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 자리에서 일어나보니 어제 옷을 그대로 입은 채 누워있다. 벤지 대소변을 뉘고 나도 아침 대변을 봄. 어제 저녁을 너무 많이 먹었나보다고 생각함. 도저히 출근을 못하겠어서 다시 잠

9:00, 엄마 전화 때문에 일어남.
엄마: 너 오늘은 집에서 저녁 먹어야 한다!
나: 어, 저 오늘 술약속 있는데...
엄마: 아니 어제도 새벽 세시가 넘어서 오더니, 니가 인간이냐? 찰칵.
하긴, 난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 뭘까? 문어? 해삼? 말미잘? 오리너구리?

10:30, 테니스 예약을 하러 올림픽공원에 가다. 거기서 두 번째로 대변을 봄. 어제 진짜 많이 먹었구나...

11:30, 터미널 앞 포장마차에서 라면과 김밥을 먹다
14:00, 학교에 옴. 오자마자 잽싸게 글 두편을 씀.
15:00, 애들 발표하는 거 채점하러 감, 짬짬이 노트에다 글 두편을 작성, 한편을 쉬는시간 10분 동안 올림. 세 번째로 변을 봄. 설사였다.
17:00, 회의에 들어감. 그전엔 회의 때마다 노트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는데, 이제 그짓을 못하게 되었다. '서기'가 되었으니까....
18:00, 퇴근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발, 중간에 전화가 와서 깸. "야, 오늘 우리 모이기로 했는데 시간 되니?" 안된다고 그냥 니들끼리 놀라고 끊고 <오빠가 돌아왔다>를 마저 읽음.

19:58, 양재역 도착, 고교 동창들이 TGI에 있다는 말을 듣고 떡볶이집에 가서 오뎅 3개와 떡볶이 1인분, 김말이 1개를 버스에서 만난 조교와 먹음.
21:30, TGI에서 너무 많이 먹었는지 4번째로 변을 봄. 3번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4번은 이례적이다. 뭔가 일을 낼 것만 같은 조짐.
22:40, 2차로 맥주집에 감. 맥주값이 더럽게 비싸, 한병 가지고 개김. 부부관계의 횟수, 기러기아빠 등에 관해 열변을 토함.
00:20, 믿어지지 않지만 변의가 느껴짐.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고 일을 봤다. 그런데... 변기가 막혔다. 결국 일을 냈구나 하고 탄식함. 뚫는 게 없어서 뚜껑만 덮고 나옴. 여전히 기러기 아빠 얘기를 하는 친구들한테 "큰일났다. 집에 가야한다"고 설득해 밖으로 나옴. 앞으로 그 맥주집을 안갈 생각임.
01:00, 집에 도착, 소파에서 자는 벤지를 깨워 대소변을 누이고, 밥을 줌. 벤지도 "니가 인간이냐"는 눈으로 날 바라봄.

난 소주 1병 이상, 맥주 3000cc, 혹은 다섯병 이상 마셔야 1회로 카운트를 한다. 그러니 생맥주 두잔에 병맥주 한잔을 먹은 오늘은 술을 마신 게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어제 무리한 탓인지 눈이 감기고, 너무 늦게 와서 벤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미안한 마음이다. 난 왜 이렇게 사는걸까? 그나저나 하도 변을 봐서 그런지, 배가 고프다. 뭐라도 좀 먹고 잘까...이런, 여섯번째 변의가 느껴진다. 이,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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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20 0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4-03-20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스뽄지` 같은 흡입,흡수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명화 감상 편에서 보여주신 님 모습....
무딘 듯, 아닌 듯 ... 흐드러지는 님의 눈 웃음 안 무엇보다 날카롭고 예리한, 칼날같은 에너지가 느껴졌다는 말씀도 함께 전해 드립니다........ 음.. ... 존경합니다 .
진정한 막강파워 내공의 소유자 이시군요. 매일 매일 엄청난 관찰 또 관찰, 왕성한 소화력으로 파워 업 앤 업 하시니 ....물론 따라 잡기 힘들긴 하겠지만.....그래도 언젠가꼭 따라잡기 위해 ...노력해 볼랩니다. ㅎㅎㅎㅎ 긴장하세요 ㅋㅋㅋㅋ

진/우맘 2004-03-20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모세선충....? ^^;;;

chaire 2004-03-20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끝내주는 하루였네요! 하지만, 바야흐로 건강을 챙기셔야 할 때가 아닐까요?

플라시보 2004-03-20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변을 잘 보는 인간입니다만(얼마 전에는 스트레스성으로 인해 약간 주춤했으나 요즘은 다시 힘차게 일을 봅니다.) 마태우스님은 기인열전 감입니다.^^ 변을 한번 보고 나면 속이 헛헛해서 먹고 그러다 그게 변이 되어 또 보고 또 헛헛하여 뭔가를 집어먹고...흐흐 영원히 지속되는 뫼비우스의 띠같은 일이로군요

마태우스 2004-03-20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weetmagic님/따라잡는다는 말씀, 혹시 변 횟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진우맘님/오오, 우수독자의 촌철살인입니다. 하지만 전 설사가 아니라서... 하핫.
카이레님/그럼요.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은 언제나 하죠^^
플라시보님/그 사슬이 언제 풀릴지요? 저도 괴롭습니다. 제가 여행용티슈를 사는 비용이 예산의 10%가 넘는다는 루머가...

비로그인 2004-03-20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마태우스님의 생생하고 재기발랄한 글이 알라딘에 올라오는데 까지는, 노트와 메모의 기술이 한몫하는거였군요? ^^ 마태우스님...6번째변의...무서워요~ T^T
 

 

 

 

 

 

신문광고를 보니 김태희가 참이슬을 선전하고 있다. 평소에도 참이슬만을 즐겨 마시지만, 그걸 알고나니 앞으로 더 열심히 참이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델에 따라 제품의 판매고가 요동을 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조용필이 선전하던 맥콜이 보리음료 시장을 석권할 무렵, '담다디'로 뜬 이상은이 '보리텐'의 모델로 등장하자마자 맥콜의 점유율을 추월해버린 일은 그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이었다. 아직 못봤지만 기발한 광고로 인기를 모은 삼양라면은 최강 신라면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50% 이상 판매고가 상승했다고 한다.

TV를 그다지 안봐서인지 난 광고에 현혹되어 선호하는 제품을 바꾼 예가 거의 없다. BC카드를 열심히 긋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김정은이 광고모델이었다느니 하는 식이다. 베이비복스가 선전한다는 이유로 '와'라는 아이스크림-베이비복스는 아이스크림으로 착각하지 말라고 우기지만-을 먹긴 했지만, 그거야 '와'가 보기 드물게 양이 많고 맛있어서 그런 거지, 꼭 베이비복스 때문은 아니다. 그들이 더 이상 모델이 아닌 지금도 열심히 '와'를 먹고있지 않는가? 이효리가 아무리 산사춘을 선전해도, 그리고 그녀의 산사춘 포스터가 내 연구실과 우리집에 붙어 있긴 하지만, 난 산사춘을 먹지 않는다. 언젠가 육체파 배우 강리나가 이오니카를 선전하면서 "나는 이오니카, 나는 이오니카"라는 멘트를 날리는데, 그걸 보면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이오니카!" 하지만 난 이오니카를 한번도-내 기억에는-마셔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난 광고에 따라 기호품을 잽싸게 바꾸는 소비자들에게 별로 공감하지 않는데, 나같은 인간만 있다면 광고모델이 지금처럼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할 것 같다.

내가 아는 사람 중 CF에 출연한 사람은 딱 한명 있다. 임신한 부인가 함께 나와서 "아들도 좋고 딸도 좋고"라고 말하던 사람이 내 3년 선배인데, 일반인이라 그런지 대사나 연기가 영 어색했다. 하지만 그는 그걸 찍고 무려 500만원의 거액을 챙겼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무조건 찍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 친구 중 최고의 스타인 표진인은 잦은 TV 출연에도 불구하고 CF를 찍은 적이 없는데, 그런 걸 보면 아무나 CF를 찍는 건 아닌가보다. 사실 얼굴을 비추어서 판매고를 급등시킬 슈퍼모델은 그리 흔한 게 아니어서, 권상우 같은 이는 수십군데서 광고제의를 받는 일이 생기고, 한때 TV만 틀면 한고은의 광고가 나오기도 했다.

주위 친구들은 날더러 기생충약 CF에 나가보면 어떠냐고 한다. 물론 부르지도 않겠지만, 난 기본적으로 봄가을에 구충제를 먹는 걸 그만둬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어서, 혹시 요청이 오더라도 응할 것 같지는 않다. 더 중요한 이유로, 내가 TV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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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3-19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님도 '와'를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한때 와를 매일 1개씩 먹는 기염을 토했더랬습니다. 특히 딸기맛 와는 하루에 3개씩도 먹어 치웠지요. 한해 여름을 그러고 나니 지금은 좀 질려서 안먹습니다만. 광고의 위력은 대단한것 같습니다. 저만 해도 잘 만든 광고에는 혹은 모델이 좋은 광고에는 혹해서 그 제품을 한번 정도는 구입을 해 보거든요.(님은 그렇지 않은 과에 속하십니다만...)고등학교 다닐때 인가? 제가 좋아하는 공일오비가 아몬드 빼빼로를 광고해서 그걸 한박스는 넘게 먹었고 신해철씨가 꽃개랑이라는 아이스크림 광고를 해서(사람들은 이 광고의 존재 자체도 모르더군요. 넥스트 활동시절이었고 도시인이 BGM으로 흐르는 가운데 신해철이 어떤 여인네에게 아이스크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암울한 보이스로 '이름이 뭐니?'하고 물으면 성우더빙 목소리가 '꽃게랑이예요'하는 아주 촌실방한 광고였습니다.) 머리핀마저 꽃게모양을 하고 다닐 지경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투명한 플라스틱에 컬러플한 점박이가 있던 꽃게 모양 머리핀을 대체 어떻게 구해서 하고 다녔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지금은 특별하게 선호하는 모델은 없습니다. 참 김태희 하니까 생각나는데 노란옷 입고 자유의 여신상처럼 해서 은행광고인가 할때가 가장 예뻤던것 같습니다. 그때는 비교적 신인이여서 전 그녀의 존재를 몰랐었거든요. 그때 눈이 번쩍 뜨이게 시원스런 미인이었던지라 한동안 그 광고가 신문에 나면 뚫어져라 보곤 했었습니다.

마태우스 2004-03-20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님도 '와'를 좋아하신단 말이죠. 공통점이 한두가지가 아니군요^^ 하여간 님도 5년만 젊으셨으면 <천국의 계단>에서 뵐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진/우맘 2004-03-20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나도 이오니카'
플라시보님, 저는 꽃게랑 CF 기억합니다. 처음 본 순간의 충격은, 최근 sky 핸드폰 광고를 패러디한 왕뚜껑 CF를 봤을 때의 충격과 우열을 가리기 힘들군요.

플라시보 2004-03-20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진/우맘님. 그 CF기억하시는군요. 그때 저는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신해철이 짜리몽땅하다는 것을요...으흑.
 

 

 

 

 

 

3월은 옷을 입기가 힘든 시기다. 얇은 옷을 입으면 춥고, 그렇다고 겨울옷을 입기는 민망하다. 일교차가 심해, 밤과 낮 중 어디에다 초점을 맞춰야 할지 헷갈린다. 특히 올해처럼 3월에 눈이라도 크게 오면, 계절감각이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버리기 마련이다.

난 몸으로 체감하는 날씨보다 날짜를 더 우선시한다. 그래서 남들이 털코트를 입고도 춥다고 입김을 불어댈 때, 얇디 얇은 봄잠바를 입고 덜덜 떨기 일쑤다. 3월 12일 밤 여의도에서, 난 너무나 추워 덜덜 떨던 끝에 같이 있던 사람의 목도리를 빌려야 했다. 그쯤 했으면 정신을 차려야지, 3월 14일날 광화문에 갈 때도 똑같은 복장을 하고 가, 역시 같이 있던 사람의 목도리와 촛불의 힘으로 두시간을 버텼다.

비가 오고 난 그저께부터 날씨는 다시 추워졌다. 여전히 같은 옷차림으로 떨기만 하던 난 영하 2도라는 어제 아침, 드라이를 해서 넣어둔 겨울 오버를 다시 꺼냈다. "엄마, 나 이거 입어도 될까요?" 엄마, "당연하지! 오늘이 겨울보다 더 춥데!" 아무리 그래도 3월에 오버라니, 이거 좀 오버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냥 입고갔다. 주위를 보니 나만큼 무장한 사람이 꽤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낮이 되자 기온이 대책없이 올라가 완연한 봄날씨가 되버렸다. 오버에 조끼까지 입은 나는 졸지에 외계인이 된 듯했고, 사람들이 날 한심하게 보는 것만 같았다. 정말 신기한 것은 그 애들이 전부 봄맞이용 옷을 입고 있다는 것. 아침에는 분명 추웠는데, 그리고 나처럼 오버를 입은 사람이 많았던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은 다 어디 갔담?

오늘 난 오버를 다시금 들여 놓았고, 약간 두꺼운 마이를 걸쳤다. 이제 더 이상 추위는 없을 거라고 하니, 오버를 다시 꺼낼 일은 없겠지. 하지만.... 하지만 밤에는 여전히 추운데, 내일 광화문에 갈 때는 뭘 입고 가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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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19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은 이게 참 난감하죠. 아침과 낮, 저녁의 기온차가 심해서, 두꺼운 옷을 입으면 땀흘리기 일쑤고, 얇은 옷을 입으면 저녁에 춥고. 이런때 가디건이 유용하지 않을까요? ^^

플라시보 2004-03-19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겨울옷을 얼마전에 홀랑 다 옷방에 넣어버린지라 추워지고 부터 어쩌지를 연발했습니다. 다시 옷방앞의 소파를 옮기고 옷을 꺼내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해서 추위에 떨기도 싫었거든요. 그래서 영화 메트릭스가 처음 나왔을때, CK 블랙 선글라스와 함께 구입한 검은색 파코라반 롱 코트 (가을과 비오고 추운 여름에 입기에 적당합니다.)를 유용하게 입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오늘부터 또 날씨가 풀려서 그 롱코트를 다시 입을날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마태우스 2004-03-19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티크님/가디건... 그렇죠. 근데 그걸 입고 출퇴근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플라시보님/검은색 롱코트라... 흠... 그걸 입으시면 트리니티 같겠군요^^

연우주 2004-03-20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겨울옷 다 드라이 맡겨 세탁해놓은 터라 며칠 그냥 춥게 다녔어요...^^;
 

 

 

 

 

 

일시: 3월 18일 (목)
누구와?: 사촌형, 매제 이렇게 셋이서
좋았던 점:
-게 껍질에다 밥을 비벼먹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사촌형에게 책을 드렸더니, 내 책을 100권이나 사주신단다^^
나빴던 점:
-가위바위보에서 이기는 바람에 2차를 내가 쐈다.
-2차가 끝인 줄 알았는데, 밤 11시 반에 3차를 가잔다. 2차까지 가려고 페이스를 조절해 왔는데, 3차에서 조금 버티다 맛이 가버렸고, 언제나 그랬듯이 매제가 날 집에 데려다 줬다. 어머님 말씀으로는 새벽 3시 반쯤에 내가 짐짝처럼 들려서 왔다고 T.T


주제: 김밥
오후 두시, 지금사 출근을 했다. 이왕 늦은 거, 할짓 안할짓 다 하다보니 이렇게 늦었다 (심지어 일요일날 아침, 테니스 코트 예약까지 가서 하고 왔다). 술마신 다음날은 라면이 댕길 때가 많다. 터미널 앞 포장마차에 들어가 라면과 김밥을 시켰다. 라면은 맛있는데 김밥은 영 아니다. 꼭 맨밥을 씹는 느낌이랄까. 속을 보니 단무지 쪼가리에 오이, 당근만 달랑 들어있다. 그나마 개수도 8개밖에 안되, 이럴 거면 그냥 공기밥을 말아먹는 게 나았으리라.

영등포 역 앞에는 한줄에 천원짜리 김밥을 파는 아주머니가 둘 있다. 나이든 아주머니는 왕래가 많은 오른쪽에, 젊은 여자분은 한산한 왼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젊은 여자분의 김밥은 목이 안좋아서인지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엊그제 배도 고프고, 아침부터 고생하는 게 마음에 걸려 천원을 내고 김밥을 샀다. 기차에서 먹는데, 세상에나, 너무나도 맛있다. 이런 김밥이 천원이라니, 남긴 남는 걸까? 남으니까 팔겠지 뭐... 그렇다면, 김밥 하나에 2, 3천원씩 받는 사람들은 대체 얼마를 남겨먹는 거야? 그래서 자두는 이렇게 말했나보다. "잘----말아줘 잘-----말아줘!"

김밥으로 일가를 이룬 <김가네> 김밥이 가장 먼저 생긴 곳은 대학로다. 그때 거기서 김밥을 먹으려면 문 밖에서 삼십분은 족히 기다려야 했는데, 너무나 그 김밥을 좋아했던 나는 식당이 조금 한가해지는 밤 9시쯤 거기 가서 김밥을 먹고 퇴근하곤 했다. 쇠고기김밥, 참치김밥, 김치김밥 등 김밥의 종류를 다양화시킨 건 다 <김가네>의 공로다. 그집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자 대학로 일대는 김밥촌으로 변해 버렸고, <아찌롤 김밥> <정가네> 등 김밥집을 표방하는 간판이 무수히 내걸렸다. 하지만 맹목적 유행에 편승한 식당들은 오래가지 못하고 문을 닫았고, 그래도 명맥을 이어가는 곳은 <쌍둥이네> 정도가 고작이다.

우리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은 맛으로는 최고다. 쇠고기에다 내가 좋아하는 햄, 계란 등이 잔뜩 들어있어 뚱뚱하기만 한 그 김밥. 부피 때문에 쉽게 부서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맛은 정말 죽인다. 그러고보면 어머님의 김밥을 안먹어본지가 십년은 지난 것 같다. 내일 점심으로 김밥을 싸달라고 해볼까? 에이, 아니다. 한끼의 쾌락을 위해 나이드신 어머님을 괴롭혀 드릴 수야 있나. 오늘 또 술을 마실테니, 내일 아침은 집에서 라면이나 끓여먹어야겠다. 참고로 내가 끓이는 라면은 세계에서 가장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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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3-19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다닐 때 정문 앞에서 김밥 파시는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꼬마 김밥 한 봉지에 천원, 단무지랑 시금치, 당근...그런 야채만 들었는데도 아주 맛있었어요. 총학생회 진군식 날에는 학생들 배고프다며 김밥을 그냥 공짜로 돌리시고는 했지요. 학교마다 그런 아주머니들은 꼭 한 분씩 있는데, 신기하게도 이 분들은 아무도 언제부터 김밥을 파셨는지 알 수도 없고, 늙어가지도 않는다는 특성을 공유하고 있지요. 10학번 위 선배때도 계셨고, 그 때도 고 모습 그대로 셨다죠, 아마?(...어, 갑자기 여고괴담 졸업앨범이 생각나는 -.-;;;)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라면이라... 얻어먹고 싶어지는군요.^^

플라시보 2004-03-19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님과 저는 두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군요. 첫째. 술 마신 다음날이면 라면이 무지하게 땡긴다. 둘째. 김밥을 아주 좋아한다. 저는 술 마신 다음날이면 꼭 콩나물을 넣은 라면을 끓여 먹습니다. 북어국도 좋고 다 좋지만 라면이 제일 땡깁니다. 저는 라면만큼은 저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끓여준 라면이 월등하게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밥. 언젠가 친구가 저를 위해 한입에 다 넣기 버거울 뚱뚱한 김밥을 싸 줬는데 앉은 자리에서 8줄을 먹으니까 기절을 하더군요. 지금도 저는 도시락을 싸지 않은 날이면 우리 회사안 편의점에서 아줌마가 직접 말아주는 한줄에 천원짜리 김밥을 사 먹습니다. 그집 김밥은 여느 가계들과 달리 엄마표 김밥 처럼, 전문적인 맛이 나질 않아서 좋습니다.

비로그인 2004-03-19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때 매점에서 팔던 김밥은, 정말 얇고 든것도 없는데 맛나서 참 신기했죠. ^^ 김밥을 쭉 좋아했는데, 전 장우동 김밥이 첨 나왔을때 신선한 충격이었답니다! 커서 씹기도 힘들었지만, 한동안 엄청 빠져살았다는...요샌 다양한 김밥집도 많지만요. ^^ 담에 마태우스님 라면의 노하우를 전수해주세요~~

마태우스 2004-03-19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라면에 콩나물을? 흠..전 라면에 계란만 넣습니다. 참치도 가끔... 오징어와 삼겹살을 오삼불고기라고 하던가요? 라면과 김밥도 그것처럼 궁합이 아주 잘 맞는 음식이죠. 근데 여덟줄은...후후. 좀 심하시네요?

마태우스 2004-03-19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김밥에 얽힌 추억은 다들 있으시군요. 제가 끓인 라면을 드시고 싶다구요? 주인장 모임 때 블루스타라도 가져가야하려나 봐요^^
앤티크님/사람들 중에 김밥으로 맞아본 추억은 없는가봐요??^^ 노하우는... 라면 가닥이 꼬불꼬불할 때 불을 꺼야 합니다. 더 지체되면 맛이 없지요. 그리고 물을 어느정도 넣는가가 중요한데요, 갯수가 많아질수록 물 맞추기가 어렵죠. 그게 감인데요, 전수가 불가능할 듯...

갈대 2004-03-19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스프는 언제 넣어야 맛있는 라면이 되나요? 어떤 사람은 끓기 전부터 넣어야 맛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면이랑 함께 넣어야 맛있다고 하니 알 수가 없어서요

마태우스 2004-03-20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음... 저는 라면을 넣고난 뒤 스프를 넣습니다. 스프를 미리 넣으면 너무 오래 끓어서 맛을 내는 성분이 변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갈대 2004-03-20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변 감사합니다^^
 

 

 

 

 

 

이건 물론 조교 때 경험에 국한된 얘기지만, 다른 윗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글을 올린다. 내가 관찰한 윗사람들의 특징이다.

1. 무지막지한 명령을 서슴치 않고 내린다
어느날, B교수가 날 불렀다.
"야, 이번주 일요일날 저녁에 최병렬 교수(가명)가 연수 끝나고 귀국을 하거든. 근데 내가 부탁한 기생충을 오는 편에 가져다 주기로 했으니, 니가 공항에 나가서 받아와"
미국에는 기생충을 얼려서 파는 곳이 있는데, 국외는 배송비가 꽤 비싸니까 그렇게 한거다. 그걸 받으면 난 잽싸게 직장으로 가서 기생충을 살려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일요일날 약속이 있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실 난 그날 약속이 있었다. 친구 약혼식날이라, 끝나고 한바탕 놀아보기로 한 터였으니까. 친구가 몽땅 비용을 부담하는, 정말 부담없는 자리, 거길 불참해야 한다니.
"전 최병렬 대표, 아니 교수의 얼굴을 모르는데요?"(내가 졸업한 후 발령을 받은 사람이니까)
B교수는 교수명부에서 조그만 사진을 보여줬다. "이렇게 생겼단 말야, 알았어?"

약혼식 뒤에 나오는 저녁도 포기한 채, 난 여친과 공항으로 갔다. 당시 김포공항은 나오는 곳이 두군데, 여친과 난 커다란 종이에 이름을 써넣은 채 양쪽 입구에 서서 최교수를 기다렸다. 그때가 7시 반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 밤 11시가 다 되었을 때, 직원이 이런 말을 한다. "나올 승객은 이미 다 나왔습니다" 나와 여친은 허탈하게 귀가해야 했다.

다음날, 난 B 교수에게 무지하게 혼이 났다.
"정신을 어따 팔고 있었냐? 나오는 문이 두갠 건 아냐?"
그의 질책은 계속 이어졌다. "마중나간 레지던트들은 다 만났다는데, 넌 왜그래?"
'레지던트야 얼굴을 아니깐 그렇지, 그리고 그 선생도 나를 찾는 시늉이라도 했어야지 않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난 분에 겨워 침묵만 지켰다. 그렇게 혼이 난 며칠 후, B 교수는 다시금 날 불렀다. "다시 기회를 줄게. 이번 구정날 말야..." 나도 존심이 있지, 한마디로 거절했다. "저 고향 내려가야 합니다!"

B 교수만 그런 건 아니다. A 교수는 자동차 10부제가 시행되던 날, 당신 번호가 걸리는 날이면-2일, 12일, 22일-언제나 우리를 불러 술을 먹였다. "차도 없는데 술이나 마시지!"라며. 차가 없는 건 자기 사정이고, 우리는 나름대로 할 일이 있는데 말이다. 그래도 짝홀수를 안했던 게 천만 다행이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A 교수는 내가 일찍 와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일찍 왔으면 내방에 와서 커피라도 타지 여기 숨어있냐"며 야단을 치기도 했다. 남의 사생활에 무관하게 무지막지한 명령을 내리는 것, 이게 위사람의 첫 번째 특징이다.

2. 배려가 없다
난 일년에 두 번 정도는 몸살을 심하게 앓는다. 4년을 일했으니 대략 여덟 번 정도 아팠나본데, 단 한번도 "일찍 들어가 쉬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열이 펄펄 끓고, 계속 앓는 소리를 하는데도! 일을 하다가 밤을 꼴딱 새운 다음날도, 집에 들어가 쉬라거나 그런 말은 죽어도 안한다. 내가 "저 오늘 좀 일찍-일찍도 아니다. 오후 6시쯤 되서니까-들어가보겠습니다"라고 말을 하면 얼굴이 굳어지며 무지하게 당황하곤 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은 윗사람의 두 번째 특징이 아니겠는가.

3. 편한 꼴을 못본다
우리 학교의 학생수는 200명이 넘었다. 그걸 일일이 채점하는 것도 그래서 고역이었는데, 한번은 내가 이런 제안을 했다. "우리 시험문제에 객관식이 꽤 있으니, OMR 카드로 하게 하면 어떨까요?" B 교수의 답변, "너 편하려고 그러냐?" 그 앞에서는 아니라고 했지만, 은근히 부아가 났다. 아니 좀 편하면 안돼? 채점하는 데 드는 시간이 아깝지도 않는가?
참고로 B 교수와 난 코드가 잘 안맞아, 열심히 일하다 기지개라도 켤라치면, 혹은 매점에 뭘 사먹으러 갈 때면 어김없이 실험실에 들어오는 내공을 발휘하기도 했다. 늘 9시가 넘어 퇴근을 했지만, 피치 못할 때 좀 일찍 가보려고 하면 불러놓고 설교를 하셨다.
"넌 지금 일이 우선이 되어야 해!"
그 말이 맞을진 몰라도, 사람이 어떻게 일만 하고 사는가? 토요일까지도 밤늦게까지 일을 했던, 그리고 일요일날도 꼭 나오라고 강요받았던 그시절을 어떻게 견뎠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용하다.

4. 미안한 법이 없다
B 교수가 뭔가를 착각해, 날 무지하게 야단을 쳤다. 억울한 나는 계단에 가서 쭈구리고 앉아 울기까지 했다 (그럴 땐 좀 모르고 지나가면 좋으련만, "어 너 누구 아냐?"라고 아는체하는 사람이 몇 있었다. 쪽팔리게..). 그런데 나중에 사과한 것은 B 교수가 아닌, 나였다. 힘은 법이고, 정의니까.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교수님들은 자신이 잘못한 것도 남의 탓으로 돌렸고, 그 과정에서 소설을 써댔다. A 교수의 말, "난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미심쩍었는데 K가 맞다고 방방 뜨는 바람에 착각을 한거지"

이건 다른 얘긴데, A 교수와 B 교수는 서로 사이가 나빠, 내가 시간이 남아 B 교수의 일을 해주다 A에게 걸리면 방에 끌려가 작살이 났다. "내 말은 말같지 않아?"라고 윽박지르는데, 하여간 힘들었다. A와의 술자리에선 B의 욕이 난무하고, B와 함께한 자리에서는 A의 뒷다마가 주종을 이뤘다. 그 어린 나이에 정신병에 걸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5. 그래서....
지금 난 조교들을 부리는 윗사람이 되었다. 난 내가 겪었던 윗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늘 그들의 편에 서서 같이 놀았다. 우체국, 은행같은 개인적인 심부름은 거의 시킨 적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뭔가를 해달라고 하면 이런 답변이 돌아온다. "싫어요! 선생님이 하세요!" 내가 그들과 함께하는 것은 식사와 술자리 뿐, 지금은 약간 후회가 되지만, 이미 늦었다. 그래도.. 젊은 여자애들이 나랑 놀아주는 게 어디냐, 하고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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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3-18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잘 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당할때는 '내가 저 위치에 오르면 절대로 안그래야지'하면서도 막상 그렇게 되면 당한게 억울한지 자기 윗사람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습니다. 학교 다닐때 제가 방송반 이었거든요. 알다시피 인원이 소수라 방송반 군기는 장난 아니었습니다. 매일 밀대로 맞았거든요. 그래도 버티면서 우리 동기들은 우리가 선배가 되면 절대 이러지 말자 하고 다짐했죠. 그런데 막상 후배가 들어오니까 그렇게 눈물 질질 짜 가면서 우린 그러지 말자 했던 동기들이 애들을 잡아야 하네 말을 듣네 안듣네 하면서 괴롭히는걸 봤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빠져 있었지만 저 하나 애들 안 팬다고 될 일도 아니었구요. 그래서 결국은 정말 방송반을 빡세게 돌려서 실력이라고는 개뿔도 없던 제 동기들을 제가 다 내보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군기 잡는것 없는 방송반이 되었죠. 근데 정말 마태우스님 말처럼 뭐 시키면 '싫어요. 선배님이 하세요'이러더군요. 흐흐. 그래도 저는 그 애들이 방송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또 저를 친구처럼 생각 해 주는것이 어디냐 하고 생각했죠.
사람들이 싫은걸 당할때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그 찰나의 생각 만이라도 실천하고 산다면 악습이 세습되는 일은 없을텐데 안타깝습니다.

호랑녀 2004-03-18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젊은 것들은 정말...
공자 시대에 이런 말이 있었다대요?
근데 저도 맨날 나오는 말입니다. 요즘 어린 것들은 정말...
몇살이냐구요? ^^

sooninara 2004-03-18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플라시보님...대단해요~~~~~~~~~~!!!^^

비로그인 2004-03-19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님.......... 전 아직도 조교입니다.... 벌써............ 어언 4년 쨉니다....
만만한 후배도 없습니다. 젤 어린 후배와의 나이차가 16살입니다. 다들 제가 모시고 삽니다.
그 뿐입니까 ? 월급없는 학회 간사일에 , 여성단체 간사일에, **협회 간사일에 .....
타이틀 많은 울 교수님 덕에 별의 별 사람 다 만나고 별의별 경우를 다 당합니다....
가끔 제 핸드폰 받으면서 그럽니다. " 네 *** 교수님 연구실입니다... "....완전 자동이죠...
제 주민등록번호는 까먹어도 울 교수님 껀 안 까먹습니다.........
이러다가...말 못할 사연들 그득 안고 한많은 귀신이 되거나... 젊은 나이에 도통할 것 같은 기분 입니다. 흐흑.... 만약, 마태우스님 같은 교수님껜 '싫어요.~ 라고 하기보다는 ' 교수니임~~ 뭐든지 시켜만 주십시오' 할 것 같은데요 ~~ 아... 뭐든지 시켜만 달라니.... 지극히 상태 악회된 조교병 4기 멘트 군요... 아.....병도 생겼었더랬죠... 학교 생각만 하면 가슴이 벌떡 거리길래 병원에 갔더니 그러데요... 혈관 수축성 뭐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