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기전에 습관적으로 TV를 켜는 버릇이 생겼다. 늘 술에 취해 들어오니 책을 읽기도 그렇고, 잠도 안오고 해서 그러는 것 같다. 엊그제도 TV를 켜고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는데, 갑자기 낯익은 미녀가 눈에 들어온다. 꾸미지는 않았지만, 미모란 건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튀어나오기 마련. 그렇다. 그녀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안젤리나 졸리였다. 순전히 졸리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난 별 재미도 없는 <툼 레이더> 1, 2편을 봤고, <오리지널 씬>, <어느날 그녀에게 생긴 일>도 넋을 놓고 보지 않았던가. 내가 졸리를 사모하는 정도는 전에 쓴 <오리지널 씬> 감상문에 잘 나타나 있다.

[...내가 손가락을 입에 넣으면 주위에서 "더러워!"라고 말할 꺼다. 하지만 안젤리나 졸리는 손가락을 입에 넣어도 야하고, 고개를 45도 각도로 돌려도 야하고, 무슨 말을 해도 야하다. 별 줄거리는 없지만 화면에 있는 그녀의 모습만 바라봐도 별로 돈이 아깝지 않은 영화가 아닐까. 화면을 정지시켜놓고 관찰한 결과 그녀의 섹시함은 엄정화와는 비교가 안되는 촛점없는 눈동자와 두툼한 입술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물론 입술이 두껍다고 아무나 야한 건 아니다. 우리 때 한 남자애는 입술이 두꺼워서 별명이 '썰면 두접시'였던가 그랬다. 또한 촛점이 없다고 누구나 야할 수는 없다. 나같은 사람이 그랬다간 "멍청해 보인다"는 소리만 들을 뿐이다.... 하여튼, 이름은 '졸리'지만 잠이 확 깨는 '졸리' 만세!]

졸리는 전신마비가 되어 손가락만 움직이는 형사(댄젤 워싱턴)의 자문을 얻어 미치광이 살인범을 쫓는데, 침대에 누운 채 마우스만 움직이는 댄젤의 모습은 베르베르가 쓴 <뇌>를 연상시켰다. 지금이니까 하는 소리겠지만, 혹시라도 내가 그런 상태가 된다면 난 어떻게 해서든지 생을 마감하려 하지 않을까? 비루한 내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도 고통일테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쳐가면서까지 생을 연장하고픈 마음은 생기지 않을거다.

아무튼 졸리는 점점 댄젤에게 끌리는데, 급기야 졸리가 형사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갤 때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안돼!" 졸리만 나오면 민감해지는 내 자신이 나도 민망하다.

결국 졸리는 범인을 잡고, 늘 그렇듯이 범인은 의외의 인물이다. 졸리가 도서관에서 찾은 책의 그림이 실제 살인현장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할 때만 머리칼이 쭈뼛했을 뿐, 나머지 시간은 편하게 TV를 볼 수 있었는데, 이건 내가 범인의 잔혹함에 초점이 맞춰졌을 초반부를 보지 못한 탓이리라. 영화 개봉 때 안본 이유는 뻔한 플롯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지만, 그때 볼 걸 그랬다. 영화도 그럭저럭 재미가 있었는데다, 졸리의 미모는 대형 스크린에서 더 빛날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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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3-13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케이블 TV에서 본 콜렉터를 몇 번 봤었습니다. 그럭저럭 재미있더군요. 거기다 저 역시 안젤리나 졸리를 섹시함의 화신 정도로 생각하는지라...(특히 오리지날 씬 에서는 섹시함의 끝간곳을 보여 주었지요) 졸리 나온 영화중 제일 좋았던건 위노나 라이더하고 같이 나온건데 정신 병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거든요(제목은 기억이 잘...) 그 영화에서 안젤리나 졸리 정말 멋있었습니다. 전 무지하게 이쁘고 섹시한 여자가 중성적인 매력을 풍기면 돌아버리는데 거기서 안젤리나 졸리가 그랬거든요. 님도 안보셨다면 꼭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진/우맘 2004-03-13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졸리의 입술, 같은 여자도 한 번 깨물어 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저 입술 때문에 한 때 성형외과가 입술에 주사 맞으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는 풍설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서시가 미간 찌푸려서 이쁘다고, 다 찌푸리면 이쁩니까. '썰면 두 접시' 소리 듣기 십상이지...

Viewfinder 2004-03-13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만두 같은 그 입술을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졸리를 좋아했지만 유일하게 맘에 안 드는 게 입술이던데,,,
신인일 때 찍은 Hackers 에서 젤 처음 눈에 띄었는데 역시나 개성 강한 배우가 되더군요.
저는 안 봤지만 플라시보님이 언급한 Girl, Interrupted (1999) 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았죠.
졸리 팬이라면 업계에서 졸리를 인정하게 만든 영화 Gia (1998) (기아 아님다 ^^;) 도
좋아하실 겝니다.
졸리의 눈빛은 촛점이 없다기 보다는 사람을 꿰뚫어 볼 것 같은 강렬함과 집중력이 있는 눈빛
아니던가요? ^^

마태우스 2004-03-13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그 영화-걸, 인터럽티드라고 뷰파인더님이 가르쳐 주시네요-꼭 보도록 하겠습니다!
진우맘님/전 깨물기는 싫구요, 그저 바라보는 걸로 만족하고파요.
Viewfinder님/눈빛에 대해서... 음... 전 왜 그게 몽롱하게 느껴지죠? 어디 보는지 모르겠던데....
 

 

 

 

 

 

탄핵발의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난 그냥 한쪽 귀로 흘려듣고 말았다. 그냥 폼만 잡는 거겠지, 아무리 정치인들이 인간 말종이라지만, 그정도까진 아니겠지. 이런 생각은 두발로 걷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난 대선기간, 난 노사모였다. 특별히 한 일은 없지만 이따금씩 집회에 참석했고, 후원회비를 냈다. 무엇보다 노무현의 당선을 진심으로 바랐으며, 그의 당선에 로또라도 당첨된 양 환호했다. 노사모의 존속여부를 묻는 투표가 '존속'으로 결정되고 난 뒤, 난 미련없이 노사모를 탈퇴했다. 대통령이 된 이상 노무현 스스로가 알아서 하리라 생각을 했고, 우리가 노무현을 지킬 이유가 없어 보여서였다.

어제 저녁 버스를 타고 가는데, 탄핵에 대해 시민들의 여론을 듣는 방송이 나온다. 전화를 건 사람들은 대부분 탄핵에 대해 코미디라며 반대 의사를 보였고, 말도 안되는 일을 몰아붙이는 국회의원들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그 방송을 듣고 있자니 갑자기 열이 받았다. 저따위 애들한테 "우리가 남이가" 해가면서 표를 몰아준 게 누군가? 바로 우리다. 그런데, 전혀 그럴 줄 몰랐다는 듯이 정치권만 성토하면 모든 죄가 사해지나?

여러 사람이 말하듯, 탄핵은 분명 코미디다. 10분의 1이 넘으니까 은퇴하라는 말을 그 열배를 쓴 장본인인 한나라당이 하는 것도 그렇고, 범죄자들의 온상인 국회에서 대통령의 위법을 빌미로 탄핵을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래, 한나라당이 이런 애들인지 미처 몰랐는가? 한나라당의 뿌리는 전두환 집권시의 민정당이며, 좀더 내려가자면 일제 때 친일파들과도 맥이 닿아 있다. 과거는 어떤 형식으로든지 현재에 영향을 미치며, 우리가 사람을 판단할 때 그의 과거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한나라당이 벌이고 있는 닭짓은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그렇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최소한의 머리는 있을 터, 엄청난 역풍이 몰아닥칠지 모르는 탄핵을 진짜로 성사시키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제밤, 술에 거나하게 취해 서울로 올라가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탄핵이 임박했는데 지금이 술마실 때냐? 빨리 촛불들고 여의도로 와"
난 이렇게 답했다. "나 지금 열흘째 술마셔서 너무 힘들어. 내 몸을 지키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노무현이 뭐란 말야. 내가 안가도 잘 될거야"
하지만 아니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최소한의 이성이 남아있으리라는 판단은 전적으로 착오였다.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어느덧 가결정족수에 이르렀다는 보도가 나왔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오늘 점심 때, TV를 통해 무혈 쿠테타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사회는 나처럼 맨날 술이나 퍼먹으면서 유유자적하는 소시민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구나!"

어쩌면 난 탄핵이 가결되기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탄핵은 민주주의에 대해 신념을 가진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분노를 던져줬지만, 이번 일은 한국 정치의 지형이 크게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 때가 온 것이다. 우리가 몰랐을 뿐, 87년 6월 항쟁 때 청산하지 못했던 군부독재 세력은 아직도 이 땅을 지배하고 있었으며, 이번 탄핵은 그 사실을 입증해 줬다. 부패에 찌든 기득권을 청산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선봉에 서지는 못할지라도, 앞으로 벌어질 싸움판에는 언제나 내가 있을 것이다. 2004년 3월, 한국사회는 시민혁명을 필요로 한다. 2002년 대선 때, 개혁당에서 노무현을 후보로 옹립하면서 문성근이 했던 말을 다시금 옮긴다.
"가자! 가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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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4-03-12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멋진 출사표네요. 전 열열한 노사모도 아니었지만, 후원회비 내고 밤새워가며 개표방송 지켜봤던 사람으로서 여전히 노무현이 자랑스럽습니다.답답하구 머리 아퍼 뭐라고 써여 될지도 모르겠네여..

_ 2004-03-12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에는 노무현대통령을 아니꼽게 바라보다가 점차 노무현 옹호론으로 기울었는데요,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한나라당이 자기 안도 못다스려 분열할만큼 허약했는데, 그런 이들이 뭉쳐서 노무현을 탄핵할 정도면 얼마나 무능력한 대통령이냐..' 그러고 보니, 한나라당은 자기들의 내분을, 오직 그 내분을 모면하기 위해 그렇게 결사적으로 '뭉치기'를 강요한게 아닐까 해요. 병렬오빠의 마지막 발악정도? 마태우스님의 출사표의 의미만큼 그 가는길에 변화가 꼭 있었음 좋겠습니다. (제가 들어왔을때 막 3000hit군요. 축하드려요, 딱 3000에 들어 왔는데 상품같은거 없나요? 제주도 3박4일 티켓이라든지.;;;;)

진/우맘 2004-03-12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출사표에 괜히 흥분해서.... 원치 않았던 일을 하나 벌이고 말았습니다. TT
책임지세요~

마냐 2004-03-13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노무현이 대단하다는 겁니다. 아마, 여의도를 메우고, 심지어 "햏자들도 화났다, 국회는 뷁"이라는 깃발까지 등장할 정도로...후폭풍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지 않았을까요...멍청한 한나라당, 지지율 추락중입니다. 불과 몇달만에 열린우리당은 1당 가능성을 굳혔습니다. 민주주의란게 이렇게 발전하는거라 해도..암튼, 나라 전체를 뒤흔든 오늘 사태...진정한 정치 개혁의 불길로 이어진다면..노통의 무리한 승부수도 이해해야할까요.

mannerist 2004-03-13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저녁,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과 신촌에서 술을 마시며 같이 씹어댔습니다. 한달 후에 보자는 각오를 굳게 다지기는 친구들이나 저나 마찬가지였지만, 저는 '비판적 지지'와 '소극적 진보'를 대상으로 싸워야 할 사람들이 먼저 생각더군요.

2004-03-13 0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아침에 샤워하다가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픽션이구요, 이걸로 인해 상처받으시는 분이 제발 없으시기를! (탄핵 가결로 전 이미 상처받았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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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씨(가명. 3x세)는 직장에 출근하면 컴퓨터를 켜고 맨먼저 알라딘에 접속한다 (최근에는 아예 초기화면으로 깔았다). 전날 자신이 올린 글에 어떤 코멘트가 달렸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 코멘트들에 답글을 달고나면 남들이 쓴 글에 코멘트를 달러다닐 차례, 24시간 내에 작성된 글들을 클릭하며 코멘트를 달다보니 한시간여가 훌쩍 지나간다. 시상이 떠올라 글이라도 한편 쓰고나면 또다시 몇십분이 흐르고, 그 글에 누가 코멘트를 다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서재를 수없이 왔다갔다한다. 서민씨가 그날 오전에 한 건 논문 두줄이 전부. 서씨의 말이다. "남들이 제 글에 코멘트를 썼는데, 제가 답글을 안달면 예의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자꾸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실제로 서민 씨는 1분 간격으로 코멘트와 답글이 이어지는, 소위 '실시간 코멘트'를 경험하기도 했다. 다음은 서씨의 서재에서 발췌한 코멘트 내용이다.

앤티슈: 우아, 서민님. 허접한 글 잘읽었어요 (AM 10:43)
서민: 헤헤, 제 글이 허접한 거 어떻게 아셨어요? (AM 10: 43)
앤티슈: 하하, 보면 몰라요? 전체적으로 허접하잖아요. (AM 10: 44)
진/우밥: 내가 봐도 허접하구만! (AM 10: 45)
서민: 어, 진우밥님, 안녕하세요? 글쿠나. 허접하구나 (AM 10: 45)

이런 실시간 코멘트는 다른 서재에서도 흔히 발견된다는 게 서씨의 말이다. 서씨가 직장에서 알라딘에 접속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다섯시간. 너무 많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서씨는 이렇게 말한다. "저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막상 접속을 하고나면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최고인기 서재를 보유하고 있는 블라시보(가명)님의 서재에는 하루평균 100개의 코멘트가 달리는데, 거기에 일일이 답을 하면 두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블라시보님의 말이다. "가끔은 힘들 때가 있지만, 인기란 어쨌든 좋은 거 아니겠어요?" 진우밥, 검은빗, 갈채, 순이나라(이상 가명) 등 인기서재의 주인공들은 "알라딘 때문에 일에 전념할 수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알라딘 폐인으로 진단되어 현재 격리치료중인 연분홍빛우주님의 고백이다. "공부를 하려 했는데 알라딘 초기화면이 눈에 어른거려 집중이 안됐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알튀세르' '알레고리'처럼 '알'자가 눈에 들어오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연분홍빛우주님처럼 알라딘 폐인으로 진단되어 고통을 겪고있는 사람은 줄잡아 500여명, 경제활동 인구 전체로 보아 얼마 안되는 숫자 같지만, '생산력 있는 상위 5%가 총생산의 95%를 차지한다'는 파레토의 법칙을 감안한다면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막대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로 작년 12월 알라딘 서재에 마이페이퍼 기능이 추가되면서부터 급격한 생산성 위축이 관찰되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알라딘 폐인의 숫자가 두배로 늘어난다면 연간 GDP 성장률이 1% 정도 하락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반면 인터넷교보 측은 알라딘이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몰리자 희색이 만면. 익명을 요구한 최병렬 인터넷교보 대표는 "알라딘 서재를 따라서 북로그를 만들었는데, 호응이 없어 괴로웠다"면서 "일이 이렇게 되니 인기가 없는 게 오히려 잘된 일 같다.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게 실감이 난다"고 말했다. <참회연대>와 <경질련>등 시민단체들은 "경제위기의 주범 알라딘은 서재를 당장 폐쇄하라!"며 서소문 앞에서 밤늦게까지 시위를 벌였고, '알라딘을 사랑하는 모임(대표: 자몽상자님)' 회원 20여명은 '서재사수'를 외치며 농성 중이다.

전문가들은 "경제위기의 원인을 서재 하나로 돌리는 것은 무리"라며 알라딘의 손을 들어줬지만, "지나친 접속으로 인해 폐인이 되는 것은 개인적, 국가적 손실이니 적당히 접속하는 게 좋다"고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부록: 혹시 나도 알라딘 폐인?
국제 알라딘협회에서는 알라딘 폐인의 진단기준을 발표했는데, 이중 세가지 이상을 만족하면 자동으로 진단된다.

-하루 4시간 이상 알라딘에 가있다.
-글을 하루라도 안쓰면 못견딘다.
-코멘트가 달렸을까봐 글을 올린 지 10분 이내에 다시 가본다.
-'알'자만 봐도 흥분한다.
-친구, 친지보다 다른 알라디너가 더 좋다.
-알라 신으로 개종했다.

(정리=마태우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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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2004-03-1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위에 갈채는 혹시 저를..-_-a? 제 서재는 생각보다 인기가 없답니다^^; 국제 알라딘협회의 폐인 진단기준에 따르면 저는 마땅히 알라딘 폐인 1급 자격증을 수여받아야만 합니다. 마태우스님 글 덕분에 탄핵으로 뒤집혀버린 속을 잠시나마 삭히게 되네요.

마태우스 2004-03-12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 맞구요, 갈대님 서재는 인기여부에 관계없이 '최우등 서재'라고 생각합니다. 님의 글을 읽고 감탄한 적이 하도 많아서요...

비로그인 2004-03-12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정말 알라딘 폐인이 되가는 것도 심각한데, 마태우스님 글에 중독되고 있어서 이것도 큰일인거 같네요. 마태우스님께 중독된 사람들에 대한 기사도 써야될거 같은데요! ^^ 저두 알라딘 폐인 진단기준에 따르면 1등급인거 같아요. 과도한 전자파에 몸이 쇠해지고 있다는...ㅎㅎ

비로그인 2004-03-12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1등급-아침 출근해서 ..점심먹고나서도..퇴근시간전까지 알라딘에 붙잡혀있습니다.

진/우맘 2004-03-12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방금, 알라딘으로 인한 업무 마비로 보건휴가 반납하고 출근했다는 요지의 글을 쓰고 왔습니다. 이렇게 마음에 와 박힐수가...
저, 이 추세로 나가다가는 주말도 반납입니다. 흑.... 일해야 하는데....

연우주 2004-03-12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급기야 치료까지 받아야 하는 겁니까? ㅠ.ㅠ

2004-03-12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_ 2004-03-12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재가 생기기 전에 알라딘을 시작홈페이지로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부터 고대서재까지는 거의 말종폐인이다싶이 생활을 하였는데, 요즘은 그래도 그 증상이 조금 완화되어 요양중이랍니다.;;

플라시보 2004-03-12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무지하게 웃다가 갑니다. 특히 제가 말했다고 가상한 대목에서 어쩜 그 재수없는 말투가 웃길수가 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저 아닌 막 거만한 블라시보가 따로 있는 듯 느껴질 지경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플라시보가 겸손하다는건 아니고...그러니까 뭐랄까 거만할 만한 뭔가가 없어 참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ㅋㅋㅋ)

마냐 2004-03-12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인 안되려..무진장 버티고 있다기 보다..근본적 원인인 '게으름'과 '무심함'을 감추려..난 폐인 안되련다..라고 주장하고 있던 터. 정말 알라딘도 위험하다는데 동의!! 다만...윌리엄 깁슨의 '아이도루'에 보면...미래에는 일상보다..사이버 일상이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사회도 가능할듯 합니다. 변화의 과정에서 '폐인'이니 하며 신기하게들 보는게 아닐까요.

쎈연필 2004-03-12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잼있네요 ㅋㅋㅋ 제 딴엔 은둔자적인 이미지를 풍겼다 생각했는데... 글에는 대표에다가 농성까지 하는??? 저와는 딴판이어서... 저 가명이 제가 맞을까 잠시 고민을... ^^

2004-03-12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mji 2004-03-12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첫 코멘트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안녕하세요) 글 읽고서 참 많이 웃고, 참 많이 끄덕였습니다. '알'자만 봐도 흥분한다,에서 그만 이성을 잃었습니다. ^^제 측근 중에 하나는 저에게 '혹시 당신 알라딘의 숨겨진 직원이야?'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포섭활동까지 했으니 말이죠. 아무튼, 유쾌하고 즐거운 글 잘 읽었습니다. ^>^

책읽는나무 2004-03-12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글에 코멘트가 달렸나? 안달렸나? 확인한다고 바쁘신 분들도 많겠지만...또하나의 폐인인 저로서는 남들의 서재에 코멘트달아놓고...서재주인장의 답글을 읽어보러 다닌다고 또 바쁜 폐인입니다요...^^

진/우맘 2004-03-12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아... 그간의 노고가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군요. 현재 시간 11시 52분, 하루 방문객이 100명을 넘어섰습니다. 앗, 글을 올리는 11시 57분에는 102명으로 증가!!!! 인기절정 마태우스님^^

(그런데...이 시간엔 오랜만이라...혹여 뒷북 치는 건 아닌지...^^;;;)


초콜렛 2004-03-13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탄핵 땜에 뉴스만 봤는데, 알라딘 와서 웃게 되네요. 좋은 패러디 감사합니다.

明卵 2004-03-15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정말 재밌네요! 이거 아세요 마태우스님? 아무리 빠져나오려고 애쓰더라도 이런 멋진 패러디를 해 주시는 이상 알라딘 폐인의 길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는 없답니다.

조선인 2004-04-09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목만 보고 무모한 책 구매로 경제파탄에 이른다는 글을 생각했는데... 역시나 저는 친구들의 진단대로 상상력없는 재미없는 사람임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듯 하군요. 정말 재미나게 읽었고... 폐인이 되지 않으리라 불끈 다짐해봅니다만... 혹시 이미 폐인이 된지도... ㅠ.ㅠ
 

 

 

 

 

 

*  머리속은 꽤나 거창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글은 뜻대로 되지 않더군요. 몇시간을 망설이다 술김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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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승균
엊그제는 한국 프로농구 MVP를 뽑는 날이었다. MVP는 기자들의 투표로 결정되는데, 압도적인 숫자-80명 중 78명-가 표를 던진 김주성이 MVP로 등극했다. 나머지 두명 중 한명은 김승현에게, 또하나는 추승균에게 투표를 했다.

김승현이야 이해할 수 있다. 어쩜 저렇게 잘할까, 하는 찬사가 나오게 만드는 김승현은 어시스트 부문에서 1위에 올랐으며, 전매특허인 스틸도 1등이었다. 팀은 3위에 그쳤지만, 충분히 MVP 감이다. 반면 추승균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MVP는 우승팀에서 나온다는 관례가 있고, 추승균이 그 관례를 깨뜨릴 만큼 탁월한 성적을 올린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소리없이 강한 남자'라는 팬클럽 구호처럼, 그는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늘 제 몫을 다한다. 어느 해설자의 말이다. "오늘은 별로 활약이 없구나 싶었는데, 경기 끝나고 보면 자기 평균득점을 올렸더라구요" 그렇다. 그는 성실하게 자기 책임을 다하는 그런 선수다. 감독으로서는 가장 이쁜 선수일 테고, 내가 좋아하는 선수이긴 하지만, 15점대의 평균득점에 마이너 항목인 자유투 부문에서만 1위를 한 성적으로는 MVP가 되기에 2%쯤 부족하다. 그에게 투표한 기자는 물론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고 있을테고, 그래서 추승균을 찍었을 거다. 하지만 그 원칙이라는 게 보편적인 기준에서 크게 이탈된 것이라면, MVP 투표를 담당하는 기자가 되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2. 자민련
정당 선호도 여론조사를 볼 때마다 신기한 게 있다. 주변에는 자민련을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매번 0%가 아니라는 게 나로선 신기하다. 이번에도 1.4%나 되는 지지율을 보였는데, 도대체 왜 자민련을 지지한다고 하는지 만나보고 싶어 죽겠다. 다른 정당도 그렇지만 자민련은 철저한 지역주의 정당이고, 이념 같은 것에 무관하게 오겠다고 하는 사람은 다 받아들이는 철새 집합소다. 창당부터 그랬다. '유신 잔당'이라고 비판을 하자, 김종필은 이렇게 말했었다. "유신잔당이 아니라 유신본당이다!" 자민련에서 무슨 훌륭한 일을 했다는 일은 아직까지 들어본 적도 없고. 젊은층 사이에서는 자민련을 지지한다는 게 쪽팔린 일이며, 농담 차원에서 받아들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선에서 자민련은 몇 명의 당선자를 낼 것 같은데, 4.2%의 지지도를 얻고있는 민노당이 한석이라도 가능할까 의문시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나름의 소신은 있겠지만, 그들의 지지는 진작에 없어져야 할 정당을 계속 소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안그래도 뒤쪽에 있는 한국 정치를 더 후퇴시킬 것 같다.

3. 탄핵
탄핵안이 발의되고 난 뒤 여론조사가 여럿 벌어진다.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사이트에서는 예상대로 탄핵이 잘한 일이라는 여론이 더 높았고, '미디어 다음'이나 KBS 등의 기관에서는 3분의 2 정도가 탄핵이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탄핵을 잘했다고 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아마도 노무현과 5년을 같이 보내기 싫은 사람일테다. 이들은 노무현이 뭘 해도 안좋게만 볼 사람이며, "선거에서 중립을 지키지 못했으니 탄핵은 당연하다"고 앵무새처럼 뇌까리지만, 사실은 상고 출신의 품위없는 대통령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싫은 것이다. 그러니 탄핵발의의 사유가 무엇인지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역대 대통령들이 총선에서 중립을 지켰었는지 여부도, 더 큰 잘못을 저지른 대통령들-예컨대 IMF를 초래한 김영삼 씨 등-조차 탄핵을 받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도 이들에겐 관심 밖이다. 아마도 이들은 노무현이 재채기를 하다 미국 대사에게 침이 튀어도 탄핵을 하자고 했지 않을까?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 절반 가량은 소위 노빠다 (나를 포함해서). 이들은 신앙의 대상인 노무현이 임기 도중 물러나거나 두달씩이나 업무정지를 당하는 것은 눈뜨고 볼 수 없다. 이렇게 질문해 보자. 노무현이 지금처럼 경미한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 측근비리와 대선, 경선자금 비리 때문에 탄핵을 받는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정치란 다 그런거지"라든지 "다른 대통령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잖냐" 등등의 얘기를 하면서 탄핵의 부당성을 목놓아 외칠 것이다. 설령 노무현의 금고에서 숨겨둔 돈 4천억이 나온다 해도.

우리나라에서 여론조사를 하면 70%를 넘지 못하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사안의 옳고 그름이 아닌,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옳고 그른 게 결정되어 버리니까. 그래서 난 대선 때 이회창을 찍었으면서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높이 평가한다. 여론조사는 이처럼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달라도 사안의 옳고 그름을 냉정히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져야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유감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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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3-11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노무현을 썩 좋아하진 않지만 탄핵은 반대입니다. 노무현을 뽑긴 했지만 노무현이 썩 잘할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요즘은 너무 욕을 많이 먹어서 불쌍해보이기까지 한답니다...ㅠ.ㅠ
(근데 어인 일로 아직 안 주무시는지?^^)

마태우스 2004-03-12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먹고 온지 얼마 안됩니다. 라면을 먹을까 망설이다가, 밥을 먹어버렸습니다. 그게 더 나쁜 것 같지만, 어쩌겠습니까. 술먹으면 허기가 지는 걸...흐흑. 탄핵이고 뭐고, 살찌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정말 슬픕니다. 언제나 봄은 제게 시련이었지요. 으흐흑.

2004-03-12 0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viana 2004-03-12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주위에서 들리는 말들은 국회탄핵이 되고 헌재에서도 통과가 되지 않겠느냐 쪽입니다.
이유는 상고나온 대통령을 더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때문이지요. 참 슬프다 못해 답답한 상황입니다...

paviana 2004-03-12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전에 인터넷으로 국회탄핵안이 상정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 답답하고 화나는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여기다 이렇게 몇자 적습니다. 라디오 21의 아나운서가 말을 못 잊고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으니 참 할말이 없더군요...

_ 2004-03-12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또라이들입니다. 조선일보까지 합세해서 발광을 뜨는거 보면 어디나가서 한국인이라고 말하기 꺼려질정돕니다... 뭡니까 정말.........

마태우스 2004-03-12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탄핵 과정을 TV로 봤습니다. 아, 세상은 저같은 소시민을 유유자적하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군요.

플라시보 2004-03-12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비님 말씀처럼 겨우 겨우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을 생각한다면 이 모든 작태들이 다 우습게만 보입니다. 안그래도 경제적으로 IMF에 버금가는 힘겨움을 느끼고 있는 서민들이 이 사태로 인해 또 타격을 받을텐데 걱정입니다. 하다못해 국민학교에서 학급 반장을 뽑아놓고도 이렇게는 안할텐데 국회가 이러고도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가지는지 의문입니다.

진/우맘 2004-03-12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탄핵 가결....흥. 이 결과가 나오기까지, 완전히 '그들만의 리그'였습니다. 국민만 왕따군요. 쳇!쳇!쳇!

연우주 2004-03-12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난리가 났군요. 한나라와 민주당이 미친 게 아닐까요. 급기야. 원래 절반 이상 미쳐있었지만 완전히 미칠 줄이야...--; 네티즌 조사도 68%가 탄핵 반대인데, 국회는 도대체 누굴 위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네.
해산하라고 데모하러 여의도 다 같이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그려.
 

 

 

 

 

 

드디어 40번째를 돌파했다. 70일 가량 지난 시점에서 40번이니, 12월의 특수를 감안하면 200번을 넘지 않을까 싶다. 언제나 좀 안정이 되려나...

부제: 가부장의 벽을 넘어서

일시; 3월 10일 수요일
참석자: 내 친구 둘, 박노준(가명. 이하 박), 장돌십(가명, 이하 장)

1. 박
'박'은 초등학교 때부터 내 친구였다. 그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지만, 그의 소중함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그동안 난 외적인 화려함만 쫓으며 그를 멀리했고, 그가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를 알지 못했다. 뒤늦게나마 알게 되어 다행이고, 앞으로는 그로부터 받은 우정을 갚아갈 생각이다.

'박'은 애처가다. 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박'처럼 "아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는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작년에 아내가 난소암으로 병원신세를 졌을 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내 곁을 지켰다.

'박'은 남자들이 환장하는 유흥주점에 가지 않는다. 그게 '박'의 빛나는 부분으로, 나처럼 여권이 어떻고 하는 놈들이 뻑하면 그런 곳에 가는 것과 좋은 비교가 된다. 그는 타락한 우리를 따라 몇번 그런 곳에 갔지만,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안가겠다고 선언했고, 그 후부터는 자신의 결심을 지킨다.

내가 아는 가장 착한 사람인 박에게는 시련이 여럿 닥쳤었다. 아버님의 사업이 부도를 맞아 아버님이 감옥에 갇히는 일을 겪기도 했고, 자신이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 위기에 처했었다. 그때 내가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것은 평생의 미안함으로 남을 것 같다. 지금 그는 인천 제부도 근처의 직장에 출퇴근을 하는데, 수요일을 제외하고는 아침 6시에 나가서 밤 10시에 들어오는 생활을 매일 반복하고 있단다. 몸은 힘들지만 그의 집에는 사랑이 넘치고, 그런 그를 보면 나도 즐겁다.

2. 장
장은 공처가다. 아닌 게 아니라 부인을 좀 두려워하는 편이다. 그는 늘 "부인이 무서워서 딴짓을 못한다"고 말을 한다.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어릴 적부터 성실하고 모범생이었던 그가 대단한 딴짓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정말 부인에게 잘한다. 그런 남자와 결혼할 수 있다면, 난 기꺼이 여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일곱 살 연하의 부인과 너무나 잘 놀아주는데, 얼마 전 첫 얘기를 낳은 뒤에는 더더욱 극진해졌다. 그의 말이다. "기저귀 갈고, 빨래하고, 밥하고 설거지하는 거랑, 청소하는 건 내가 해" 틈나는대로 애까지 본다는데, 그것 말고 할 일이 또 뭐가 있을까? 하지만 그의 아내는 거기에 길들여져 그걸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한다는데, 심지어 "조금 더!"를 주문하기도 한단다.

살인적인 회사일에 시달리느라 하루 세시간밖에 자지 못한다는 그는 내가 부탁하면 언제든 시간을 내어 준다. 예컨대 내가 사재기를 하러 교보에 같이 가자고 했을 때, 그는 없는 시간에도 흔쾌히 따라가 줬다. 그는 수준급의 실력을 갖춘 좋은 테니스 파트너이기도 하다.

"난 말야, 집에 가면 손하나 까딱하지 않아. 재떨이 그러면 마누라가 재떨이를 갖다주고, 리모콘 그러면 리모콘을 갖다주지" 나보다 불과 몇 년 위의 선배가 한 얘긴데, 세상이 달라졌다지만 아직도 이런 사람은 존재한다. 장과 박의 존재가 돋보이는 건 바로 그래서이고, 그게  내가 그들을 더더욱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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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03-11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과 박을 저의 남편에게 소개시켜주세욧! ^^

비로그인 2004-03-11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있는 친구들이고 가장들이네요!! 부럽다~그런 남자들이...

진/우맘 2004-03-11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저는 갑자기 장의 부인이 궁금해지는군요. 살인적인 격무에 시달리며 세 시간 밖에 못자는 남편에게 기저귀, 빨래, 밥, 설겆이, 청소를 맡기면....본인은 뭘 하는거지요?
마광수의 외뿔에서 이런 글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공주병 환자는 언제나 왕자님을 찾지만...필경은 머슴하고 결혼하게 된답니다. 아무리 멋진 왕자님도 공주병 환자와 결혼하면, 이내 머슴으로 변모하고 마니까요. (대략의 내용^^ 정확히 기억 안 남^^;;)
흠...하기사, 다른 부부 속내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샘나서 툴툴거리는 듯^^;;;

플라시보 2004-03-11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에 제가 누군가와 결혼을 해서 재털이! 그럼 재털이로 비오는날 먼가 풀풀 나도록 패 줄 것이며 리모콘! 하면 리모콘을 부메랑처럼 휙~ 던져서는 정확하게 리모콘 하고 말한 그 입을 맞출 겁니다. 흐흐. 그런 남자를 만나지 않으려면 어째야 하는 걸까요? 사실 결혼 전부터 그런 티를 팍팍 내면 여자들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할테니 아마 연애시절에는 철저히 숨기겠지요? 그래놓구선 결혼하면 슬슬 본색을 드러내리라 생각합니다. 사전 감별법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불행히도 저에게는 그걸 간파해 내는 눈이 아직은 없습니다. 그래서 기필코 결혼 전에 데불고 살아 볼랍니다. 어느날 '재털이!' 라고 말하면 '13번 탈락. 싸게 싸게 짐싸 주시고 다음 타자 입장' 할래요. 흐흐

갈대 2004-03-11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결혼해서 장의 경우처럼 될까 두렵습니다...

2004-03-11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04-03-11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의미심장한 시대변화이군요...^^....울신랑은 어느편에 속하나??...시부모님과 같이 살기전에는 공처가 비슷하게 행동을 하던데...(안하면 나한테 피(?)를 봤거든요..^^)...요즘은 님의 선배처럼 되어가네요...남자들은 부모님앞에서 마누라도와주는건 좀 힘든가봅니다...그래도 내가 일부러 시킬때도 없지않아 있지만서두요...암튼 님의 친구분들이 부럽군요..아니지!! 친구분들의 부인이 부럽군요..ㅋㅋ...친구를 보면 그사람을 안다고 했는데 그럼 님도.....음~~ 마태우스님은 정말 멋진 분이시군요...^^...그리고 저는 이 술먹는 횟수 카운트를 보면 저의 페이퍼중 카운트를 보는듯하군요...이카운트수도 저를 이기셨습니다요....^^

마태우스 2004-03-12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장의 부인은...애를 낳았잖습니까.
갈대님/호호, 그럼 갈대님도 일등신랑감이시군요!
플라시보님/자유롭고 독립적인 지성이신 님께서 가부장 남편과 살 수는 없으리라는 걸 저도 잘 안답니다. 마지막에 쓰신 방법이 아주 좋군요.

마태우스 2004-03-12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론티님/그럴 수는 있지만, 소개시켜 드린다고 부군이 바뀌지는 않겠지요. 걔네를 보니까 그런 건 타고나는 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책읽는 나무님/저도 그 친구들의 부인이 부럽다니깐요...
폭스바겐님/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건 사실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