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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라는 논문은 안쓰고 이런 것만 쓰는군"
지난 화요일, 모교에 가서 책을 드리자 모 교수가 한 말이다. 그 선생님 뿐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도 매우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내 지도교수는 "시간이 많네"라고 하셨던가. 미리 예상을 했기에, 책을 드릴 때 난 매우 주눅이 든 표정이었고, 마치 큰 죄를 저지른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선생님들이 내 책을 그리도 못마땅하게 생각하신 건 다음 이유일 것이다.
첫째, 아니 니가 뭘 안다고 책을 써?-마찬가지 이유로 선생님들은 아래 사람이 방송에 나가 전공에 대해 떠드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둘째, 연구는 안하니?-내가 좀 연구에 게으른 것은 사실이다. 내년에 재임용 심사가 있는데, 그게 최대 고비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책을 낸 것을 왜 그리 범죄시하기만 하는지, 약간은 서운하다. 학문이라는 게 대중과 유리된 채 '그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은 과히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예컨대, 사람들 대부분이 기생충이 멸종했다고 알고 있으며, "너희는 뭐먹고 사니?"라는 눈으로 우리들을 보는 현실에서, 우리가 아무리 일년에 수십편씩 외국잡지에 논문을 게재한들 누가 알아주겠는가? 그래서 난 학문이란 가끔은 대중과 소통할 필요도 있다고 보며, 연구에는 게으르지만 전문분야를 쉬운 말로 풀어쓰는 데는 소질이 있는 나같은 사람이 '기생충의 대중화'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을 위한 논문을 쓰는 것도 의미가 없진 않겠지만, 내가 기생충에 관해 책을 쓴 것도 나름의 의미는 있다고 본다.
선생님들만 그러는 게 아니다. 2년 전 난 기생충에 관한 르포를 썼는데, 그 책은 업적 점수에서 고작 50점을 받았을 뿐이다. 논문 한편이 150점, 외국논문이 300점(그 점수를 저자수로 나눈다)인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적은 점수다. 그 책이 학술서로 인정받았다면 250점을 받았겠지만, 학교 측의 의견은 '대중서'란다. 그해 말 워크숍에서는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대중서를 써놓고서 학술서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는데..." 뭐야. 그거 나잖아!
대중서를 학술서에 비해 낫게 보는 시각이 난 못마땅하다. 물론 대중서에는 학술서가 갖는 학문적 깊이는 없겠지만, 그래도 보다 많은 사람에게 읽히며, 그럼으로써 유익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다. 반면 학술서는, 아주 훌륭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읽지 않는다. 일반인은 재미없어서 안보고, 학자들은 "아니 쟤가 뭘 안다고 책을 써?" 하면서 안본다. 주면 받지만, 대개는 책꽂이에 꽂혀 다시는 펼쳐지지 않을 운명을 맞는다. 내 책꽂이만 해도 그런 책이 몇권 있는데, 잠시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종이가 아깝다.
상아탑에 갇힌 학문은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난 김상봉이나 이정우같이 '철학의 대중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논어>를 널리 알린 김용옥도 그런 면에서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 선생님들이 내 책에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학계는 그들을 비하하기 바쁘다. 그런 폐쇄성이 난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