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게 취미이긴 해도, 인터뷰를 할 정도는 아닌지라 웬만하면 안하려 했다. 하지만 이곳이 내 책을 내주겠다는 유일한 곳인데다 인터뷰에 응하면 10만원짜리 상품권을 준다는 말에 혹해, 인터뷰에 응했다. 그냥 가기 뭐해서 무슨 말을 할까 정리를 좀 했는데, 그랬더니 인터뷰 자리에서도 미리 적어간 말만 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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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주로 언제 읽니?

=직장이 천안이라 4시간에 달하는 출퇴근 시간 동안 책만 읽는다. 흔히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읽는다고 하는데, 사실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면 의외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다. 친구를 기다리며 책을 읽다보면 기다리는 게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친구가 늦게 왔으면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예전에는 걸어다니면서 책을 읽기도 했는데, 공사장 기둥에 머리를 부딪혀 쓰러진 뒤부터는 자제하는 편이다.

 

-언제부터 책을 읽었니?

=97년부터 읽었으니 얼마 안된다. 그전까지는 정말이지 스포츠서울 같은 것만 보고, 아무 생각없이 살았던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는 책을 읽을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다. 말로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지만, 한번의 시험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대학입시를 생각하면 책을 읽는 게 사치로 생각된다. 고교생이 소설책을 읽고있어 봐라. 당장 "낼 모레가 시험인데 이따위 책만 읽고있어!"라는 호통이 날라올 거다. 이러다보니 애들이 커서도 책을 안읽게 되고. 나도 사실 중고교 때 삼국지 말고는 읽은 책이 없다. 입시위주의 교육풍토가 우리나라의 독서시장을 위축시키는 주범이라고 생각한다. 하나 더 든다면, 어른들이 책을 안읽으면서 애들한테만 책을 읽으라는 건 도무지 말이 안된다.

 

-책에 대한 너의 생각은?

=책은 좋은 취미이긴 하지만, 지고지선은 아니다. 책을 읽는다고 남보다 우월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책을 안읽는다고 열등감에 빠질 필요도 없다. 그런데 <느낌표>를 보면 책을 안읽는 사람을 굉장히 무안하게 만들던데, 그건 나쁘다고 본다. 책을 읽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정신의 고양이라고 치자. 꼭 책을 읽어야만 정신을 고양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음악, 미술, 영화, 게임, 인터넷 등 어떤 취미든 열심히 하면 좋은 거 아닌가?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를 쓴 이영미 씨는 어린 시절 TV만 보는 테순이였기에 그렇게 훌륭한 책을 쓴 거다.

 

-감명깊게 읽은 책은?

=그렇게 물으면 다들 최근에 읽은 책을 대지 않나? 나같으면 책을 읽을 때의 감동이 오래가지 않던데... 최근에 읽은 책 중에는 <섬데이 서울>이란 책이 가장 좋았고, <대한민국사>도 젊은 분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느리게 사는 의미를 강조한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이건 내가 그렇다는 거고, 정말 책을 읽으려면 자기 스스로 책을 고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읽을 책을 어떻게 고르나?

=옛날에는 책광고나 미디어서평에 의존했었는데, 요즘은 다른 분들이 책을 읽고 서평을 써놓은 게 도움이 많이 된다. 쟝르는...예전엔 언론개혁, 사회비평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는데, 지금은 닥치는대로 읽고 있다. 새로나온 책을 뒤지다 보면 읽고 싶다는 필이 온다.

 

-어떤 분이 '책읽기가 왜 취미가 되야 하냐. 밥을 먹는 것과 똑같이 삶의 일부가 되어야지'라고 한 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좀 오버인 것 같은데...아까도 말했지만 책읽는 게 특별히 우월한 취미는 아니다.

 

-통계를 보니 읽는 사람만 읽고, 성인의 절반 가량이 일년에 한권도 책을 읽지 않았던데..

=모든 취미가 그렇지만, 책도 빈익빈 부익부가 되기 마련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계속 읽게 되고, 읽을 책이 더더욱 많아지고...그렇게 된다. TV 드라마도 안보면 그럭저럭 살아도, 일단 보기 시작하면 죽고 못살지 않는가. 다른 취미처럼 책도 지나친 건 안좋은 것 같다. 일년에 300권을 읽는다는 남자의 부인이 라디오에 나왔는데, 자기랑 거의 말도 안하고 책만 본다면서 불만을 터뜨리더라. 책은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취미기 때문에 혼자면 모르겠지만 가족이 있다면 너무 책만 봐서는 안될 것 같다.

 

-책을 많이 읽으니 뭐가 좋니?

=아까도 말했지만 짜투리 시간을 유용하게 보낼 수 있고... 난 처음에 책을 많이 읽으면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글도 좀 잘쓰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별로 그런 건 아니다. 딱 하나 좋은 건, 말을 하다가 "누구누구가 이렇게 말했는데 말야" 라는 멘트를 하면 내 말에 권위가 부여되고, 듣는 상대는 기가 죽기 마련이다. 옛날에 라인홀드 니버라는 사람이 <도덕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을 썼다. 그걸 읽고나서 하는 말마다 그사람 얘기를 했던 유치한 과거도 있다. 하여간 책은 상대를 기죽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끝으로 할 말은?

=도서상품권은 주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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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wave 2004-01-20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느낌이 모닝355 해피샵 고객 인터뷰틱하군요. 아닌가;;;

연우주 2004-01-21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이 압권인데요? ^^ 저도 10만원 준다고 하면 당장 응할 텐데, 저는 아직 미약한지라 알라딘이 부를 리 없죠..^^

연우주 2004-01-21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차, 착각. 마태우스님 충분히 자격있으시다는 거 아시죠? ^^
 

 

 

 

극장에서 <매트릭스 2>를 봤을 때, 난 너무도 재미있는 영화를 봤다는 마음을 가지고 극장을 나섰다. 그런데 웬걸, 아는 분들은 전부다 "1편보다 못하"며 "하나도 재미가 없다"고 한다. 전편을 빌미로 속편을 폄하하는 거야 늘 있는 일이지만, 이게 그렇게까지 재미가 없을까 의문스러웠다. 혹시 매트릭스의 흥행을 방해하려는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나중에 <매트릭스>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1편과 2편을 비디오로 빌려본 결과, 그들의 말이 맞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랬다. 모든 장면장면이 다 예술인 1편에 비해, 2편의 구도는 너무도 느슨했고, 자주 튀어나오는 액션장면은 지루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2편을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을 했을까? 그건 바로 고속도로에서 싸우는 씬 때문이리라. 웬만한 거 하나만 있으면 '본전을 뽑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액션영화 사상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생각하는 그 화려한 액션에 넋이 나갔고, 극장을 나설 때까지 그 장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거다.

<철학으로 매트릭스 읽기>라는 책을 쓴 이정우는 1편이 "정말이지 뛰어난, 매우 특별한 영화"라며 2편은 "뛰어난 영화와 시시한 영화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교훈적으로 만든 영화 같"고, "여름이면 늘 개봉되는 수많은 블록버스터들 중 한편"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두편의 차이를 이렇게 분석한다.

1) 분위기의 차이

-1편: 시작부터 끌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논리와 이미지가 연속된다

-2편: 구성이 짜임새가 없고 느슨하며,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2) 대사

-1편: 철학적으로 매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긴박감 넘치게 전개되며, 대사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하면서도 힘이 있다

-2편: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몰고가는 긴장감이 없고, 대사들 또한 맥 빠진 맥주처럼 싱겁기 그지없다.

3) 운명이란 말

-1편: 매우 묵직하고 의미심장하게 다가옴. 모피어스와 네오의 첫 만남에서 나온 운명에 대한 대화, 지구 멸망을 이야기하며 모피어스가 말한 운명과 아이러니, 오라클과 네오가 나눈 대사에서의 운명... 관객의 가슴 깊숙이 자리를 잡는다.

-2편: 네오.모피어스.트리니티가 출전할 때 한 젊은이가 와서 네오가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며 운명 운운함. 하지만 그 젊은이가 누군지, 어떤 맥락에서 네오에게 운명 운운하는지가 전혀 나와있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던져지는 이 대사는 "싱겁"고 "뜬금없다"

4) 모피어스

-1편: 네오는 미지의 세계에 한발짝씩 나아가는 인물이지만 모피어스는 그 모든 것을 주재하며, 1편의 뛰어난 대사들은 거의 대부분 모피어스의 입에서 나온다.

-2편: 시온에서 한 연설이나 마지막 작전을 위해 모인 동지들에게 한 연설은 너무나 진부해,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만화책을 보는 느낌

5) 액션

-1편: 액션 하나하나가 이야기 전개상 필수적, 영화 전체의 흐름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다. 처음 나오는 트리니티의 액션이 황당한 느낌을 주지만, 영화 전개에 따라 설득력을 얻게 된다. 그리고 모피어스가 네오를 수련시키는 장면, 네오가 '그'임이 입증되는 장면, 지하철에서의 결투...모든 액션이 설득력 있게 전개됨

-2편: 불필요한 액션들을 너무나 지루하게 늘어놓아,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싸움 장면만 나오는 홍콩액션영화를 연상케 한다. 특히 그런 액션에 익숙한 동북아 관객들한테는 더더욱 지루함을 준다.

6) 편집

-2편은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한박자씩 빠르게 편집, 각각의 시퀀스가 가져야 할 감동과 여운이 증발되 버린다. 총알을 맞은 트리니티에게 네오가 기를 불어넣어 살릴 때, "이제 서로 빚을 갚은 셈이야"라는 대사도 맥빠지지만 길게 여운을 끌어야 하는 대목임에도 갑자기 화면이 전환되어 호흡을 가다듬을 틈을 주지 않는다.

7) 새인물

-2편에서 나오는 새 인물들은-페르세포네, 니오베 등...-하나같이 뜬금없이 등장한다. 인물의 성격이나 영화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거의 드러나지 않고 불쑥 나타나 액션만 휘두른다.(이상 위의 책에서 베낌)

으...이렇게 베끼다보니, 2편이 형편없는 영화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건 기대가 너무 커서 그런 것일 뿐, 아무 생각없이 나오는 헐리우드 영화들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을까? 아까도 말했지만 고속도로의 액션 장면은 다시봐도 멋지더만. 이야기 전개상 속편이 꼭 필요한 감독들은 1편을 대충 만드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같다. 2편은 나오기만 하면 욕을 먹으니까. 물론 그건 우리의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다이하드> 2가 나왔을 때조차 "1편보다 못하다"는 인간을 보면서 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은 2편을 보기 전에도 이미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날고 기는 영화 전문가들이 늘 혹평만 써대는 것도 그들이 영화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품고 있기 때문이리라. 의무적으로 보는데다 단점을 집어낼 준비를 하고 보는데 어찌 재미있을 수가 있겠는가. 나처럼 아무 생각없이 영화를 본다면 영화 관람이 훨씬 더 즐거울 거다. 특히 2편을 볼 때는 1편의 기억을 다 잊고 전혀 다른 영화를 본다는 기분으로 보는 게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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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마이페이퍼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다른 건 힘들겠지만 마이페이퍼 부문은 내가 평정하려 했는데, 다른 분들이 워낙 글을 많이 쓰셔서 도저히 상대가 안될 것 같다, 그래서 마이페이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조용히 살겠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줄에서 밝혔듯이, 그건 남들로 하여금 방심을 유도하려는 수작에 불과했다. 실제로 난 그 글을 쓰고 난 뒤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댔다.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달력을 보라. 9일부터 모든 날에 새글이 있음을 알리는 밑줄이 그어져 있지 않는가.

그동안 난 매일같이 마이페이퍼 점수 순위를 체크했다. 이럴수가. 갈수록 순위가 추락한다. 처음에 확인했을 때, 난 22위였다. 톱10에는 못들었지만 톱50이라는 딱지를 붙이긴 조금 아까운 순위, 조금만 더 노력하면 톱10 쯤이야.. 했었다. 그런데 내가 열심히 쓰면 쓸수록 순위는 점점 미끄러져 가, 급기야 25명씩 나온 리스트의 첫페이지에서 밀려나 버렸다. 거기서 그친 게 아니라 다음날은 26위에서 27위로 밀려났고, 어젠 28위고, 오늘은 30위다. 톱10 진입은 이미 글렀고, 이젠 톱50을 걱정해야 할 처지.

열심히 쓰는데 계속 순위가 떨어진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을까? 그러니까 방심을 유도했던 내 깜찍한 작전에 그분들은 전혀 말려들지 않았던 거다!!! 엊그제는 순위를 올리기 위해 전에 썼던 글을 여덟편이나 퍼왔는데 말이다. 엊그제 같이 술을 마시던 친구와 상의를 하기까지 했다. "다들 거기에 목숨을 거는 거야" 친구는 이렇게 날 위로했다. "몇달만 있으면 다들 소재가 떨어지지 않을까? 최후의 승리는 니가 될꺼야"

하지만...다들 절륜한 내공을 지닌 분들이라, 소재가 떨어지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분들 주위에는 무슨 일들이 그리도 많이 일어나는지. 그래서 난 결심했다. 모든 집착을 버리기로. 이런 말을 두번째 하는거라 남들이 의심을 하겠지만, 이번엔 진짜다. 쓰고 싶으면 쓰고, 쓸 게 없으면 안쓸 것이며, 매일같이 순위를 확인하는 일도 안할 거다. 모든 집착을 버리고 나니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는 걸,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걸, 왜 그동안 부귀영화에 눈이 멀었었을까. 어느 유명한 야구선수가 마음을 비우니 홈런이 더 잘나온다고 했다. 혹시 아는가. 포기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톱10의 딱지가 날라들지. 그런데...나만 이런 걸까, 아니면 다른 분들도 나처럼 마우스가 닳도록 순위를 확인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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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1-20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위까지 체크하시며 열심히 썼었군요. 존경~
맨날 놀러와서 재미있게 읽다 가는데요. 포기하지 말고 계속 재미있는 글 올려주시라는 의미에서, 추천 왕창 누릅니다. 저의 추천이 순위를 끌어올리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어쩐지 코믹 버전... ^^::)
 

 

 

 

7시 59분 현재 전 집에 혼자 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이 시각에 어머니가 계셨을 텐데, 지금은 아닙니다. 아, 8시가 되었네요. 어머님과 할머니를 태운 하와이행 비행기가 이제 막 이륙했겠지요.

그래요, 어머니는 여행을 가셨습니다. 하와이로. 어머니 주위 분들 중에는 하와이에 몇번을 갔다오신 분도 있을 테지만, 어머니는 미국에 처음 가십니다. 어머님은 돈이 없어서 못갔다고 하시지만, 사실은 그간 아버님의 간병을 하시느라, 그 전에는 가부장이신 아버님이 안보내줘서 갈 기회가 없으셨지요. 어제 밤, 여행을 가신다고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진작 보내드릴 걸 그랬다 싶더군요.

아, 오해하실지 모르니 말씀을 드리죠. 이번 여행도 사실 제가 보내드리는 건 아닙니다. 1인당 120만원, 3박5일간 하와이를 가는데 제가 보탠 비용은 겨우 70만원이니, 어머니 돈으로 가시는 거랍니다. 사촌형은 큰어머니를 유럽 일주도 보내드리던데, 전 맨날 술먹고 그러느라 어머니 여행 보내드릴 돈도 모으지 못했습니다. 크으으... 반성, 또 반성. 생활비를 조금 내놓긴 하지만...전부다 술값으로...크으으...다시 반성.

할머니 연세는 올해로 88세, 정말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전 "하와이 힘들지 않겠어요? 일본이나 가시면 어떨까요" 그랬더니 하와이에 가겠다고 강한 의지를 보이시더군요. 7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잘 견디실지... 무사히 다녀오시길 빕니다.

아무튼 전 혼자가 되었습니다. 벤지가 옆에 있으니 엄밀히 말해서 혼자는 아니죠. 그런데 이 녀석이 몸이 안좋은지 계속 잠만 자려고 하는군요. 혼자 있는 동안 벤지와 많은 시간을 같이 있어주려고 합니다. 술은 내일 딱 하루만 먹구요. 이거 보고는 "술먹자!"고 전화하면 어쩌지? 참, 설날 당일에는 큰집에 갈 예정입니다. 그집에 더덕주랑 메실주 담궈놓은 게 있던데-추석 때 조금 마셔봤는데 죽이더군요-그날은 그걸 원없이 마실 생각입니다. 그렇게 두번만 술을 마셔야죠.
그리고는 책을 열심히 읽겠습니다. 인터넷이라는 게 참 시간 잡아먹는 괴물인 게-강준만의 표현이었음-한번 켰다 하면 글을 꼭 안쓰더라도 여기저기 둘러보면 한시간 정도는 금방 가더군요. 그래서... 하루에 한번 이상 컴퓨터를 켜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리고는 아까도 말했듯이 열심히 책을...하하.

공항에 모셔다 드리는데 어머니가 이러시더군요. "아는 친구한테 하와이 간다고 말 안했는데, 그 친구도 오늘 미국에 있는 딸한테 간데. 나보다 30분 늦은 비행기로" 그래서 제가 이랬죠. "엄마, 세상은 좁은 거야. 분명히 그 친구분 만난다" 그랬는데...짐맡기는 곳 앞에 엄마랑 앉아 있는데, 앞 의자에 부부와 아이 하나가 눈에 띕니다. 아이는 심심한 듯 하품을 합니다. 제가 그랬죠. "아이를 혼자 심심하게 놔두고 지네끼리만 얘기를 하네. 혹시 계모 아냐??" 그때, 그 남자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x아!" 전 기절할 뻔했습니다. 그는...제 고교 동창이었습니다. 학생 때 공부도 잘했고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그래서 지금은 김 앤 장이라는 유수의 법률회사에서 2억원도 못되는 연봉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지요 아마. 그를 만날 때마다 주눅이 들지만... 그래도 오늘 본 부인의 미모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삼아야죠 뭐. 어머니는 제게 이러십니다. "쟤는 저만한 얘가 있는데...휴우..." 하여간 세상은 좁더군요. 왜 하필 거기서 친구를 만나는지. 그래도 제가 계모 어쩌고 한 거 못들었기를 바랍니다.

텅 빈 집에 벤지와 둘이 있으니, 기분이 묘합니다. 제 나이에 다들 독립도 하고 그러는데 저란 놈은 의존성이 강해가지고 언제까지 어머니를 귀찮게 할 건지 원... 집 밖은 지금 꽤 시끄럽습니다. 무슨 영화를 찍는다고 트럭도 오고, 시다바리들도 왕창 왔더군요. 차를 세우는데 누군가 그래요. 김민종이 온다나 뭐라나. 갑자기 귀가 뜨였습니다. 그인간 만나면 할말 있는데...<낭만자객> 왜찍었냐고, 생각이 있는 놈이냐고 물어보려구요. 지금 뭔가를 또 찍는 걸 보니, 몇달 후면 또 이상한 영화가 나오려나 봐요. 걔도 이제 정신 차리고 바르게 살아야 할텐데요... 컴퓨터 끄고 책보고 운동하다 자려고 합니다. 오늘 밤은 그렇게 지나가려나 봅니다. 휘이익-(바람 소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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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교에 다니던 80년대만 해도 '섹시하다'라는 말은 칭찬이 아니었다. '섹시' 혹은 '야하게 생겼다'는 말은 그당시는 '헤프다'는 뜻으로 들렸다. 한 여자애가 자기더러 "섹시하게 생겼다"는 말을 한 남자에게 화를 내던 기억이 난다.

언제부터인가 시대가 변했다. '섹시'는 여자에게 최고의 찬사로 자리잡았다. 공중파 방송에서도 '섹시'라는 말은 하루에도 수십번 나온다. 연예인을 소개할 때 "섹시의 대명사" 어쩌고 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언젠가 군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가 누구냐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1등은 그당시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눈동자'로 막 뜨기 시작하던 엄정화였다. 군인들은 섹시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섹시의 특징 중 하나가 촛점없는 눈동자인데, 그런 면에서 엄정화는 딱이다.

<오리지널 씬>을 보기 전까지 누군가 내게 "니가 생각하는 가장 섹시한 사람은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마 난 "글쎄?" 하면서 "이소라?" "엄정화?" 이런 대답을 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키가 그다지 크지 않고 귀여운 스타일인지라 '섹시'에 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보지 못한 까닭이다. 하지만 지금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1초도 안되어서 대답을 할꺼다. "안젤리나 졸리요!"라고 말이다. 그녀가 주연한 '오리지널 신'에서, 졸리는 섹시가 뭔지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야한 장면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아주 야한 영화를 본 것같은 느낌이 드는 건 바로 그녀 때문이었다.

내가 손가락을 입에 넣으면 주위에서 "더러워!"라고 말할 꺼다. 하지만 안젤리나 졸리는 손가락을 입에 넣어도 야하고, 고개를 45도 각도로 돌려도 야하고, 무슨 말을 해도 야하다. 별 줄거리는 없지만 화면에 있는 그녀의 모습만 바라봐도 별로 돈이 아깝지 않은 영화가 아닐까. 화면을 정지시켜놓고 관찰한 결과 그녀의 섹시함은 엄정화와는 비교가 안되는 촛점없는 눈동자와 두툼한 입술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물론 입술이 두껍다고 아무나 야한 건 아니다. 우리 때 한 남자애는 입술이 두꺼워서 별명이 '썰면 두접시'였던가 그랬다. 또한 촛점이 없다고 누구나 야할 수는 없다. 나같은 사람이 그랬다간 "멍청해 보인다"는 소리만 들을 뿐이다.

좌우지간 이쁘다는 건 좋은 것 같다. 이뻐지려는 건 자기만족 때문도 있겠지만, 입신양명에도 도움이 된다. '이쁘면 성공하는 데 있어 유리하다'라는 말에 여성의 80% 이상이 동의했다나. 이뻐서 손해를 봤다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걸 보면 우리 사회가 너무 미모만을 절대적 잣대로 고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여튼, 이름은 '졸리'지만 잠이 확 깨는 '졸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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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1-20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쁘면 하다못해 음식점에 들어가도 써비스가 달라지지요. 저는 예쁜 후배와 함께 다닐 때 덕 많이 봤습니다...^^ 같이 밥 먹으면 서비스가 좋아지더군요. 외모지상주의, 만세~라도 불러야 하는 걸까요. 정말 예뻐서 손해보는 경우는 스토커가 따라붙을 때가 아닐까요.

1111 2011-05-21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보기에 졸리는 그리 예쁜 얼굴이 아닌데 왠지 모를 후광이 있는거 같아요 전 졸리보다 졸리 딸 샤일로를 더 좋아합니다.ㅋ 지금은 케이티홈즈의 딸 수리가 더 유명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