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종일 아팠다. 오죽했으면 내가 몇년만에 처음으로 병원에를 다 갔을까. 주사를 두대나 맞고 집에 왔지만, 난 계속 아팠고, 열에 들떠 신음했다. 문병을 온 친구 덕분인지 밤 8시쯤, 극적으로 열이 내렸다. 난 몰랐다. 세상이 이처럼 아름다운 곳임을.

오늘 아침, 문자메시지가 왔다. "오늘 약속, 기억하시지요? 혹시 까먹었을까봐"  그제서야 난 오늘 약속을 생각해 냈다. 그래, 오늘 약속이 있었지... 이들과 만나면 언제나 즐겁지만, 즐거운 이상으로 많은 술을 마시는데...

아픈 게 다 낫지 않은데다, 어젠 하루종일 굶었고 오늘 점심도 쥐꼬리만큼 먹은 상태에서 술을 마신다면 어떻게 될까? 무엇보다도 어머님이 날 가만 두려하지 않을게다. 어머니가 때리려 하면, 이렇게 말해야지. "나 환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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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1-10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기운으로 사흘째 버티던 어제, 내가 도저히 빠질 수 없는 술약속이 있음을 알았다.
빠질 수 없는 이유는 그저께, 그그저께의 술자리는 시커먼 남자들과의 약속이지만,
어젠 미녀 둘과 마시는 자리인데 어찌 내가 빠질 수가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 특히
어머님은 기가 찬 듯 "맘대로 하라"며 냉정하게 전화를 끊으셨지만, 보통의 남자라면
나보다 더 아픈 상황에서도 나처럼 행동했으리라고 믿는다.

물론 술자리는 즐거웠지만, 하루 반을 꼬박 굶은 나의 위는 새로운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술은 열심히 마셨어도 평소에 미치지 못했다. 기껏해야 소주 한병과 맥주 2-3천 정도?
부끄러운 기록이다. 그들과 함께라면 언제나 난 맛이 가도록 술을 마셨는데.
한시쯤 집에 들어간 뒤 4시까지 끙끙 앓았다. 아침에도 거의 맛이 간 상태였지만,
전날 술을 마신 게 후회되진 않았다. 그리고 억지로 출근을 했더니 이젠 좀 괜찮은 것 같다.
밥은 여전히 들어가지 않았다. 오늘 점심에도 라면을 시켜 몇가닥 먹다가 내려놓고 말았다.
가만, 이러다보면 살 빠지겠는걸? 입맛이 며칠만 더 없다면, 간만에 체중계에 올라가 봐야겠다.
전화위복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것이겠지^^.
 

아침에 몸이 안좋다는 생각을 했다. 약국에 가서 몸살약을 사먹고 약기운으로 하루를 버티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일찍 집에 왔다. 술약속에 맞춰 가려면 6시에는 나가야 하기에, 알람을 틀어놓고 디비져 잤다.

그런데,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달 전부터 만들어진 약속이고, 오랫만에 보는 친구들인지라 꼭 가야 했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살아야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디비 잤다. 조금 살아난 것 같더니, 약기운이 떨어지니 다시 아프다. 문자메시지가 왔다. 김여정이라는 친구다. 이 친구를 소개하기 위해 내가 얼마전 쓴 글을 퍼온다.

[제목: 이 여인을 보라!

지금 세계경제는 완연한 회복세다. 작년에 세계 각국은 다들 플러스 성장을 했고, 올해는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거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겨울이다. 개업을 하는 친구들은 다들 장사가 안된다고 난리다. 왜 그럴까. 우리 경제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출은 작년 11월 이미 100억불의 경상흑자를 기록했고, 매달 수출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데 말이다.

이유는 내수의 부진이다. 경제침체로 인해 얼어붙은 소비감소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사오정, 오륙도에 이어 삼팔선까지 등장, 언제 잘릴 지 모르는 터에 맘놓고 소비를 할 수가 없는 노릇이고, 외환위기 탈출에 한몫을 했던 신용카드가 지금은 소비를 위축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는 판국이다. 맨날 경제가 안좋다고 아우성을 치는 우리 언론들도 소비 감소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걸핏하면 "IMF 때보다 안좋다"는 식당 주인들의 인터뷰를 내보내는데, 누가 돈을 쓰겠는가.

이런 와중에,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한 여인이 있다. 이름은 김여정. 나이는 이제 막 삼십대에 진입했다. 직업은 작가인데, 매우 능력있는 작가라는 것을 분위기로 느낄 수가 있다. 그 작가일을 해서 버는 돈의 대부분을 그녀는 술마시는 데 투자한다. 그녀가 뭔가를 잊기 위해, 혹은 스트레스를 풀려고 마시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술을 마실 때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경제를 살려야 해!" 술을 마시는 와중에 이따금씩, 그녀는 내게 전화를 한다.

"지금 경제 살리고 있어요!"

12월 31일날도 그녀는 쉬지 않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값도 터무니없이 비싼 것 같구요. 그래도 경제를 살릴래요!"  그녀의 전화를 받고 가슴이 뭉클하지 않는다면,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리라. 난 그녀로부터 2004년 경제의 희망을 본다. 혼자 힘은 미약하기 짝이 없고, 어찌보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같이 모모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밀려오는 파도가 바위를 뚫듯이,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이 이어진다면 한국 경제는 2004년에 웅대한 도약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얻게 된다.

늦은 밤, 어디선가 잔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여정님이 또 경제를 살리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문자메시지의 내용은 "난 지금 마신다. 너는?" 그래서 답을 했다. "아파 죽겠어요. 오늘 하루 쉴래요"

그러자 그녀의 언성이 높아진다. "아니 지난번에 내가 아프다고 했을 때는 한몸을 희생하면서 경제를 살리라고 하더니, 내가 하면 불륜이고 니가 하면 로맨스냐?" 논리정연한 그녀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니가 쉬면 농땡이고, 내가 쉬면 더 나은 도약을 위한 청량제다"라고.

평소에는 잊고 살지만, 아프고 나면 정말 건강만큼 소중한 게 없다는 생각을 한다. 나야 며칠 지나면 다시금 원기를 회복할테고, 그때가 되면 예전처럼 술을 마시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어깨가 무겁다. 그들 몫까지 내가 대신 마셔줘야 하기에.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에 좀더 유념해야겠다. 오늘 밤에도 둥근 달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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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나이가 들고나서 나에게 정착된 두가지 경향이 있다. 첫번째는 이제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게 굉장히 힘들어졌기에, 기존에 있던 친구들을 유지, 보수, 관리하며 여생을 살아야겠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만나서 불편한 사람을 억지로 보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불편한 자리에 나가 억지로 만든티가 역력한 웃음을 짓곤 했는데, 이제 그런 짓을 하기가 귀챦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때로는 만나기 싫은 사람도 봐야 하지만, 앞으론 피할 수 있으면 피하겠다는 얘기다. 두번째 원칙에 너무 충실해져서인지 최근 들어서 친구를 만나면 단점만 보이고, 그래서 안만나는 친구들이 늘어나는 느낌이다....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그건 내가 "재는 원래 그런 애야"라면서 친구의 특성을 인정하고 그걸 기꺼이 감내해 왔던 데 있다. 그러던 것이 나이가 들고 사회적 지위가 조금 올라가자 내 인내력이 많이 감소했고, 그래서 그 단점들이 눈에 보이는 것이리라. 물론 나 자신도 그렇게 편한 인간이 아닐 것이며, 내 친구들 중에는 나의 그런 점을 알면서도 그러려니 하고 참은 애들이 많을 것이다. 30세가 넘어서 "너 이런 게 나쁘니 고쳐라"라고 말하는 것은 "우린 안맞아. 그러니 그만 만나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을 것이니깐.

편하기 짝이없는 친구 관계지만 그 관계를 잘 유지하는 건 이렇듯 어려운 일이다. 사소한 단점을 빌미로 하나씩 하나씩 맘 속에서 지워 나간다면 내 주위에는 친구가 하나도 남지 않겠지. 친구의 단점을 보기보단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인내력을 키워 나가는 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

말은 이렇게 했지만, 글과 실제는 많이 다른가보다. 어제 술자리에서 한 친구를 지웠다. 분명 내 친구로 알고 지내온 녀석이지만, 그는 내게 커다란 배신감만 던져줬고, 그걸 지적하는 나를 "편집적"이라며 비난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서 생각했다. '앞으로 다신 날 볼 수 없을거야'라고.

난 그동안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 주는 친구가 많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뿌듯하게 여기기까지 했지만, 그게 그럴 일은 아닌 것 같다. 외환위기 전의 한국 경제가 그랬듯, 내가 친구라고 믿었던 애들 중에는 많은 거품이 섞여 있었던 거니까. 주변에 있다고 언제나 친구는 아니며, 중년이란 나이는 그 거품을 골라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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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1-23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와닿는 글이네요...제서재로 퍼갈께요~^^ 저 중략된 원문이 궁금해서 끝까지 둘러봤는데 여기엔 없나봐요?? 아쉽네요..
 

 

 

 

내 직장은 천안이고, 난 홍대앞에서 매일 출퇴근을 한다. 힘들지 않냐고 하는 사람에게 난 이렇게 답한다. "출퇴근이....하는 일의 전부에요"

출퇴근을 하는지라 천안에서 술을 마시면 여러가지로 불편하다. 서울보다 물이 안좋은 게 가장 큰 불편이지만, 집에 갈 걱정을 해야 한다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 고속터미널은 9시 40분, 동서울에 가는 것은 10시가 막차며, 기차도 11시면 끊겨 버린다. 딱 한번 택시를 타고 서울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땐 사정이 워낙 급했으니까 그랬지, 7만원을 주고 서울에 가느니 여기서 하루 자던지, 아니면 새벽 2시까지 기다렸다가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걸 택하고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천안에서 살지 않냐고. 그럼 더 문제니까. 서울에서 술을 마시는 게 일주에 서너번인데, 술마시고 나서 천안에 어떻게 내려가라고? 버스면 모르겠지만 기차를 타면, 그리고 잠이 들면 앗차 하는 사이에 천안을 지나가는데?

그래서 난 서울서 출퇴근을 하지만, 친구들은 천안에 올 일이 있으면 꼭 내게 전화를 건다. 난 서울서도 늘 볼 수 있는데, 서울서 만나는 게 더 좋은데. 방금도 그랬다. 친구 하나가 회사일 때문에 천안에 왔단다. "이따 보자. 술한잔 살께" 내가 제주도 쯤 되는 곳에 살았다면 먼 길을 날아서 온 친구가 반가웠겠지만, 지금은 과히 반갑지 않다. 이틀에 한번은 술을 쉬겠다는 결심이 깨져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 친구와 나는 지난주에 이미 술을 마셨거든. 그래도 어쩌겠는가. 천안이라는 지명에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는데.

이따가 영안실에도 가야 하는데, 큰일이다. 술에 잔뜩 취해서 그런 데 가면 남들도 별로 안좋아 할테고, 실수를 할지도 모르는데. 언젠가 친구의 모친상 때, 술을 왕창 마시고 거길 가는 바람에 영안실 사이를 막아주던 벽을 쓰러뜨려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지 않던가 (그집에서는 내 말만 나오면 그 얘기를 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마셔는 주겠지만, 마음 한구석이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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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30대 회사원이 현금인출기를 털다가 잡혔다. 그는 범행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카드빚 때문에..."     장난감 총을 들고 은행에 들어갔던 남자 역시 카드빚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실토했다.

요즘 일어나는 모든 범죄는 다 카드빚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범행이 성공했다면 그 돈으로 과연 카드빚을 일부라도 갚았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말이다.

카드빚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백만이다. 신용카드의 대량발급이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를 살린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 신용카드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에서는 연일 신용불량자에 대한 대책을 정부에 촉구하지만, 막상 빚을 탕감해준다든지 한다는 발표가 있으면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사설을 써대니, 그들의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 역시 처음에는 카드빚 탕감에 부정적이었다. 한때지만 돌려막기를 하면서까지도 카드 연체를  하지 않았을 정도로 성실하게 카드 대금을 납부해 온 나로서는 자기가 좋아서 쓴 카드빚을 깎아 준다는 게 좋을 리가 없다. 엄연한 성인인데, 자기가 쓴 빚은 자기가 갚아야지 않는가.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게 꼭 그 사람만의 잘못은 아닌 것 같다. 자본주의의 총아인 카드, 그것은 멀쩡한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힘이 있다. 외상을 할 때는 대개 미안한 마음을 갖지만, 카드라는 놈은 외상을 하면서도 목에 힘을 주게 만드니 말이다. 

돌려막기를 하다가, 더이상 이런 생활을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맘으로 모든 카드를 없애버린 적이 있다. 그 후 일년간 난 카드가 없었다. 카드 없는 삶은 정말이지 불안의 연속이었다. 애들을 불러서 술이라도 한잔 사려면 화장실에 가서 지갑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돈이 오버되었다 싶거나 차비가 없으면 잽싸게 은행으로 달려간다. 잔고가 없어서 이은행에서 저은행으로 4천원을 보내 1만원을 찾은 슬픈 기억도 내겐 있다. 그런 생활을 하던 끝에 난 다시금 카드를 만들었고, 카드가 닳도록 열심히 그어대고 있다. 카드와 함께이니 20명, 30명이 몰려와도 하나도 무섭지 않다. 지난번에 써클 모임에 가서 몇십명에게 갈비를 살 때도 난 당당했다. "더 시켜!" 이러면서. 그 후유증으로 다음달엔 거의 최저생활을 했지만 말이다.

카드가 지닌 이 마력, 의지가 굳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웬만한 사람이라면 이 유혹을 이기기가 꽤 힘이 들거다. 카드가 없었으면 가진 돈에 맞추어 먹었을 술도 쓸데없이 비까번쩍한 곳에 가서 먹게 되지 않는가. 카드를 만든 후, 난 카드가 없을 때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되었고, 그 바람에 "한달에 얼마씩 돈을 모아서... "라는 깜찍한 계획은 거의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연체를 한 적이 없으니 카드회사는 내게 참 잘해준다. "고객님, 우수고객이세요! 저희가 고마우니까 주유권 보내드릴께요"  "고객님, 참으로 카드를 많이 쓰세요. 내년에도 많이 이용해 주세요!" 이쁜 목소리의 여직원이 역시 이쁜 목소리로 얘기할 때면, 목에 힘이 불끈 들어간다. "그래! 더 많이 쓰는거야!"    하지만 난 안다. 내가 한번, 혹은 두번 연체를 하면, 이쁜 여직원 대신 목소리가 끈적끈적한 직원이 전화를 걸어 빚갚기를 독촉할 것임을. 세번 연체를 하면? 아, 생각만 해도 오싹하다.

카드는 빚이고, 빚은 언젠가 갚아야 할 것이건만, 카드는 그 모든 것을 잊게 만든다. 그러니 카드빚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욕할 것은 아니다. 정부는 무분별한 카드발급을 조장했고, 그 결과 카드는 오늘날 사회불안의 요소가 되고 있으니, 정부가 일정부분 책임을 나누어 져야지 않겠는가. 돌려막기의 악몽에서 벗어난 내가 약간은 성실한 삶을 사는 것처럼, 카드빚을 진 사람도 거기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다시금 검소한 사람으로 돌아오지 않겠는가. 사치와 향락에 몸을 맡기다보니 그렇게 되었을지언정, 한때의 잘못으로 평생 범죄자의 낙인이 찍히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어떤 방법이 되었든지, 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조치가 나왔을 때, "나는 성실히 갚았는데"라며 볼멘 소리를 하지 않았으면 더 좋겠다. 더불어 사는 사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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