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라면에 계란을 넣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인터넷 교보란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 거기서 왜...? 한때 거기다 서평을 올리는 재미로 살았지만, 이미 거길 배신한지 오랜데? 응징하려고 전화를 했나 싶었지만, 그건 기우였다.

"아, 저희가 1월 26일날 홈페이지를 새로 오픈하거든요. 그래서 축하 인사말을 남길 분들을 찾고 있는데, 님께서 저희 사이트에 서평을 많이 남겨 주셨더라구요. 저기,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코멘트와 사진 좀 보내 주세요"

그러고보니 거기다 정말 많은 서평을 올렸던 것 같다. 2년 전 언제인가는 17편의 서평을 올려 상까지 받았었지. 인터넷 교보 대문에 상패를 든 내 사진이 한달간 실려 있었었지. 알라딘과 달리 교보는 개인별로 서평을 집대성하는 시스템이 없어 내가 쓴 서평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기간으로 미뤄볼 때 150편은 넘지 않을까 싶다. 가끔은 후회한다. 내가 왜 교보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진작부터 알라딘에서 활동했었으면 지금쯤 내가 쓴 마이리뷰가 200편은 넘을텐데 말이다. 그당시 내가 교보 이외의 사이트에 들어가보지도 않은 것은 아마도 나의  주류의식 때문이리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다는 이유로 질이 과히 좋지 않은 조선일보를 보는  것처럼, 인터넷 상에서의 서비스나 할인율이 다른 곳보다 떨어지더라도 '교보'라는 네임밸류 때문에 거길 간 것이겠지. 알라딘의 질좋은 서비스를 보면서, 난 뒤늦게 머리를 쥐어 뜯어야 했다. '진작 그렇게 했으면 알라딘 상품권도 많이 받았을텐데...'

어쨌든, 난 교보 측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냥 솔직히 말해버렸다. "저는 그럴 자격이 안됩니다. 한때 거기다 서평을 많이 남긴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거길 배신하고 다른 곳에서 활동하고 있거든요"

그래도 괜찮다면서, 앞으로라도 교보에서 활동 열심히 하면 되지 않냐고 하기에 이렇게 답했다. "아뇨. 그럴 것 같지가 않네요"

알라딘의 서비스를 맛본 내가 왜 다시 교보로 가겠는가? 알라딘에서 축적한 것들이 너무 많아져서, 이젠 가고 싶어도 못간다. 설사 교보의 서비스가 알라딘의 그것을 능가한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뿌듯했다. 내 양심을 건사했고, 알라딘에 대한 나의 붉은 마음을 그에게 보여 줬으니까. 그 뿌듯함을 이렇게 글로 남기는 이유는 물론 알라딘이 나의 붉은 마음을  알아줬으면 해서다. 그러니까 이 글은 '저 열심히 할테니, 이뻐해 주세요!'라는 내용인 셈. 한가지 더. 배신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 소비자가 더 나은 곳을 쫓아 이동하는 것은 배신까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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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wave 2004-01-15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붉은 마음... 너무 멋진 표현이네요. ^^

쎈연필 2004-01-15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면에 계란 넣어 먹고 싶군요...!! ^^

만월의꿈 2004-01-15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건 배신이라고 하는게 아니죠- 소비자의 입장에서 더욱 서비스가 좋은곳을 찾아가는 것은 마땅한 도리라구요!(..정당화일수도 있지만, 사실그렇잖아요- 그래야 우리 인터넷서점의 서비스가 날로 더 좋아지죠-)
헤- 멋있으세요- '그럴것 같지가 않네요'아아, 당당해서 저까지 뿌듯해지는걸요-
 

 

 

 

고되고 힘들었던 중고교 시절, 특히나 힘들기 짝이없는 시험 기간 동안 나를 지탱해준 것은 상상의 힘이었다. 시험만 끝나면 뭘 하고, 또 뭘 하고... 시험이 끝난 뒤엔 엄청나게 할 것이 많았지만, 정작 시험이 끝나고 나면 모든 게 다 시들했다. 잠이나 실컷 자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지만, 막상 끝나보니 별로 졸리지도 않다. 이런 것과 비슷하다. 무인도에 표류를 하게 되면 세상에 돌아가서 할일이 너무도 많지만, 막상 구조가 되면 이전과 다름없는 비루한 삶을 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우리가 즐거운 순간은 상상을 하는 바로 그 순간 뿐이다. 우리는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면 언제나 상상을 하고, 상상의 힘으로 어려움을 이긴다.

한때는 책방 주인으로서의 삶을 꿈꿨다. 누구나 공짜로 책을 볼 수 있고, 어떤 책이 좋은지 독서상담도 해주고, 소통의 중심이 되는 그런 책방. 그래, 소식지도 내고, '책방주인이 선정한 1월의 책 베스트텐' 이런 것도 싣자. 약간의 노동도 해야겠지만, 거기 주인으로 앉아 있으면 원없이 책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돈을 많이 못벌더라도 참고서는 팔지 말고, 정말 좋은 책만으로 책방을 꾸미자. 이런 생각에 빠져 있노라면, 참으로 행복했다.

하지만 막상 책방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 듯하다. 홍대 앞에서 제법 큰 서점-내가 계획한 책방보다 세배는 큰-을 운영하고 있는 분은 언제나 굳은 표정으로 카운터에 서있고, 아르바이트 분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컴퓨터만 두들기고 있다. 그들 중 책을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책방을 열어도 그렇게밖에 안될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는 의외로 중요한 거니까. 내가 그런 데서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책방 주인은 신선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까 책방 주인은 내 상상 속에서만 아름답다.

최근 또다른 상상을 추가했다. 벤지 이후에는 개를 더이상 기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애견센터에서 뛰노는 강아지들을 보고 있노라면 "얘네들을 패키지로 가져다가 마당 있는 집에서 키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든다. 돈을 좀 들여 한 열마리 쯤을 사는거다. '개랑 놀아줄 사람'을 구해 내가 출근한 뒤인 열시부터 오후 다섯시 정도까지 개를 돌보도록 하고. 상상해 본다. 늦은 밤, 내가 현관 문을 열면 강아지 열마리가 나를 향해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서로들 내 옆자리에서 자려고 다투고. 아,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즐겁지 않는가?

하지만 막상 개를 키운다면 이렇게까지 아름답지만은 않겠지. 개들이 여기저기 싸놓는 대소변으로 집이 멍들고-벤지 하나로도 집이 망가지는 걸 보면, 열마리라면...-개봐주는 사람을 구할 여유가 안될 게 확실하니, 애들 먹이며 대소변을, 그리고 이불빨래 등을 나 혼자 해결해야 한다. 개가 걱정이 되어 해외는커녕 1박도 굉장히 힘들어하는 삶이 계속되겠지. 벤지에게서  많은 기쁨을 얻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지 이후에 개를 안키우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게 아니던가.

사랑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한 여자를 보면서 그 여자와의 미래를 꿈꾸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가슴이 벅차는 일이지만, 막상 사귀기 시작하면 끊임없는 기싸움에 가슴이 멍들지 않는가.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다르며, 상상만큼 아름다운 현실은 없다. 그래서 난 오늘도 상상을 한다. 끼룩끼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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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여행자 2004-01-16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험 때는 정말 그런 거 같아요. 평소에 안 하던, 또는 죽어도 하기 싫던, 짓들이 막 하고 싶거든요 : 일기 쓰기. 방 청소하기. 책 정리 하기. 그림 그리기. 시험 끝나고도 더 열심히 공부할 계획(?!). 저도 물론, 시험이 끝나면 상상도 허물어지죠. ^^
 

 

 

 

두달에 한번씩, 모 회사의 사보에 글을 연재하고 있다. 글 쓰는 거야 그다지 어렵지 않으므로 나름대로는 '쉽게 돈을 번다'고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작년 말, 장애자단체에서 내 글을 봤다면서 전화를 했다.

그사람: 글을 보니까 선생님이 참 좋으신 분인 것 같아서 전화를 드렸어요

나: 아, 네. 별로 그렇지도...

그: 그래서 말인데요, 저희 단체에서 뭘 좀 만들었는데 선생님께 보내드려도 될까요?

나: 네? 아, 그, 그게...

결국 난 그 뭔가를 받고, 원고료로 받은 돈을 그 단체에 송금했다. 그 뭔가가 뭐냐고? 기억은 안나지만, 그다지 유용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장애자단체에 돈을 낸 건 약간의 뿌듯함을 주긴 하지만, 오늘 아침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를 쥐어뜯을 일이다.

지난 토요일, 갑자기 기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기자: xx에다 글 쓰신 거 봤습니다. 아주 재미있게 쓰셨대요

나: 아, 네. 별로 그렇지도...

기자: 그래서 말인데요, 선생님이 쓰신 거 저희가 기사로 써도 되겠습니까?

나: 그럼요, 그렇게 하세요.

난 관련 사진도 몇장 메일로 보내줬다. 오늘 아침, 그 기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기자: 오늘 아침에 난 기사 봤습니까?

나: 아뇨. 안봤는데요

기자: 저희 신문 x면에 보면 선생님 글이랑 존함을 실었습니다.

나: 네, 알겠습니다. 이따가 보겠습니다.

기자: 그런데 말입니다... 저희 회사에서 '이코노미스트'란 잡지를 홍보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하나 봐주실 수 있습니까?

일년에 15만원이라니, 정말 더럽게 비싸다. 안된다고 빼다가 결국 6개월로 합의했다. 문제는 그  기자의 사상이다. 그는 내 글을 바탕으로 기사를 썼다. 기사를 보니 내가 말한 것은 세줄인가 되고,  나머지는 자기의 취재인 것처럼 되어 있다. 뭐, 상관없다. 내가 허락한 일이니까. 그렇긴 해도,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사람이다. 일주에 하나씩, 기사거리를 생각해 내느라 머리가  빠지는 터에 아주 쉽게 기사를 썼으니까. 하지만 그는 자기 신문에 내 이름을 내 줬으니, 크게 선심을 쓴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턱없는 요구는 하지 못했을게다.

그 기자로 인해 내가 득을 봤을까? 난 별로 그렇지 않다고 본다. 사실 난 신문에 내 이름이 실리는 게 겁이 난다. 명성에 집착을 하지 않는다기보다, 모교 선생님들로부터 좋지 않은 말을 들을까봐서. 모교에서는 하필 그 신문을 보고, 내가 신문에 날 때마다 "이친구 정말 왜이래?"라며 나를 성토하곤 했다. 오늘도 아마 그 신문을 펴들고 "이 친구, 안되겠구먼"이라며 내 얘기를 했겠지. 내가 지금 귀가 가려운 것은 귓밥 때문만은 아니리라. 왜 성토를 하냐고? 그분들로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신문에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하는 것이 마땅치 않을 것이니까.

명성. 나 역시 그걸 바란다.  예컨대, 내 논문이 Nature같은 잡지에 실렸다거나, 생명공학의 발전을  앞당길 뭔가를 개발했다든지 하는 식으로 내가 이룩한 성취를 가지고 신문에 나는 것은 얼마든지  좋다. 하지만 이런 식은 싫다. 아는 게 없다는 걸 나도 잘 아니까. 거기다가 잡지 구독까지 하게 되었으니, 이래저래 기분이 나쁘다. 그 신문사에 근무하는 다른 기자의 요구에 의해 그  회사의 신문도 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끊어야겠다. 그나저나 기자들은 왜 그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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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 졸업생들이 큰 시험을 치뤘다. 합격률이 95%를 넘는 시험이긴 해도, 떨어지면 '개망신'으로 연결된다는 게 스트레스일 수밖에 없다. 시험을 본 학생들에게 수고했다는 의미로 마련된 것이 어제의 술자리, 졸업준비 위원이지만 평소 별 기여를 못하고 있는지라 어제 술자리는 꼭 가야 했다. 약속장소는 산 중턱에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카페처럼 우아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주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졸업을 하는 43명 중 절반 정도만 나왔다. 아마도 시험을 잘 본 애들만 나왔나보다. 건드리기만 해도 원샷을 해대는 학생들 틈에 끼어있다보니, 제법 술을 많이 마신 것 같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소주를 한병반은 마셨다. 2차로 간 곳은 생전 처음 가보는 곳인데, 분위기가 아주 좋아 다음에 또 오고 싶어질 정도였다. 소주 댓병에다 맥주를 담아서 파는 게 특이했고, 맥주맛도 좋았다. 소주와 맥주, 이렇게 마시면 취하기 마련이다. 나보다 조금 더 취한 학생 하나를 집에 데려다 준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에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기차를 어떻게 탔는지, 내리는 건 잘 내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도 집에 올 수 있는 것은 바로 귀소본능 덕분, 많이 늦었음에도 벤지는 날 반기며 꼬리를 흔들었다.

오늘이 14일이고, <천국의 계단>을 보기 위해 두 건의 술자리를 거절했다. 14일 중 6번, 이런 추세면 연말까지 140여번에 머문다. 180번의 목표 달성은 시간문제다. 음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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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프로야구에 통 관심을 끊고 산다. 하기사, 경기도 안하는데 무슨 관심을 갖겠는가.  그런데 어제 오후, 항의전화를 한통 받았다. 이상훈 사태가 지금 심각한데, 왜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느냔다. 그래서 그랬다. 알아보고 글로 남기겠다고.

사태의 전말은 이랬다. 이순철이 엘지 감독으로 부임했는데, 기타를 들고 밴드 활동을 하던 이상훈에게 전지훈련 중에는 기타를 가져가지 말라고 했고, 이상훈은 그에 반발, 팀을 떠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첫번째 의문. 아니 왜 하필 이순철을 감독시켰냐? 꼭 엘지 출신이어야 엘지를 지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순철은 도무지 카리스마가 없다. 선수 시절 그가 얼마나 얍삽한 야구를 했는지 야구에 약간만 관심이 있어도 알 것이다. 어디서 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노찬엽이나 한대화, 하다못해 김상훈 같은 사람도 있는데 왜 이순철이람? 어제 같이 술을 마신 엘지 팬들도 이순철이 온 것에 대해 "엘지의 해태화"라며 반발하던데...

두번째 의문. 이상훈은 언제부터 기타를 쳤을까? 그의 연주실력은 모르지만, 선수가 다른 취미를 갖는 게 나쁠 건 없다. 기타가 어릴 적부터 "모범생이 아닌 애들이 가지고 노는 것"이라며 세뇌가 되어 있어서 그렇지, 기타는 좋은 취미다. 밴드활동? 더더욱 멋지다. 전지훈련을 안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상훈 정도면 자기 앞가림은 알아서 할텐데 그걸 금지시키는 것은 반발할 만하다.

이순철은 젊은 감독이다. 신문에 난 걸 보니 이제 겨우 마흔하나, 하지만 그의 감각은 젊은 나이를 초월해 구닥다리의 경지에 다다른 것 같다. 엘지가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선수의 취미생활을 막는 것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야구할 땐 야구를 해도, 사생활은 존중하자. 머리를 기르든, 팬티를 안갈아입든, 야구를 잘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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