읽던 책이 어려워 순전히 머리를 식힐 목적으로 <백마산장 살인사건>을 읽었다. 다 읽고 나니 괜히 읽었다 싶다. 이 책으로 인해 히가시노 게이고가 결정적으로 싫어져 버렸으니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히가시노 최고의 소설은 <용의자 X의 헌신>, 공교롭게도 그의 작품 중 가장 먼저 접한 작품이 바로 그거라,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을수록 "내 타입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책 아래 선전문구에 등장하는 <회랑정> 역시 그럭저럭의 평가는 줄 수 있을지언정 대단한 정도는 아니었는데, <백마산장>은 좀 심하게 재미없었다.


이 책은 아가사 크리스티가 썼던 <쥐덫>의 설정과 비슷하다. 자살로 위장한 살인사건, 한정된 공간에 모인 사람들, 그 안에 숨어있는 범인. 이런 설정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사건이 일어날 때 있었던 사람들이 1년 후 같은 장소에서 다시 모인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것 같고, 사건의 단서라고 나온 영국 전래동요 '머더구스'도 뭐가 뭔지 어지럽게만 만드는데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외우는 것도 머리가 아팠다. 이런 것들을 그냥 넘어가준다 하더라도 단서들을 조합해 '머더구스'의 암호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해독하는 과정은 좀 심했다. "캬, 정말 대단하다"는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머리 좀 썼구나,는 반응은 보일 수 있기를 기대했건만, 암호를 푸는 과정도 영 어지럽고 범인도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느낌이다.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범인은 당신이야!"라고 한 사람을 지목하니, 감탄이 나오기는커녕 기가 탁 막혔다.


그의 책을 도대체 몇권이나 읽었다고 히가시노를 폄하하냐고 다그친다면 별로 할 말은 없다. 이번에 읽은 게 다섯 번 째인가 그렇고, 이게 그의 초기작이라고 하니, 내가 안읽은 것들 중에 숨겨진 보석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책이 너무도 재미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책을 쓰는 작가라면 다른 책들은 안봐도 뻔하지 않아?"란 생각이 들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유명해진 작가의 검증안된 초기작을 책으로 내면서 "히가시노 추리소설의 진수"라는 홍보문구를 쓰는 건, 책 판매에 당장 도움은 된다 하더라도 해당 작가에 대한 안티 팬을 만드는 좋지 않은 효과를 나타낸다. 유덕화가 유명해지고 난 뒤, 그가 웨이터로 나와 대사 한마디 하고 죽는 영화를 "유덕화 주연!"으로 속여 홍보한 포스터에 낚인 적이 있다. 지금 기분이 딱 그때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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