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날 유난히 이뻐하는 선생님이 계셨다. 물론 그분이 나만 이뻐한 건 아니었는데, 총애를 받는 학생들의 성분을 따져보면 실력자의 아들이거나 공부를 잘하는 애, 그리고 이유를 잘 모르겠는 기타로 분류해볼 수 있다.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의 대표였던 권익현의 아들이 첫번째 경우라면, 1학기 성적이 나온 뒤 갑자기 관심을 받게 된 나는 후자에 속했다. 그 선생님은 이뻐하는 애들을 '아들'이라 불렀고, 이름 또한 그 선생님의 성씨인 김씨로 바꿔 불렀고 (난 그래서 김민이 되었다). 여름에는 우리들을 바닷가에 데려가기까지 했다. 평생을 홀로 사신 선생님인지라 그런 행동을 하시는 게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시각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나? 조금 부담스러웠긴 해도, 혜택을 받는 입장이었으니 나쁠 거야 없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선생님은 집에 갈 때마다 자신에게 들러 인사를 하게 했다 (교도주임이라 방이 따로 있었다). 그날도 '아들들'끼리 모여 인사를 하러 갔는데, 키가 훤칠한 학생이 들어온다. "오, 우리 김재용 왔나?" 선생은 밝게 웃으며 그 학생의 인사를 받았다. 그가 돌아나오는 순간, 난 그의 명찰에 씌어진 이름을 봤다. 전-재-용. 전두환 대통령의 둘째 아들이 우리 학교에 다닌다는 얘기를 듣긴 했어도 직접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긴 다리에 훤칠한 키, 여드름이 나있긴 했어도 멋져 보이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난 당황했고, 대통령의 아들을 직접 본 감격에 동네방네 자랑을 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시큰둥했지만.

그해 학력고사-지금의 수능-는 무지하게 쉽게 나왔고, 주위 사람들은 그걸 공부를 썩 잘하지 못하는 둘째 때문이라고 주장을 했었다. 어쨌거나 그는 연대 정외과에 당당히 합격을 했고, 그 이후의 소식은 잘 모른다.

오랜만에 그의 얼굴을 봤다. 미국서 귀국한 뒤 비자금 수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출두한 장면이었다. 어릴 적 그렇게 멋져 보이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TV 화면에는 아버지처럼 대머리에다 세파에 찌든 중년 아저씨의 얼굴이 비춰지고 있다. 잘은 모르지만, 그는 아버지의 비자금을 관리했단다.

따지고 보면 그건 그만의 잘못은 아니다. 그는 태어날 때 줄을 잘못 선거다. 내가 전두환의 아들로 태어났어봐라. 사는 게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비자금을 맡아 달라는 아버지의 요구를 내가 거절할 수 있었을까? 왜 광주에서 사람을 죽였냐고 아버지에게 따질 수 있었을까? 박지만이 마약에 빠진 삶을 사는 거, 난 이해한다. 내가 아무리 의지가 강하다해도, 나 역시 전재용처럼 검찰청의 포토라인에 서서 카메라 플래시를 받고 있었겠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전재용이 내 동정을 받을 입장은 아니다. 그의 형인 전재국은 시공사라는 굴지의 출판사를 운영하며 신나게 돈을 벌고있고, 전재용도 혹시 구속이 될지라도 곧바로 사면된 후 어딘가에 숨겨둔 비자금으로 재미있는 삶을 살 테니까. 내가 자신을 동정했다는 걸 알면 재용씨는 어이가 없어서 턱이 빠질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그가 태어날 때 줄을 잘 섰다는 생각이 든다. 모 신문에서는 그와 내연의 관계라는 P양이 누구냐고 난리다. 아, 그 이쁜 P양을.... 그러니까 그의 모습이 일그러져 보이는 건, TV 화면에서 뿐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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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느티나무 2004-02-06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시공사가 전두환 전대통령 아들이 운영하는 거였군요~. 그랬구나~~

sooninara 2004-02-07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공사가 그래서 더 유명하죠...P양은 누군지 참 궁금했는데..박ㅇㅇ양이란 이야길 듣고 놀랐죠..

갈대 2004-02-07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양을 밝혀 달라!!^^

waho 2004-02-11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양은 박상아...!
 

<안녕, 유에프오>의 영화포스터를 봤을 때, 매우 촌스러운 제목이라고 생각을 했다. 아주 옛날에 유행했던 '안녕, 오사까' 버젼이지 않는가? "저런 걸 누가보냐"고 했더니 여친이 이런다. "이범수 나오는데?" 그 말 한마디에 난 갑자기 그 영화가 보고싶어져 버렸다.

이범수. <정글쥬스>에서 그를 처음 봤을 때는 "뭐 저런 배우가 다 있냐?"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영화가 후진 탓이지 이범수의 잘못은 아니었다. 이범수는 그후 <싱글즈> <오 브라더즈> 등에서 열연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배우로 거듭나는데, 나 역시 그가 나온다고 하면 웬만하면 보려고 한다. 다른 대작들이 많아 관객동원에 성공할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영화 역시 이범수의 매력이 물씬 뿜어져 나오는 수작이었고, 수채화처럼 잔잔한 감동을 내게 선사했다. 보라. 남들도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가슴 따뜻한 이야기.. 좋았습니다.
-짝짝짝... 넘 좋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이범수 연기도 잘하고.. 내용도 깔끔하고..





문제는 이은주였다. 이은주. <번지점프>에서 처음 봤을 때, 난 저렇게 이쁜 여자가 있느냐며 놀랐다. 아는 여자애한테 이은주 칭찬을 했더니 대번에 이런다. "저거 다 고친거야!" 아니 누가 자연미가 뛰어나댔나? 고쳤거나 말거나 어찌되었건 이쁜 건 맞잖아? <연애소설>에서도 이은주는 매력면에서 손예진을 압도해-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거다-내 가슴을 뛰게 했는데, 이 영화에서 클로즈업된 이은주를 자세히 관찰해보니 의외로 별로다. 안이쁘면 어떠냐, 연기만 잘하면 되지. 그런데 연기도 진짜 못한다. 장님 연기를 해야 하려면 눈에 촛점이 없거나 그래야 하는데, 눈에 생기가 자르르 흐른다. 여친의 말이다. "인어공주에서 아리영 엄마는 진짜 장님같던데" 그래서 내가 이랬다. "그사람 진짜야" 여친, 정말이냐고 놀란다. 순진하긴...




조연으로 나온 봉태규도 참말로 귀엽다. 그를 보면 나보다 못생겨도 영화배우를 할 수 있구나 싶은데, 이 말을 들은 여친은 이렇게 말한다. "봉태규가 얼마나 귀여운데!" 그래, 나 못생겼다, 어쩔래. 영화 속에서 이은주는 UFO가 나타날 때마다 잠깐씩 눈이 보이는데, 장님인 채 사귀어온 이범수의 얼굴을 보면서 빙긋이 웃는 게 마지막 장면이다. 이범수니까 웃었지, 막상 눈을 떠보니 내가 웃으며 서있다, 이랬으면 아마도 다른 반응을 보였을 거다.
"꺄아악!!!"이라던지, "저리 가! 가란 말야!"라고 하든지. 잘생기기는 애당초 틀렸으니, 노력을 해서 봉태규 정도의 귀염성을 갖추도록 해야겠다. 가진 게 없으니 서러워 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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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06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마지막이 넘 웃겨요~ 남자분들 중엔 이은주 좋아하는 분들도 많던데...벌써 환상을 깨시다니. ㅎㅎ 영화 홍보를 코믹스럽게 하길래, '엇, 코미디가 아닌걸 너무 코미디처럼 홍보하면 마이너스 아닐까'라고 생각했는데, 반응이 괜찮은가봐요~~^^

갈대 2004-02-07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범수 얼굴도 처음보면 상당히 당황스러울텐데요..ㅋ

마태우스 2004-02-07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지금도 당황스러운데요, 여자들은 그런 얼굴 좋아하나봐요...

진/우맘 2004-02-10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다...이은주! 어제 <태극기 휘날리며>에 나온 장동건의 정혼자 이름이 생각이 안 나서 한참을 고민했었는데.^^ 이은주, <카이스트>에 나올 때부터 눈여겨 봤더랬지요. 예쁘다 안 예쁘다를 떠나서, 20대 여배우 중에는 그나마 멋진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장님 연기는 별로라구요? 흐음....
 

 

 

 

 

 

전에도 말했지만 난 좋은 초등학교를 나왔고, 인터넷 동창회가 생긴 후로는 다시금 모여서 재미있게 놀고 있다. 번개 같은 게 수시로 만들어지고, 정모도 제법 자주 있다. 옛날에 헤어진 여자애들이 아직도 20대로 착각할만큼 미모가 뛰어나니, 그럴 법도 하다.

엊그제, 한 친구-알파라고 하자-가 번개 공고를 알리는 글을 올렸다.
[간만에 번개를 갖고자 합니다. 휘성(가명)과 저, 둘이서 번개를 제안합니다. 시간이 되는 친구들은 리플 남겨 주세요]

하지만... 83회에 달하는 조회수에도 불구하고 리플은 단 한개도 달리지 않았다. 다들 바빠서? 그렇지만은 않다. 바빠서 못갈 경우 "난 그날 안되는데" 정도의 리플은 언제나 올라왔는데?

물론 이런 건 있다. 번개를 할 때는 무작정 공고를 내기보다, 핵심멤버들의 참석여부를 미리 확인받는 게 그 세계에서의 암묵적인 절차였다. 나쁘게 말하면 이런 거다. "우리 모일 테니까, 니들도 오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리플이 한개도 안달린 것은 처음이었다. 알파가 번개공고를 낸 것도 처음이었지만.

머쓱해진 휘성이 그 밑에 답글을 달았다.
"하도 모임에 못나갔더니 이제는 잊혀진 이름이 되었나보다. 오랫만에 얼굴좀 보여줄 친구가 하나 없다니....불경기라 모두 바빠서 그런건가? 어쨌든... 기다려 볼란다..."
그러자 리플이 몇개 달렸다.
-휘성, 나두 너 보구시퍼... 시간이 안되서 그랴..
-휘성, 오랫만인데...요즘은 꼼짝 못한단다...좀 지나서 보자
-휘성, 나두 한 번 보고 픈데.. 좀 여유 생기면 보자....^^ 
-휘성아, 연락좀 하고살자... 

이게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사람들은 알파가 싫은거지, 휘성이 싫은 게 아니었던 거다. 아는 친구와 통화 도중 휘성에게 냉담한 이유를 아느냐고 물었다.
"글쎄 왜 그러지? 영삼이도 걔 아주 싫어하고, 대중이도 그러던데..."
이유를 말해줬다. 알파 걔, 다단계 일을 한다고. 친구는 질겁을 했다. "나 다단계 때문에 엄청 뜯겼거든"이라면서.

사실 알파가 나에게 다단계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은 없다. 나 역시 다른 친구에게서 들었을 뿐이다.
"알파가 둘이 술을 마시자고 하더니, 갑자기 신청서를 꺼내는거야. 암웨이 가입하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우리 오늘은 그냥 기분좋게 술 마시자"
오늘은 기분좋게 술 마시자... 이건 참 모욕적인 얘기다. 하지만 알파는 그걸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다른 동창들에게도 암웨이 가입을 권했다. 도대체 어떤 스파르타식 교육을 하길래 그러는 걸까. 암웨이, 다단계, 정말이지 분위기를 깨는 데 가장 좋은 말이 아닌가?

어제 만난 초등 동창들도 알파에 관해서 다들 알고 있었다. 가입 권유를 받은 친구도 둘이나 됐고... 알게 모르게, 알파는 초등동창 사이에서 왕따가 되어 버린거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알파는 제법 다단계가 잘되어 웬만한 사람 월급 정도의 수익을 매달 올리고 있단다. 인생에서 돈이 중요한 거야 부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돈을 위해 그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그는 잃어가고 있었다. 난 알파가 왜 우리 동창들 번개에 그토록 열성인지 이해할 것 같았다. 알파의 주위에 과연 누가 남아 있겠는가?

왕따는 무조건 나쁘다. 알파를 따돌리며 리플 하나 달지 않은 나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하지만 아무 죄도 없는데 생기는 어릴적 왕따와 달리, 나이가 들어서 벌어지는 왕따는 자기 책임이 더 크다. 알파는 알까. 남들이 자기를 왜 따돌리는지를. 하지만 "다들 바쁜가봐. 그 집 맥주 참 맛있는데..."라고 단 리플을 보면서, 난 알파에게 아무 생각도 없다는 것을,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게 되리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다단계의 세뇌교육은 이렇듯 사람의 영혼을 마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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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느티나무 2004-02-06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주변에 다단계에 끌려갔던(?!) 사람 말을 들으며..... 음...... 진짜 세뇌교육이란 놀랍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 알파(^^)분도 불쌍하네요..

비로그인 2004-02-06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단계 때문에 친구 잃는 사람이 많던데...이렇게 또 얘기를 듣고보니 씁쓸하네요...에구...

sooninara 2004-02-07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ㅇ이와 하이X빙 등에서 아는 분들이 하루가 멀다고 찾아오는데..서로 괴롭더군요.
돈때문에 왕따가된다는것은..참 슬픈일입니다
 

 

 

 

 

 

몇십년 전, 어머님은 밭에서 노는 꿈을 꾸셨다. 아는 할머니는 꿈 얘기를 듣자 대번에 딸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고, 그로부터 열달 후 어머니는 누나를 낳았다. 그 후 어머니는 구렁이 두마리가 벽에 붙어 있는 꿈을 꾸셨다. 구렁이처럼 길다란 건 남성의 상징, 어머님은 그 뒤 나와 남동생을 낳으셨다. 여기까지 듣고 엄마한테 물었다.
"그럼 여동생 가질 땐 무슨 꿈을 꿨어요?"
그땐 아무 꿈도 안꾸셨단다. 넷씩이나 낳으려니 좀 지겨웠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태몽없이 태어난 여동생은 우리 가족 중 가장 인물이 출중한데 비해 구렁이 꿈을 꾸고 태어난 나는 뭔가 많이 모자라니, 태몽이라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가보다.

옛날에, 아주 옛날, 지금은 헤어진 여친과 사귈 때였다. 어느날 여친의 어머님이 꿈을 꾸셨는데, 새끼 호랑이를 안아올리는 꿈이었단다. 어머님이 딸에게 물었다. "너 오늘 민이 만나냐?" 여친이 그렇다고 하자 어머님은 이렇게 말했단다. "조심하거라"
하지만 우린 그날 아무일도 없었고-손만 잡아도 아기가 생긴다면 모르겠지만-집에 가는 와중에 갑자기 설사가 나와, 화장실을 찾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 뒤부터 우린 '대변을 본다'를 '호랑이를 잡는다'고 표현하곤 했다.

내 친구 중 일년 전에 결혼한 녀석이 있다. 어제 그와 만나 술을 마셨는데, 그가 이런 말을 한다.
[내 마누라가 얼마 전에 고추-먹는 고추가 아니라-를 달고 다니는 꿈을 꿨데. 아무리 떼어도 안떨어졌다나. 무슨 그런 흉칙한 꿈이 있냐고 하더니, 글쎄 애가 생겼다지 뭐야]
친구는 지금 임신 5주째란다. 아들인지 딸인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꿈의 성격상 아들이 아니겠는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해 친구에게 물어봤다. "5주 전엔 뭐했는데?" 친구는 술에 취해서 아무 생각도 안난단다. 그러자 같이 있던 여자애가 덧붙인다. "그럼 딸이네!" 그 여자, 남자가 술먹고 하면, 그래서 술취한 정자가 들어가면 딸을 낳는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보다.

아직 장가는 안갔지만 그래도 태몽 전문가인 전직피디 박모씨는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꿈은 태몽으로 해석될 소지를 가지고 있다. 결혼한 상황에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아이를 바라면 그게 꿈으로 나타나는 수가 많으니, 그런 꿈을 꿀 수밖에 없다" 내가 태몽으로 해석되는 게 아예 불가능한 꿈들, 예를 들면 학장님한테 혼난다든지, 고교시절로 돌아가 시험 전날까지 공부를 한자도 안하는 그런 꿈들만 꾸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아이를 낳을 상황이 아니어서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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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06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태몽은, '앗, 이거 태몽이야!!'라는 느낌이 확~ 온다던데...^^ 나중에 결과랑 껴맞추는건진 모르겠지만, 태몽과 성별이 대충 맞아떨어지는 건 신기하죠. 시험치는 꿈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그렇다던데~
 

여친과 4시반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일이 잘못되어 2시 반에 극장에 도착해 버렸다. 두시간 동안 뭘한담? 어디 구석에 숨어 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좀 궁상맞아 보일 것같아 혼자 다른 영화를 봐야겠다는 깜찍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직 못본 <말죽거리>를 보면 어떨까 했는데 시간이 안맞는다. 2시 반에 상영하는 건 딱 한편이 있었고, 그게 바로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었다. 비는 시간이 없었으면 절대로 보지 않을 영화였지만, 보고나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영화가 막 시작하려고 해 소변도 못보고 달려가서 앉았는데, 그로부터 두시간 동안 가장 잘 참을 수 있는 자세를 취한 채 버티고 앉아있었던 것만 봐도 재미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지 않는가? 그러니까 이 영화를 <낭만자객>과 비슷하려니 하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일 것이다.

 

1) 김정화: 언젠가 <논스톱>이라는 시트콤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김정화를 처음 봤다. "참 시원하게 생겼네?" 이게 내 첫 느낌이었다. 그 시원함이 어디 가는 건 아닌지라 영화에 나오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니 <니모를 찾아서>를 보는 느낌까지 들었는데, 김정화만 봐도 그다지 돈이 아깝지 않다는 게 내 주장이다. 난 작고 아담한 스타일을 좋아하는지라 김정화가 내 타입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꼭 이런 질문이 따른다. "니 타입이면 어쩔 건데?" 내가 뭐 어떻게 하겠다고 했나? 그냥...그렇다는 거지.

 

 

2) 벨소리: 영화에 나오는 벨소리는 웃기는 게 많다. <싱글즈>에서 장진영의 휴대폰은 "대-한민국"이었는데, <간첩>의 남자주인공 공유의 벨소리는 다음과 같다.

"안받아? 이거 흥미진진한데. 받을 때까지 울려보자고. 전화를 안받는 건 상대방을 두번 죽이는 거라구"

 

3) 줄거리: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의 차이는 말이 되는가 안되는가의 차이일 것이다. <천국의 계단>이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비난을 받는 건, 말이 안되는 대목이 너무 많아서다. 예컨대 네티즌들이 지적한대로 앞의 사물도 잘 못보는 최지우가 별장 밖에 서있는 권상우를 보고 장 속에 숨는 건 말이 좀 안되잖아? 물론 <간첩>의 장면들은 굉장히 유치한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괜찮게 느껴진 건, 전체적으로 봐서 말이 그럭저럭 되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화의 키스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도 내게는 신선했다.

 

4) 백일섭: 연기를 잘하는 백일섭은 영화를 푸근하게 만들었다. 그의 부인으로 나오는 김애경도 마찬가지인데, 옛날에 난 김애경이 나오는 에로영화를 동시상영 극장에서 본 적이 있어서, 그녀를 보면 아직도 거부감 비슷한 감정이.... 내가 원래 좀...이상하다. "뽑기는 완성된 모양을 생각하면 손끝에 힘이 들어가 깨지기 마련"이라는 백일섭의 "뽑기론"은 참 인상적이었다.

 

5) 유머: 좋은 유머와 나쁜 유머의 차이는, 나쁜 유머가 뜬금없고 영화랑 매치가 잘 안되는데 반해, 좋은 유머는 영화 속에 녹아들어가 그 자체는 웃긴 말이 아니라도 관객에게 웃음을 준다. 영화에 나온 나쁜 유머의 예다.

공유: (비디오방에서) 아니 저게 뭐야? 아줌마, 시네마천국 틀어달랬잖아요?

아줌마: 신애마천국 맞잖아!

그럼 좋은 유머는? 글쎄, 좋은 건 아니고, 그냥 어중간한 유머의 예다.

김정화: ......통일의 길을 닦아야죠....

김애경: 통일의 길은 불도저가 닦고 있으니 넌 들어가서 마루나 닦아 이년아.

 

유치한 장면이 꽤 나옴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괜찮았다고 생각을 하지만, 남들은 어떨까? 맥스무비의 별점순위를 보니 6.64로, 내사랑 싸가지의 5.38보다는 높다. (참고로 <낭만자객>은 5.03 정도 되었다) 6.6 정도면 뭐 적당한 평가라고 생각을 하는데, <태극기 휘날리며>가 9.08로 1위다! 이럴 수가. 그 영화가 재미있나보다. 100억원을 들인 영화라 망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재미있다니 다행이다. 나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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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05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유치할꺼 같애~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괜찮은가보죠?? 마태우스님 영화감상문을 보고 있으면, 대사들을 어찌저리 기억하고 계시는지 신기하다는...^^

진/우맘 2004-02-05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배우 이름은 잘 기억 못 하면서 대사는 잘 외우시는군요. 한 번 본 연극은 다 외워버리는 <유리가면>의 마야도 아닐터인데...

마태우스 2004-02-06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거요. 사실은 제가 영화 중간중간에 맘에 드는 대사가 있으면 노트에다 적거든요.... 저 머리 나뻐요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