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난 딴지일보 기자가 되었다. 주위 분들의 추천에 의해서 된건데, 임명장을 받는 순간 엄청난 고민과 부담이 나를 짓눌렀다. 임명장 말미에 씌어 있는, "기사를 써서 제출할 것"이란 대목 때문. 그래서 난 어줍잖은 기사 몇편을 딴지에 썼고, 욕과 칭찬을 절반씩 들었다. 나중에 알았다. 딴지 기자 중 제대로 기사를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사실을. 그 뒤부터 난 기사는 안쓰고 임명장에 나온 말 중 "딴지 기자를 사칭해도 된다"는 구절에만 충실하고 있다.

어제 술을 마신 분들은 딴지 분들이다. 출중한 내공을 지닌 분들과 지내면서 난 많은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었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가식없고 순수한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좋았다.

그분들 중 한분의 집에서 모였기에, 뭘 사갈까 고민하다 식혜를 사갔다. 그랬더니... 어떤 분은 '오렌지 쥬스' 다른 분은 '망고쥬스'  또다른 분은 '아침 햇살'... 무슨 병문안 왔나? 내공이 높아도 취향은 촌스러울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줬다. 그래서 난 내가 사온 식혜를 들고가서 소주 열병과 바꿨는데, 아무도 소주를 안먹어서 나 혼자 두병을 비웠다. 퍽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술마신 양에 비하면 별 실수를 하지 않은 채 집에 왔다.

술이 알딸딸하게 취할 때면 내가 하는 안좋은 버릇은, 프리챌에서 포커 하이로를 치는 것과, 라면을 먹는 것. 어젠 다행히 라면을 먹진 않았지만, 한시간 가까이 포커를 쳤다. 9천만원쯤 있던 돈을 1억5천까지 불려 놨지만, 기분이 영 안좋다. 잠을 깨고나면 일찍 잠이나 잘 걸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오니까. 술이 덜 깨서 오전 12시까지 누워 있었으니, 하루의 절반이 날라간 셈이다. 어떻게 하면 그 나쁜 버릇을 고칠 수가 있을까 고민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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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KCC를 응원하는지라 다른 팀의 경기는 잘 안본다. 하지만 어제 오후 우연히 TV를 틀었더니 삼보와 전자랜드가 숨막히는 접전을 벌이고 있기에, 가부좌를 틀고앉아 TV를 봤다. 전자랜드가 10초를 남기고 공격권을 쥔 챤스를 무산시켜 연장에 돌입했다.

1. 문경은

문경은은 고교 시절부터 유명했고, 대표팀에 단골로 뽑히는 국내 제일의 슈터다. 하지만 그는 감독이 좋아할 선수는 아니다. 삼성 시절 김동광 감독은 문경은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고, 결국 그를 트레이드하는 데 성공했다 (그 뒤에 들어온 우지원은 감독에게 더 큰 고민을 안겨줬지만). 뭐가 문제일까? 그는 수비가 약하다. 김영만이나 양경민, 추승균 등 다른 팀의 슈터들은 슛 실력에 걸맞는 수비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문경은이 기용되면 선수 한명은 그냥 풀어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의 장기인 외곽슛 역시 그리 믿을만한 건 아니다. 기복이 워낙 심해, 못넣는 날은 비참하게 못넣는다. 한 경기 안에서도 기복이 있어, 어제처럼 1, 2쿼터에서 잘넣었다 해도 3, 4쿼터를 무득점으로 보내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난 그 이유를 스스로 챤스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대학 재학 중, 그는 최고의 가드인 이상민과 한 팀이었고, 그가 내주는 패스를 받아 어렵지 않게 슛을 쐈다. 삼성에서 같이 뛴 주희정이나 현재 가드인 최명도는 그런 챤스를 만들어 주지 못하니, 슛을 쏠 기회 자체가 없는 것.

연장전 도중 해설자가 이런 말을 했다. "문경은 선수가 하나 해줘야 해요!" 그 말을 들은 걸까. 공을 잡고 공격을 하던 문경은은 그만 어이없는 트레블링을 범한다. 라이벌 양경민은 그 공격을 3점 슛으로 연결시켰고, 그 다음에 문경은이 던진 먼거리 3점슛은 림을 외면했다. 결국 전자랜드는 고배를 마셨다.

2. 유재학

하지만 어제 전자랜드가 진 게 전적으로 문경은 때문은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유재학의 닭짓이 더 큰 이유를 제공했다. 선수시절 유재학은 '꾀돌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재치있는 플레이를 펼쳤다. 그러나  감독이 된 뒤 그 재치는 어디로 간걸까?

연장 19초를 남기고 스코어는 동점이었다. 공격권은 삼보. 유재학은 선수를 둘 바꾼다. 해설자의 말, "파울을 하기 위한 교체지요" 그 말대로 둘은 하나씩 파울을 기록한다. 문제는 15초를 남기고 저질러진 두번째 파울이 자유투를 헌납하고 만 것. 삼보의 데릭스는 자유투 둘을 모두 성공시켜 2점차 리드를 이끈다. 전자랜드는 15초 동안 득점을 하지 못해, 결국 패배의 수렁에 빠진다. 파울작전이란 건 뒤지는 팀이 시간이 모자랄 때 쓰는 작전, 동점일 때 파울작전을 하는 팀은 내가 알기에 유재학이 처음이다. 스코어를 착각한 것일까, 아니면 파울 갯수를 헷갈린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그런 작전을 편 걸까. 유재학의 의도를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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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펜

NBA 경기를 보다보니 관중들이 "디펜!"을 외치는 걸 보았다. 그 경기가 마침 시카코 불스의 경기였기에, 그 팀의 스몰 포워드인 스카티 피펜의 이름을 연호하는 것으로 알았다. 물론 이런 생각은 들었다. '왜 팀의 간판인 마이클 조던의 이름은 부르지 않을까?' 나중에 알고보니-스스로 깨우친 건 아니고, 미국있는 친구에게 물어봤다-관중들이 외친 건 '디-펜(스)', 즉 수비를 하라는 거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나라에서도 홈팀의 수비 때 어김없이 "디-펜!"이라는 구호가 관중석에서 나온다. 그 말을 들을 때면 좀 씁쓸하다. 리바운드나 앨리웁 덩크 등의 전문용어를 쓰는 거야 어쩔 수 없다쳐도, 응원구호마저 미국 껄 그대로 따라하는 걸까? 미국인들이 쓰는 말이니 무조건 멋있어 보이는 걸까? 자신의 나라에서 말해지는 응원구호를 한국에서 들었을 때, 미국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2. 박한 시리즈

미국을 일방적으로 따라하는 것에 대해 비판을 하긴 했지만, 미국 스포츠방송의 상업주의 정신은 배울 만하다. 포수가 얼굴에 쓰는 프로텍터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덕아웃에서 감독의 표정과 하는 한마디 한마디까지 TV에서 방영하는 걸 보면서 혀를 내두른 적이 있는데, 그 영향으로 우리 나라에서도 감독이나 선수의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노력한다. 
 
그중의 하나가 농구의 작전타임 장면을 리얼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 그러다보니 가끔 웃기는 일도 생긴다. 몇년 전, 엘지의 매덕스란 선수가 자꾸 무리한 돌파를 시도하자 김태환 감독이 작전타임을 불렀다. 가드인 조우현에게 하는 말, "야, 재 (공) 주지마!" 외국인 선수인 매덕스가 그 말을 알아들었을까?  
 
박한이 고대 감독을 하던 시절, 고대는 최강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을 따져보면 연대보다도 나은 수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는 연대에게 번번히 깨졌다. 그게 바로 박한 때문이라는 게 내 생각. 작전타임 도중 박한이 하는 말은 대개 이런 식이다. "'야 수비 좀 잘하란 말이야. 타이트하게...좀 잘할 수 없니..." 아니 누군 잘하기 싫어서 그러는가? 그의 언행을 모은 게 바로 '박한 시리즈'다.

사례 1. 작전타임을 부른 박한 감독, 열이 받은 얼굴로 선수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지금 두가지가 안되고 있어. 공격하고 수비야!"

사례 2. 작전지시용 종이를 꺼낸 박한 감독, 한쪽에다 동그라미를 크게 그린다. "이게 골대야" 다른 쪽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린다. "이건 공이야" 공에서 골대로 화살표를 그린다. "넣어, 응?"

사례 3. 한양대와의 경기도중 고대는 막판에 3점차로 뒤졌다. 노련한 전희철은 딱 1초를 남기고 3점슛을 시도했고, 거기 속은 수비수의 파울로 자유투 3개를 얻게 되었다. 다 넣으면 연장전에 돌입하는 순간, 박한이 작전타임을 불렀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봤더니 놀랍게도 박한은 이렇게 말한다. "희철아! 세개 다 넣어!"

사례 4. 경기에서 크게 뒤지자 열이 받은 박한 감독, 작전타임을 불러 김병철을 야단친다.
"병철아, 너 전담수비가 누구야?" 김병철, 아무 말이 없다. 더더욱 다그치는 박감독,  "아니 네 수비도 모른단 말야?" 그러자 옆에 있던 전희철의 대답, "감독님, 저희 지금 지역방어인데요?" 

고대를 응원하는 입장에서 박한이 고대 감독에서 물러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그늘이 워낙 커서인지, 고대는 아직까지도 정상권 밖에서 헤매고 있는 중이다. 하기사, 프로농구가 생겨 대학농구가 많이 위축되기도 했으니, 이상민, 우지원, 현주엽과 김병철이 활약하던 시절만큼 인기를 얻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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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고양이에 관해 썼던 글 세편을 연속으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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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양이를 부탁해요

두달쯤 전, 벤지가 안먹고 남긴 음식을  쓰레기 비닐을 뜯어가면서 게걸스럽게 먹는 고양이를 봤다. 그후부터 난 아침마다 음식을 만들어 고양이들에게 줬다.
언제부터인가 고양이들의 숫자가 한마리씩 늘어나, 지금은 대충 여섯 마리 정도가 아침마다 내가 주는 아침을 기다린다. 내가 음식접시를 내려놓자마자 여기 저기서 고양이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 중에는 포우의 <검은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괴기스런 녀석도 있고, 페르시아 카펫 위에 누워 골골거리고 있어야 마땅할 외모를 지닌 고양이도 있다.


사람에 위아래가 없듯이 동물도 높고 낮음이 없는지라, 그렇게 이쁜 애들이 찌꺼기에 가까운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건 분명 마음이 아픈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내 능력이 벤지 하나 건사할 정도밖에 안되는 것을.

처음 나만 보면 도망을 치던 고양이들은 나의 선의를 이해했는지 이젠 내 모습을 봐도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내가 쓰다듬는 걸 허용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나랑 맺어진 끈끈한 유대감은 그들이 원래부터 도둑고양이로 태어난 게 아닌, 그저 먹고살기 힘든 환경 때문에 쓰레기통을 뒤지는 신세로 전락했음을 말해준다. 출근을 안해서 늦잠을 잘 때면 집 앞에서 야옹 하면서 계속 울어대 자는 날 깨웠고, 시간이 없어 음식을 못챙긴 날은 서운한 표정으로 울어대 날 미안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벤지만 보면 몸을 둥글게 휘곤 했지만, 벤지가 목소리만 크지 별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이젠 별로 신경을 안쓴다. 한마디로 말해 고양이와 나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면서 신뢰를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올 8월엔 비가 징그럽게 많이 왔다. 어제는 특히나 장대같은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먹이를 들고 고양이들을 찾았건만 눈에 띄질 않는다. 도대체 어디서 이 비를 피하고 있을까 안스럽기만 했다. 언젠가는 먹겠지 하는 맘으로 현관 앞에 음식접시를 내려놓고, 계속 내리는 빗줄기를 원망스러운 맘으로 째려보며 출근을 했다. 그날 마침 직장에 있는 청소 아주머니 하나가 팔에 긁힌 상처가 있기에 왜 다치셨냐고 물어봤다.
"광에 고양이가 한 마리 들어왔기에 빗자루로 쫓다가 할퀴었어요"
"아유, 욕보셨네요"라고 대답을 하긴 했지만, 고양이를 위해서 한평의 공간도 내주지 않는 그 야박함이 약간은 원망스러웠다. 고양이도 그 아주머니의 광에 숨어드는 게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장대같은 빗줄기를 피하려고 어쩔 수 없이 그곳을 찾았겠지. 언제부터인가 우리 도시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해버린 고양이지만, 그들에게 잠시 비를 그을 지붕을 제공해 줄 여유를 가져 달라는 게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 고양이를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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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뒤부터 일년쯤 뒤에 쓴 글입니다.

제목: 고양아, 안녕

어려서부터 전 고양이를 좋아했습니다. 제 손등을 수도 없이 할퀴었지만, 등을 활처럼 구부린 모습, 소리없이 걷는 동작하며, 목을 만져주면 골골거리는 것 등 이뻐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물론 충직한 개를 훨씬 더 좋아했지만요. 어릴 적엔 동물을 좋아하다가 커서는 싫어하는 사람도 꽤 봤지만, 전 지금도 털달린 동물을 좋아합니다.

언젠가 서울시내에 고양이들이 들끓기 시작했지요. 그들이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걸 본 어느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렇게 이쁜 애들이 왜 쓰레기를 뒤적이며 살아야 할까"
그래서..... 전 고양이들에게 아침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고양이들은 식사 때에 맞춰 저희집 앞으로 모였죠. 절 보면 야옹야옹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귀여웠습니다.

그러길 거의 일년이 다 되어 가던 지난주, 전 한마디 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식사를 끊었습니다. 우리집 앞에 진을 치는 고양이 숫자가 너무 많아지고-새끼들까지 다 데려오더라구요-저희집 앞이 지저분해지는 것도 그렇고, 동네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해 더이상 견딜 수가 없더군요. 오늘이 4일째, 고양이들은 매우 아쉬워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벤지 오줌을 뉘러 밖에 나갔더니 절 보고 따라다니면서 "야옹"거립니다. 그들의 울음소리가 "밥줘"로 들려 너무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도둑고양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듯, 도둑고양이로 태어나는 고양이도 없습니다. 그들 역시 적당한 먹이와 숙소만 제공된다면, 얼마든지 애완용 고양이가 될 수 있지요. 절 보면 드러누워 장난을 치려하는 녀석들을 보면서 전 제 생각이 맞다고 확신하곤 했습니다.

아무것도 안준 채 냉정하게 들어와버린 지금, 깨끗해진 집앞과는 달리 제 맘은 편치 않습니다. 절 보던 고양이들의 슬픈 눈이 생각나서요. 혹자는 이렇게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지금 사람도 굶는 와중에 고양이가 굶는 게 뭐 대수냐"고. 그런 말도 일리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노숙자들에게 아침 한번 대접해 봤냐고요. 자기는 아무 것도 안하면서, 남이 하는 선행-물론 제가 하는 게 선행인지 아닌지 헷갈리지만-에 딴지를 거는 건 나쁜 일이 아닐까요? 노숙자를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전 제 눈앞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노숙 고양이들이 더 안스럽습니다. 그래도 대접받고 살았던 시기가 있을 노숙자 아저씨들에 비해, 출생 때부터 도둑고양이로 찍혀 박해만 받았던, 그래서 사람에게 쉽사리 정을 못붙이는 고양이들이 제 맘을 더 아프게 합니다.

며칠만 더 버티면 고양이들은 더이상 우리집 앞에 진을 치지 않을테고, 새로운 곳을 찾아가겠지요. 그들에게 아침 식사를 하는 몇개월간, 알게 모르게 그들과 정이 들어버려, 이렇게나 마음이 아픈가 봅니다. 안만나면 쉽게 잊혀지는 사람과 달리, 동물과 쌓은 정은 이렇듯 질긴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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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한달 후에 쓴 글입니다

밥을 안준 후에도 고양이들은 쉽사리 우리집 앞을 떠나지 않았다. 약삭빠른 놈들은 이미 자취를 감췄지만, 그중 몇마리는 아침에 벤지와 함께 산책을 나갈 때마다 내게 "야옹 야옹"  울면서 시위를 했다. 그들은 내게 "왜 우리랑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그런 일을 벌이느냐"고 말하는 듯했다. 미안한 표정으로 두손을 내저어도, 그들은 내 맘을 몰라줬다.

지난 일주일간, 계속 비가 왔다. 자신들을 환영해 주는 곳이 없을텐데, 고양이들은 어디서 비를 피할까. 비가 와도 고양이들은 아침마다 우리집에 왔다. 내가 현관문만 열면 우리차 밑에서 야옹거리며 한두마리씩 기어나왔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안스러운지 가슴이 찢어졌다.

지난 토요일, 날 보며 뛰어나온 고양이 한마리가 다리를 전다. 방심하다가 차바퀴에 다리를 다쳤는지, 아니면 심성 고약한 사람에게 두들겨 맞아 다쳤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일까. 녀석의 얼굴이 너무 슬퍼 보인다. '다른 때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밥 좀 줘요!'라고 말하는 듯.

그러던 나도 서서히 고양이들의 존재에 무심해졌다. 아픈 현실에 더이상 아파하지 않게 될 때, 난 인간이 무서운 존재라는 걸 느낀다. 그 고양이들은 죽을 때 날 원망할까? 아니면 몇달이라도 아침밥을 챙겨준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할까. 사람과는 달리, 대개의 동물은 은혜를 잊지 않는 법이니, 후자가 아닐까.

가끔씩 생각을 한다. 서로 싸워가면서 밥을 다 먹은 고양이들이 입맛을 다시며 어디론가 사라지는 모습을. 장마가 끝났다는데, 오늘 밤에도 비가 장대같이 온다. 지금 이순간, 그때 그 고양이들은 어디서 비를 긋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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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뒷얘기를 조금 하자면, 다리를 다친 고양이는 아직도 저희집 앞에서 얼쩡거립니다. 다른 녀석은 다 외면해도 그녀석한테만은 그럴 수 없더라구요. 다른 녀석이 없을 때를 골라 몰래 그녀석에게 먹이를 줍니다. 가끔은 기회를 노리고 있던 시커먼 고양이가 맛있는 것만 채서 달아나기도 하지요. 그래도 예전처럼 고양이가 들끓지는 않습니다. 그 덕분에 동네 사람들의 민원도 이젠 없답니다. 며칠 그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죽은 건 아닌가 하며 마음아파했는데, 오늘 아침 그 녀석이 다시금 야옹거리며 앉아 있더군요.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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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의꿈 2004-01-17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참 착하시네요- 고양이가 준 밥을 먹었다는게 신기하지만-(나도 한번 예전에 시도한 적은 있었는데 실패했거든요).. 자신이 무감각해져 간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거에요- 누가 그랬듯이 진짜 바보는 자기가 바보인줄 모른다고 하잖아요-..
다리저는 고양이가 불쌍하네요-..(도둑고양이로 태어난 고양이들은 다들 불쌍하긴 하죠- 어떤 고양이들은 혈통 좋은 고양이 밑에서 태어나 한번 팔리는데 수백만원씩 하는데.. 인간과 다를바 없죠;)

마태우스 2004-01-17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맛있는 걸 주면 잘 먹는답니다. 요리 실력의 차이가 아닐까 싶네요^^ 하여간 다리다친 고양이, 참 안됐습니다. 적절한 때 치료만 받았다면 그렇게 안되었을텐데, 마음이 어찌나 아픈지요.
 

장소: 홍제역 근처 모 돼지갈비집

소주 1병에서 몇잔을 더 마신 것 같다. 이 정도가 내겐 적당한 수준이라, 집에 갈 때 너무 멀쩡해서, 공부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공부를 할 마음은 전혀 없다).

같이 술을 마신 사람은 전직 PD, 내가 이 사람을 만난 것은 내가 방송국에서 얼쩡거리던 96년이었다. 그때부터 난 그와 이따금씩 만나 왔고, 나이 차이도 한살밖에 안나지만, 우린 만나면 아직도 존대말을 한다.

그는 전직 피디다. 그가 입버릇처럼 "확 그만둬버려!"라고 했을 때, 난 그 말이 여느 직장인들의 말처럼 그냥 한번 해보는, 지극히 공허한 말로만 생각했다. 세상에, 피디처럼 좋은 직업이 또 어디 있다고. 하지만 그는 2년 전 정말로 그만둠으로써 날 놀라게 했다. 이유는 '한의대를 가겠다!'는 것. 진짜로 그는 수능준비에 매달렸고, 작년 말 시험을 치뤘다. 정확한 점수는 말을 안했지만, 한의대 갈 점수는 안되는 모양이다. 복수정답 파동이 난 17번 문제 덕분에 2점이 올랐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며 묵묵히 재수를 준비 중이다.

그 나이에 한의대를 가서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하는 마음도 있지만, 하던 일을 과감히 때려치고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만 해도, 실력에 비해 과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부담이 되어 죽겠지만, 달리 할 일이 없어 안면 깔고 버틸 생각인데 말이다. 그가 피디로서 보여줬던 뛰어난 역량을 기억하는지라, 가끔은 그가 다시금 방송계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도 가지고 있다. 그의 결심이 워낙 굳건해보이긴 해도 말이다.

그나저나 요즘 너무 신나게 카드를 긁어댄 느낌이다. 당분간은 납짝 엎드려 살아야겠다. 다음주는 설 연휴. 어머니는 생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셔, 나 혼자 집을 봐야한다. 큰집을 가는 거 말고는 달리 갈곳도 없으니, 조신하게 집이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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