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독감이 지나가고 난 뒤 이에 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 제일 중요한 게, 원인균이 무엇이냐 하는 거다. 당시만 해도 바이러스의 존재를 몰랐으니, 독감 환자들에게서 자주 나오는 Hemophilus influenza가 독감의 원인균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균을 다른 사람에게 감염시켜보니 독감에 안걸리자,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당시 어떤 실험을 했느냐면...

1918년 11월, 62명의 죄수를 불러다가 사면을 해줄 테니 실험에 응하라고 했다. 아무리 죄수지만 사형수도 아니고, 사형수라고 해도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는 실험에 응하라고 하는 건 좀 너무했다. 방법도 무진장 원시적이었다.

[...독감으로 사경을 헤매는 환자들의 코와 목에서 진득진득한 점액을 채취했다...이것을 죄수의 코와 목구멍에 뿌렸고, 다른 집단에는 눈에 떨어뜨렸다. ...독감 환자의 코에서 콧물을 빼내 지원자의 콧속에 넣기도 했다...세균은 통과하지 못하고 바이러스만 통과하는 여과기에 채취한 점액을 통과시키고, 그걸 지원자들에게 뿌렸다..]
좀 심하지 않는가? 남의 콧물을 자기 코에 넣다니, 생각만 해도 넘어오려고 한다. 심지어...

[지원자들을 ...죽어가는 독감 환자들에게 데려갔다. ...각 지원자들은 병상에서 환자와 얼굴을 가깝게 맞대고 환자의 악취 나는 숨을 들이마시며 5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피실험자는 환자가 내뿜는 숨을 허파 속까지 깊이 들이마셨다...독감 환자와 얼굴을 맞대고 환자의 기침을 5회 이상 받았다]

정말 너무하지 않는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는 있다고 해도, 어찌 이런 비윤리적인 실험을 할 수가? 다행히도 독감에 걸린 지원자가 한명도 없어서 그렇지, 몇명이라도 죽었다면 나중에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싶다. 다른 곳에서는 건강한 일반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기도 했는데, 수천만의 목숨을 앗아간 독감에 기꺼이 실험대상으로 나선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독감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실미도>라는 영화는 사형수들을 인간병기로 만들어 북에 파견하기로 계획했던 실제사건을 다루고 있다. 비윤리적이긴 해도 감옥에 있다보면 이런저런 유혹에 빠질 수 있는 법,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지금도 어느 감옥에서는 죄수들에게 조류독감을 감염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죄 짓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워낙 흉흉한 세상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918년 스페인독감이 돌아서 많은 희생자가 났는데, 최소 2천만에서 1억명 사이의 인류가 죽었다. 그해 3월에 가벼운 독감이 돌았고, 그해 가을부터 갑자기 무시무시하게 변한 독감이 유행했는데, 그 속도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어느날 밤에 네 여자가 브리지 게임을 했는데 다음날 세 여자가 독감으로 죽었다...직장에 출근했다가 몇시간 후에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도...있었다]
독감이 잠복기도 없나? 게다가 이 독감은 젊고 건강한 사람을 주로 죽였단다.

그 후 십년 주기로 독감이 유행을 했는데, 1976년 초 변형된 독감으로 인해 군인 한명이 죽었다. 대책회의가 열렸고, 1918년의 쓰라린 경험을 겪은 의학계에서는 그해 가을에도 독감이 유행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그래서 결정된 것이 백신 예방접종 프로그램.

하지만 불행하게도 독감은 유행하지 않았고, 백신으로 인한 부작용만 속출했다. 원래 죽을 사람이라 해도 백신을 맞은 다음날 죽었다고 하면, 백신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백신 때문에 Guillanine-Barre(스펠링이...?) 증후군이 생긴 경우도 급증했다. 이 질환이 원래 진단이 어려웠는데, 백신을 맞았다고 하면 무조건 이 진단을 남발한 결과다. 그래서 포드 대통령은 백신의 안전성을 보이기 위해 직접 백신을 맞고 그랬는데, 반발이 하도 심해 4천만명이 백신을 맞았을 때 예방접종을 그만두기로 했다. 백신으로 인해 걸린 소송만 수십억달러 어치니, 완전한 실패다. 포드가 재선에 실패한 것은 이런 이유도 있으리라.

난 이렇게 생각한다. 대규모의 독감이 발병할 확률이 5%만 있으면, 돈이 들더라도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당시 백신 예산은 1억3천만달러, 물론 많은 돈이긴 하지만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건 아니다. 포드는 옳았다. 하지만 언론들은 포드를 비난하기 바빴고, CBS 방송국의 기자는 심지어 이런 말도 했다.
"포드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정치적인 쇼가 아닌가?"
백신 프로그램을 시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 독감이 돌았다면, 그 기자는 필경 "아무것도 안하고 뭐했냐"고 욕을 했을 것이다. 기자들을 지켜보면 국민의 이익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도 다를 바 없다. 백신의 부작용이 생겼다 하면, 그게 백신과 연관성이 있는가를 따지기도 전에 대문짝만하게 실어 그걸 기정사실화한다. 그런 식으로 백신의 위험성을 침소봉대하는 게 누구한테 이익이 될까?

옛날에는 정부가 백신을 맞으라고 강요를 했지만, 요즘은 돈을 내고 백신을 맞는 추세다. 나야 젊고 건강하다는 생각에서 백신을 맞은 적이 없지만, 1918년 독감에 관해 읽고나니 올해는 틀렸지만 내년부터는 맞는 게 만의 하나를 대비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책에는 소아마비 백신을 따로따로 개발한 Sabin과 Salk도 나오는데, 학생 때 들은 기억이 있어 반가웠다. 포드가 백신프로그램을 하겠다고 발표를 할 때 좌우에 포진해 권위를 부여했던 두 사람은 우리 예상대로 사이가 굉장히 안좋았단다. 그 중의 한사람-누군지 기억이 잘...-은 몇달 후 자기 주장을 뒤집고 백신프로그램에 반대하는 쪽에 가담하기까지 했다나. 하여간 재미있는 세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인문학 책은 잘 안팔리기로 유명하다. 수백부 팔리는 게 고작이고, 수천부 팔리면 당장 인문학 베스트셀러에 진입한다. 한 만권쯤 팔렸다면 그해의 베스트셀러 1위는 따논 당상이다. 인문학의 위기라니, 인문학 관련 책들이 안팔리는 것은 당연한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간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숱하게 많을텐데, 아무리 적게 잡아도 십만은 넘을텐데, 인문학 책은 왜 그리 안팔릴까?

하기사, 학생 때 의학을 전공한 나도 의학 관련 책을 읽은 적은 거의 없으니, 남얘기 할 때가 아니다. 의사들이 의학 책을 안사는 이유는 그냥 다 아는 얘기니까 하는 생각에서 그러는 게 아닐까 싶다. 의학관련 프로그램을 안보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 같고. 그런 식으로 유추한다면, 인문학과 출신들도 다 아는 얘기라서 인문학 책을 안사는 거겠지?

내가 지금까지 읽은 의학 관련 책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중 가장 재미있었던 책은 로빈 쿡이 쓴 <돌연변이>다. 로빈 쿡의 다른 소설들을 "병원이 무대라고 다 의학소설이냐"고 폄하하곤 했지만, 그 책은 너무 재미있어서 밤을 하얗게 새워가며 읽었는데, 내가 빌려준 그 책을 읽은 친구는 "하나도 재미없다"고 한다. 그때 알았다. 내가 그 책이 재미있었던 것은 그래도 기초의학을 했다는 학문적 베이스가 있었기 때문이란 걸.

최근에 의학과 관련된 멋진 책이 나왔다. <독감>이란 책인데, 참으로 재미있게 읽고 있다. 1918년 전세계에서 2천만-1억 사이의 희생자를 낳은 스페인독감의 정체를 밝히는 추리소설인데, 지금까지 한 3분의 1쯤 읽었는데 벌써 재미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 한가지. 독감이 영어로 '인플루엔자'인데, 그게 '영향'을 뜻하는 'influence'와 단어가 비슷하다. 왜 그럴까? 이탈리아에서는 독감이 추위 때문에 발생했다고 생각을 했기에 독감을 '추위의 영향'이라고 불렀던 데서 연유한단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란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코흐'와 관련된 에피소드였다. 콜레라가 유행해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을 무렵 (1883년), 코흐는 아가(agar) 배지를 이용해 콜레라균을 배양하는 데 성공했고, 다음 해에는 콜레라가 물을 통해 전파되는 수인성 전염병이라는 것도 밝혀냈다. 그런데 뮌헨의 위생학자 막스 어쩌고 하는 애는 미아즈마-시체 썩은 데서 나오는 더러운 공기-가 콜레라의 원인이라고 했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코흐한테 콜레라균이 우글거리는 배양액을 달라고 했고, 그걸 꿀꺽꿀꺽 마셔 버렸다. 그러고는 코흐한테 편지를 썼다.
"플라스크의 내용물을 모두 마셨소. 내가 여전히 원기 왕성하다는 것을 알려주게 되어 기쁘오"
세상에 이런 무식한 놈이 있을까 싶지만, 그가 어떻게 콜레라에 안걸렸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에 대해 런던의 의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체질적으로 위산이 많이 분비되는 행운아였다. 위산은 콜레라를 모두 죽이는 효과가 있으니까"
하지만 콜레라에 걸려 죽은 사람들이 위산이 덜 분비되는 사람이 아닌 바, 이 주장은 별 신빙성이 없다. 내 생각에, 코흐는 인간이 불쌍해서 막스한테 맛이 간 콜레라를 보내줬을 거다. 사람을 죽이는 균을 먹게 한다는 것은 의사로서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이고, 막스가 죽었다고 하면 코흐가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테니까 말이다. 어찌되었건 역사는 코흐만 기억하지, 막스 어쩌고 하는 놈은 전혀 신경도 안쓰고 있으니, 정의가 승리했다고 할만하다. 자신의 무식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다니, 막스란 인간, 참으로 괴짜다. 나도 눈에다 벌레를 넣은 적이 있지만, 그건 막스가 한 것에 비하면 1만분의 1 정도의 위험도 없는 것이잖는가.

들뜨기 쉬운 연말연시에 차분하게 <독감>을 읽으면서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일 성 싶다. 혹시 아는가. 그 책을 읽으면 독감에 안걸릴 수 있을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금까지 난 세권의 책을 써냈다. 말이 세권이지, 앞의 두권은 '책'이라는 고상한 명칭을 붙이기엔 낯이 뜨겁다. 사실상의 저서는 그러니까 작년에 냈던 책 하나 뿐이지만, 그게 앞의 책들보다 낫다는 거지, 뭐 그리 잘썼다든지 그런 건 아니다. 내용에 걸맞게 그 책은 불과 수백권이 팔렸고, 그 중 상당수를 내가 샀다. 달라는 사람들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 말이다.

수준에 무관하게, 난 일년에 한번씩 책을 내고 싶었다. 책을 내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계속 내다보면 언젠가는 나도 책다운 책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올해 책이 나오지 않음으로써 그 계획은 둘째해에 이미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올해도 한권 책을 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잘 안됐다. 지금까지 영세한, 혹은 무성의한 출판사에 치인 나머지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었던 것이 이유였다. 여러 군데 메일을 보내 봤지만, 그럴 듯한 출판사들은 하나같이 내 제의를 거절했다. 내가 전업작가가 아니니 다행이지, 책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었다면 정말 서러울 뻔했다. 딱 한번, 아쉬운 적이 있었다. 출판재벌이 아닌 출판사에서 결국 원고를 내기로 한 뒤, 중앙M&B라는 곳에서 답신이 왔다.
[검토해 봤는데,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내용으로. 검토하는 데 한달이 걸린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고, 계약도 안했는데 지금이라도 배신하자는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싶었고, 난 날 받아준 출판사와의 의리를 지키기로 했다.

원고를 쓰는 데는 일년 가까이 걸렸다. 그 동안 늘 책만 쓴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관심이 책으로 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맨 처음 쓴 책은, 술 마실 걸 먹어 가면서 한달만에 썼다. 그 다음 책은 불과 석달이 걸렸다. 세번째 책은? 한 육개월 이상 쓴 것 같다. 기간이 수준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책은 그야말로 내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출판사의 여건이 안좋았는지, 원고를 맡기고 나서 5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난 다시금 유수 출판사에서 책을 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내 동창 하나가 출판재벌인 시공사의 편집장이니, 거기서 내려면 어려울 것도 없었는데. 내가 그 길을 택하지 않았던 것은 인맥에 의존하기 싫은 것도 있었지만, 그들의 돈이 전두환의 검은돈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학생 때 시위를 한 적은 없지만, 민주주의의 적이었던 그들과 타협하는 것은 왠지 싫었다. 기대와는 달리 몇달간 책이 나오지 않자 난 내가 너무 순진했음을 반성했다. "검으면 좀 어때? 돈은 다 똑같다고!" 이렇게 자신을 질책했지만, 이미 늦었다.

책 나오는 걸 포기한 12월 중순께, 출판사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드디어 책 만드는 프로를 스카우트했단다. 그 프로가 요구하는대로 난 지금 열심히 책을 고치고 있는 중이다. 약속한 30일까지 원고를 주려면 별로 시간이 없는지라, 논문이고 뭐고 다른 모든 걸 전폐했다. 어제, 오늘은 점심도 걸렀다. 술만 안마시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예정대로라면 2월, 실제로는 3월경에 내 4번째 책이 나온다. 판매에 무심했던 다른 책들과는 달리, 내 모든 게 담긴 이 책은 내가 최대한 사재기를 할 생각이다. 알바를 고용한 출판사의 사재기는 흔한 일이지만, 저자가 직접 사재기에 나서는 건 내가 처음이 아닐까? 그동안 그런 적이 없지만, 친구들에게도 도움을 청하련다. 내가 그리 나쁜 놈이 아니라면 한권씩만 사주라, 이렇게 말이다. 2월이 기다려진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태우스 2004-07-15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대통령과 기생충>이지요^^ 역시나 친구들은 거의 사주지 않더군요. 믿을 건 저밖에...
 

 

 

 

조카들에게 왁스가 부른 <엄마의 일기>를 가르치고 있었다. 혹시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하자면, 그 노래는 엄마가 강한 척하고 그래도 연약한 여자라는 내용이다.

"느껴요~~ 하지만 당신도~ 마음약한 여자라는걸"

내가 부연설명을 했다.

나: 그러니까, 우리 누나가 너희들 야단치고 소리지르고 그래도, 방에 가서는 혼자 울고 그런단

말야

조카: 안그러던데?

나: 너희들 안볼 때 운단 말야.

조카: 아냐, 절대 안울어. 난 포기했어.

나: 그래도 마음아파하긴 한단 말야.

조카: 기범이(동생 이름이다) 목 보면 그런말 못할걸? 목에 할퀸 자국 좀 봐. 꼭 호랑이랑

싸운 거 같아.

 

하기사,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리 누나의 성격으로 볼 때 혼낸 걸 마음아파할 것 같지는 않다.

언젠가 야단을 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조카의 말이다. "우리엄만 너무 강해서 탈이야!"

조카들이 귀여운 건, 이런 솔직성 때문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