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존경하는 어떤 분-딴지일보 기자이기도 한-이 쓰신 글입니다. 원래 제목은 '전여옥 미친x'인데, 알라딘 분들이 놀라실까봐 그렇게 안합니다. 전 전여옥이 싫습니다. <일본은 없다> 이후 그가 쓴 책은 하나도 안읽었지만, 조선일보에 이따금씩 쓰는 엽기적인 글들을 통해 그가 십년 전과 달라진 게 없구나, 하는 걸 느끼곤 합니다. 5공 때는 뭘 했는지, 세상이 좋아지니 민주투사가 된 것처럼 날뛰는 것도 역겹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정의라는 게 꼭 이기는 게 아닌지라, 아니 지는 법이 훨씬 많은지라, 전여옥은 자알----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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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전여옥이 쓴 글입니다.

도무지 상식이 안 통하는 '발리에서 생긴 일'  가난은 웃음거리, 부자는 정신파탄자로 묘사

[조선일보] 인기를 끄는 드라마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SBS ‘발리에서 생긴 일’이 높은 시청률을 올리는 데도 까닭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요즘 말로 ‘트랜디’하기 때문이고 ‘TV적’이기 때문이다.

TV드라마는 연극이나 영화와 다른 특징이 있다. ‘작은 상자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연극처럼 카리스마적인 울림이 큰 연기보다 눈썹을 누가 더 파르르 잘 떠는냐 하는 ‘소품형 연기’가 더 가치가 있다. 영화처럼 커다란 화면으로 관객을 향해 도전하는 매체가 아닌 만큼 ‘자그만한 화면’에서 앙증맞고 귀여운 연기자들이 환영을 받게 되어 있다. 바로 이 점을 ‘발리에서 생긴 일’의 연기자들은 만족시킨다.

‘발리에서 생긴 일’은 연기자들의 연기를 개의치 않는다. 오로지 TV라는 편의점에서 얼마나 손쉽게 가볍게 소비될 수 있는 캐릭터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처음 1, 2편에서 맛배기로 보여준 ‘발리의 풍광’을 제외하곤 발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 드라마는 4명의 젊은 남녀가 얽히고설키는 사랑 이야기다.

우선 주인공 ‘뻔뻔스러운 캔디’ 하지원의 행동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호텔방에서 재벌2세인 조인성이 ‘자고 갈래?’라는 한마디에 ‘얼마 줄건대?’라고 담박에 대답하는 여성이 땀에 절은 빵을 먹어가며 온갖 궂은 일을 마다 않는 꿋꿋한 여행사 직원이라는 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평생 가도 철이 들지 않는 젊은 어머니의 아들로 나오는 소지섭 역시 어머니의 야비한 정부를 두드려 패는 일 빼놓고는 그가 벌이는 온갖 행동과 그럴듯한 침묵의 몸짓에 ‘왜?’가 결여돼 있다.

이들 가난한 커플을 비집고 들어간 재벌딸 박예진도 마찬가지이다. 박예진은 장래 시어머니인 김수미의 표현대로 ‘안개 같은 아이’이다. 이 여성이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본인은 물론 그 어머니도 알지 못한다. 그나마 천방지축 자체를 기본 캐릭터로 한 조인성만이 ‘원래 종잡을 수 없는 종자’라는 일관성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진으로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것이 몇 가지 있다. 시청자들이 비록 먹고 싶지 않는 과자라도 어쩔 수 없이 계속 손이 가게 만들기도 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청자 스스로 완벽하게 그림 퍼즐을 완성할 수 있어야 하는 점이다. 그러나 ‘발리에서 생긴 일’은 아무리 맞춰봐도 작품을 완성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상식적인 시청자의 눈으로는 발리에서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제목과 내용이 맞지 않고 주인공은 물론 조연급들까지 그들이 왜 화내고 왜 신나고 왜 눈물을 흘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또한 가난한 이의 가난을 웃음거리나 수치로 삼아버리고 부자들의 실태를 정신파탄자의 행동과 비슷하게 묘사하는 것도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다.

진지한 고민을 하며 상식적인 행동을 하며 사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TV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금도 아니면서 번쩍거리기만 하는 트렌디 드라마의 허상이 넘치는 TV 속에서 예쁘지 않아도, 재벌아들이 아니어도 젊다는 것 하나만으로 빛나는 진짜 트렌디 드라마가 아쉽다.


(전여옥 /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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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전여옥이 쓴 글이다.
이 년 정말 돌아도 한참 돌았다.
하지원이 "뻔뻔스러운 캔디"라니
발리에서 생긴일이 "가난을 웃음거리로 삼는다"니

정말 기가막혀서 조목 조목 말도 안 나온다.
아무 생각없이 젊다는 이유만으로 히히덕 거리기만 하는 드라마를 만들라는 것인가?
"발리.."에는 이전 드라마들이 갖고 있지 않았던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비애"가 드러나 있다.

천방 지축 조인성에게는 "존재에 대한 고뇌"가 있고,
사는게 너무 고달프고 힘든 하지원은 "그 존재에 대한 고뇌"자체가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비애"에 비하면 얼마나 가벼운가를 조인성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조인성은 "누리고 싶은 것은 모두 누리고자 하기 때문에, 하나도 포기하지 못해 고달픈" 박예진보다, 하지원이 좋은 것이다.
"더러운 세상에 말한번 못해보고, 제도권 속에서 인정받으며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노동자"인 소지섭은 화려하지만 실체가 없는 박예진 보다, 하지원에게 끌리는 것이고, 또한 그런 박예진에게 연민을 느끼기 까지 하는 것이다.
"먹고 사는게 비애스러워서 정말 무슨 일이라도 열심히 하며 지푸라기라도 붙들고 싶은" 하지원은, 가슴 속 깊이 까지 들어와 있는 소지섭도 좋지만, 사심없이 잘해주는, 생활의 고단에서 오는 시큼털털한 냄새가 나지 않는 조인성의 손길도 거절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간의 어떤 드라마보다,
정말 캐릭터 설정이 잘 되어 있고, 같잖은 3각관계가 아니라, 삶의 여러가지 단면들이 섞여져 있는 4각관계라는 점에서 나는 이 드라마를 좋아한다.

젊다고 상식적인 생각(대체, 먹고 살자는 거, 살아 남자는 거 말고 상식적인게 무엇이란 말인가?)만 하며, 히히덕거리며 살거라고 생각하는 전여옥.
나이를 똥꾸멍으로 쳐먹은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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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2-04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저는 별아이님의 의견에 일단 동감입니다.(별아이님 서재에 별아이님이 쓰신 코멘트에 보면 있습니다.) 또한, 전 전여옥도 잘 모르고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만약 전여옥편, 기자편으로 딱 갈라 서라고 한다면, 저는 전여옥 편에 설 것 같군요. 제가 볼 땐 발리는 그냥 트렌디 드라마 중 하나입니다.

가난을 웃음거리로 만든다는 말도 문제가 있지만, 먹고 사는 비애가 나타나 있다는 말도 도통 공감할 수 없습니다...

마태우스 2004-02-04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아이님의 코멘트를 몰래 퍼왔습니다. 괜찮겠지요? 음... 솔직히 전 이 드라마를 한번도 안봤는데요, 처음에 카이레님이 너무 좋은 드라마다 하시기에 귀가 솔깃했고, 전여옥이 비난을 퍼부었다니 "정말 좋은 드라마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한번 보고 판단을 해볼까 하는데, 주말드라마는 분량이 만만치 않은지라 안보게 될 것 같네요. 별아이님의 코멘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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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아이() 2004-02-03 22:07
전 소위 '트랜디한' 걸 싫어합니다. 그래서 소위 '또래 취향의' 드라마는 거의 안보죠(ㅡㅡ;) '가난을 웃음거리로 삼는다' 는 전여옥씨의 발언은 폭언이란 생각이 드네요. 그치만 위 기자님의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비애가 드러나 있다' 는 언급 역시 비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이 어린 나이에, 이미 심하게 못살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하지원의 언행은 '진짜 못사는 사람' 이 보면 황당무계하고 엉뚱하게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가난하지만 의리있고 당당한 현대판 신데렐라라서 두 남자의 사랑을 받는 것 그 이상으론 안보이네요. 가을동화나, 겨울연가나, 천국의계단이나, 러빙유나, 발리나 기타 등등… 대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다를 게 뭡니까? 그리고 그 가난하다는 주인공들 다들, 집 아담하고 잘 꾸며놓고 살기만 하던데. '단지 드라마라서' 그 쪽에서의 사실적인 묘사를 기피한 작가와 감독이, 그런 감동적인 의미를 뒀겠습니까? 발리야 말로 '가장 상식적인 드라마' 중 하나라고 보는데, 제가 너무 어려서 그런가요?
논쟁하기 싫어서 그냥 혼자 그렇게 생각해 버리고 말지만….

chaire 2004-02-04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리에서 생긴 일의 외피는 물론 보통의 '트렌디'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첫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본 저는, 유치하지 않은, 꽤 잘 만들어진 트렌디 드라마이며, 기존의 트렌디와는 달리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가난의 문제, 계급의 문제, 사랑의 문제 들이,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대사 속에 잘 녹아 있다는 점에서요. 마태우스 님,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분이니 이것도 한번 시도해보세요. 사랑이, 인생이, 내 뜻대로는 잘 안 되는 것... 딴지 기자는 그걸 '먹고사는 비애'라고 표현한 게 아닌가 싶군요... 전여옥이 저렇게 씹은 걸 보니, 역시 제가 드라마를 잘못 본 게 아니구나 싶군요. 정말 전여옥, 조선일보 넘넘 싫어...^^

연우주 2004-02-04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봤는데, 카이레님과는 의견이 다르군요...^^; 그러나 저도 조선일보는 싫어하지요... 그렇지만, sbs도 별로입니다. 전 방송사 중에서는 sbs가 제일 싫구요, sbs에서 하는 말은 가끔 믿을 수가 없습니다.(이 코멘트 왜 달았는지 잘 모름(--)(__)

chaire 2004-02-04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SBS 방송 철학을 좋아하진 않아요.^^ 글구 발리가 뭐 대단히 뛰어난 드라마라 생각하는 것도 아니에요.^^ 참고로 저는 요즘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드라마도 열심히 본답니다...^^ 그냥 제 취향이 그런 거죠, 뭐...

연우주 2004-02-04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보다 아름다워는 평이 좋더군요. 노희경 드라마가 좋다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전 아직 천국의 계단에서 헤어나오질 못해 못 보고 있습니다...^^
 

 

 

 

 

 

이 레인메이커가 아닌디....

존 그리샴의 작품을 거의 다 읽었는데, 그 중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레인 메이커>다. 법정스릴러의 진수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다. 그리샴을 그리도 좋아하면 영화로도 한두번쯤 봤을 법도 한데, 작품들 대부분이 영화화되었지만 극장에서 그의 작품을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언젠가 한번 줄리아 로버츠가 나오는 <펠리칸 브리프>를 케이블로 봤었는데, 별반 강한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왜 난 그의 작품들이 영화화되는 걸 싫어하는 걸까?소설에서 경험한 아름다운 추억을 영화가 망칠까봐? 그런 마음도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는 그리샴의 작품은 책이 더 어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과 영화로 모두 나와있는 거라면 뭘 봐야 할지, 어느 것을 먼저 봐야 할지 헷갈리기 마련이다. 대개는 먼저 나와있는 쟝르가 더 우월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책으로 먼저 나온 작품이라면 영화가 책을 따라갈 수가 없을테고, 영화가 나온 뒤 급조된 책은 영화의 감동을 재현할 수 없다. 모방이 진품보다 더한 감동을 주는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거기에 더해 또다른 요소가 있다. 스펙터클의 유무다. 그리샴의 작품은 대개 법정 스릴러인지라 보여줄 게 별로 없다. 하지만 <페이첵>이나 <해리포터>를 소설로 본다면, 물론 상상을 하는 재미도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영화에 비해 재미가 덜하지 않을까 싶다. 마이클 크라이튼이 쓴 <쥬라기 공원>은 책을 먼저 읽었지만 영화가 훨씬 더 재미있었고-1편만 그렇다는 얘기다-그 다음에 쓴 <타임라인>은 영화가 아직 개봉되지 않았지만 책보다는 영화가 훨씬 나을 것이다. 왜? 난 <타임라인>을 진작에 읽었는데, 읽고나서 '이렇게 재미없는 책은 처음 본다'고 생각을 했었으니까.

 

1) 변호사

미국은 변호사의 천국이다. 변호사 숫자를 규제하는 우리나라에선 사람들 대부분이 변호사를 친구나 친척으로 만난 경험이 고작이겠지만, 변호사 숫자를 제한하지 않는 미국은 인구당으로 따져 변호사가 몇배는 더 많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휠체어를 탄 환자가 불평을 한다. "이 병원은 왜 의사보다 변호사가 훨씬 많은거야?" 그렇다고 변호사들이 못사는 것도 아니다. 물론 못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소송을 내면 받는 돈이 워낙 많아서 1억불은 벌어야 변호사 소득 10걸에 들어간다 (그리샴의 최근작인 <불법의 제왕>에 의하면 그렇다. 아니면 말고). "10명이 불에 타죽은 사건 알지? 저기 보이는 자가용 비행기 말야, 그때 마련했어" 대충 이런 식이다. 빈번하게 벌어지는 소송은 미국의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으며, 변호사에 대한 농담치고 좋은 게 없다.

문: 변호사가 거짓말을 할 때는?

답: 하는 말마다.

문: 변호사와 창녀의 차이점은?

답: 창녀는 그래도 죽은 사람은 안건드린다.

욕을 하건 말건, 변호사들은 꿋꿋하게 살아간다. 이런 마음이겠지. "욕먹어도 좋다. 돈만 많이 번다면..."

 

2) 맷 데이먼

내가 좋아하는 배우다. <굿 윌 헌팅>에서 그를 처음 보고 "멋진 놈인걸?"이란 생각을 했는데, 변호사로도 아주 잘 어울린다. <오션스 일레븐>에서는 그다지 멋있게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같이 나왔던 브래드 피트 때문이겠지?

 

결론: 파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그리샴이지만, 영화에서는 별반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족족 영화화가 되는 건, 헐리우드의 고질적인 소재 부족을 말해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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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2-03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그리샴 원작의 영화 중 <타임 투 킬> 보셨습니까? 몇 년 전 영화인데, 보면서 재미와 더불어 적절한 무게를 잃지 않은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책만큼 재미있구나...'하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책에 대한 기억은 까맣게 사라졌지만요.^^;;
......그런데 요즘, 저, 마태우스님 전담 코멘트맨 같지 않습니까? ^^

2004-02-03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4-02-03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그리샴의 첫 작품이죠, 아마? 출판사에서 여러번 거절맞고 그랬던 책이라고 들었는데, 전 너무도 재미가 없게 읽었습니다. 우리나라엔 유명해지고 나서 나왔던 것 같은데, 그냥 올바른 정신을 가진 작가라는 것 정도는 알겠더군요.
 

 

 

 

 

 

TV에서 젊은 여자가 구역질을 하면 무조건 임신을 의심한다. 임신의 상징이 되어버린 구역질은 전체 임산부 중 60-85%가 경험한다는데 (미국 통계임), 그 원인에 대해서는 해석이 다양하다. 정신과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구역질이란 어머니가 될 마음의 준비가 안된 산모가 갖는 "태아를 죽이고 싶은 욕망"이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것이란다. 굉장히 그럴듯한 말이라서, 한 십여년 동안 그걸 대단한 진리인 것처럼 남들에게 떠들곤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나는 고발한다, 현대의학을>을 보니 그 이론에 대해 이렇게 나와있다.

[아직도 많은 의사들이 임신오조(구역질하는 것)를 임신에 대한 무의식적 거부로 인한 증상이라는 한물간 프로이드 이론을 신봉하고 있는 모양이다]
윽, 그렇구나.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뭐지? 이 책에 씌여진 대목을 옮겨본다.

[프로펫(M. Profet)은 입덧이 태아가 자연독에 노출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발달된 현상일 수 있다고 하면서, 입덧을 하는 임산부들이 쉽게 상하지 않는 자극성 적은 음식(빵이나 시리얼) 등을 선호하며, 쓰거나 자극성 있는 음식, 신선하지 않은 동물성 제품처럼 고도의 자연독이 함유된 음식들을 특히 싫어한다는 사실을 증거로 들었다(183쪽)]
그러니까 입덧은 태아의 자기방어 시스템의 일환인 셈이다.

[그 이론은 입덧이 왜 주로 처음 3개월간 발생하는지도 설명한다. 그 시기는 태아가 장기를 발달시키며 독성물질에 가장 민감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시기에는 태아의 크기가 작아서 모체에 저장된 지방만으로도 필요한 열량을 쉽게 충당할 수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통 또는 중증의 입덧 증상을 보였던 산모들이 입덧이 경미하거나 전혀 없었던 산모들보다 유산률이 낮았다(같은 쪽)]

이렇게 깊은 뜻이! 태아도 참 대단한 놈인 게 틀림없다. 엄마가 해로운 걸 못먹게 하려고 입덧을 시키다니. 그런데 태아는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는 것일까? 독성 물질을 엄마가 먹으면 어떤 단백질 같은 것이 태아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그런 단백질이 발견된다면, 임신 중 입덧이 아주 심한 사람-심지어 그 때문에 유산을 하는 사람도 있단다-에게 그 단백질의 항체를 투여해 입덧을 가라앉힐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책에 안나온 걸 보니, 아직까지 어떤 물질이 입덧을 유발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은 모양이다.

입덧과 관계가 없지만 얼핏 기억이 나는 또하나의 이야기는, 임신 중 엄마의 면역이 약해지는 것은 태아 역시 이물질이므로 자신의 면역이 태아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즉 태아를 보호하는 기전의 하나라는 것. 하여간 어머니와 아이가 겪는 열달 동안의 과정은 정말 신비롭기 그지없는 현상이고, 내가 인간을 아메바 같은 생물에서 진화한 게 아닌,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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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2-03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그러고보니, 입덧을 할 때는 대부분 <신 것>을 먹고 싶어하지요? 염장식품과 더불어 초절임같은 식초 음식도 부패할 가능성이 적은데...신기하네요.
고등학교 때 꿈의 해석을 읽은 후로 프로이드를 꽤나 신봉했지만...역시, 좀 <오버쟁이>입니다.^^;;;

111 2011-05-21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 몰랐어요 인체의 신비네요
 

 

 

 

 

 

난 엘지에 특별한 감정은 없다. 프로야구에서 두산이 엘지의 라이벌이라 꺼림직하긴 하지만, 그걸 빌미로 엘지의 모든 것을 거부하고픈 마음은 없다. 딱 하나, 휴대폰에 있어서만큼은 엘지가 싫다. 몇년 전, 싸이언을 쓰면서 내가 다시 엘지 휴대폰을 쓰면 염소다, 이런 말을 하기도 했을만큼 거기에 질려 버렸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휴대폰을 쓰라고 광고를 할 수가 있는지, 그 바람에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박진영까지 싫어져 버렸다.

난 019를 쓰는 사람을 동정심을 가지고 본다. 그들은 필경 019 측과 연고가 있거나, 그들로부터 약점을 잡힌 사람들이라, 협박을 당해 가입한 거라고 생각을 한다. 그렇지 않다면 왜 011이나 016을 놔두고 019를 가입한담? 자동차 시장이 삼성과 현대의 싸움으로 귀결되었듯, 휴대폰 시장 역시 KTF와 SK의 싸움으로 마무리질 터, 엘지는 필경 KTF에 인수될 거라는 게 96년부터 휴대폰을 써온 내 생각이다.

내 남동생은 엘지를 다닌다. 거기서 바닥재를 파는 일을 하는데, 걔는 할수없이 019를 쓴다. 019 전화의 특징은 터지는 건 잘 안되지만 중간에 끊어지는 건 잘된다는 거다. 말을 한참 하고 있으면 어느새 끊어져 있다. 그래서 난 019를 쓰는 애들한테 늘 이런다. "너도 011로 바꿔!" 거기에 더해 소리도 잘 안들리는지, 남동생은 전화를 할 때마다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곤 한다. 아, 불쌍한 남동생.

휴대폰과 전혀 관계없는 일에 종사를 하지만, 엘지에서는 남동생에게 011 가입자를 빼앗어 올 것을 명했다. 그런 상황에서 믿을 건 가족밖에 없었지만, 오래 동안 쓴 휴대폰 번호를 바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빌어먹을 번호이동성 제도가 생기면서, 이젠 번호를 바꾸지 않고도 회사를 옮길 수가 있게 되었다. 누가 옮기겠나 싶었지만, 동생의 말에 의하면 30만명이 SK를 떠나 KTF나 019로 회사를 옮겼단다. 가입할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019로 옮기는 사람은 019 관계자나 가족, 아니면 협박에 못이겨 옮기는 사람일 것이다. 나처럼.

"형, 019로 좀 옮겨 줄래? 21개씩 하라고 했는데 그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실적이 하나도 없는 건 너무하잖아? 다들 두세개는 했던데"

처음 동생이 019로 옮겨달라고 전화했을 때, 난 정말이지 싫었다. 번호는 안바뀌지만 그간 쌓아온 기득권을 포기하기가 싫어서 말이다. 난 SK의 최우수고객이다. 오죽했으면 고맙다고 지갑과 벨트를 보내줬을까. "정말 전화를 많이 쓰세요. 혹시...사업하세요?"라는 전화도 받았었다. 내가 내는 요금이 SK 전체 고객 중 상위 3% 안에 든다는 무서운 사실도 얼마 전에야 알았다. 그 모든 걸 포기해야 한다니. 마치 서울서의 삶을 접고 이디오피아로 이민가는 심정이었다. 생각해 보겠다고 전화를 끊은 뒤, 정말로 생각을 좀 해봤다. '동생인데....' '아냐, 그래도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어'

생각을 해보니 말만 최우수고객이지 SK에서 내게 별반 해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체 한번 안하고 그 전화비를 내줬는데, 내가 받은 게 뭐가 있담? 달랑 지갑과 벨트? 그래, 옮기자. 평소 동생에게 잘해준 것도 없는데, 이번 기회에 돕자.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랑 엄마랑 옮길께"(난 엄마와 패밀리로 묶여 있어서 같이 옮길 수 있다). 나 때문에 동생이 기뻐한 건 실로 오랜만인 것 같다. 내가 SK에서 기득권을 쌓았다 해도, 동생의 절박함을 무시할 정도는 아니잖는가? 앞으로 내게 전화하는 분들, 앞으로 전화가 잘 안터지더라도 이해하기 바란다. 공일구니까. 엘지에서 차를 안만드는 게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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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4-02-04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어머니 핸드폰이 3일간 A/S 센터로 간 사이 번호 똑같다는 은행 외판원의 말에 혹해서 생긴 카메라폰 때문에 졸지에 엘쥐 핸드폰 가지고 회사 바꾸게 된 저인지라 100%동감합니다. 근데 요금이 싸긴 싸더군요. 아직 그닥 중요한 전화를 받지 않는지라 별 상관없어서 그냥그냥 쓰고 있습니다.
 

 

 

 

 

 

"빨래걸이로밖에 못쓴다"느니, "절대 사지마라"는 주위 분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헬스피아에서 한달에 6만원을 주고 러닝머신을 렌트한 건 작년 6월, 난 그간 거의 빼먹지 않고 러닝머신을 뛰었다. 하루 3킬로 정도니 그리 대단한 건 아니겠지만, 러닝머신을 빌린지 7개월이 되도록 아직까지 초심을 잃지 않은 건 스스로도 탄복할 만하다. 얼마 전 몸살이 나서 사흘간 밥을 거의 못먹은 것까지 겹쳐져서, 난 살이 조금 빠졌다. 주위에서 얼굴이 반쪽이라느니, 배가 들어갔다느니 하는 말들을 내게 해서, 혹시나 싶어 사우나에 갔다. 실로 오랜만에 체중계에 올라서서 체중을 확인하고 환호성을 질렀는데, 그게 너무도 자랑스러워 그날 술자리에서 이랬다.

"저 살 빠졌거든요? 오늘 재보니 7x킬로에요. 이제 전 옛날의 제가 아니라구요"
사람들은 무척이나 놀란 듯했다. 지도교수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아니 빠진 게 그정도면, 전에는 도대체 몇킬로였던 거야?"

하프 코스를 별 무리없이 뛰었던 3년전만 해도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할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만사가 귀찮아진 그 다음해에는 "하프코스라도 뛰자"는 걸로 바뀌었고, 작년에는 10킬로만 몇번 뛰었다. 하프마라톤을 뛰던 50대 두명이 갑자기 숨졌다는 어제 뉴스를 들으면서, 난 "10킬로도 충분한 것이여"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풀코스를 몇차례 성공한 후 철인3종경기에까지 나갔던 내 친구는 무릎부상으로 마라톤을 은퇴했고, 지금도 무릎이 그다지 좋지 않단다. 지나친 운동은 건강에 오히려 마이너스다. 난 그저 3킬로만 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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