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시보님의 글을 봤을 때, 한편으로는 공감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분노의 대상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쓴이의 의도는 '성적 유혹을 미끼로 승진한 여성들'이지만, 다르게 보면 '권력을 남용해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한 파렴치한 남성'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이쁜 여자가 곁에 있으면 한번 어찌어찌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는 있고,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잘 수도 있다. 정도가 심해져 '가끔씩 만나 자는 사이'가 되는 것도 이따금씩 있는 일이다.

그런데, 거기서 뭔가 댓가를 줘야 한다는 생각에 능력도 안되는 이를 승진시키고, 리포터로 고용하고, 연봉을 더 준다면, 그 남성은 전혀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인간이며,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다. 이쁜 여성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남성을 이용해 출세하고자 하는 여자가 작은 악이라면, 그 남성이야말로 '악의 축'이다. 그런데 왜 글쓴이의 분노는 악의 축이 아닌, 작은 악에게로 향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권력을 가진 남성은 저 멀리 있고, 몸을 이용해 출세한 여성은 자기 주위에서 얼쩡거리니까.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세간의 통설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 남지 않은 파이를 놓고 다투는 여성들의 처지에서는 커다란 파이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남성보다 자기보다 조금 큰 파이 부스러기를 소유한 여성을 원망하는 경향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건 약자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이기도 하고, 어려서부터 지속적으로 받아온 세뇌교육 탓일 수도 있다. 남성과는 어차피 경쟁이 안되는 존재지만, 다른 여자가 나보다 높이 되는 것은 참지 못하도록 길들여진 것이 아닐런지.

얄미워 보이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몸을 미끼로 좋은 자리를 차지한 여성들 역시 남성이 만들어놓은 사회의 희생자에 불과하다. 글쓴이의 분노는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향해야 하며, 일견 얄미워 보이는 그 여자는 적이 아니라 연대해야 할 대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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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1-1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예요. 사회적인 구조와 제도지요. 마태우스님의 의견에 적극 동감합니다.
 
 전출처 : 플라시보 > 당신의 뒤는 누가 봐 주고 있나요?

여자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보면 여러가지 애로사항이 많다. (남자도 많겠지만 내가 남자가 아닌 관계로 그냥 생략하기로 한다.) 우선 성희롱의 대상이 될 수 도 있는데 그건 분명 남자가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하는 수치보다는 높다. 거기다 똑같은 남자 사원과 차별대우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이것은 승진과 급여로 연결된다. 싱글즈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 동미(엄정화)가 죽도록 일한 프로젝트를 상사가 가로채고 그녀에게는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날 손님을 맞을 준비나 잘 하라고 한다. 한마디로 일다운 일은 남자가 하고 여자는 그저 그날 접대나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차별들은 차라리 낫다. 이건 적어도 성차별이라며 불끈 할 수라도 있고 수많은 전국의 여성 동지들과 함께 속으로나마 투쟁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가 여자의 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적의 뒤에는 대게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면서 그녀의 뒤를 봐주는 남자 상사가 있다.

예전에 우리 회사 부장이 이뻐하던 아줌마 사원이 있었더랬다. (부장이 나이가 워낙 많아 처녀를 찝쩍거리기엔 양심에 난 털이 흔들렸었나보다) 그 아줌마는 입사 첫날부터 부장에게 알랑방구를 뀌기 시작하더니 툭하면 부장과 함께 퇴근하고 부장과 함께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곤 했다. 그들이 갔다가 온 장소는 이미 이 도시에서는 유명한, 불륜들이 들끓는다는 곳에 위치한 밥집과 술집이었다. 사실 그들이 모텔 혹은 호텔로 직행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회식자리에서도 둘이 딱 붙어앉아 어느정도 술이 들어가면 부둥켜 안고 난리 부루스를 추는것으로 보아 심증은 충분히 가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 아줌마는 처음에는 나보다 훨씬 낮은 급여로 들어왔으면서 연봉협상에서 각종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근무평가도 놀랍도록 잘 받아서 나보다 연봉이 훨씬 앞서 버렸다. 그러다 부장이 쫒겨나면서 여자도 함께 사표를 쓰고 나가게 되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부장이 없는 그녀는 더 이상 이 회사에서 그 연봉을 유지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그녀는 연봉 제계약이 끝나자 마자 나갔다.) 나는 그녀를 볼때 마다 정말 속이 상했었다. 과거 분명 내 아래 직원이었을때도 그녀는 부장빽을 믿고 심심하면 나를 불러서 일을 시켜 먹었다. 것도 그녀가 직접 시키면 '내가 왜?'라고 하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 부장의 입을 통해 시켜야만 내가 찍소리도 못하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나보다 연봉이 올라가자 지가 할 일들을 직접 불러서 노골적으로 시켰다.)

내 친구가 들어간 회사는 대학생들이 들어가고 싶어하는 디자인 회사 3위안에 꼽히는 좋은 회사였다. 그런데 그 친구와 함께 입사한 모든 여직원들이 다 관둬버렸다. 바로 사장과 내연관계에 있는 주임인가 뭔가 하는 여자가 신입이 들어오면 죽도록 괴롭혔기 때문이다. 모두들 회사를 관두면서 사장에게 직접 찾아가서 그 주임이란 여자때문에 못견뎌서 관둔다고 말을 해 줬지만 그녀는 아직까지 굳건하게 회사를 다닌다고 한다. 그 사장에게는 실력있는 여 직원 보다는 침대에서 함께 뒹굴며 정이든 그 여 직원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얼마전 내 친구는 회사에 시험을 보았다. 경력직 사원에 지원한 그 친구는 얼마후 허탈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분명 경력 5년 이상에다 관련학과 전공자여야 하는데 뽑힌 사람은 아직 대학생인데다가 경력이 겨우 6개월 (그 회사 아르바이트 경력임) 인 어떤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뭔가 빽이 있어서 면접까지 올라 왔나보다 했었는데 2차에도 3차에도 그 여자애는 꾸준하게 면접을 보러 왔다고 한다. 그래도 설마설마 했었는데 나중에 도는 소문을 들으니 그 회사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높은 간부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고 그 여자애를 그냥 넣어줄까 하다가 그래도 대외적인 쑈는 한번 해야겠기에 공고를 내고 시험을 보게 하고 면접을 봤다는 것이었다. 이미 회사 내에서는 파다하게 소문이 난 상황이고 다들 면접보러 온 사람들이 불쌍하다며 한마디씩 했다는 것이었다. 친구는 말 했었다. 자신의 경력과 실력으로도 넘을 수 없는 담은 높은 간부 앞에서 옷을 벗을 수 있는 여자라고 말이다.

예전에 모 지방 방송국의 주주가 바뀌면서 전혀 관련없는 쪽에 일을 하던 사람이 국장, 부장의 직함을 달고 대거 들어왔다고 한다. 그들은 어느날 남자 직원들을 대동하고 룸쌀롱에를 갔다. 그리고 그 중 유독 잘 놀고 예쁜 여자애에게 어떤 간부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다음날 그 간부가 그 여자애를 데리고 출근 했다고 한다. 부장과 함께 밤을 보내고 나란히 회사에 온 그녀는 그날부로 리포터가 되었다고 한다. 리포터 정도야 아무나 시키면 어떻겠냐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 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여자들이나 그 방송국에서 리포터를 하는 여자들은 한순간에 몹시 허탈해 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룸쌀롱에 다니던 여자가 리포터를 하면 안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방법으로 들어오는 것은 분명 잘못되었다.

물론 내가 말한것은 극소수에 해당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저런 극소수의 케이스가 나머지 여자들에게는 큰 타격을 준다. 열심히 일하고 실력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죽도록 노력한 여자가 단지 상사와 함께 침대를 쓴 여자에게 밀려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 말이 안되는 일이 알게 모르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녀들은 든든한 뒷빽을 배경으로 밤인지 낮인지 모르고 일하느라 초췌한 여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근사한 자리와 높은 연봉을 낚는다. 그것도 능력이요 실력이라고 말 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너도 억울하면 상사와 적당히 뒹굴어주라고 말 한다면 더더욱 할 말 없겠지만 이건 참 아니다 싶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어리고 예쁜 여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맽는 남자들도 물론 잘못되었지만 나는 저런 경우 그 여자들이 더 밉다. 차라리 어떤 돈 많은 남자의 정부가 되어 아파트 한 채 받고 돈 펑펑 쓰며 살면 우리처럼 일하는 여자들의 사기나 안 떨어뜨릴 텐데 말이다. 그녀들은 우리 앞에서 한참 앞서가며 말한다. '미련한 것들. 눈 한번 감으면 그만인데 왜들 저 고생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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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최고의 인터뷰어인 지승호님은 인터뷰 전 굉장히 많은 준비를 한다. 상대가 공적으로 행한 모든 발언을 꼼꼼히 챙기며, 질문서를 만든다. 그가 한 인터뷰는 그래서 상대로부터 우리가 평소 듣고 싶어하는 말들의 대부분을 이끌어 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예컨대 그가 강준만에게 한 질문 한 구절을 보자.

[지: '측근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은 없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화장실도 안 가는 줄 알았다'고 하다가 자기의 환상이 깨지면 적으로 변하는 수도 있는데, 그런 점 때문에 오프라인 모임을 기피하시는 건 아닙니까?

강: 아니요. 그런 것은 아니고, 제 체질이에요. 테이블 놓고 서서 칵테일 파티 비슷한 거 할 때가 있는데, 잔 들고 돌아다니면서 먹잖아요. 전 그게 불편해서 그런 자리 가면 저쪽 구석 자리에 앉아 있어요. 사람 만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고....이하 생략 (다시 아웃사이더를 위하여, 86쪽)]

강준만에게 궁금했던 게 왜 그가 사람을 안만나며, 전화도 안놓고 사는가 하는 거였으니, 지승호님이 던진 질문은 참으로 적절했다.

최근 <마광수 살리기>라는 책을 읽었다. 마광수의 애제자라는 남승희는 장시간 동안 마광수와 대담을했는데, 책의 절반 가량이 그걸로 채워져 있다. 사실 재판 이후 속세와 인연을 끊고 칩거하다시피 해 온 마광수의 심정을 알고 싶기도 해서 책을 집었는데, 대담을 주도하는 것은 오히려 남승희였다.

남:....뉴욕 지하철에서는 차량의 낙서를 지우고 무임승차 단속을 했더니 전체적인 범죄율이 급락했다고 해요.

마: 굉장히 흥미로운 얘기네요.

남: 그렇죠?... 카오스 이론을 한의학에 접목시키는 작업을 시작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군요....

마: 정말 재밌겠는데요.(95-96쪽)

 

남: 얼마 전에 현학주의의 대표주자였던 <키노>가 폐간됐습니다....그런데 <시네21>이 좀 이상해져서, 재미있다 없다가 아니라 한국 영화다 아니다에서 출발하는 요상한 경향이 강해졌어요. 별로 아닌 영화도 막 밀어주고요...좋지 않은 작품을 좋다고 하는 건 독자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도덕심을 저버리는 거거든요.

마: 그렇게 심각한가요?

남: 심하죠. 기본적으로....어쩌고 저쩌고....

물론 남승희의 말 중에 새겨들을만한 훌륭한 말들이 많았던 것은 인정하지만, 아무리 '대담'의 형식을 빌었어도 그 자리는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마광수의 목소리를 듣자는 게 아니었을까? 지승호님이었다면 좀더 괜찮은 인터뷰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게, 그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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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밥을 무척 빨리 먹는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다. 넷이 마주앉아 밥을 먹으면 꼭 1등으로 도시락 뚜껑을 덮었다. 쓸데없는 것에 경쟁심을 갖는 내 심리 탓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같이 먹는 사람 중 나만큼 빨리 먹는 사람이 있다면 밥먹는 속도가 더 빨라지니깐.

대학 때도, 졸업한 이후에도 난 밥을 빨리 먹었다. 빨리 먹으면 살찐다던데, 지금의 퉁퉁한 내 몸매는 밥을 빨리 먹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밥을 혼자먹는 걸 애처롭게 바라보는 시각이 있을 테지만, 사실 난 혼자먹는 걸 좋아한다. 물론 혼자 먹는 경우가 거의 없긴해도, 혹시라도 혼자 먹게 될 땐 난 평소보다 더 빨리 밥을 먹는다. 그러니깐 내가 밥을 빨리 먹는 건, 남들이 뺏어먹을까봐 그러는 건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학생 때, 조교 때만 해도 밥을 빨리먹는다고 해서 문제될 껀 없었다. 오히려 다른 선생님들이 다 드셨는데, 을 먹어야 하는 내 동료가 안스럽게 느껴졌을 뿐이다. 하지만 내 지위가 올라감에 따라 밥을 빨리 먹는 건 남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되었다. 내가 밥을 다 먹고 나면 아직 밥이 많이 남았음에도 조교들은 숟가락을 놓는다. 몇번 그러고 나서부터는 내 나름대로 천천히 먹으려 노력하지만, 그래도 늘 1등이다.

소설가 장정일이 쓴 '식습관'이란 글을 보고 많이 웃었다. 길게 인용한다.
[나는 어떤 자리에서든 가장 먼저 숟가락을 놓는다....단 한번, 계명대학교 앞의 어떤
분식집에서 나보다 먼저 숟가락을 놓는 인간이 있었다.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차 하는 순간의 급습이었다.
나보다 배나 더 빨랐던 그이 숟가락질에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잔뜩 부아가 나서 페어플레이 스피릿이라곤 전혀 없었던 것 같았던 그에게 따졌다. "너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빨리 밥을 먹을 수 있는 거니? 씹지도 않고 먹니?"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그냥 넘기면 되지 밥을 왜 씹는데?" 대단한 강적을 만났다고 생각하며 마음 속으로 '나는 뜨거운 음식도 수정과 마시듯 훌훌 삼켜대는 기술이 있으니, 언제 이 친구를 뜨거운 국밥집이나 칼국수 집으로 데려가 본때를 보여줄까?'라고 벼르던 것이 한 6-7년 전의 일이다(61-62p, [화두 혹은 코드, 강금실 외])

장정일이 보통 사람이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걸 읽고 나니 언제 한번 밥 빨리먹기로 붙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장정일을 꺾은 그 친구를 잘 아는 선배의 말에 의하면 "그친구, 집안구성이 복잡해서 식사 때 식구들을 안보려고 빨리 먹는 버릇이 생겼을 꺼"란다. 그말을 듣고보니 내가 빨리 먹게 된 것도 아마 그래서가 아닐까?

어릴 적, 난 호랑이같은 아버님 밑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두들겨 맞으면서 자랐다. 잘못한 게 없어도 "맞은지 일주일 되었지?"라면서 우리를 집합시켰다. 밥먹는 시간은 늘 혼나는 시간이었다. 그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밥먹다 말고 방으로 가 운 적이 꽤 있었던 것 같다. 장정일을 꺾은 친구처럼, 그런 게 나로 하여금 밥을 빨리 먹게 하지 않았을까.

빨리 밥을 먹는 게 유리한 적도 있다. 실험을 하다보면 '10분간 실온에서 방치'같은 과정이 있다. 남들은 엄두를 못낼 그 시간에 난 유유히 밥을 먹고 올 수 있다. 게다가 내가 좀 빠른가. 그런 거 말고는, 밥을 빨리 먹는 건 그리 좋은 습관이 아니다. 혹시 자녀를 키운다면, 밥먹을 때는 절대 야단치지 말자. 식사를 즐겁게 해야 건강한 법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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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언젠가 났던 한겨레 기사다.
[황금가지 출판사가 출간한 셜록 홈스 시리즈가 한달 새에 12만부나 팔려나갔다는 소식이다. 모처럼 추리소설이 장기 불황을 벗어날 조짐을 보여서인지 까치, 황금가지, 태동, 샘터 출판사가 앞다투어 뤼팽 시리즈를 펴낸다는 얘기도 들린다]
추리소설 하면 당연히 옛날 추억이 떠오른다. 남들도 다 그랬겠지만, 어릴적 난 추리소설을 퍽이나 좋아했다. 특히나 셜록 홈즈 시리즈는 내 어린시절을 지배했던 소설로, 먼 훗날 내가 말도 안되는 탐정소설을 쓰게 되는 계기가 된다.

모리스 르블랑이 쓴 <괴도루팡>의 '거인 대 괴인'을 보면, 영국의 명탐정 헤록 숌즈와 루팡이 대결하는 장면이 나온다. 웬 헤록 숌즈?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르블랑이 <괴도루팡>에서 자신의 주인공 홈즈를 등장시키자 코난 도일이 화를 냈고, 할수없이 셜록 홈즈에서 앞의 S와 뒤의 H를 바꾸는 편법을 쓴 것. 그 책의 결말 부분에 가면 이렇게 끝을 맺는다. "괴인 대 거인, 둘은 누가 이긴 것도 아니다. 비겼다" 말이 비겼지, 루팡에게 숌즈는 번번히 골탕만 먹는데, 그럼에도 비겼다고 한 건 역시 코난도일을 의식한 것이리라.

누군가의 말이다. 셜록홈즈의 소설 중 가장 기발한 소설은 <붉은머리 클럽>이라고. 그말을 듣고보니 그런 것 같아, 다른 곳에 가서는 마치 내 의견인 것처럼 이렇게 말한다.
"붉은머리 클럽이 가장 훌륭하지"
런던에 가면 셜록홈즈의 집이 있어 홈즈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다는데,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고 하니 장사수완도 참 대단하다. 정말 웃기는 건, 어려운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편지가 세계 각지에서 수천통이 넘게 쇄도한다는 것. 사람들도 참....

나이가 들면서 포우라든지, 아가사 크리스티 등의 다른 추리 작가들도 많이 알게 되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한국의 김성종이다. 우리 나라 추리소설의 선구자격인 그는 <제5의 사나이>, <최후의 증인> <7개의 장미송이> 등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의 소설은 범인이 책 앞부분에 이미 노출되어 있는지라 엄밀한 의미에서 추리소설이라고 하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내가 그 책을 탐독했던 건, 그의 책이 당시로서는 충격적으로 야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살고 싶다>는 도대체 추리소설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정사신만 나온다 (거기다 동성애까지...) 물론 그가 썼던 <최후의 증인>과 <여명의 눈동자>는 굉장히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80년대 중반 이후의 작품을 보면 맛이 간 흔적이 역력하다.

한때 내가 좋아했던 아가사 크리스티, 그녀의 작품을 읽던 초기 난 그녀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하지만 좀 많이 읽다보니 순 엉터리다. 추리소설을 읽는 건 탐정이 독자와 더불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일진데, 그놈의 포와르는 단서를 지혼자 다 갖고 있다가 막판에 사람들을 불러모아놓고 일장연설을 하면서 사건을 해설해 준다. 이건, 무협지다!

나혼자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닌지라, 소설가 김형경 씨는 자전적 소설인 <세월>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여자가 싫어하는 추리작가가 하나 있다. 저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 그녀는 늘 사람들을 외딴 산장이나 망망대해의 배 같은 고립된 공간에 가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고는 아무 단서도, 아무런 실마리도 제공해주지 않고, 아니 그것들을 더 꽁꽁 감추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소설이 거의 끝날 때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추측할 만한 어떤 단서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모든 인물을 다 범인으로 지목한다. 그러다가, 가장 나중에 가서야 선심 쓰듯, 혹은 독자들을 비웃듯, 모든 범행 방식과 범행 동기와 범행 내용들을 한꺼번에 설명한다. 작가 혼자서 신나게.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읽고 나면 늘 속은 느낌이
든다. 그런 추리소설은 재미없다 (1권, 188p)]

<고양이>를 쓴 포우는 추리라기보다는 괴기에 가깝고, 을 쓴 앨러리 퀸은 귀가 안들리는 탐정을 등장시키는데, 그 탐정이 독순술을 익혀 입술 모양을 보고 상대의 말을 다 알아듣는다. 그럴 바에는 뭐하러 탐정을 귀머거리로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커가면서 추리소설을 안읽게 되는 건 추리소설이 지닌 이런저런 한계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우리 나라의 추리소설은 정말 척박한 환경에 있는지라,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좋아하는 추리소설 작가를 대라고 한다면 몇명이나 답을 할지 모르겠다. 예전에 진짜로 할일이 없어서 2권으로 된 이상우 씨의 추리소설-남한산성 어쩌고 하는 제목이었다-을 읽었는데, 어찌나 재미가 없는지 얽히고 섥힌 애정관계임에도 상당한 인내를 요구했다. 범인이 잡혔을 때 하나도 놀랍지 않는 추리소설을 쓰는 건 아무나 하는 건 아니다.

궁금한 것 하나. 추리소설을 읽으면 머리가 좋아질까? 웬지 그럴법 해 보이는 그 말은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둘의 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아이큐가 150이 넘는 인간들을 만날 때마다추리소설을 좋아했냐는 질문을 했는데, 단 한명도 좋아한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추리소설을 읽으며 대통령의 꿈을 키웠다는 루머를 접하고 나면 추리소설과 머리는 아무 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머리야 타고나는 것 아닌가. 참고로 아이큐가 200이 넘던 JS 밀은 어릴 적 순 인문, 철학 책만 읽었다고 한다.

아가사 크리스티도 죽고, 코난도일도 죽었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 외국에서도 그들을 능가하는 뛰어난 추리작가가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서점에 들를 때 추리소설 분야는 잘 안가서 그러는지 몰라도, 요즘 들어 뜨는 추리작가를 난 하나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에 다시금 추리소설 붐이 이는 건 왜일까? 한겨레 기사를 읽어봤더니 결론은 없고 이렇게만 나와있다.
[따라서 팬터지 소설의 한계를 탈피해보려는 출판사들이 억척스레 몸부림친다거나, 비비 꼬여들기만 하는 정치인들의 비리에 식상한 젊은 독자층이 쾌도난마식 해결책을 강력히 요구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만족스런 대답은 아닌 듯하다.]
이게 무슨 말일까? 잘 모르겠다. 어렵게 쓰는 건 별 내용이 없을 때 취하는 태도인데 말이다. 이 기사의 제목은 이렇다. "부패가 얽히고설켜 답답한 시대 떴다 추리소설" 그러니깐 작가는 우리 나라의 부패가 추리붐을 일으켰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부패가 만연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며, 이제 웬만한 부패에도 놀라지 않게 된 우리 국민들을 생각한다면 부패와 추리소설을 연결시키는 건 좀 우습다.


부패와 추리소설은 별 상관이 없다. 그저 일시적 유행일 뿐인 걸 지나치게 확대해석 하는 건 더욱더 머리를 아프게 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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