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청소년들처럼, 나 역시 '영화=악'이라는 세뇌를 오랫동안 당했다. 극장 앞에는 완장을 찬 선도부 선생이 진을 치고 있을 것 같아 극장 앞을 지나가는 것조차 벌벌 떨었고. 그런 내가 왜 갑자기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고교를 졸업한 뒤부터 주변에 여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난 영화 이외에 여자랑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등산도 있고, 공원 벤치에 앉아서 밀어를 속삭이는 것도 한 방법인데 말이다. 그저 난 아침 일찍 극장에 가서 길고 긴 줄을 기다려 가며 예매를 했고, 약속시간에 맞춰 영화를 봤을 뿐이다. 이여자, 저여자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내가 재미있게 본 영화는 두번, 세번 보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그런 세월을 겪으면서 난 '여자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영화를 본다'는 단계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여자를 만난다'는 단계로 옮겨갔고, 정말 봐야되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혼자 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영화전사'로 거듭났다.

그런 와중에 많은 일이 있었다. <블루 시걸>인가를 보러 가자고 했다가 같이 간 세명에게 밥과 디저트를 사야 했고, <결혼이야기2>를 보고 난 뒤에는 여자친구에게 싹싹 빌었다. 반면 <옥보단>과 <트루 라이즈>를 보고난 뒤에는 서로 "내가 보자고 했잖아!"라며 공을 다퉜다. <백투더 퓨처>를 보고 나서는 보름이 넘도록 영화 속 장면들을 되씹어보기도 했다. 

<스패니쉬 아파트먼트>를 봤다. 알고 지내던 여자분이 적극적으로 추천을 해줘서였는데, 그녀는 참고로 <패스워드>와...그 뭐드라... 비행기 사고를 모면한 친구들이 하나씩 죽어가는 영환데... 아무튼 그런 류의 재미있는 영화들을 내게 추천해 준, 한마디로 코드가 맞는 친구다.  그래서 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 영화를 선택하면서도 별로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있었다.  시네코어 8층은 의외로 관객들로 붐볐다. 표에 쓰인 좌석번호를 못찾겠어서 "몇번이냐"고 물어봤더니, 영화를 같이 본 파트너가 이런다. "여기 있잖아요. F에 8번"  짐작하다시피 그녀가 말했던 건 8F,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난 몸을 떨었다. 그럼..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좌석이냐?

영화는 프랑스 영화로, 스페인에 1년 유학을 간 프랑스 청년이 겪은 일들을 담담히 그린 거였다. 요란하게 웃음을 유발하는 헐리우드 영화와 달리, 이건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웃음이 났다. 예컨대 주인공이 집을 구하는 장면이다. 먼저 집을 같이 쓰던 여섯명이 식탁에 앉아서 질문을 한다.

그중 하나: 전공은?

주인공; 에라스무스.

(여기까지는 있을 수 있는 질문이다.)

그중 다른 하나: 5년 후 자신의 모습을 말해 보시오.(무슨 회사 취직하냐?)

그들은 애인을 데리고 와 자연스럽게 잠자리를 같이 하기도 한다. 우리 같으면 나머지가 집을 나가거나 그럴텐데 말이다. 그 중 매우 쿨한 척하는 여자애가 여자친구를 데려온다.

주인공: 뭐했어?

여자애: 응. 그녀와 잤어.

주인공: 잤어?

여자애: 응, 나 레즈비언이야.

놀라는 주인공에게 여자애는 덧붙인다.

"니 여자친구는 언제와?" (오면..뭐하려고?)

그 여자는 주인공에게 여자와 잘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여기를 이렇게 만지고... 그 다음에 가슴을 두드려 주는거야"

그 방법을 터득한 주인공은 자기에게 잘해준 남자의 부인-거기 나온 인물 중 가장 괜찮았다-과 잔다.

주인공: 고마워. 여자가 얼마나 좋아하던지

여자애: 남자애들은 삽입밖에 몰라. 하지만 여자는 그것보다 전희를 더 좋아한단다

삽입만을 지고지순한 진리로 알아온 우리도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하숙집에 사는 여덟명 중 같은 국적은 거의 없다. 문화적 충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대로 슬기롭게 극복해 나간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존중하는 것, 그게 바로 똘레랑스고, 여러 인종이 모여사는 프랑스에서 똘레랑스의 문화가 정착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예컨대 이런 경우, 싸움이 될 수도 있다. 

영국인: 너희 독일인은 시계처럼 정확하고 합리적이잖아? 그래서 히틀러가 나온 거 아니겠니?

삐져서 나가는 독일인에게 영국인은 따라가면서 말한다. "하이! 히틀러!"

단일민족의 신화에 사로잡혀 온 우리나라, 그래서인지 우리는 외국인을 친구로 대하지를 못하는 것 같다. 백인은 숭배하고 동남아나 흑인은 무시하는, 한마디로 숭배 혹은 경멸이다. 외국인과의 접촉이 더 빈번해지면 나아지겠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소감이다.

1) 아무리 믿어도, 자기 배우자를 맡기면 안된다.

2) 레즈비언은 여자 다루는 법을 잘 안다. 그 여자애가 주인공 가슴을 만지면서 "니가 여자애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하는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다.

3) 소문안난 영화 중에도 보석이 있다. <낭만자객>처럼 선전 요란하게 하는 영화는 한번쯤 의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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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1-21 0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영화 보다가 지루해서 그만 봤는데. **박스에서 받아서.
 

 

 

 

초등학교를 잘 나온 덕분에, 난 부자 동창이 제법 되는 편이다. 술이 덜 취한 어느날, 집에서 소주를 마시면서 인터넷에 글을 쓰고 있었다 (집에서 마시는 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랬는데 바로 그 친구가 채팅을 요구한다.
친구: 넌 뭐해? 난 술한잔 하고 있어.
나: 어? 그래? 나둔데!
친구: 넌 뭐마시니? 난.... 발렌타인 21 마시는데.
나: 어? 그, 그냥... 섬씽 마셔.(왜 하필 떠오르는 술이 썸씽밖에 없었을까)
친구: 그렇구나. 언더럭으로 마시기엔 발렌타인보다 레미마틴이 더 좋고...조니워커 블루는 어쩌고...
나: 그, 그래...

그날 들은 얘긴데, 그는 세상에 과천 경마장에 자기 말도 있었단다. 말들의 세계는 잘 몰라도, 경주말의 경우 말 한마리가 승용차보다 훨씬 비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와, 이런 별천지에 살고 있는 애가 있구나, 이런 게 그때 내 생각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 어머니와 그친구 어머님은 서로 아는 사이였다.
"민아, 너 영식이(가명) 알지? 영식이가 아-------------주아주 부자래. 건물이 몇십채고....."
그때 알았다. 내가 가끔 영화를 보러 간 극장이 그의 소유라는 걸.

어느날 모임에 다녀오신 어머님이 이러신다.
"민아, 영식이 어머니가 그 극장 1층에 엄청난 커피숍을 개업했더라. 오늘 다녀 왔는데..."
어머님께 이랬다. "엄마, 돈 없다고 기죽지 마 (초등 동창들 사이에선 내가 극빈자다). 늘 당당하셔야 해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난 그의 앞에 서면 기가 죽는다. 눈처럼 흰 피부는 무슨 영국 왕실의 귀족같고, 거기다 재벌이고... 동창회서 만났을 때, 오랜만이라고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을 난 나도 모르게 두손으로 잡았고, 고개까지 숙이는 오버를 범한 것 같다. 그 후로도 난 그 앞에만 서면 주눅이 들었다.

그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민아, 내가 수달, 스컹크, 펭귄(모두 가명)...이렇게 만나는 모임이 있거든. 다들 널 좋아하는데, 언제 우리 모임 한번 안올래?"
히익! 수달, 스컹크, 펭귄... 다들 알아주는 재벌들 아닌가. 난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는 선문답식 답변을 하면서 집요하기 짝이 없는 그의 요청을 뿌리쳤다. 어머니께 말씀드린 것과는 반대로, 난 돈을 가지고 내게 우호적인 한 친구를 경계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거다. 돈이 많은 것은 분명 그의 잘못은 아니고, 나도 뭐 극빈자는 아니니 당당해도 되련만, 왜 그럴까? 모르겠다. 그게 옳든 그르든, 내게 있어서 누군가에게 돈이 너무 많다는 것은 친구가 되는 데 있어서 지장을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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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숙해 마지않는 플라시보님과 평범한 여대생님이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목격했다.
"어제 날짜로, 님의 서재에 마이리뷰 3편이 올라왔더군요. 잘 읽었습니다. 알라딘 서재는 책이 주가 되어야 하는데, 마이페이퍼가 생긴 뒤로는 책 이외의 것에 매몰되는 것 같아요"

두분의 타깃은 물론 내가 아니었지만, 조금 뜨끔하긴 했다. 자유게시판 쯤에 해당하는 마이 페이퍼가 알라딘 '나의 서재'에 생긴 것을 누구보다도 열렬히 환영한 사람이 나였으니까. 심지어 난 그 페이퍼를 발판으로 알라딘을 평정할 생각까지 하지 않았던가.

이건 뭐 내가 꼭 나빠서만은 아니다. 난 알라딘에 둥지를 튼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서재가 생길 때, 모든 사람이 동일점에서 출발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기존에 리뷰를 써오신 분들은 벌써 저만큼 앞서간다. 다들 서평을 500개, 600개를 써 놓은 상태다. 책을 읽는 분들은 정말 무섭게 읽는지라, 역전은 고사하고 현재의 격차를 유지하는 것만도 사실 벅차다. 2003년, 126권을 읽음으로써 '신기록'을 세웠다고 자화자찬하는 사이, 책벌레 중 하나인 '평범한 여대생'님은 읽은 책은 모두 서평을 썼다고 가정을 해도 177권을 읽으셨다. 이틀에 한권 꼴인데,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숫자가 아닌가.

책은 그렇게 못하지만, 게시판에 그다지 영양가 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바로 내 특기다. 남의 말 한마디나, 귓가를 스치는 장면 하나로부터 장황한 글을 써내려가는 게... 마이리뷰에 '톱50'이니 '톱 100'을 뽑는 것처럼, 마이페이퍼도 순위를 매길 거니까, 이거에 목을 매야겠다는 것이 나의 전략이었다. 그래서 난 기존에 썼던 글들을 '나의 서재'에 퍼나르기까지 하면서 마이페이퍼를 불려 나갔다. 그 결과, 난 현재 마이페이퍼 부문에서 톱50의 한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기분 좋냐고? 그런 건 아니다. 난 하루에 서너개씩 글을 쓰는 건 나같이 집요한 사람이나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 말고도 마이 페이퍼에 목을 맨 분들은 굉장히 많았다. 베스트서재의 주인공인 '진우맘'님이 이런 글을 쓰신 걸 봤다. "마이 페이퍼 쓰느라 책을 못읽겠다!"

아닌게 아니라, 진우맘님이나 플라시보님 등등 책을 많이 읽는 분들은 하루에도 여러편씩, 주옥같은 글들을 쏟아내고 있다. 게다가 글의 수준도 상상 이상이라, 별로 경쟁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몸살이 나서이기도 했지만, 요 며칠 내가 서재에 글을 안썼던 이유는 바로 그런 것 때문이다.

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알라딘 평정이 실패로 돌아가서 하는 말이지만, 서재지수 같은 것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주식 시가를 보는 것도 아니고, 자신만의 따뜻한 방이 계량화되어 경쟁의 장에 나서는 게 과연 좋은 일인가 하는 회의도 들었다. 플라시보님 말이 맞다. 서재는, 책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책으로 못하는 얘기를 마이 페이퍼에 담아야지, 본말이 전도되어야 되겠는가. 아쉬운 것은 내가 서재지수에서-최소한 마이 페이퍼라도-알라딘을 평정한 뒤 이런 말을 하면 다들 기립박수를 치겠지만, 1등 하려고 아등바등하다가 두손을 들고 나서 이러니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플라시보님이 일은 많고 연봉도 많은 대기업을 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 직장에 머물 것인가를 고민했을 때, 난 속으로 이랬다. "플라시보님! 대기업 가세요. 그래야 제가 추월하지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카드빚을 탓하면 용서가 되듯이, 난 서재 점수에 연연하는 내 집착을 경쟁만을 조장하는 우리 교육 탓으로 돌리겠다. 대학입시를 본 지도 벌써 오래 전인데, 그때의 습속이 아직도 남아 있다니, 어릴 때 받은 교육의 영향은 이토록 지대한 법이다. 이제부터라도 나의 향기-그리 좋은 냄새일 것 같지는 않지만-를 듬뿍 느낄 수 있는 서재를 만들어 봐야지. 이 글이 경쟁자들의 긴장을 해이하게 하기 위한 음모라는 설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음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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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연필 2004-01-11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되게 재밌어요... ㅎㅎㅎㅎㅎㅎㅎ

마태우스 2004-01-11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라스꼴리니꽃님이다!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교에 보관된 랜턴 슬라이드 몇십장을 복사를 위해 빌렸다. 일반 사람들에게도 그렇겠지만, 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슬라이드는 필수였다. 강의 때도 필요하지만, 학회 때는 그 중요성이 더더욱 커진다. 학회라는 게 자신이 한 일을 남에게 알리는 거니까.


내가 조교 때는 학사DP라는 곳에다 슬라이드를 맡겼다. 저녁 때 맡기면 다음날 오후 정도는 슬라이드를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거리였다. 학교에서 300미터가 좀 넘는 정도니 나같이 날렵한 놈이 맘만 독하게 먹는다면 1분 안에 끊을 수 있는 거리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그당시 나처럼 날렵한 건 아니어서, 거길 가는 일조차 마음을 크게 먹어야 했다. 우리 과에서는 사무실 아가씨가 거길 다녀오는 걸 전담했는데, 게으르고 일을 못한다는 평을 듣던 그 아가씨는 거기 심부름을 시키면 한시간이 보통이었다. 하긴, 우리 모두 싫은데, 그 아가씨라고 해서 그 먼 길을 가는 게 좋았을까.


그러다 그 아가씨에게 축복이 될만한 일이 생겼다. 동인포토라는 곳이 학교 근처에 문을 연 것. 거리가 가까워져서 좋다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는 출장서비스라는 획기적인 서비스를 실시했는데, 그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오전과 오후에 우리 학교를 들렀다. 아침에 슬라이드를 맡기면 오후에 갖다주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속성과 딱 맞아 떨어지는 서비스를 펼친 동인포토는 당연하게도 우리 학교와 병원을 평정해 버렸다. 우리교실 아가씨는 학사DP에 가는 대신, 동인에 전화를 해서 언제까지 와달라고 얘기만 하면 됐다.


다시금 시대가 변했다. 언제부터인가 실용화된 빔 프로젝터 덕분에, 사람들은 더 이상 슬라이드를 만들지 않는다. 컴퓨터상으로 자신이 직접 슬라이드를 만들 수 있기에, 발표 직전까지만 슬라이드를 완성하면 된다는 것도 매력적인 일이다. 그러면 그동안 슬라이드를 만들어 오던 곳은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 아침, 슬라이드 복사를 위해 동인포토에 들렸다. 6년, 혹은 7년만의 방문이지만, 동인포토는 망하지 않았고, 그들은 아직도 날 기억했다. 요즘은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빔 프로젝터로 옮겨가, 학회 때 일반 슬라이드를 쓰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강의 때도 사람들은 빔을 쓴다. 하지만 나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은 아직도 핸드아웃을 나눠주고, 칠판에다 뭔가를 쓰며, 학생에게 슬라이드를 돌리게 하면서 강의를 한다. 동인포토가 먹고사는 비결은, 나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아직도 만만치않게 남아 있어서가 아닐까.


지난학기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나처럼 칠판을 쓰는 사람이 또 있냐고. 다행히도 학생들은 있다고 대답한다. 그들에게 말했다. “혹시 다 없어지면 꼭 말좀 해줘요. 꼴등은 하지 말아야 하니까” 정보화라는 게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 준 것은 사실이지만, 나같은 사람에게는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사실 난, 정보화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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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천국의 계단>을 보고 있긴 하지만, 드라마의 구성이 부실하다는 느낌은 지울 길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계속 보느냐면, 이왕 보기 시작한 거니까 그런 것도 있고, 최지우와 권상우가 행복하게 잘 살고 유리와 유리엄마가 몰락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함이다. 그런데 이 바램은 헛된 공상이 될 것 같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최지우가 안구암으로 죽는다니까. 어려서부터 주입된 권선징악 이데올로기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이런 식의 결말에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닌지라 시청자들은 게시판에 몰려가 “최지우를 살려내라”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자기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된, 그래서 하나의 압력단체가 되어버린 시청자들의 견해가 최지우의 운명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지만, 현 단계에서 난 신현준이 너무 짜증난다. 멋있는 권상우를 볼 때는 기분이 좋고, 악녀지만 귀여운 김태희도 너그러이 봐줄 수 있지만, 신현준이 나올 때는 채널을 돌려 버리고 싶다. 울적한 표정에 꾀죄죄한 옷차림,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데, 하는 짓은 외모를 능가해 버린다.


일단 기억을 잃은 최지우를 5년간이나 데리고 있던 것은 참으로 나쁜 짓이다. 최지우가 그걸 쉽게 용서하는 것은 드라마니까 그런 것일테고, 실제였다면 반경 5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을게다. 권상우와 마주치지도 못하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상우와 만나자 옥상에서 술을 마시며 괴로워하더니, 최지우가 기억을 되찾자 “다 말하려고 했다는 어줍잖은 변명을 해댄다. 물론 드라마상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지만, 그런 인간성이라면 말을 했으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모든 게 탄로난 뒤, 떠나겠다고 폼만 잡고 출발을 질질 끈 것도 참으로 짜증이 났다. 바로 떠나면 되지 자기 집에서 문을 잠궈놓고 하루를 보낸 건 또 뭔가.


좋다. 그런 잘못을 다 잊고, 자기를 따라나선 최지우를 권상우에게 돌려보낸 건 평가할 일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깨끗하게 사라져 준다면 모든 걸 용서해 줄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는다. 권상우와의 재회를 뒤에서 보고 있다가 최지우에게 전화를 건다.

“행복하니?”

아니 행복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지가 그린 벽화를 보고있다가 최지우에게 들키는 장면도 그렇지만, 약혼식장에 난입한 건 그가 최지우의 행복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권상우가 최지우에게 반지를 주는 순간, 왜 거기 들어가 “한정서!”를 외친단 말인가? 최지우는 권상우의 반지를 포기한 채 신현준을 따라나서고, 경찰서까지 쫓아간다. 그때 신현준은 이렇게 말한다.
"나 이사람 몰라요!“

이 인간, 혹시 정신병 아닌가? 모른다고 할거면, 왜 약혼식장에 들어가 파토를 놓는가? 권상우가 유리와 약혼하는 것을 막기위해? 자기가 소란을 피우면 그걸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권상우가 아무리 마음이 좋아도, 최지우가 한때 좋아했던 남자가 자꾸 나타나면 맘이 불편해지기 마련인데, 왜 자꾸 모습을 드러내는 걸까?

“집에는 왜 안들어가?”라는 최지우의 말에 신현준은 이렇게 답한다.

“니가 찾아올까봐” 후후, 착각도 자유지만, 그렇게 최지우를 떼어놓으려는 사람이 허구한날 그 앞에서 얼쩡거리는 건 진짜 말이 안된다. 최지우 집앞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질 않나, 뻑하면 전화해서 행복하냐고 묻질 않나.


얼토당토않게 신현준은 권상우에게 찾아간다. 왜 다른 여자랑 약혼했냐고 윽박지르고, 최지우를 행복하게 해 달라고 말을 한다. 아, 짜증나. 자기만 아니였다면 최지우는 필경 행복하게 살았을게다. 유리가 아무리 훼방을 놓는다해도. 그런데, 최지우가 겪는 모든 불행의 제공자가 권상우에게 찾아가 “행복하게 해달라”고 투정을 부리는 건 말이 안된다. 이제 그의 역할도 끝난 것 같은데, 우중충한 그의 얼굴을 드라마에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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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의꿈 2004-01-14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ㅡ 안녕하세요?(인사부터;) 글을 읽다가 제 생각과 너무 맞아 떨어져서 놀랐습니다....뭐, 천국의 계단을 시청하는 모든 분들이 그렇게 생각할 테지만,, 제 친구중에는 천국의 계단을 보고 신현준 안티까지 발전한 애가 있어서,, 신현준을 보고 있자면 안쓰럽기까지 하죠(아주 잠깐이지만;) 이 글 제 서재에 퍼가도 되죠???

waho 2004-02-11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어쩜 전 주위에 천국의 계단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저만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번한 내용에 식상하고 질질짜는 것도 지겹고...뭣보다 신현준 초반 패션은 경악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