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식대로 일요일을 한주의 시작이라고 본다면, 나의 한주는 테니스로부터 시작한다. 일요일 아침마다 테니스를 친지도 벌써 9년째, 돌이켜보면 참 꾸준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쳐왔다는 생각이 든다.

1. 기분
테니스를 잘친 날은 한주가 즐겁다.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내가 날렸던 빨랫줄 같은 스트로크를 떠올리면 기분이 금새 좋아진다. 하지만 그다지 잘 못친 날에는 일주 내내 짜증이 난다. 어제? 어제는 4전 4승을 하며 MVP가 되긴 했지만, 선이 굵은 테니스를 못하고 실수를 하지 않는, 얍삽하고 소극적인 테니스를 쳤기에 기분은 별로다. 기억에 남는 스트로크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2. 골프와 테니스
주위 사람들 중 골프를 치는 애들이 꽤 된다. 그들은 말한다. 조그만 구멍에 공을 넣는 건 인간의 본성이라고. 골프의 재미는 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고. 골프를 쳐본 적이 없으니 골프가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안다. 골프는 운동이 안된다는 거. 골프를 치는 주위 애들은 어찌된 것이 갈수록 배가 나오는 듯하니까. 이것도 안다. 골프가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몰라도, 테니스 역시 넋을 잃을만큼 재미있다는 걸. 한때 우린 눈이 오면 눈을 치워가며, 비가 오면 비가 그칠 때를 기다리며 하루 4시간이 넘도록 테니스를 쳤었다. 열정이 조금 식은 지금도 테니스는 여전히 최고로 재미있는 취미다.

3. 레슨
운동에 쓰이는 도구가 길면 길수록, 폼이 좋아야 한다. 탁구를 레슨받는 사람은 없지만, 테니스 레슨은 꼭 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내가 처음 테니스를 치기 시작한 것은 95년, 그때 난 개폼으로 테니스를 쳤다. 세게 치면 대부분 아웃이 되었고, 그렇지 않은 건 네트에 걸렸다. 그나마 치고나서는 어깨가 아팠다. 좋은 폼으로 치지 않으니 어깨에 무리가 갈 수밖에.

군대에 가서부터 난 레슨을 받았다. 개폼이 몸에 익어서 고치는데 무지하게 힘이 들었지만, 6개월쯤 지나자 난 어느새 최강의 포핸드를 구사하고 있었다. 내가 공을 치면 바람 소리가 났고, 공은 네트위 2센티 높이로 날라가 코트에 꽂혔다. 무리하게 내 공을 받다 인대가 늘어났던 내 친구는 그 뒤부터 웬만하면 몸을 날려 내 공을 피한다. 빨래줄같은 내 스트로크는 그 자체가 예술이기에, 난 내가 친 공을 넋놓고 바라보곤 했다. 자신의 모습을 연못에 비춰보는 사슴처럼.

4. 아쉬움
백핸드를 배울 무렵, 난 갑자기 바빠졌다. 방송에 출연할 일이 좀 많아져서였는데, 그러다보니 아침 5시 반 레슨에 자꾸 빠지게 되었고, 결국엔 레슨을 그만두었다. 그래서 난 백핸드를 잘 치지 못하며, 공이 백핸드 쪽으로 오면 더 빨리 뛰어 포핸드 자세로 만든 뒤 공을 쳤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나 아쉽다. 단 몇 달만 백핸드를 연마했었다면 세상에 무서운 게 없었을 텐데. 복식을 하니 백핸드를 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친구들은 집요하게 내 약점인 백핸드 쪽으로 공을 준다. 치사하게시리.

5. 발
다른 종목도 그렇지만, 테니스에서도 순발력이 도움이 된다. '발바리우스'란 별명처럼 난 발이 빠르기로 유명하다. 받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공도 어느새 뛰어가서 받아내곤 한다. 난 말한다. "땅에서 15센티만 떠 있으면 다 받는다!"고. 스트로크가 잘 안맞아 속상한 적은 있어도, 발에는 슬럼프가 없었다. 어제도 난 말도 안되는 공을 수없이 받아내 상대로부터 "징하다" "질렸다" "인간이냐" 등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6. 인간성
테니스는 인간성이 좋아야 한다. 테니스를 취미로 한 4명을 모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들이 대충 코드가 맞아야 한다는 게 더 중요한 일이다. 우린 파트너가 실수를 해도 화내지 않으며, 아웃 세이프 같은 민감한 판정은 가까운 사람이 본 것을 그대로 믿어준다. 스코어를 잘못 기억해 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전혀 없다. 아웃 세이프를 놓고 십분, 이십분씩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친구들을 만난 게 나로서는 행운이랄 수밖에.

7. 부상
테니스를 칠 때는 부상이 없어야 한다. 긴 세월 동안 많은 친구들이 부상으로 코트를 떠났다. 어떤 이는 무릎이 나갔고, 다른 이는 내 스트로크를 피하다 허리가 삐끗했다. 또다른 이는 역동작에 걸려 발목 인대를 다쳤고, 한 친구는 사업실패로 테니스를 접어야 했다. 그때마다 난 새 멤버를 구하느라 동분서주했는데, 지금 치는 멤버들은 제발 부상없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 참고로 우리 모임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 중 테니스를 못칠 정도의 부상을 입은 적이 한번도 없는 이는 내가 유일하다. 내게 유연한 신체를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릴 이유다.

8. 기타
어떤 친구는 내 앞에 서면 극도의 공포감을 느낀다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스트로크를 날리기 전 공포로 일그러진 상대의 얼굴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그 얼굴을 보면 웃겨서, 혹은 동정심이 일어서 잘 못치곤 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치니 9년 친 것에 비해 그다지 실력이 늘지 않았고, 게임 후 식당에 가서 허벌나게 많은 식사를 하는 탓에 살도 별로 빠지지 않은 게 아쉽기도 하지만, 테니스가 없었다면 내 인생은 훨씬 더 초라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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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3-22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운동이라고는. 특히 공으로 하는 운동은 바보라고 불릴 정도로 못합니다. 오로지 오래 달리기, 오래 매달리기, 윗몸 일으키기 등 이 콱 깨물고 버팅기는 운동만 잘 하죠. 그래서 가끔은 기술이 필요한 운동을 잘 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지하게 부럽습니다. 특히 테니스는 유니폼이 이뻐서 한번 배워보고 싶었는데...(니 다리통 생각은 안하냐? 하며 어디선가 비웃는 소리가 들리네요. 하핫)

비로그인 2004-03-22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래도 마태우스님이 만드시는 '몸'이, 테니스로 이루어졌음은 부정할 수 없겠네요. 지금 멤버분들은 부상없이 오래가시길~ ^^

비로그인 2004-03-22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니스~~ 저도 정말 좋아하는 운동 ~ !!!
초딩 때 첫 사랑이 전국에서 놀던 테니스 왕자님이어서, 그래 ? 그럼, 나도 할꺼야 하며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 ㅋㅋ 배운지 3년 만에 코치 선생님께 들은 말 " 넌, 테니스 라켓으로 야구하냐 ? " ㅠ.ㅠ;; ...제 첫 사랑 왕자님도 6살 연상녀 랑, 일찌감치 결혼해 버리고, 실의에 빠진 저, 테니스 라켓 마저 오래 전에 잃어버리고, 덜 떨어진 제 운동 신경으론 테니스 여왕이 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슬픔에 젖어, 땅에 끌고 다니지도 말라던 라켓 팽겨치고, 골프채를 잠시 휘둘러보았으나......끝도 없는 헛스윙에 뻣치는 망신살...
도구로 하는 모든 운동에 재능 없음을 깨닫고 몸뚱이 하나로 때우는 헬스나 하며 요가나 하는 저지만, 결론은 " 테니스가 좋아요 ~ " 요즘도, 구입한 지 2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골동품처럼 생긴 '윌슨'이라 적힌 라켓을 보며.....우울한 과거를 잠시 접어두고, 어디, 다시 한번 시작해봐...하며 나름대로 신중한 고려를 해보기도 한다는....... 쿄쿄쿄

마태우스 2004-03-22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님께는 왠지 볼링이 어울릴 듯.... 그것도 공으로 하는 운동이지만요.
앤티크님/그럼요, 제가 테니스라도 치니까 이렇게 술을 마실 수 있는 거죠^^
sweetmagic님/여자분이 테니스 잘치면 굉장히 멋있습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님은 아직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시: 3월 20일(토)
마신 양: 소주 한병+알파

부제: 민주주의와 변의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몇차례 촛불집회에 참여해 봤으니, 따스하기만 한 낮과는 달리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는 것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집회 때마다 내게 목도리를 빌려준 사람으로부터 "옷좀 제발 든든히 입고 오라"는 전화까지 받은 터였다. 그런데 난 무슨 배짱인지 봄냄새가 물씬 나는 옷차림으로 광화문에 갔고, 그 사람의 목도리를 빼앗아 두르고도 밤새 덜덜 떨었다. 추위에 대비해 마신 소주 4잔은 전혀 도움이 안됐다. 말이라도 잘 들리면 모르겠지만, 내가 앉아있던 시청 옆 도로는 마이크의 사각지대, 멍하니 앉아만 있으니 더더욱 추웠다.

추위보다 더 날 괴롭혔던 것은 최근들어 맹위를 떨치고 있는 변의. 어제도 분명 2차례나 일을 치렀건만, 저녁을 먹은지 한시간여가 지나자 어김없이 변의가 찾아왔다. 난 변의를 가장 잘참을 수 있는 자세로 바꾼 채 버텨야 했는데,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이렇게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자세가 훌륭하다고 변의를 완전히 잠재울 수는 없는 일, 난 대략 여섯차례 정도의 방귀를 뀌었는데, 내 주위 사람들 중 유독 이탈자가 많았던 게 혹시 그때문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밤 9시경, 참다못한 난 같이온 사람들을 설득, 인근 술집으로 갔고, 엊그제처럼 술집 화장실을 막는 건 아닌지 마음을 졸여야 했다 (막히진 않았지만 물을 세 번 내렸다). 한시간 동안 술을 마시고 다시금 광화문에 왔고, 빈곳을 노려 무대 가까이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신해철, 안치환, 정태춘 등 유명 가수들이 나오자 사람들은 열광했고, 주최측이 표방한 '문화축제'라는 것도 어느정도 실감이 났다.

-내 친구 중 울산에서 올라온 친구가 있었다. 서울에 올 일이 있어서 온거지만, 자기 부인이 간김에 촛불시위에 참석하고 오라며 컵과 인터넷으로 뽑은 노래 가사들, 돗자리 등을 싸주었다고 했다. 훌륭한 부인이다. 앞으로 잘해줘야겠다.
-어찌어찌 해서 알던 여자애를 무대 앞으로 가다 만났다. 어머님이 촛불시위에 참가하시려고 전주에서 올라오셨다나? 또다른 남자애도 만났는데, 하여간 거기서 누군가를 만나면 너무 반갑고, 진한 연대감이 느껴진다. 예컨대 이런 것. "니가 그렇게 훌륭한 얘였구나!"
-이용할만한 화장실이 없는 것은 참으로 불편한 일이다. 월드컵 거리응원 때 기저귀가 그렇게 잘 팔렸다는 게 실감이 났다. 내가 12시가 조금 못되어 빠져나간 것도 바로 소변 때문인데, 역시나 시청역 화장실 앞에는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뉴스를 보니 탄핵가결을 찬성하는 또라이들이 세종로에서 집회를 했단다. 2천5백명쯤 왔다는데, 극우 애들은 왜이리 게으른지 모르겠다. 독립신문의 꼴통 신혜식은 말한다. "탄핵반대만 문화집회냐?" 후후, 누가 뭐라나. 그래도 난 그들이 왜 세종로에 모였는지 이해할 수 없다. 시위란 건 원래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았을 때 벌이는 수단, 국회에서 이미 탄핵안이 가결되었는데 왜 시위를 한담? 할 일 정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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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03-21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클...민주주의를 지키는건 정말 어렵군요. 전 미리 겁먹어, 집에서부터 애들 쉬야 억지로 시키구...저녁 먹구 또 화장실 들렸습니다. 물론 애들 옷두 잔뜩 입혔죠..^^;; 과연 신해철이 오냐, 안 오냐..를 갖구 궁금해했는데, 역시 늦게까지 민주주의를 지키시면, 보답이 있군요.

연우주 2004-03-21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글과 상관없지만, 저도 습관적으로 한때 '남자애', '여자애'란 말을 잘 썼어요. 오죽하면, 군인애들, 이란 말까지 썼지요. 그러다 최근 들어 안 쓰는 이유는, 더 이상 제가 '애'자를 붙일만한 나이는 아니란 생각에서 였는데, 마태우스님은 아직도 쓰시는군요!
아, 그리고 민주주의 지키기 힘드네요. 정말.

마태우스 2004-03-21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어머, 우리가 같은 장소에 있었다니, 반갑습니다!
우주님/쓰고 보니까 좀 이상하네요^^

가을산 2004-03-22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스로만 보았던 화장실 문제를 이렇게 리얼하게 묘사하다니! ^^
씨~~ 인기 가수는 왜 서울에만 나오냐~~ !
대전은 주로 풍물과 춤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지만요.
전 초등학교 때부터 재래식 화장실이 무서워서 참는건 이력이 났습니다.
하루종일 외출시에도 어떨때는 한번도 화장실을 가지 않아서 저 스스로 '괜찮나?' 걱정되기도 합니다.

sunnyside 2004-03-22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주주의를 위해 그정도의 변의를 참는건 제게 예사랍니다. ㅎㅎㅎ
(실은 .. 저와 함께 광화문에 갔던 이들이 '부녀회' 멤버들인데요. 우리 '조직'은 맥주를 마실 때마다 화장실 안가기 시합을 벌이곤 했답니다. ^^;)
 

 

 

 

 

 

* 딴지일보 기자이신 나뭉님이 DVD21이라는 잡지에 쓴 글입니다. 너무 맘에 들어 퍼왔습니다. 다른 분들도 맘에 드셨으면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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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신문에는 심은하의 컴백 기사가 대서특필 돼있다. 은퇴한지가 벌써 5년이 흘렀거늘 그녀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 줄 모른다. 최근에는 이혼하고 잠적한 고현정의 기사가 스포츠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경우가 잦은 걸 보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연예계를 떠난 여배우에게 왜 이렇게들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걸까?

한마디로 한국 영화계에 쓸만한 여배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쓸만한 여배우는 왜 없는 것일까? 매력적인 여성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한반도를 휩쓸고 있는 두 영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만 보더라도 매력있는 여자의 역할을 찾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게다가 소위 대박의 신화를 열었던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에서 여성 캐릭터는 남성 캐릭터를 받쳐주는 보조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여배우가 자라날 토양이 척박하다.

물론 <바람난 가족>, <피도 눈물도 없이>처럼 여배우가 전면에 나섰던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묘한 포즈의 문소리를 전면에 내세운 인상적인 포스터를 보면 알 수 있듯 이 영화에서 문소리가 맡은 호정은 연기보다 오히려 벗은 몸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역할이었다. 또한 <피도 눈물도 없이>는 독불로 분한 정재영의 역할이 전도연, 이혜영을 압도하였다.

그나마 지난해 영화를 돌아보면 <스캔들>, <싱글즈>, <장화, 홍련> 속의 여성 캐릭터가 꽤나 인상 깊었더랬지만 역시 부족한 감을 지울 수가 없다. 그만큼 한국영화계에는 여성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이 미비하고 그로 인해 쓸만한 여배우는 한정되어 있으며 그 결과 영화계를 떠난 왕년의 스타에 목을 매는 기이한 경우가 연출되게 된 것이다. 심은하, 고현정에 목 매는(?) 현상이 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남성영화 제작 위주 풍토 속에서 이상적인 역할을 갈구하는 여배우가 충돌하면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경우가 바로 <바람난 가족>의 출연을 둘러싸고 발생한 명필름과 김혜수 간의 대립이다.

당시 여론은 <바람난 가족>의 출연을 확정한 상태에서 사극 <장희빈>의 겹치기 출연을 강행한 김혜수의 행동을 나무라는 쪽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이 도의상 옳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김혜수의 그 같은 결정이 이해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바람난 가족>에서 맡은 역할은 여자주인공. 앞서에서도 말했지만 그 역은 그동안 김혜수가 쌓아온 이미지와는 정반대되는 것으로 상당한 희생을 요구하는 역할이었다. 게다가 영화가 말하고 있는 바는 남성 가부장 사회의 해체. 그에 반해 TV 사극 <장희빈>에서 김혜수가 연기하게 될 장희빈은 여배우라면 누구나가 한번 쯤은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다. 궁중 암투의 중심에 서서 이를 조정하고 지시하는 적극적인 역할. 영화사측과 갈등이 생긴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의 원인이 여성 캐릭터의 부재에서 기인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다. 매력있는 여성 캐릭터의 증가만이 이를 해결 할 수 있을텐데 그렇지 못하다면 주연급 여배우의 부족현상은 계속 될 것이며 그로 인한 심은하, 고현정과 같이 은퇴한 배우에게 목 매는 현상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욱일승천하는 한국 영화계여, 이제는 여배우를 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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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껄 2004-04-2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뭉님이 자기 펌글에는 코멘트가 존나(딴지체니 양해부탁드립니다) 없다고 시무룩해서 제가 하나 남깁니다. 이렇게 해서 나뭉님 가슴에 존나(역시! 딴지체) 대못이 박힐 것이라 믿습니다.
 

 

 

 

 

 

의사인 내 매제는 노무현이 되었을 때 "내 인생은 끝이다"라며 울먹였다고 한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거지, 왜 그런 얘기를 하는가 싶었지만, 노무현의 당선이 의사들에게 가져다준 공포감은 그처럼 엄청났다. 노무현 집권 1년을 보면 의사들의 공포감이 기우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노무현 탄핵 이후 의사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 한번 미운 놈은 영원히 미운가보다.

축제분위기에 젖은 의사들 중 한명인 내 매제는 내게 말한다. 왜 광화문에 가냐고. 불만이 있으면 총선 때 표로 심판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지금 경찰이 촛불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시위는 합법의 테두리에서 해야 하지 않느냐?"
그의 말을 듣고 생각한 걸 여기다 적는다.

먼저, 촛불시위가 합법이냐 불법이냐는 경찰이 판단할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고, 집회.결사의 자유가 헌법상으로 보장되어 있다. "야간에는 시위가 불법"이라는 집시법은 분명 헌법의 하위법이며, 그 자체가 위헌이다.

매제에게 물었다. 군사 쿠테타가 일어나면 어쩔 거냐고. 거리로 나간단다. "쿠테타 자체가 불법이니까, 불법으로 맞서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는 게 그의 논리다. 총과 칼이 동원되지 않았다고 이번 탄핵이 쿠테타가 아닌 것은 아니다. 다들 아는 얘기겠지만, '선거법 위반'은 논란이 있고, 국정혼란과 경제파탄처럼 자의적인 조항은 탄핵사유가 될 수 없다. 측근비리 운운은 열배나 많은 불법자금을 쓴 한나라당으로서는 감히 할 수 없는 얘기일테고. 주어진 권한을 사용했다고 하지만, 대통령이 약간의 위기를 침소봉대해 국회를 해산해 버린다면 그것 역시 쿠테타일 것이다.

총선 때 표로 심판하면 된다고? 침묵은 암묵적 동조를 의미하며, 의회의 쿠테타에 대해 한달이 넘는 기간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린 '바보'다. 촛불시위는 실직자나 하는 것이라고 말한 홍사덕 총무를 비롯해, 수구세력들이 촛불시위를 흠집내기 바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들은 놀란 것이다. 국민들의 분노가 이렇게 크다는 것에. 그들은 두려운 것이다. 자신들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매제는 안가봐서 모르겠지만, 촛불시위는 지극히 평화적인 집회다. 시민들에게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폭력 등 불미스러운 일은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집회 후 자원봉사자들은 거리를 깨끗이 치우며, 만약에 대비해 출동한 경찰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의 표정을 보라. 군부독재 시절의 시위같은 비장함은 전혀 없다. 참석자들은 자유롭게 발언하고 웃고 떠들며, 발랄하기 짝이 없는 노래들을 따라 부른다. 그렇다. 촛불시위는 하나의 축제며, 정이 넘치는 장이다. 촛불시위는 의회의 쿠테타에 나 혼자만 분노하는 게 아님을, 그리고 이 땅에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 수없이 많음을 말해준다.

오늘 광화문에는 수십만이 모일 예정이다. 거기서 타오를 촛불은 그만큼의 희망을 이 땅에 심어줄 것이다. 우리가 광화문에 가야 할 이유다.

* 촛불집회에 딱 어울리는 노래는 이재성의 <촛불잔치>인데, 그게 안불려져서 아쉽다. "촛불잔치를 벌려보자 촛불잔치야---아/촛불잔치를 벌려보자 촛불잔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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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04-03-20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성당이나 절에 가면 초를 공양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빛은 어둠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게 합니다. 아무리 어두움이 빛을 이기려해도 어두움이 짙으면 짙을수록 빛은 더 환합니다. 광화문의 촛불을 보며 두려움마저 일어납니다. 그 질서정연함과 평화로움에...합법적인 절차로 국회에서 이루어진 탄핵과 불법이라는 촛불시위의 차이는 너무 두드러져 보입니다. 제가 바라는 법은 언제나 평화와 질서와 국민의 편에 서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평화로우며 질서 있으며, 국민의 편에 서 있습니까? 국회보다 광화문에 빛과 법이 있습니다.

_ 2004-03-20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그래서 민주의 가식을 쓰면서 뻐기고 있는 한국에서 속아지에는 왜 '야간에는 시위가 불법'이라고 규정해놓았는지 모르겠군요. 그럼 다들 바쁠때인 아침에 해야하나?.;; 사덕씨가 좋아하겠군요. 요즘 그의 줄줄 흘러내리는 얼굴을 보면 정말 밥맛이 떨어집니다.;;

마태우스 2004-03-20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nua10님/앗, 처음 뵙겠습니다. 그런데...글을 그리도 잘쓰시다니... 제 홈피에 퍼갑니다.
Bird나무님/글쎄말에요. 정말 말도 안되죠? 그 홍사덕도 예전엔 거리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자리가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 같습니다. 이재오, 김문수도 그렇구...

플라시보 2004-03-20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촛불시위가 불법이라는 말 자체가 웃긴다고 생각합니다. 촛불로 불을 지르겠다는 것도 아니고 화염병을 집어 던지거나 돌맹이를 던지겠다는 것도 아닌 평화적인 시위인데 야간 운운하며 불법이라고 한다는 것은 70년대 야간통금 만큼이나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고생 미군장갑차 희생 사건때도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도 불법이었을까요? 그때는 분위기가 '얼씨구나 우리국민 장하구나'였던 것 같은데... 성격만 다르지 그때나 지금이나 시민들이 하나되어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 것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나라에서 그걸 막을 이유도 명분도 없는것 같은데 계속 그런 딴소리들을 해대다가는 영원히 국민의 신임을 잃을수도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자기네 친척 중에 1회용 종이컵이나 초를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 적극 장려했을 것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들은 딱 그 정도 수준으로만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 같습니다.

가을산 2004-03-20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무대에서 마태우스님께서 불러 보시죠! ^^ 아마 히트칠거에요.
의사 소통이 단절이 되면 그때부터 생각과 판단도 단절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개혁적이라던 대통령 후보들도 청와대에 들어가면 왜 다들 그렇게 변하는지... '인의장막', 그리고 '시스템의 경직성'을 깬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가봅니다.
플라시보님, 홍사덕 총무의 발언을 보면, 친척 중에 촛불공장 사장이 있는게 틀림 없습니다.
혹시라도 초가 덜 팔릴까봐 매일 자극하는 말을 해주잖아요? ^^

진/우맘 2004-03-20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촛불잔치를 열창하다가 무대 아래로 질질 끌려내려오는 마태우스님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chaire 2004-03-20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촛불집회에는 촛불잔치를!... ㅋㅋㅋ 넘 재밌는 발상! 암튼, 저도 오늘은 광화문에 출동할 건데... 떨립니다...
 

 

 

 

 

 

양재동에 갈 일이 있어서 양재가 종착지인 학생들 버스-3천2백원이고, 단대 통학버스라 '단통'으로 불린다-를 탔다. 대충 자리가 찼는데, 내 옆자리만 비어있다. 머리긴 여학생이 탔다. "어? 자리가 없네? (친구보고) 야, 우리 다른 차 탈까?" 친구들이 그냥 가자니까 할수없이 앉은 그녀, 계속 뒤를 살핀다. "맨뒤에 자리 있는데, 저기 가서 앉을까? 아냐, 그럼 토크를 못하니.."


아니, 내가 그렇게 싫은가? 아는 여자들한테는 그래도 호의적인 평을 듣는 나, 하지만 낯선 여자들로부터는 박대를 받기 일쑤다. 예컨대, 지하철 내 옆자리에는 여자들이 잘 앉지 않는다. 어쩌다 앉는다해도 반대편에 자리가 나면 그쪽으로 도망가 버린다. 난 다리를 쫙 벌리고 앉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얌전히 다리를 오므리고 앉으며, 의자 앞쪽에 당겨 앉아 옆사람에게 불편을 안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이 사태에 대해 친구와 얘기를 해봤다.

1) 외모설; 가장 유력한 학설이다. 억지로 끌려간 나이트에서 여자들은 내 앞에 앉으면 십초만에 일이 있다고 나가버린다. 하지만... 지하철은 부킹하는 곳이 아니잖아?
2) 냄새설: 친구의 일방적 주장인데, 난 아침마다 샤워를 하고, 아는 여자들은 날 싫어하지 않는다는 걸 감안하면 결코 동의할 수 없다.
3) 분위기설: 내 분위기가 좀 칙칙하긴 하다. 하지만 지하철에 앉아 분위기 잡을 일이 뭐가 있담?
4) 비만설: 역시 친구의 말인데, "넌 hip이 크잖아!" 나도 안다. 하지만 그래서 지하철 의자의 끝부분앉아 면적을 최소화한단 말이다.

옆에 젊은 여자가 앉으면 그걸로 가슴이 뛰고 행복해하는 나에게, 여자들은 너무 냉정한 것 같다. 위 학설 중 어느 게 맞든지, 잠깐 같이 있는 건데 참아주면 안될까. 내 옆에 있다가 다른 자리로 가는 건, 안그래도 외모 때문에 괄시받고 살아온 나를 두 번 죽이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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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2004-03-20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전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지 않는게 버릇이 되서 아예 문기둥에 항상 기대선답니다.(가끔 저같은 부류의 분들이 계셔, 문기둥 사수 싸움도 벌인다는.;;)

플라시보 2004-03-20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저라면 대번 앉았을 것입니다. 냄새에 민감하여 냄새만 나지 않는다면 사람 옆에 앉는걸 가리지 않거든요. 아마 여자들이 피하는 이유는 단순히 남자이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여자들은 남자옆에 잘 앉으려고 하질 않거든요.

마태우스 2004-03-20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ird나무님/문기둥이요! 그거 저도 좋아했던 자리죠. 앉는 것보다 편하다는 생각도 했었죠. 그런데..나이가 좀 드니까, 이젠 앉는 게 좋아요. 그래도 경로석에 앉은 적은 아직 없습니다.
플라시보님/그,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 거죠? 그런데 반대편 남자 옆으로 가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요??

연우주 2004-03-20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 말이 맞습니다. 단지 남자기 때문에 잘 안 앉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제가 마태우스님을 버스에서 뵙는다면, 당장 옆에 앉아드리겠습니다....(별반 위로 안 되나요?^^)

_ 2004-03-20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대편 남자 옆으로 간다는 것은, 마태우스님은 남자로 보이는데, 그 사람은 남자로 보이지 않는다(!)로 해석하심이...;;;;

갈대 2004-03-20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동감합니다..ㅠ_ㅠ 이상하게 버스에 앉아있으면 다른 자리는 다 차있는데 제 옆자리만 비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로그인 2004-03-20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맞아요, 정말 남자옆에 한칸-이기 때문에 앉지 않는 걸거에요. 저같은 경우는 자리가 여유 있으면, 남자분과 거리를 두고 앉기도 하거든요. ^^

비로그인 2004-03-20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것이옵니다. 마태우스님의 심장뛰는 소리가 부담스러워 가는겁니다. 앞으론 경험(?) 많은척 하시길...

마태우스 2004-03-21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스바겐님, You win! 이 글에 대한 최고의 코멘트로 선정되었습니다. 부상으로 펄럭이는 태극기를 드리겠습니다^^

비로그인 2004-03-21 0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