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아, 실미도 재밌냐?"
어머니의 난데없는 질문에 난 좀 당황했다. 어머니가 <실미도>를 어떻게 안담? 왜 그런 걸 묻지?
"친구들이 보자고 그래서 월요일날 아침에 보기로 했는데, 갈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야"

순간 난 너무도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난 왜 어머니는 영화 같은 걸 생전 안보신다고 생각을 했을까? 재미있는 영화가 있으면 어머니한테 같이 보러가자고 할 수도 있는 건데, 왜 난 꼭 젊은 여자랑만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어머니는 TV로 <완전한 사랑>'이나' 보면서 눈물짓는 존재라는 고정관념이 내게 있었던 건 아닐까.
"어머니, 그거 꼭 보세요. 정말 재미있어요. 어머니 보시면 좋아할 거예요"

<실미도>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의 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난 그렇게 대답했다. 나나 어머니나 그 안에 숨어있는 위험한 이데올로기를 볼만큼 예리한 비판의식의 소유자는 아닐 테니까. 눈물이 유난히 많은 어머님이시니, 영화 주인공들에게 동화되어 그들의 장렬한 최후에 눈물을 흘리시지 않을까?

"돈도 돈이지만, 두시간 동안 앉아있는 게 시간이 아까워서..."
시간 타령을 하지만, 난 안다. 돈이 아까워서 그러는 걸.
"아네요 엄마. 6천원으로 두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건 영화밖에 없어요. 그리고 영화보는 건 대표적인 문화생활이라구요"

학창시절엔 그래도 잘나가셨던 우리 어머니는 틈만 나면 극장을 찾던 영화광이셨단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비롯해서 <맨발의 청춘> 등등 그 당시 했던 영화는 안본 게 없단다. 그런 어머니가 결혼을 하고 우리 넷을 낳고나서 영화를 비롯한 모든 문화예술과 담을 쌓게 된 거다. 사회에 대해서도 관심을 끊고 사셨기에 자식들로부터 "엄만 몰라도 돼!"라는 말을 수시로 들으셔야 했다.

어머니는 뉴스를 보다가 내게 가끔씩 질문을 던진다.
"민아, 열린우리당은 원래 어디 있던 당이냐?" "실미도라는 섬이 진짜로 있다냐?"
어머니가 이렇게 된 건 우리들을 기르느라 애쓰신 탓이지만, 난 그런 질문을 받으면 웃음부터 난다. 그리고 이렇게 면박을 준다. "아유 엄마, 그것도 몰라?"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 건성으로 설명을 하곤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앞으로는 어머니께 재미있는 영화가 나오면 보시라고 권해 드려야겠다. 그런데 어머니랑 영화를 같이 보는 것은 가능할까? 생각만 해도 왠지 쑥스러운 기분이 든다. 그게 나빠서가 아니라, 엄마랑 같이 극장에 온 사람을 별로 보지 못해서다. 다른 사람들이 "쟤좀 봐. 애인이 없으니까 엄마랑 왔나봐"라고 놀릴까봐 무섭기도 하다. 그래, 영화를 같이 보는 건 좀 무리인 것 같다. 어머니도 각시 대신 당신과 극장에 가는 아들이 안스럽겠지. 하긴, 우리 어머니는 친구도 많으시니, 좋은 영화를 추천해 주는 것만도 충분히 훌륭한 일일 것이다. 엄마, <실미도> 재미있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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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2004-02-08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럽습니다. ㅠ_ㅠ

비로그인 2004-02-08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무척 찔리네요...특히 엄마한테 건성으로 대꾸하고 했던 모습이...엄마가 일부러 연예정보 같은거 알아오셔서 얘기꺼내시고 하면, 인터넷서 이미 다 봤어요-라며 시큰둥하고 했거든요...반성!!

마태우스 2004-02-09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아네요, 제가 더 부끄럽죠
영이님/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말씀 감사드려요.
앤티크/음... 갑자기 "우리 모두 반성합시다"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앤티크님 이미지를 보니 어머님께 노경을 사드리고 싶어지는군요^^

비로그인 2004-02-09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경이...뭔지요?? ^^;;

만월의꿈 2004-02-09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반성합니다ㅠ-ㅠ; 엄마가 뭔가를 물어보면 항상 건성으로 대답했던것..
앞으로는 꼬박꼬박 자세하게 알려드려야 하겠죠^-^;

마태우스 2004-02-10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얘기: 어머님은 <실미도>를 너무 재미있게 보셨답니다. 다음주에는 <태극기>도 보기로 하셨다네요. 어머님의 인생은 이제 시작입니다!!!
 

 

 

 

 

 

신문을 보니 노무현이 종친회 사람들과 오찬-오찬이 뭘까? 까마귀 반찬? 아님 반찬이 다섯가지?-을 함께 했단다. 야당에서는 그걸 두고 "총선용"이라고 비난한다. 하기사, 선거 때가 아니면 종친회 사람을 왜 만나겠는가? 궁금한 건 그게 총선용인가 아닌가가 아니다. 난 종친회라는 곳이 도대체 뭘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 모임이란 뭔가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단순히 성과 본관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모임이 될까? 숫자가 얼마 안되는 '편'씨나 '판'씨면 전혀 말이 안될 게 없지만, 전주이씨 종친회 같은 사람들은 누가, 어떻게 모이며, 뭘 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TV에서 보니 사무실도 따로 있던데...

어쨌거나 무슨무슨 종친회 그러면 난 일단 숨이 막힌다. 듣기만 해도 '고리타분' '수구' 이런 단어들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언젠가 문신에 관한 찬반의견을 TV에서 한 적이 있다. 문신을 반대하는 측 의견을 듣기위해 기자가 찾아간 곳은 유명한 모씨 종친회. 그들이 하는 말은 '역시나'였다. 그들은 문신을 "범죄자들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혐오감을 조장하는 반사회적 행위"로 규정했다.

종친회1: 문신하는 애들은 군대 보내면 안되. 우리편 사기가 떨어지잖아.

종친회2: 아냐. 혐오감을 주니, 최전방에 보내면 적들이 놀라지 않을까?

물론 난 문신을 좋아하지 않고, 내가 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문신이란 게 자기 몸을 이용해 뭔가를 표현하는 것이며, 그건 전적으로 그 사람의 자유고, 그로 인해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한다. 문신을 했다고 군대를 못가게 한다는 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다. 조폭들이 문신을 많이 하는 건 사실이지만, 문신을 했다고 다 조폭은 아니잖는가?

기자는 종친회 회장의 집에 찾아갔다. 그의 부인 역시 문신에 적대적이었고, 마루를 닦고있던 며느리도 "그런 걸 왜하느냐"며 질색을 한다. 원래부터 그런 사람을 뽑은 것인지, 아니면 들어와서 세뇌시킨 건지, 투철한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는 그들을 보면서 숨은 어떻게 쉬고 사는지 측은해졌다. 모르긴 해도 그들은 몇십대 조상까지 제사를 아주 자알---모실테고, 남자들은 부엌 근처에 얼씬도 하지않을 것이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이런 철학이 가장 잘 구현되는 곳이 그집이 아닐까.

그러고보니 호주제 폐지 얘기만 나오면 갓쓰고 나와 시위를 하는 것도 그들이 아닌가. 예비군 동대장들 때문에 향토예비군 제도를 없애지 못하듯, 시대착오적인 호주제가 유지되는 것도 다름아닌 종친회 때문이리라. 표심을 좌우하는 종친회가 버티고 있는데 어느 의원이 감히 호주제 철폐를 주장하겠는가.

호주제 폐지의 전도사 고은광순의 말대로 '면면히 이어져내려온 성씨'는 허구다. 난 서씨와 김씨의 자손이며, 아버지는 서씨와 김씨, 어머니는 김씨와 임씨의 자손, 이런 식으로 10대만 거슬로 올라간다면 나란 놈이 수많은 성씨로부터 비롯된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우리의 성씨라는 것도 중국과 교통하게 되면서 신라 귀족이 중국을 모방해 성씨를 사용한 것이며, 조선시대 중반까지 양반이 아닌, 즉 인구의 절반 가량이 성씨가 없었"단다. 족보가 가장 많이 만들어진 것은 바로 일제 강점기, 상황이 이럴진대 성씨라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종친회라는 게 필요한 시기도 없진 않았겠지만,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모든 이가 연결되는 21세기까지 종친회가 힘을 쓰는 현실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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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side 2004-02-07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성씨란건 다분히 허구적입니다. 난 울 엄마랑 똑같이 생겼는데, 성이 다르죠.. 대전에는 '성씨 공원'이란게 있는데요, 각 성씨를 나타내는 조형물이 늘어서 있답니다. 가족끼리 놀러간 그곳에서, '진주 정씨' 조형물 앞에서 소외되었던 울 엄마를 보며 씁쓸했던 기억이 나네요.

겨울 2004-02-07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외된 어머니의 성씨를 이름의 맨 앞에 놓는 일을 실천하려합니다. 서명에서부터 시작해야죠. 어떤 성과 어떤 성의 아들 혹은 딸로 인지되는 것은 평화로운 공존의 향기가 납니다.

진/우맘 2004-02-09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찬 - 여느 때보다 잘 차려 먹는 점심. 주찬(晝餐).
이라는군요. 저도 오찬, 오찬하면 아침밥인지 낮밥인지 언제나 헷갈리던 차에, 찾아봤습니다.^^
 

 

 

 

 

 

<느림>이란 책에서 쿤데라는 이런 말을 한다. "모든 걸 결정하는 것은 바로 목소리"라고. 여러 사람이 모였을 때, 낮으면서도 부드럽고, 감미롭고, 힘차게 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자는 좌중의 관심을 끈다는 얘기다. 반면 이 책에 나오는 벵상처럼 목소리가 여리고 뾰족한 사람은 말을 시작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며, 그래서 언성을 높일 수밖에 없고, 사람들은 그가 고함을 지른다고 생각을 한다. 나는 벵상과 같은 과, 그래서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서 긴 얘기를 못한다. 내가 뭔가 얘기를 시작하면 누군가 이런다.

"참, 오늘 야구 어떻게 되었지?" 그러면 사람들은 내 얘기를 무시하고 거기에 관해 얘기한다. 그때의 비참한 심정은 당해보면 안다. 난 그게 내가 말을 조리있게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목소리 탓이었다는 걸 쿤데라 덕분에 알게 되었다. 하긴,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높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날 물끄러니 바라보다 이렇게 말씀하셨으니까. "넌 목소리가 왜 그러냐?"

하지만 어쩌랴. 목소리는 바꿀 수 없는 것을. 그럼 난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쿤데라가 다른 책에서 목소리가 안좋은 사람이 주목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주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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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08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좌중의 주목을 쉽게 받는 목소리와, 그렇지않은 목소리가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전 그차이가 목소리에 실린 '기'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ㅎㅎ

마태우스 2004-02-08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라구요.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 같네요. 전...'기'도 없어요. 식당 같은데서 제가 종업원을 부르면 온적이 거의 없거든요.

진/우맘 2004-02-0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구나... 저도 높고, 가늘고, 여린데다가...좌중의 주목을 받겠다고 목에 힘을 줄라치면 바르르 떨려서 "왜 우냐?"는 질문을 받는, 최악의 목소리입니다.
그래도, 이런 목소리가, 시낭송이나 성경 낭독이나 나레이션에는 득이 될 수도 있답니다. 힘내세요.(하지만...마태우스님은 남자였지...ㅋㅋㅋ)

보이스 2011-05-21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폴포츠같은 목소리를 원하세요?
 

 

 

 

 

 

엊그제, 초등 동창들 6명이 모였다. 형식상으로는 내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함이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다름아닌 '한판 붙자!'는 것. 먹기 시합이나 술시합처럼 무식한 짓은 없다지만, 내 주변에서는 그런 일이 종종 벌어진다. 술 시합을 앞두고 몸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난데, 난 큰 시합이 있으면 3일 전부터 소주를 반병씩 마셔가며 몸을 단련시킨다. 하지만 내 친구들은 어쩜 그렇게 술을 잘마시는지, 아무리 원샷을 해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 친구 중 '짱가'란 별명을 가진 녀석이 갈수록 살이 찌는 건, 주량을 늘리기 위함이 아닐까?

그날은 이런 방식으로 시합이 시작되었다. 여자애와 술에 자신없는 애는 예외로 하고, 4명이 소주 한병씩을 자기 앞에 놓는다. 술을 따라 줄 때는 그 사람 앞에 있는 술로 따라주고. 이러면 정말 공평하게 한병씩 마실 거 아닌가. 속도를 늦추는 사람이 있을까봐 이런 규칙도 생겼다. 한명이 한병을 다 비우면, 나머지 애들은 남은 거 원샷이다.

컨디션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기에, 한병을 비울 때까지는 내가 선두권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몇잔을 더마시고, 내 생일겸 해서 모였으니까 계산을 내가 하고, 2차를 가서 맥주를 마시고... 깨보니 어느새 떡볶이집이었다. 노래 몇곡을 부른 건 기억이 나는데, 그 뒤부터 계속 뻗어 잤나보다. 부끄러웠다. 맨날 "너희들, 나 몸 만들었어! 다 주겄어!" 이렇게 떠들다 언제나 곯아떨어지는 나, 난 왜 이렇게 술이 약하게 태어났을까? 노력으로 안되는 게 없다지만, 아무리 열심히 마셔도 주량이 늘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한병 정도만 주량이 늘어 세병만 마실 수 있다면 그래도 기본은 될텐데... 홧김에 맛있는 떡볶이집에서 오뎅 4개랑 떡볶이 왕창을 먹었더니, 다음날 아침에 얼굴이 두배가 되었다. 배도 볼록 나온 것이 아무래도 조금 줄은 체중이 다시 원상복귀 했나보다. 그날 모였던 친구들과 이달 말에 어디론가 놀러 가기로 했는데, 그때까지 열심히 몸을 만들련다. 술 때문에 체중을 늘린 그 친구도 언젠가 내 앞에서 고꾸라질 날이 있겠지.

* 어제밤 9시, 열심히 글을 쓰는데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야! 여기 누구누구랑 술마시는데, 나와!" 1년만에 만나는 거라 거절하기가 뭐해, 알았다고 하고 나가려니 어머님이 화를 내신다. "양심이 좀 있어라, 응?" 생각해보니 그랬다. 담주엔 한주일 내내 술을 마셔야 할 것 같은데, 이러면 안되지. 밖에 눈도 왔구. 그래서...거절했다. 올해 들어 부쩍 술약속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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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08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정말 무서운 술먹기 시합...ㅡㅡ; 노력하면 조금 늘긴해도, 억지로 늘리려고 하는건 안좋다고 하드라구요. 그래도 담번엔 몸 잘 만들어서 화려한 영광과 승리의 나날을 맛보시길 바랄께요~ ^^

마태우스 2004-02-08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 이번주 월요일-2/9-큰시합이 있습니다. 그네들도 절 번번히 맛이 가게 만든 사람들인데, 한번 해보죠. 화이팅.

비로그인 2004-02-08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옷~ 낼 술일기 기대하겠슴다. 화이팅~~!!

진/우맘 2004-02-09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이 그 날이군요...화이팅! (근데, 이런 거 화이팅 해도 되는건지, 쩝.)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발기부전 치료제로 사용하는 비아그라는 원래가 심장병에 쓰일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그런데 원하던 효과는 없고 대신 발기만 되는지라 용도를 바꿔 발기부전 치료제로 사용하게 된 것인데, 거시기에다 뭔가를 넣는 불편한 방법 대신 알약을 먹어서 해결을 한다는 획기적인 방법은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줬고, 약을 개발한 화이자는 돈방석에 올랐다. 원래 출발이 심장약인지라 심혈관계에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죽는 사람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얼마전 기사다.

[부산에서 70대 일본인 관광객이 비아그라를 복용한 뒤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숨졌습니다...] 

하지만 죽는 게 무섭다고 발기부전으로 사는 걸 감수할 사람은 별로 없기에, 비아그라는 앞으로도 잘나갈 것 같다.

 

루엔와이(Roux-en-Y)는 위우회수술방법이다. 위를 일부만 잘라내고 소장을 연결하는 건데, 옛날에는 궤양이나 위암 같은 환자에서 이런 수술을 했던 것같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서면서 루엔와이는 200킬로가 넘는 초대형 비만환자에게 복음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들의 비만을 고치기 위해 사용했던 모든 방법이 2년을 못넘기고 도루아미타불이 된 반면, 위절제술은 불과 10% 미만의 실패율만 기록했는데, 현재 미국에서는 해마다 4만명이 넘는 사람이 이 수술을 받고 있단다. 이 수술을 받았던 모씨는 수술 후 "조금만 먹어도 속이 꽉 차고 신물이 올라오려고 해 더 못먹겠다"고 증언했는데, 그의 체중은 1년여만에 210킬로에서 116킬로로 줄어들었고, 지금은 그간 한번도 못가본 2층도 올라가보고, 일도 시작하는 등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있는 중이다. 위를 잘라내는 게 일견 과격해 보이지만, 비만이 암보다 더 무서운 질환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런 방법을 쓸수도 있다는 데 동의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찌되었건 루엔와이는 많은 비만환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으니, 그 수술법을 비만환자에게 적용시킨 사람에게 감사할 일이다.

 

문성근은 서강대 무역과를 나와 대기업에서 무역 관련 일을 하는 회사원이었다. 그런 그가 32살 때 갑자기 연극을 하겠다면서 회사를 그만 둔 건 누가 봐도 미친짓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알고싶다>의 MC로 스타덤에 올랐고, 여러 영화를 히트시키면서 연기의 화신이 된다. 20세기 말에 찾아온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도 문성근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노사모 활동으로 인해 많은 적을 만들었고, 이번 총선에 출마한다는 설도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지만, 난 그가 계속 영화배우로 남아 주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그는 회사 내에서 유능한 사원이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배우로 일하는 것만큼 유능하진 않았을 것이다. 회사에선 다른 누군가가 그를 대신할 수 있다해도, 영화판에서 문성근의 빈자리는 너무도 클 테니까 말이다. 봉태규처럼 길거리에서 캐스팅된 게 아닌,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배우가 되었으니 문성근은 자기 자신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화려하게 성공함으로써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이 사례들을 보건대 자신의 일이 지지부진한 사람은 스스로에게 맞는 길을 찾지 못한 것일수 있다. 이제 뭔가 실험을 시작하려고 폼을 잡다보니, 너무너무 일하기가 싫다. 그간 놀던 세월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고, 일을 하면 술은 어떻게 마시나 하는 생각도 들고, 내 길은 이게 아니라는 생각마저. 내가 뭘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술상무? 며칠을 스트레이트로 마실 수 있으니 일견 봐서는 적합한 것 같지만, 술만 먹으면 쓰러져 자는 요즘의 모습을 보건대 살인적인 술자리들을 이겨낼 것 같지는 않다. 내는 책마다 망하는 걸 보면 글솜씨가 빼어난 것 같지도 않고. 혹시 난, 지구에서는 적성에 맞는 일이 없는 게 아닐까? 진정으로 원하는 건 책방을 하고 거지만, 내가 했다간 딱 망해먹기 십상이다. 모르겠다. 내 안에 무슨 능력이 있는지. 문성근은 서른둘에 자신의 능력을 재발견했고, 박완서는 마흔에 첫 소설을 썼다. 그래서 초조하다. 혹시 아는가. 어제 꿈자리로 미루어 보아 오늘 산 로또가 당첨될지. 로또당첨이 적성이라면 이상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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