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여자와 홍대앞 인형가게에 들렀다. 점심을 같이 먹고나서 인형옷을 사야 한다기에, 집근처고 해서 잠깐 따라갔다. 거기서 난 내가 몰랐던 세계를 경험했다. 술을 마시러, 혹은 떡볶이를 먹으러 늘 다니는 곳이건만, 근처에 그런 곳이 있었다니!

그 인형가게는 보통 인형가게가 아니었다. 인형의 가격은 한개당 80만원이 넘었다. 수제품으로 한눈에 보기에도 보통 인형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그네는 인형에게 입힐 옷가지들을 몇개 샀고, 17만원에 가까운 돈을 거리낌없이 지불했다. 그 인형이 신고있는 조그만 운동화만 해도 3만원이라니, 정말 이게 뭐하는 짓일까 하는 생각이 안들 수가 없었다. 걔만 그런 게 아닌지라, 거기에는 열명도 넘는 여자애들이 인형 하나씩을 끼고앉아 인형 옷을 고르고 있다. 말도 못하는 인형에게 그런 돈을 쓰다니, 다른 사람 같으면 필경 이렇게 비분강개했을게다.
"실업자가 몇명이고 굶어죽는 애들이 얼만데 이런 데 돈을 써???"
신문기자가 그걸 봤다면 "과소비" 어쩌고 하면서 대서특필했을테고, 인형을 가진 애들은 갑자기 죄인 취급을 받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그건 내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취향을 깔아뭉개는 거였다. 예컨대 내가 일년에 마시는 술값만 해도, 굶어죽는 애들 몇십명은 충분히 구제한다. 술마시는 취미가 인형에 투자하는 것보다 우월한 건 아니잖는가. 인형 값이 비싸다지만, 서넛씩 짝을 지어 단란주점에 가면 하룻밤, 두시간도 못되는 시간에 그보다 더 많은 돈이 증발하고 만다. 우리는 흔히 과소비를 비난하지만, 건전한 소비와 과소비를 가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어떤 이에게는 턱없어 보이는 소비일지언정, 그것이 그에게는 꼭 필요한 것일 수도 있는 법이니까.

게다가, 인형에게 돈을 쓰는 것과 백만이 넘는 실업자, 그리고 굶어죽는 애들은 사실 별 상관이 없다. 그가 그러지 않는다고 해서 실업자가 일자리를 찾고, 애들이 호의호식을 하는 건 결코 아니다. "내 돈 가지고 내맘대로 쓰는데 어떠냐"는 식으로 보지 말고, 그가 인형놀이를 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것도 하나의 취향이려니 하고 봐주면 안될까.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즐거움을 얻는 게 왜 나쁘단 말인가.

우표수집에 돈을 많이 쓰는 친구가 있다고 하자. 그를 비난할 사람은 별로 없을게다. 오히려 좋은 취미라고 칭찬할지도 모른다. 비싼 스포츠카에 취미가 있는 사람도 그런 이유로 비난받지 않을 거다. 우리나라의 한 재벌이 고흐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를 1천억을 주고 사왔다고 하자. 그 재벌이 방안에다 그 그림을 걸고 혼자 즐길지라도, 그를 비난할 사람은 별로 없다. 우표나 카레이싱, 그림 등은 다들 인정하는 좋은 취미가 되니까. 그렇게 남의 취향에 관대한 우리가 왜 고급옷과 보석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거품을 무는 걸까.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뭐가 얼마에 팔리고" 하는 식의 기사가 과녁으로 삼는 것은 대개 강남에 사는 부유한 여인네들이 아닌가.

자기들은 일순간의 쾌락을 위해 훨씬 더 많은 돈을 써대면서, 역시 쾌락을 위해 소비를 하는 여인네들을 폄하하는 못된 습성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견고히 뿌리내린 채, 여성들을 괴롭힌다. 남성이 하는 일들이 자신에게 중요하듯이, 여성에겐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취향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의 취향을 인정하는 태도, 남성들이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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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 2011-05-21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구관인형이군요.ㅋㅋ 그거 한때 유행이었음.. 생각난다.ㅋㅋㅋㅋㅋㅋㅋㅋ
 

5. 드라마 인물 분석

1) 김태희

유리 역을 맡았다. 전에 본 적 없으니 신인인가보다. 신인이 아닐지라도 데뷔 당시엔 신인이었을

게다. 눈이 엄청 크다. 나의 40배 정도? 그런 애가 놀라면 눈이 더 커지는데-유난히 놀라는

장면이 많다-그럴 땐 나의 100배를 훨씬 넘는다. 동그란 얼굴이 발랄함을 말해 주는 듯하고,

연기도 뭐 그런대로 하지만, <진실>의 박선영만큼 악마스럽진 않다. 차라리 아역을 맡았던

애가 훨씬 더 악녀 같던데... 이번 드라마가 뜨면서 같이 떴겠지만, 악녀 보다는 다른 역,

예를 들면 토끼를 기르며 사는 천진난만한 딸 역할 같은 걸 하는 게 더 어울릴 듯 싶다.

 

2) 권상우

눈은 크지 않지만 도발적이다. 피부가 곱고 얼굴 윤곽이 아름답다. 조각 같다고나 할까.

이런 애가 나와 똑같은 출생 과정을 겪고 태어났다는 게, 똑같은 인종이라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엄마, 난 어디서 왔어요?

짙은 눈썹은 그의 반항미를 돋보이게 하고, 껄렁껄렁한 표정을 지을 땐 잘못 보였다가

한대 맞을 것만 같다. 엘리트적 미남보다 반항적 미인이 더 평가받는 요즘이니 죽고 못사는

팬들이 많은 건 당연하다. 샤워하는 장면은 굳이 안나와도 될 것 같은데 억지로 삽입한

것은 몸자랑을 하기 위함이 아닐까? 그놈, 몸 좋더만. 뭘 하기에 그런 몸을 만들었을까.

이런 애가 갑자기 나타나 "너 정서 아냐?" 하고 껴안는다면 대부분 에라 모르겠다 하고 눈을

질끈 감을거다. 드라마니까, 최지우니까 "나 정서 아냐" 하고 뿌리칠 수 있는 거겠지.



6. 롤라 런

롤라 런이라는 영화가 있다. 시작부터 뛰는데, 계속 뛴다. 이 드라마는 꼭 그 영화를 연상케

한다. 권상우가 버스 쫓아서 뛰고, 공항에 갈 때 최지우가 열나게 뛰어간다. 한정서의 아역은

아예 등교를 뛰어서 했고, 신현준 역시 겁나게 많이 뛴다. 권상우랑 최지우가 같이 있다는

말에 죽어라 뛰고, 최지우를 부모님께 보이는 날 "평창동으로 오라"는 권상우의 말에

또 뛴다. 뛰는 신을 보다보니 내가 다 지치겠던데, 하여간 여기나온 배우들, 뛰느라 살 많이

빠졌겠다. 좋겠다. 돈 받고 뛰어서...

 



 

7. 아무래도 유치해...

내가 기억상실에 걸렸다손 치자. 난 내 과거가 궁금할 거다.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을

뗀다던지, 친척이나 친구를 찾는다든지 하는 걸 안한 것까지 이해한다 쳐도, 자신의 과거를

아는 놈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그리 외면만 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엄마는 딸보다 아들을 더 이뻐하게 마련인데, 이휘향은 왜 그렇게 자기 아들을

미워하는 거지???? 이해 안가!

 

8. 진짜 부자는...

지하철 표를 최지우가 훔치는 바람에, 권상우는 역무원에게 딱 걸린다. "운임의 31배를

내라"는 말에 지갑을 연 권상우, 31배면 대충 2만원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 지갑엔

돈이 하나도 없다. 그렇구나. 진짜 부자는 지갑에 돈이 한푼도 없구나...

 

9. 드라마의 히트 이유

요즘 이 드라마, 시청률이 장난이 아니다. 40%를 넘겼으니 대장금을 추월하는 것도 시간

문제다. 여기에 고무되어 20부작으로 늘린다고 했으니, 난 좋다 뭐. 억지스런 설정이

많음에도 드라마가 뜬 이유는 뭘까.

 

1) 권상우의 인기

차인표 싫어하는 애는 봤어도 권상우 싫어하는 애는 못봤다. 별 내용도, 재미도 없는 <동갑내기

과외하기>에 500만이 몰린 이유가 사실은 권상우 하나 때문이다. 윙크하는 것도 멋지더군.

 

2) 재벌 3세

재벌 얘기를 안하면 드라마가 안된다. 권상우가 포장마차 주인이어 봐라. 누가 보냐?

IMF 때 <별은 내 가슴에>가 뜬 것처럼, 경제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재벌 드라마를 본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에서 우리와 다른 차원의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하니까.

여자가 연상인 드라마, 나이차가 30살 정도 나도 소용없다. 아무리 욕해도 재벌이 최고다.

 

그럼, 왜 시청률이 60%를 못넘을까.

1) 최지우의 활약

최지우를 쓰는 이유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혀 짧은 건 여전해 팀장을 부를 때 "팀당님!"이라고

하질 안나.

 

2) 유치 뽕

줄거리가 좀 너무...하죠? 뭐 어떤가. 재미있으면 되지. 하여간 나 오늘 이거 다 보고 잘거다!

* 결국 전 어제 새벽 2시 18분에야 10회를 다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졸려서 죽는 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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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2011-05-2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벌 재미없음요. "너는펫", "절대그이"가 짱임.ㅋ
 

나란 놈도 참 징한 놈이다. 출근도 안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계속 천국의 계단만 보고 있으니

말이다. 벌써 7회까지 봤으니, 무려 일곱시간을 거기다 투자한 셈인데, 내 성격상 10회까지 못보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 본 걸 대충 정리해 본다.

 

1. 성적 나왔을 때

1회에서 못한 얘기 하나. 정서와 유리가 전학을 온 뒤 처음으로 성적이 나왔다. 유리가 2등을

하자 드라마속 사람들이 모두 놀란다. 하다못해 나도. 난 유리가 정서를 꼬드겨 성적표를

바꿔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이휘향이 묻는다. "정서 넌 몇등이야?"

망설임 끝에 성적표를 내미는 정서, 글쎄 1등을 한거다.

 

그날밤, 유리는 이휘향한테 열나게 혼난다. "2등이 뭐야, 2등이!"

계단에서 그 말을 듣던 정서, 위로란답시고 이렇게 말한다.

"전학 온 지 얼마 안되서, 아직 적응을 못해서 그런 걸거에요"

당연하게도 이휘향은 정서의 말에 열을 받는데, 나같아도 그럴 거다. 적응 못하긴 둘다

마찬가진데, 그딴 소리를 하는 건 지 잘났다는 얘기밖에 안되잖는가? 다른 부분에서는 유리가

나빴다 하더라도, 그땐 정서가 매를 벌었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 정말 재수없다.



2. 김범수의 <보고싶다>

드라마 삽입곡은 대개 뜬다. 특히나 이 드라마처럼 대박이 예상되는 경우엔, 배경음악으로

선정되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다. 그런데, 왜 하필 <보고싶다>일까. 그 노래가 나쁘다는 건

결코 아니다. 나도 그 노래를 참 좋아하고, 노래방에서 부르기도 한다. 내가 아쉬워하는 건

김범수가 이미 뜰만큼 떠버려, 송년 무대에도 흰옷을 입고 나올 정도가 되었는데 굳이 두번

띄울 필요가 있느냐는 거다. 차라리 무명 신인의 노래를 틀어 줬다면, 배고픈 한명이 구제되지

않겠는가? 애써서 찾아본다면 더 어울리는 노래를 찾을 수도 있을텐데, 드라마 만드는 분들이

조금 안일하지 않았나 싶다.

 



 

3. 드라마의 억지

다 잊고 보려고 해도 자꾸만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미역국 한번

끓여 줬다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게 말이나 되나? "나 좋아 싫어?" 따위의 양자택일적인

질문이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정서가 죽었다고 해서 의붓동생인 유리가 왜 권성우의

옆자리를 차지해야 하는가? 내가 권성우라면 절대 그런 짓은 안할 거다. 그래도 <진실>은

나름의 설득력이 있었는데, 이건 좀 심했다. 지갑 한방으로 시체 확인도 안시키고-최소한

옷가지는 확인해야 하는 거 아냐?-정서라고 단정을 짓는 것도 그렇고, 차에 치면 다친 곳

하나 없이 기억만 잃는다. 이렇게 장기간 계속되는 기억상실이 자주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차에 치면 왜 죄다 기억상실인가? 정서가 차에 치일 때 느꼈다. "다 까먹겠구먼!" 역시나...

 

기억을 잃은 최지우는 어케 기억을 다시 찾을까? 참고로 <진실>에서는 놀이터 앞에서

차에 치일 뻔하면서 모든 기억이 되돌아온다. 이번에는? 권성우가 최지우한테 아이스링크를

가로질러 가자고 했을 때, "여기다!" 싶었다. 빙판에다 머리를 꽝 하고 부딪히면 옛 일들이

다 생각나지 않겠는가? 그런데 헛짚었다. 둘은 아무 일 없이 빙판을 나간다. 그럼 어떻게?

얼마나 또 황당하게 기억을 찾을지 기대가 된다. 되도록이면 황당하길 바라는 내 마음은

뭘까.

 

4. 외모가 다냐

신현준은 왜 최지우를 좋아하는 걸까. 미역국을 끓여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도리를 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지우는 모든 기억을 잃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최지우는 미역국을 끓여준

그 최지우와 외모만 같을 뿐 다른 사람이다. 사랑은 추억을 공유하는 것에서 싹튼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공유할 추억이 없다. 그런데도 신현준은 최지우에게 죽고 못산다. 그가 최지우를

좋아한 것은 그러니까 외모만인가? 정서의 따뜻한 마음씨와 서글서글한 성격이 아니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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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부르크라는 미술학자가 있다. 이 사람은 유티인 은행가의 7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여섯살 때 티푸스를 앓았다고 한다. 의사는 가족들에게 절대로 그를 흥분시키지 말라는 처방을 내렸고, 가족들은 그를 안정시키기 위해 웬만한 요구는 모두 들어 주곤 했다. 그 다음이 문제다.
"영악한 바르부르크는 이를 이용하여 어린 동생들을 때리거나 부려먹었다고 한다"
그는 책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나중에는 이런 짓도 한다. 집안의 가업을 물려받는, 소위 장자권을 한살 아래인 동생에게 팔아 버린 것. 조건은 "그가 원하는 모든 책을 사 줘야 한다는 것"
책값이라봤자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어린 동생은 잠시 생각한 후에 형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동생은 평생 동안 형의 엄청난 책값을 치르느라 고생을 하게 된다"
몇권이나 되기에? "그가 모은 각 분야의 책들은 모두 6만여 권에 달했다"
6만권이라니, 한권당 1만원씩만 쳐도 6억이다. 그가 죽고난 뒤 그 책들을 밑천삼아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가 만들어졌고, 그 유명한 곰브리치가 그 연구소의 소장을 지낸 바 있다니, 동생이 허리가 휘도록 돈을 모아 그 연구소를 만든 셈이다 (<천천히 그림읽기>, 조이한.진중권 저)

6만권, 정말 엄청난 숫자다. 이 정도라면 한번씩 펼쳐 보기도 힘들었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에서 책을 많이 읽기로 유명했던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가 청와대에 입성할 때, 소장하고 있던 장서가 트럭 몇대에 실려 옮겨졌다는데, 그게 2만권인가 그랬다. 감옥생활을 오래 했고 연금을 하두 많이 당해 이런 숫자가 가능했다지만, 평범한 사람은 도달하기 힘든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시인 박노해는 7년의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1만권의 책을 읽었다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 7년에 1만권이면 1년에 1400권, 하루에 4권 꼴이다. 난 맘잡고 책만 읽어도 하루 한권을 읽기도 힘들던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감옥이란 곳이 책읽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의 땅이라고 해도 말이다.

알라딘에서 활약중인 '평범한 여대생'님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많은 책을 읽는 분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알라딘에 서평을 게재했다고 전제하면, 그가 2003년에 읽은 책은 177권, 거의 이틀에 한권 꼴이다. 이 숫자 역시 보통 사람으로서는 달성하기 불가능한 숫자 같지만, 이런 추세로 50년을 읽는다해도 1만권 돌파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난 30년을 거의 책한권 읽지 않고 살아왔다. 서른을 넘기고부터 뒤늦게 책에 눈을 떠 열심히 읽고 있지만, 1년에 100권씩 30년을 읽는다해도 3천권이 고작이다. 그래서 난 말한다. "권수가 뭐 중요하냐. 중요한 건 어떤 책을 읽느냐 하는 거다" 물론 내가 읽는 책이 뭐 그리 대단한 책은 아니니, 이 말 역시 별반 설득력이 없다. 책을 읽을수록 진작에 읽지 않은 것이 후회되고, 지나온 30년이 한스럽다. 남들이야 "지금이라도 읽는 게 어디야"라고 말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난 스포츠신문을 보는 젊은 애들을 보면 차라리 책을 읽는 게 어떠냐고 말을 하고, 시험 잘본 애들에게 상으로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하지만 말에게 물을 먹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책의 소중함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나의 행동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여튼간에 책을 읽노라면 언제나 느낀다. 남은 인생이 너무 짧다고. 읽을 책은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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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드라마를 보는 건 대개 우연한 계기에 의해 이루어진다. 아는 사람의 권유나, 어쩌다 TV를

켰는데 조금 보니까 재밌더라, 이런 식으로. 저번엔 간만에 놀러온 매형과 시간을 보내려니 할말도

없고 해서 TV를 켰다가 <앞집여자> 1회를 덜컥 봐버렸고, 한번 시작한 것은 끝장을 보는 성격 탓에

종영할 때까지 그 드라마에 묻혀 살았다. 평소에는 무심한 척 하더니, 한번 빠져들면 제정신을

못차린다. "너무너무 재밌어요" 이렇게 비명을 지르고, 시청자 게시판에 글을 쓰기까지 한다.

 

초저녁부터 잔뜩 술에 취해 들어온 어제, 우연히 TV를 켰다가-사실 우연히도 아니다. 난 술만

취하면 늘 TV를 켜니깐-권상우가 폼을 잡고 특유의 반항적인 눈빛을 보내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때 누군가가 해준 얘기가 생각났다. "천국의 계단 참 재밌어. 그거 봐"

그 드라마는 이미 10회까지 진행된 상태지만, 인터넷이라는 현대 과학의 총아가 있지 않는가.

오늘 낮, 시간도 많은데 억지로 짬을 내가지고 1회를 봤다. 첫회부터 필이 온다. 선과 악의

대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도가 아닌가.

 

아버지가 탤런트와 재혼을 하면서 곱게 자라던 한정서는 졸라 어렵게 자라던 남매와 의붓남매가

되며, 한정서의 비극은 그로부터 시작된다. 천하게 살던 애들은 못되먹었다는 설정이나 여자는

남자만 잘 잡으면 인생 끝이다라는 매우 유치한 구성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난 이런 선악구도만

나오면 정신을 못차리고 열광하는데. 그간 무수히 많은 선악드라마를 봐 왔고, 이번 드라마

역시 기존 것과 다를 바가 없는데 왜 이토록 빠져드는 걸까? 나같은 애가 있으니 방송사에서도

늘 이런 식의 드라마만 방영하는 것이리라.

 

이런 류의 드라마를 볼 때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악은 언제나 강하고, 선은 무력하다.

잘못이 탄로나자 한정서에게 무조건 뒤집어 씌우는 유리, 하지만 정서는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고 어이없는 표정만 짓는다. 새동생이 거짓말을 하면 사실대로 고해바치던가 할 것이지

"아빠, 어떡해야 해?"라고 울먹이면 문제가 해결되나? 이런 식의 천사표는 참으로 보는 사람을

짜증나게 한다. 유리와 이휘향의 음모로 유학을 못가게 되자 "아빠, 안돼요"라고 심난한

표정만 짓지 말고, 왜 유학을 안가면 안되는지,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괴롭혔는지 말을 해야지

않겠는가. 혼자 힘으로 안되면 자신을 늘 지켜주는 송주오빠도 있고, 정 혼자서 삭이려면

강해지기라도 할 것이지, 침대에 누워 울먹이는 게 고작인가. 그건 착함이 아니라 바보다.

이 세상에는 유리같은 절대악도 없지만, 정서같은 절대선-절대바보-도 없다. 누구나 상황에

따라서 괴물이 되는 거지, 괴물로 태어난 애는 없는 거다. 질투에 눈이 멀어 동창과 아이들을

죽여버린 그 여인도 살아온 인생 전체가 악으로 점철된 것은 결코 아닐게다. 하지만 온갖

인간적 갈등을 드라마에 투영하려면 재미가 떨어지고, 16부작으로 턱도 없으니, 이런 식의

단순한 구도를 설정한 것이겠지. 앞으로 수요일, 목요일은 되도록이면 일찍 올 생각이다.

그런데... 다음 주는 안되겠는걸.... 술약속이.....허 참....

 

사족: 언뜻 보기에도 왕자같은 송주가 자라서 권상우가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한정서가 최지우가 되는 것은 조금 어색하다. 아무리 이해를 하려해도 최지우가 청순가련형은

아니지 않는가? <진실>에서도 늘 당하기만 하는 착한 역으로 나오던데, 글쎄다. 그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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