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난 기생충 사이버 박물관을 만들고 있다.
목적은 기생충에 대한 일반인들의 올바른 이해이고
연구비를 지원받아 만드는 거다.
지난 몇년간 다른 훌륭한 선생님이 만들어 놓으셨는데,
내용이 좀 난해해 일반인이 이용하기 불편하다는 지적이 나왔고,
그걸 보기 좋게 고칠 적임자로 내가 선택된 거다.
그러고보면 평소에 인터넷 활동을 많이 하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질병관리본부로부터 2천여만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았으니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웠는데,
우리 학계에선 "너라면 잘 할거다"라는 분위기였다.
연구비가 나오면 시작을 해야지 했는데
4월경에나왔어야 할 연구비는 9월 초에야 나왔다.
그땐 내가 다른 연구를 하느라 무지하게 바빠 박물관 일은 손을 못대고 있었는데,
10월 2일날 학회에서 만난 지인이 내게 이런 말을 전해줬다.
"질병관리본부 쪽에서 박물관 쪽 일, 손도 안댔다면서
서민 교수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냐?"고 했단다.
또다른 지인은 "몇년간 돈을 쏟아부었는데 성과가 너무 없다"면서
"이번에 나오는 걸 한번 지켜보겠다"고 한다.
우씨, 잘못하다간 집중 성토를 당할 수 있겠다 싶어서
바쁜 일이 정리된 10월 말부터 일을 시작했다.
처음 박물관의 설계자가 나와 가치관이 많이 틀려
고치는 것보다 아예 새로 만드는 게 훨씬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고,
미녀 웹 디자이너를 수소문해 계약을 했고,
시안을 만들어 전달했다.
하지만 골격이 어떻든간에 제일 중요한 건 콘텐츠,
난 되도록이면 재미있는 내용을 적어넣으려 노력 중인데,
만드는 중간중간에 점검을 해보면
"이렇게 훌륭한 사이트가 있다니!"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란 놈이 원래부터 어려운 걸 싫어하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는 인간인데다
유머감각도 조금 있지 않는가.
그걸 만들면서 우리나라에 있는 기생충 사이트들이 그다지 쓸만한 게 없구나,는 것도 느꼈는데
워낙 할 게 많고, 다른 할 일도 있는지라 진도가 잘 안나간다.
지금까지 진척된 상황은 대략 20%,
마감날인 2월이 점점 다가오는 게 약간은 부담이 된다.
디자이너에게 내가 만든 자료를 일부 보냈더니 그가 이런 얘길 한다.
"거기 쓰신 사진들이요, 저작권 문제가 걸릴 것 같은데요."
그 말에 놀란 나,
부랴부랴 사진을 퍼온 사이트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단국대에서 기생충학을 가르치는 사람인데요
귀하의 사이트에 있는 승냥이 잠자는 사진이 좀 필요합니다.
물론 출처는 명기할 것이구요...답신 기다릴께요."
"안녕하세요. 귀 사이트의 고사리 사진이 좀 필요합니다..."
외국 사이트에도 편지를 보냈다.
"How do you do? I need your photograph! Of course, I will write the source."
내 일을 도와주는 조교 선생에게 이 말을 했더니 그녀가 이런다.
"선생님, 아예 원문을 저장해 놓고 사진 이름만 바꿔서 보내면 더 편하지 않을까요?"
아아, 그녀는 날 바보로 알고 있었다.
내가 좀 어리버리하긴 해도 그 정도는 아닌데,
당연히 그렇게 하고 있는데 ㅠㅠ
가끔씩 답장이 온다.
지금까지 허락을 받은 건 딱 하나, "OK! Go ahead!"라고 써서 보내준 어느 외국인이다.
나머지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다.
"링크 거는 거 말고는 아무리 상업적이 아니라 해도 안됩니다. ㅎㄱㄹ신문사"
"글쎄요. 사이트 관리는 제가 하지만 올려주신 분은 저희 유저 분인데, 직접 연락해 보시죠."
이러다간 사진 허락 맡는 걸로 시간을 다 보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외국 사이트에서 설마 내가 우리말로 만든 박물관을 견학올까 하는 악마의 부추김이 있지만,
그래도 허락은 맡아 놔야겠다.
요즘 날 보는 사람마다 "얼굴이 왜 이리 초췌하냐?"고 하면서 이상한 쪽으로 생각을 하던데,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일 때문에 그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