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aladin.co.kr/cover/8937460734_1.gif)
몇달 전, 누가 내게 인사를 했을 때 매우 당황했던 적이 있다. 분명 아는 얼굴인데, 그렇다고 내가 알던 그사람은 아니었기 때문. 일단 인사를 하고 넘어갔는데, 옆에 있던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xxx 선생님이란다. 그제서야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가발을 쓰셨구나. 그래서 몰라봤구나'
아까도 그 선생님을 만났다. 처음의 어색했던 모습과는 달리, 이젠 가발이 제법 자리를 잡은 것 같았고, 그전보다 훨씬 젊어 보이기까지 하니, 가발을 잘 하셨다고 할 수 있다.
내 친구 하나는 스물 다섯을 넘어서면서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는데, 28세 쯤에는 완전히 이마가 까졌다. 몸도 좀 비만해 "쟤 장가는 어찌 가려고 그러나" 걱정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날, 녀석이 가발을 쓰고 왔다. 알고 지내던 모습과 너무 달라 웃음만 나왔다. 하지만 사람이란 적응의 동물, 조금 지나자 가발쓴 모습이 잘 어울린다. 겉보기와는 달리 가발을 관리하는 건 무척이나 귀찮은 일이라는 게 친구의 설명이지만, 외견상 보이는 효과를 생각하면 그정도 투자는 할만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몇 년 후 그가 결혼을 한다고 예비신부를 데려왔다. 가발인 걸 모르니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금기를 깨고픈 게 인간의 보편적 정서라, 술자리를 같이하는 내내 입이 간지러워서 혼이 났다. 아이를 둘이나 낳은, 그래서 빼도박도 못하게 된 지금은 물론 그 비밀을 알게 되었으리라. 궁금하다. 그걸 알고나서 자기를 속였다고 화를 내지나 않았는지.
우리나라에서 대머리에 대한 반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머리 남자보다 차라리 틀니가 낫다고 대답한 사람이 있을 정도니, 나처럼 눈이 작은 남자는 대머리에 비하면 왕자다. 왜 그렇게 대머리를 싫어하는 걸까 생각을 해보면, 80년대의 아픈 역사가 자연스럽게 떠올려진다. 당시 대통령을 하던 전모씨가-턱이 좀 나왔던 영부인과 쌍을 이루어-대머리에 대한 반감을 조성한 주범이 아닐까? 대머리에 대한 혐오가 얼마나 컸으면 대학가에서 이런 노래가 유행했겠는가. "대머리, 오 대머리, 민족의 태양이시여!"
전씨만큼은 아니어도, 아버님 역시 대머리셨다. 대머리는 우성유전이라는데, 내가 혹시 대머리가 되면 어쩌나 무지하게 걱정을 했다. 이 외모에 대머리라면, 아무리 재벌2세라도 어느 여자가 나와 놀아줄 것인가. 난 아버님의 작은 눈을 물려받았으니, 대머리는 남동생이 물려받으면 안되나 이런 생각도 했고, 잠에서 깨어나 베개에 머리칼이 붙어 있으면 개수를 헤아리며 탄식하기도 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대머리가 될 조짐은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머리가 너무 빨리 자라서, 숱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하지만 머리라는 게 빠지면 순식간에 빠지는 법, 숱이 많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신이 이런 외모를 주신 것도 잔인한 일이건만 대머리는 너무 심하지 않느냐 하는 낙관론을 펴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중인데, 하여간 내가 자존심이 워낙 센 놈이라 일단 대머리가 되고나면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내가 갑자기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다면 이렇게 생각하시라. "대머리 됐구나!" "아냐, 로또 됐을지도 몰라!" 내가 다시 세상에 나타날 때는 "부탁해요!"라는 말로 유명했던 모 탤런트처럼 머리를 잔뜩 심고난 이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