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설명: 안주발, 오리발, 이런 걸로 검색했더니 안나와서요...

 

술은 안먹고 안주만 먹는 사람을 '안주발'이라고 하는데, 이런 사람은 대개 환영을 못받는다. 하기사, 나도 그런 사람을 싫어한다. 어제 술을 마시던 도중 막걸리 안주로 나온 '이면수'-물고기 이름이다-를 맹렬한 속도로 작살내는 사람을 보면서, 3년쯤 전에 만난 여자 생각을 했다. 그녀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안주발 중 최고였으며, 앞으로도 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때 난 1회만 하고 없어진, <생존퀴즈>라는 TV프로에 나갔다. 15명 중 9명을 뽑고, 다시 세명을 뽑아 우승을 가리는데, 1등에게만 500만원을 줬다. 난 물론 1라운드에서 가뿐하게 탈락하고 말았는데, 그 악몽이 씻길 때 쯤 전화 한통이 왔다. 퀴즈프로 작가로부터였다.

"500만원 받은 xx씨가 한턱 쓴다고 나오래요..."

난 당연히 안나간다고 했다. 거기 가면 탈락의 악몽이 재현될 것 같았으니까. 더군다나 프로의 특성상, 참석자들은 내가 탈락하도록 만든 공범이 아닌가. 그들이 잡은 날은 다른 약속까지 있었다.

선약 때문에 안된다고 했더니 다시금 전화가 왔는데,  나 때문에 금요일로 미뤘고 게다가 그 프로가 1회를 끝으로 없어졌다는 거다. 마지막 모임을 하자나? 그렇게까지 하는데도 내가 안나가면 혹시나 옹졸한 사람으로 비춰질까 겁이 났다(사실 난 좀 옹졸한 놈이다).

"네... 갈께요..."

작가랑 출연진을 다시 만나니 반가왔다. 근데 500만원 받은 사람이 아직 안왔으며 지금 오고 있단다. 먼저 가서 먹고있기로 하고 장소를 정했다. 강경파들은 횟집이니 스테이크집 등을 가자고 했지만 난 이런 식의 벗겨먹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사람은 회사에서 100만원을 뜯겼으며, 세금도 25%나 냈단다. 상금 탔으니 한턱내라는 요구에 얼마나 시달리겠는가. 내 의견이 받아들여져, 우린 호프집에 가서 푸짐하게 먹기로 했다.

계란말이, 족발, 두부김치, 과일... 안주는 정말 푸짐하게 시켰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자리를 잘못 앉았다. 내가 몸이 좀 실한 6번 출연자랑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것이 실수였던 거다. 안주가 나오는 족족 다 먹는 그녀를 나와 옆 사람은 그저 넋을 잃고 보기만 했다. 저절로 이런 말이 나왔다.

"정말 잘 드시네요..."

그랬더니 6번은 배시시 웃으며 답한다. "예, 그런 말을 많이 들어요."

잠시 뒤 안주가 동이 났고, 6번은 젓가락을 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 배불러!"

그렇게 먹고도 배 안부르면 그게 인간이냐.... 안주없이 술만 먹던 나랑 옆사람은 종업원을 불러 두부김치를 하나 시켰다. 그랬더니 6번이 다시 이러는 거다.

"두부김치 말고, 딴거 시키죠!" 6번은 메뉴를 고르더니 과감하게 탕수육을 시켰다.

그러더니...혼자 거의 다 먹었다. 그날 내가 먹은 건 족발에 나오는 부추랑 두부 한점, 이게 전부였다.... 뭐, 많이 먹는 건 좋은 거다. 특히 여자가 많이 먹으면 좋아 보인다. 문제는 2차 갈 시간인데 500만원이 안오는 거다. 다들 불안해했다. 이럴 때 누가 사야 할까. 다들 학생이고 월60만원을 받는 사법연수생, 갓들어간 회사원 등등 20대의 얼라들인데 말이다. 그래서... 1라운드 탈락한 내가 1차를 샀다! 난 허기진 배를 어루만지며 2차를 갔고, 내가 약속이 있어 자리를 뜬 10시22분까지 500만원은 오지 않았다. 그날 난 새벽에 집에 왔는데, 너무 배가 고파 라면을 먹어야 했다.

생존퀴즈는 1회로 끝이 났지만,  아직까지 모임은 계속되고 있다. 물론 500만원을 갖고 튄 사람과 안주를 먹던 6번-2등을 했던-은 모임에 참가하지 않고 있으며, 참석자 전원은 나처럼 1라운드 탈락자들이다. 술을 마시다 가끔 생각을 한다. 6번은 지금쯤 또 어디서 안주를 먹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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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2-26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크크... 전 6번 아닙니다~~ ^^ 제발이 저려서요.
저도 좀 잘 먹습니다. 그래도 전 남들 먹을게 없을 정도까지는 아닌데.. (알아서 미리 여유있게 시킵니다.)

진/우맘 2004-02-26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아닙니다! 6번...^^;;; (매우매우 제발이 저림 -.-)

비로그인 2004-02-26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1라운드 탈락한 마태우스님이 1차를 내고...그래도 1라운드 탈락자끼리 모임이 계속되고 있다니, 참 신기한 인연이네요...^^

마태우스 2004-02-26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진우맘님/그땐 제가 맘이 좁았었구요, 지금은 그렇게까지 싫어하진 않아요. 안주라도 잘 먹으면 좋죠, 뭐.
앤티크/그래서 이름이 생존퀴즈 아닙니까^^

갈대 2004-02-26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있는 그림에 한표 날립니다...ㅋㅋ

sooninara 2004-02-26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0만원이 안나온것은 왜 일까요??? 저도 6번은 아닙니다..
왜냐면 안주보다 술을 좋아하기에^^
 

 

 

 

 

 

양: 소주 한병, 그리고 생맥주 엄청...
좋았던 점: 2차서 맥주를 마시니 마지막까지 안취할 수 있었다.
나빴던 점
-스켈링을 공짜로 받았는데, 술값이 훨씬 더 나왔다.
-취하질 않다보니 새벽 한시 반까지 마셔버렸다.
-오늘 아침,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과는, 최대한 버티다가 더 이상 고통을 참을 수 없을 때 가는 곳이다" by 스탕달.

내가 어릴 적, 어머니는 스켈링을 시키려고 날 치과에 데려가셨다. 무시무시한 공포 속에서 난 결심했다. "내가 크면 스켈링 안받을거야!"
고등학생이 되어 엄마를 피해 달아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뒤, 난 한번도 치과에 간 적이 없다.

꿈많은 90년대 중반, 난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피가 묻는 걸 목격했다. 그 증상은 점점 심해져, 나중에는 잇몸에서 저절로 피가 나오기도 했다. 이를 닦을 땐 언제나 피투성이었다. 슬슬 걱정이 된 나는 신월동에서 치과를 하고있던 친구를 찾아갔다. 내 입을 본 친구의 말,
"정말 미안하다. 명색이 치과의산데, 친구가 입이 이렇게 될 때까지 관심도 갖지 않았다니"
난 태어나서 한번도 충치를 앓은 적이 없다고, 이에 관해서는 자신이 있다고 얘기했다.
"잇몸 균과 충치 균이 있는데, 어느 한쪽이 우세하면 다른 쪽은 쇠퇴하지. 넌 잇몸이 아주 안좋아"
난 그전보다 더 큰 고통 속에서 치석제거를 받았다. 알러지성 비염 때문에 코로 숨을 못쉬어, 더더욱 괴로웠다.

그렇게 두 번 치석제거를 하자, 잇몸에서 피가 나는 일은 없어졌다. "별거 아니구나!" 난 다시금 예전으로 돌아갔고, 한번 오라는 친구의 권유를 번번히 뿌리쳤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예비군훈련장에서 우연히 후배를 만났다. 치과를 개업했다고, 한번 들르라고 했다. 갔더니 온김에 이를 한번 보잔다.
"형 나이에 이렇게 잇몸이 안좋은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날, 그는 날 아주 작살을 냈다. "형이 아픈 건, 잇몸이 안좋기 때문이어요. 이렇게 나가단 틀니를 해야할지 몰라요"

틀니라... 여자들에게 틀니와 대머리 중 어떤 남자가 더 싫으냐고 했을 때, 한명만 빼곤 모두틀니를 선택한 정도로 악명높은 증상이 아닌가. 이 외모에 틀니까지? 그 뒤부터 난 석달에 한번씩 후배의 치과를 열심히 드나들었다. 하지만 일년쯤 지나자 슬슬 귀찮아졌고, 작년 6월 말 이후부터 다시금 발을 끊었다. 어제 간 건 그러니까 무려 8개월 만인데, 잇몸이 더 안좋아져서인지, 오랜만에 가서 더 아픈 것처럼 느껴진 건지, 스켈링이 끝나고 나서 난 눈물까지 쏟았다.
내 스켈링을 담당한 간호사의 말이다. 초반부, "잇몸이 안좋으시군요" 중반부, "잇몸이 정말 안좋으세요" 나중에..."잇몸이 너무너무 안좋으세요" 그녀는 적어도 스무번 이상을 내 잇몸에 대해 언급했다. 나중에 내 잇몸을 본 후배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한다.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잇몸치료를 해야겠으니, 날짜를 잡읍시다" 

아, 이게 웬 시련이란 말인가. 지나간 세월이 후회가 되지만, 이게 어쩌면 내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인지 모른다. 잇몸치료를 하는 동안은 술을 먹지 말아야 한다고 하니, 3월 말 경이나 되어야 잇몸치료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자는 배고파도 풀을 뜯지 않는 법, 틀니만은 막아야지 않겠는가.

* 참고로 스탕달이 했다는 얘기는 사실은 제가 한 겁니다...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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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2-25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행 잔고가 점점 바닥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요즘은 돈을 찾을 때 잔액을 아예 안보죠. 제가 체중을 못다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무셔워서!

paviana 2004-02-25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치과는 항상 공포의 대상입니다. 아픈것보다는 그 무시무시한 기계소리를 계속 들어야 한다는 것이 더 고통스럽고, 그것보다는 어디서 뭐가 안 좋다는 말을 듣고 시작해야 하는 치료의 그 엄청난 치료비가 더 무섭습니다. 고로 치과를 가야지 결심하는 것은 고통의 강도가 아니라 통장의 잔고입니다..저에게는 ..

waho 2004-02-25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서 젤 무서운게 치과가는 건데. 치과 넘 싫어요. 잇몸 치료 꾸준히 받으심 좋아지시 겠지만 힘드시겠네요.

비로그인 2004-02-25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치과가 무서워요~ 스켈링을 한번 받았는데, '어머, 잇몸이 참 깨끗하시군요'라고 하면서 해주는 걸 보고, 괜히 멀쩡한 잇몸에 스켈링한건 아닌지, 의심을...한번 해보니 더 무서워서 못가겠더라구요~ 그래도 마태우스 님, 앞으로 잇몸치료 열심히 받으셔요~

진/우맘 2004-02-26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끄아아아~ 불쌍한 마태우스님, 잇몸치료는 스켈링보다 20배 정도 끔찍하답니다!!!
저도 잇몸에서 자주 피가 나는 편인데....잇몸치료 받겠느냐 스켈링 20번 받겠느냐 물으면 1초도 생각할 필요 없이 스켈링 20번을 선택하렵니다.
뭐, 겁먹을까봐(하긴, 이미 충분히 겁먹으셨겠군^^;;) 자세한 언급은 피하렵니다.(자상한 진/우맘 ㅋㅋㅋ)
 

 

 

 

 

 

문학베스트 7위에 서서 요시모토 바나나와 이문열을 내려다보고 있는 내 책,  알라딘에는 그 책에 대해 총 4개의 서평이 올라있다. 첫번째 서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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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을 두번 죽이지 말란 말야~
리뷰어 : mmtw2000
상품평점 : 작성일 : 2004 년2월 19일

그동안 딴지일보에 '건강동화'라는 이름으로 연재되던 소설을 기억하시는지.. 딴지에 연재되었던 것뿐 아니라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까지 모은 소설책이다. 마태우스 탐정은 '마침내 태어난 수퍼스타'란 뜻의 마태수가 되었고 각기 별개로 연재되던 이야기들은 각각 연관을 가지고 이어지는 소설이 되었다.

그동안 <기생충의 변명>이라는 책을 통해 '기생충은 그리 나쁜 녀석들이 아냐'라고 대변해주던 작가였고 이 책을 통해서도 기생충은 그리 나쁜놈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소설에서 기생충은 고도의 지능범들의 범죄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중략...단순한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유머를 바탕으로 하여 꽤나 재미있게 읽을수 있는 책이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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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라기보다는 마치 출판사 관계자 같지 않는가? 300부도 안팔린 <기생충의 변명>을 언급하는 것도 웬지 수상하다. 그렇다. 이 글은 내 여친이 쓴 글이다! 두번째 서평.

엽기, 변태, 가학...그 능글맞은 유머 저변에 흐르는 따스한 휴머니즘
리뷰어 : alamh
상품평점 : 작성일 : 2004 년2월 20일

친구 권유로 펼쳐봤다가 서평까지 쓰게되었네요.
최근 인기를 끌고있는 TV시리즈 외화중에서 '몽크'라는 것이 있습니다. 편집증이 있어서 사소한 것에도 과도하게 집착하는 몽크 라는 탐정을 주인공으로 한 추리물이지요. 물론 그 시리즈에서 몽크의 편집증은 매번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하곤 합니다. 탐정의 병적인 성격을 모티브로 줄거리를 끌어나가는 매우 독특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 또 다른 매우 특이한 탐정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마태수'...그의 무기는 다름 아닌 엽기, 변태, 가학성입니다. 하지만 몽크보다도 훨씬 더 웃기고 인간적이며 지적이기까지 합니다. 아마 외모도 그러리라 상상해봅니다.

사건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툭하면 이것저것(인간의 배설물이든 기생충 사체든) 맛을 봐서 확인한다든지, 여기저기 주욱죽 갈라내서 오글오글하는 기생충들을 주물럭거린다든지 (가끔 꺼내 먹기도 합니다 @.@), 인간의 항문에서 10여미터나 되는 촌충을 슬금슬금 끄집어낸다든지...이루 다 묘사하기도 뭣한 마탐정의 행각에 지금도 몸서리가 절로 쳐집니다.

물론 매번 그런 상황이 전제되지 않으면 사건 해결은 불가능한 것이었겠지요. 같은 의사 출신 탐정이라도 오스틴 프리맨의 손다이크 박사는 그렇게 멋지고 고상할 수가 없는데... 징그럽고 더러운 일 도맡아 하고 예쁜 여자와 먹는거(특히 술)라면 사족을 못쓰는 이 마 탐정은 멋지고 고상한 것과는 거리가 한참 먼 부류지요.

하지만 이 인간이 만들어내는 이런 엽기적인 상황들은 자꾸 부딪히다보면 점차 자연스레 익숙해지게 됩니다. 지저분하거나 징그러운 것만이 아닌 이 세상의 매우 중요한 또 다른 모습 정도로 말이지요. 그래서 때론 숭고함까지 느끼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만 추구하는 사이에 세상 이면의 처절한 현실을 붙잡고 손에 피와 흙을 묻히며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 바로 마태수 혹은 저자와 같은 자연과학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거지요. 그 험한 일들을 능글맞게 웃으면서 해내는 마 탐정의 모습이 멋져보이는건 바로 그 탓이겠습니다.

게다가 이 소설의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기생충 탐정 마태수의 처절한 응징의 대상은 결코 기생충들이라 아니라 그것을 이용해 악행을 일삼는 폭력적 인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기생충들은 결코 그 징그럽게 생긴 모습만큼 악당들은 아닙니다. 서문에서 저자가 밝혔듯 그들은 인간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원하며, 오히려 그 공존을 파괴하고 왜곡시키는 것은 인간 악당들이라는거지요. 따라서 마태수는 그 평화로운 공존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시종일관 필사적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국 기생충 같은 보기흉한 미물까지 포함하여 세상 모든 존재와의 평화로운 공존을 염원하는 휴머니즘이 실상 이 소설의 궁극적 주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추리소설로서의 플롯이 엉성하고 캐릭터 묘사도 중구난방인 단점은 있습니다만 마음 따뜻한 자연과학자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한 학문관과 인생관이 담겨있어 특히 생물학이나 의학 전공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겐 큰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말도 안되게 웃기고 재미있네요.

6분중 6분께서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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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은 이렇게 쓰는 거라고 말하는 듯, 정말이지 감탄이 절로 나오는 훌륭한 글이다. 출판사에서는 혹시 내가 쓴 게 아니냐고 의심을 했지만, 나에겐 이런 서평을 쓸 능력은 없다. 그런데... 이사람의 알라딘 서재에 가봤더니, 그가 쓴 서평은 이거 하나밖에 없다. 역시나 냄새가 난다. 그는 내 측근이고, 내 강요에 의해 서평을 썼다는. 그렇다. 그는 전직 피디로, 요즘 한의대 진학을 위해 수능공부를 하고있는 영문학 전공자다. 문과 출신에다 두루 책을 섭렵한 사람답게 훌륭한 서평을 써 주었다. 그다음 서평.

기생충이 한결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리뷰어 : jerry
상품평점 : 작성일 : 2004 년2월 24일

서점에 갔는데 제목이 눈에 띄어 집어들었습니다. 올해 서른이 된 저만 해도 기생충에 관한 추억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대변을 내라고 했을 때 개똥을 집어들고 간 기억, 같은 반 얘 한명이 촌충인가에 걸려 애들이 한동안 그를 피해다닌 기억이 있긴해도, 지금은 기생충이 모두 멸종해 버린 줄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기생충학교실이라는 게 있고,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니 놀랍기 그지없더군요. <대통령과 기생충>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기생충을 연구하는 저자가 저처럼 기생충이 멸종했다고 믿는 사람에게 그렇지 않다, 기생충은 아직 살아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취해 읽기가 부담스럽지 않아 좋았지만, 다 읽고 나니 세상이 온통 기생충 뿐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더군요. 책을 읽고나서부터 자주 손을 씻게 된 것도 이 책이 가져다 준 부작용입니다.

가끔씩 나오는 어설픈 유머들도 맘에 들었지만, 기생충에 관해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게 이 책을 읽고 나서 얻은 소득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뭐가 소설이고 뭐가 진짜인지 헷갈리더군요. 뉴스 진행석에 뛰어들어 '내 귀에 도청장치가 되어있다'고 한 사람이 진짜로 유구낭미충증에 걸려 있었는지, 골프선수 캐리 웹이 정말로 그런 짓을 했는지, 회충약인 알벤다졸의 개발자가 우리나라 사람인 신찬섭인지 혼란스럽더군요. 제가 별 다섯개를 주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저처럼 기생충이 멸종했다는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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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기생충이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써놓고, 본문은 '손을 자주 씻게 된다'고 했다. 친근하면 손을 자주씻냐? 이사람 역시 지금까지 쓴 게 이거 하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내 측근일까? 아니다. 이건....나다! 내가 다른 사람 아이디로 서평을 쓴 것이다. 우하하. 그다음 서평.

독특하다. 기발하다. 유쾌한 엽기다...
리뷰어 : 호민관 ()
상품평점 : 작성일 : 2004 년2월 24일

요즘 세상에 과연 기생충에 관심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라는 생각이 책 날개를 읽으며 들었습니다. 몇 개월 전쯤 mbc 9시 뉴스에서 눈이 가려워 거울을 보았더니 하얀 벌레, 즉 동양안충이 기어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우리 육안으로 쉽게 식별할 수 있는 기생충이다 라는 기사가 순간 떠오르더군요. 평소 눈이 자주 가려웠던 터라 그 기사를 접하자마자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던 기억이 되살아 나, 당장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삼십여 페이지쯤 읽었을까. 에이, 그냥 읽지 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탐정소설이라 하기엔 구성면에서 다소 치밀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단조로웠기 때문입니다. 마태수 탐정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방식 또한 너무나 쉬워 보여 기생충에 대한 의학 지식만 있으면 나라도 해결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책이라도 반드시 한가지 교훈은 있다 라는 게 제 철저한 신념이기도 하여 힘을 내어 열심히 읽었습니다.

별별 기생충들이 다 등장하더군요. 때문에 펼쳐지는 상황들이 엽기적일 수 밖에 없는데요. 기생충을 따라 과거로 돌아가 신찬섭을 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태수와 왕회충과의 대격전은 여느 성룡 영화 못지않게 치열하기까지 하더군요. 특히 검지손가락 두 개를 이용한 치명타를 날릴 때는 그만 온 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꽤 유쾌하게 읽힙니다. 무엇보다 '재미'가 있습니다.

기생충학자들이 청와대로 시위하러 갈 때 '회충을 한 마리씩 목에 감고 가자'고 결의하는 장면은 상상만으로 웃음이 터집니다. 그리고 영화 터미네이터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에선(p.92) 정말이지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더군요. 책 곳곳에 이렇듯 억지스럽지 않은 유머가 깔려 있어서인지 큰 불편없이 단 하루만에 읽어 버렸습니다. 저자가 기생충 학자이기 때문에 기생충을 매개로 한 이런 기상천외한 소설이 가능했던 것 같고요. 참으로 독특하고 기발합니다.

아래 두 번째로 서평을 쓰신 분이 언급한 대로, 마태수는 콜롬보처럼 멋진 바바리 차림으로 폼 재지도 않습니다. 탐정 활동하기에 편하다는 이유로 빨간 츄리닝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눈도 작아 외모도 낙후한데다 미인만 보면 정신을 못차리는 캐릭터지만 결코 밉지가 않습니다. 그의 가슴엔 악의 무리를 응징하고자 하는 불타는 정의감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지요.

저자는 혐오스러운 외모로 우리에게 갖은 멸시와 천대를 받는 회충이나 그 외 여러 기생충들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한편, 그들을 더 깊이 알게 되면 결코 인류에게 해를 끼칠 의도는 없으며 실은 인류와의 평화공존을 원하고 있다고 밝힙니다. 치명적인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 바에야 '밥 한 숟갈 더 먹어주면 된다' 라는 저자의 기생충을 향한 각별한 사랑 앞엔 자못 숙연해 지기까지 합니다.

이 책은 별 수사없이 담백한 문체로 쓰여져 쉽게 읽힙니다. 또한 재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로만 끝나는 게 아니며 유익한 정보를 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의도했건 아니던 간에 결국 인간에게 끔찍한 결과를 가져다 주는 스파루가눔 이라는 벌레가 뱀에 의해 전파된다는 사실 이외에도, 흔히 우리가 마시게 되는 약수에서 스파루가눔에 걸린 물벼룩을 함께 삼켰을 경우, 똑같이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 등은 무척 요긴한 정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친절하게도 뒤에 부록으로 실린 여러 기생충에 대한 의학 정보는 의학에 문외한인 우리 일반인들이 꼭 한번 읽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박민규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낄낄대며 재미있게 읽었다거나, 그런 식의 유머에 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 역시 즐겁게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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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역시 지금까지 쓴 서평이 이거밖에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내 측근일 것인데,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 어제밤 서평을 올리겠다고 한 사람이 있긴 했지만, 오후 다섯시가 넘으면 이틀 후에 올라오는 알라딘의 시스템을 생각하면 그는 아닌가보다. 누굴까?

교보에 오른 또다른 서평.

 기대이상의 놀라움~~ [sw5246] ㅣ 2004-02-23 ㅣ
 작년에 기생충에 변명이라는 책을 선물받아 보게 되었는데...
큰 충격과 큰 재미를 준 책이었다....후략

<기생충의 변명> 얘기가 나오는 거나, 별 다섯개를 준 건 내 측근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아이구, 내 측근 말고는 아무도 서평을 안썼다는 것은 나랑 내 측근 말고는 책을 산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얘기? 문학베스트 7위의 빛 아래에는 이런 그림자가 있다. 서평질서를 어지럽힌 것에 대해 알라딘 측에 심심한 사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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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e 2004-02-25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 님이 직접 쓰셨다는 서평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사무실을 어지럽히며 웃어제꼈습니다... 정말 장난이 아니군요... (얼른 사서 읽고 서평 쓸게요...^^)

비로그인 2004-02-25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다들 서평을 무지 잘쓰시는데요!! 화려한 측근들...^^ 과연 마태우스님이 다른 사람 아이디로 썼다는 게 사실일런지...개똥얘기는 무척 친숙한데...ㅎㅎ 측근말고 책을 산 사람이 없었다기보다, 면식이 있는 관계라, 서평쓰기가 좀 더 주저되는건 아닐까요~~ 아님 곧 올라오거나. ^^

_ 2004-02-25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저도 마음껏 드러내놓고 서평적을 만한 능력이 되면 마태우스님의 책에도 한번 서평도전을 해 볼터인데, 능력부재라 아쉽군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여기 서재에 들르시는 분중의 서평이 하나 오르지 않을까 싶기도 하군요. 조만간 그 그늘또한 그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연우주 2004-02-25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걸 공개적으로 밝히면 알라딘에서 알게 될 텐데, 후한이 두렵지 않나요? ^^;;;

배바위 2004-02-25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혼자서 소리나게 웃었습니다. 어,,, 그런데 우리 담당직원분이 혹시나 지나다가 이 글을 보면 어떻게 조치하실지 정말 궁금하네요... 모른 척 할 것이냐, 아니면 독자서평관리지침을 준수할 것이냐... 좌우간 기발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연우주 2004-02-26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마태우스님 제가 꼭 서평을 써서 제 누명을 벗겠습니다. 그, 그게 아니거든요. 깊이 깊이 용서를 바라며..^^

_ 2004-02-26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처를(??)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ㅠ_ㅠ

sooninara 2004-02-26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님이 무슨 누명을??? 저도 빨리 리뷰를 써야하는데..문제는 글발이 딸려서..
어쨋든 저도 측근에 들어가나요?

그리고 이렇게 웃긴 마이페이퍼는 처음 봅니다..저도 미친듯이 웃었습니다..
우리아이들이 엄마 왜 저래하면서 보고 있네요
 

 

 

 

 

 

어제, 출판사 분 두분, 디자이너 두분과 술자리를 했다. 디자이너라고 해서 여자분인줄 알았는데 남자인데다 아주 험상궃게 생겼다. 외모와 디자인 능력은 별 상관이 없음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좀 한심했다. 그와 열심히 술대결을 벌였는데, 막판에 그가 술 먹는 시간이 길어지고 혀도 꼬인 걸로 보아 나의 승리였다.

지갑을 잃어버리니 영 불편하다. 어젠 내가 계산을 해야 했는데, 카드가 없어서 중간중간 화장실 하는 척하고 지갑에 돈이 얼마 있는지 나가서 확인하곤 했다. 카드 발급까진 10일 정도가 걸린다는데, 그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사람들이 그랬다. 주민등록증 재발급은 만원이고, 신청하면 바로 나온다고. 근데 내가 신청하러 갔더니 20일이나 걸린다고 하고, 가격도 5천원이었다. 그래서 임시 주민증을 발급받았는데, 이 종이 쪼가리만이 내가 나라는 걸 증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습다. 나는 난데....

술을 하도 먹었더니 금단증상이 생기려고 한다. 술잔을 기울일 때마다 손목을 꺾었더니 이젠 근무시간에도 저절로 손목이 까닥까닥한다. 아까는 다른 사람에게 책을 주면서 '사모님께도 안부 전해주세요'라고 써야 할 것을 '안주 전해주세요'라고 써버렸다....

오늘은 치과를 하는 후배랑 한판 붙는다. 그 인간은 주량이 다섯병이라 원래는 버거운 상대지만, 자기 말로는 요즘 술을 통 안마셔 한병밖에 못마신단다. 혹시 댓병으로 한병이 아닐까 의심이 가지만, 그래도 한판 붙어볼 생각이다. 간김에 스켈링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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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 2004-02-2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주 전해주세요' 큭!!

비로그인 2004-02-24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요새 마태우스님의 빡빡한 술일기 스케줄에 제가 다 정신이 어~찔합니다. 조만간 재충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ㅎㅎ부디 오늘도 몸조심 하세요~~

쎈연필 2004-02-24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주동의 문주반생기와 변영로의 명정40년이 생각납니다. 대단하세요. '안주 전해주세요'는 압권이군요!

sunnyside 2004-02-24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민등록증 잃어버리고도 2년 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운전면허증도 어디에 두었는지 까먹어서 못본지 오래..
근데.. '일곱개의 금단지'라니, 알라딘의 검색 엔진은 정말 대단하군요!

마태우스 2004-02-25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티크님/아닌게 아니라 오늘은 몸조심 좀 하려고 합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
자두상자님/그분들에 비할 바는 아니죠. 갑자기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서니사이드님/'금단'으로 검색하니 그책이 나오더군요^^
 

 

 

 

 

 

내 소원이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너무 좋아 펄펄 뛸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그런 일이 생기고, 내가 꿈꿔오던대로 대응을 했는데, 기분은 생각했던 것만큼 좋지 않다. 큰 범죄를 저지른 듯 가슴이 뛰고, 미안한 마음이다.

오늘 아침,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조선일보 기자가 책과 관련하여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그때부터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하구 많은 신문들 중 왜 하필 조선일보람? 조선일보의 지대한 영향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극우냉전 이데올로기를 설파하고, 숱한 왜곡과 거짓말을 하는 그 신문에 대한 안티운동에 난 오래 전에 서명한 뒤였다. "한번만 해주시면 안될까요?"라는 출판사의 부탁을 난 겨우 뿌리쳤다.
"그건..제 영혼을 파는 일이거든요"

사실이 그랬다. 내 홈피에 조선일보에 대해 써놓은 욕이 얼만데 그 신문과 인터뷰를 한담?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한 문부식을 내가 얼마나 씹었었는데? 무엇보다 홈피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 날 어찌 볼 것인가를 생각하면, 인터뷰란 도무지 말이 안됐다.

몇시간 후, 조선일보 기자가 드디어 전화를 했다. 인터뷰 때문에 좀 만나잔다.
"도와주시려는 건데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한데요, 제가 사정상 인터뷰를 할 수가 없거든요"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미안했다. '저 기자가 나쁜 건 아닌데' 하는 맘 때문에.
기자가 묻는다. "조선일보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겁니까?"
아따 그사람, 눈치도 빠르네.
"네, 제가 안티조선이라서요"
기자는 알았다고 전화를 끊었고, 그때부터 내 가슴은 계속 두근거리고 있다.

미안하긴 하다. 기자한테도, 그리고 '일등신문'에 실려 책을 좀 팔고픈 출판사에도. 하지만 내가 인터뷰에 응했다면 겪어야 했을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거절은 백번 잘한 일이다. 책이 좀 안팔리면 어떤가. 내 영혼의 값어치가 그깟 책 몇십, 몇백권과 맞바꿀 성질은 아닐터다. 그래, 신문에 안실리더라도 내가 다 사면 되지 않는가? 보라, 내 책이 알라딘 문학베스트 9위다! 이문열이 새로 낸 <산들메> 어쩌고를 제꼈다^^. 조선일보야, 난 너희 도움 필요없고, 그냥 내 힘으로 할께. 니들 덕분에 오늘 나 소원성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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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거절한 직후 기차에서 쓴 글입니다. 글을 옮기면서 생각해 보니, 제가 거절할 수 있었던 건 책이 안팔려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동인문학상에 대한 황석영의 거부와 공선옥의 거부는 분명 다른 차원의 거부일 것입니다.

아쉬운 것은, 어떤 작가가 조선일보를 거부했을 때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입니다. 성석제가 동인문학상을 탔을 때, 그에 대한 비판 글들이 여럿 올랐었죠. 하지만 성석제처럼 책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에게 작가적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조선일보 거부'를 강요하는 게 합당한 일일까요? 그런 강요가 가능하려면 공선옥처럼 어려운 처지에도 조선일보를 거부한 작가의 책을 조금이라도 팔아 줘야 할텐데 그런 건 없고 그저 "니 잘했다"라는 말 뿐이더군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대급부도 없는데 조선일보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만 해도 그 달콤한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던데, 전업작가들은 오죽하겠습니까? 떠오르는 생각을 두서없이 써 봤습니다 (갑자기 걱정...혹시...제 책을 사달라는 칭얼거림으로 읽히진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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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_ 2004-02-24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결정하셨네요. 얼마전에 고종석씨의 '과연 내가 먹고사는데 급급했다면 조선일보의 기고 요청을 단호히 거절할 수 있었을까?'라는 글이 떠오르는 군요. 세상이 세상이다 보니, 정말 돈과 자기이념과의 괴리는 무시하지 못하나 봐요. 그런 면에서 보면 정말 공선옥씨 같은 분들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마태우스님의 결정이 그에 못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

문학베스트 10위권에 진입하시는데 제가 일조하지는 못했으나, 정말 축하드립니다. ^^

갈대 2004-02-24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신념을 지키는 모습, 멋집니다!!

paviana 2004-02-2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 정말 마태우스님 대단하시네요..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겸손하게 말씀하셨어도 자기 이득에 조금이라도 손해되는 일이라면 안 하고 싶은게 인지상정이니까요..마태우스님도 안티조선이시군요..반갑네요.근데 그 기자 그런일 자주 겪나봐요.눈치빠르게 알아채다니..^^

chaire 2004-02-24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서없이 쓴 글이라지만, 참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유명 작가인 공선옥보다도,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르는데도(소설판에선 아직 신참이시니^^), 담담히 "제가 안티조선이거든요"라고 말씀하시다니... 저라면 절대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막 둘러대긴 했겠지만, "제가.. 인터뷰를 워낙.. 무서워하는지라..." 어쩌구 하면서... 암튼 마음깊이 박수칩니다.

nrim 2004-02-24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어려운 결정 하셨네요. 남의 일에 배나라 감나라 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 신념을 지킨다는 일이 쉽지는 않은듯. 저도 문학 베스트 10 진입 축하드립니다. ^^

그루 2004-02-24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겁니까?" 보고선 제가 섬찟 놀랐네요. 어려운 결정에 마음 보냅니다. 축하드리구요. ^^

가을산 2004-02-24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전 인터뷰가 아니라 구독권유하는 전화만 거절하고도 의기양양한데.. ^^;;
'조선일보 안봅니다' 하면 알아서 포기하더군요.

비로그인 2004-02-24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조선일보의 파워란 그렇게 막강한 것이었군요. 전 잘 몰랐답니다. ^^;; 그래두 마태우스님 지조있는 모습 멋진데요~ ^^

쎈연필 2004-02-24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의 소설집에 님도 서평을 쓰셨던 걸 기억합니다. '너그러운 자유주의자'에 대한 논쟁이 그 소설집에 있었지요. 쉬운 일이 아닌데... 마태우스님 멋지십니다^^

mannerist 2004-02-24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십니다! 마태우스님 브라보~!!

2004-02-24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oninara 2004-02-24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개월 무료때문에 남편눈치보면서 조선일보로 바꿨습니다..그전에 보던 ㅈ 신문이 배달사고가 자꾸 생겨서..남편에게는 "나쁜신문이라지만 얼마나 나쁜지 한번 보도록 하자"했지요..
그런데..조금 심하긴 하더군요..조선일보..매일 읽다보면 우리나라 큰일날것같은 불안감이 들어요...

찌리릿 2004-02-2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테우스님께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

저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상업성'과 '조선일보'의 관계에 대해서 많이 느낍니다. 회사 PR용 보도자료를 돌릴 때 당연히 빼놓지 못하는게 조선일보이고, 일단 나왔다하면 가장 영향력이 느껴지는게 조선일봅니다.

제가 사장 정도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에 보도자료 돌리지 않을 것"이라고 방침을 정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입장이니...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저와 관련된 회사 PR이 조선일보에 이따만큼하게 크게 나왔을 때... 기분이 참 묘하더군요.

여튼.. 출판시장은 조선일보의 신간소개가 필수라고 할만큼 큰 부분이고, 마태우스님처럼 조선일보에 의도적으로 PR을 하지 않으신 분들이 '그냥 뚜벅뚜벅' 성공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과 기생충>.. 갑자기, 꼭, 기필코 읽고 싶어집니다. ^^


연우주 2004-02-24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용기에 박수, 박수, 박수~~~
아, 그리고 저 간만에 페이퍼 썼습니다. 읽고도 코멘트 달아주세요...흑.
중요한 글인데 제가 글 안 쓴다고 해서 그런지 안 읽어주시는 것 같아요. 흑흑.

마태우스 2004-02-25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도 많은 분들이 찬사를 보내주셨군요. 제가 한 일이 그리도 대단한 일이라니, 제가 더 놀랍습니다.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