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지도 1
강연 도중 질문을 받았다.
"지금 베란다쇼를 비롯한 TV 프로에 자주 나오시는데요, 그 이유가 뭔가요?"
바로 답변을 했다.
"음, 방송은 베란다쇼 딱 하나 나가구요, 방송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제가 청소년들한테 과학을 주제로 강연하는 게 꿈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인지도가 낮아서 강의가 별로 안들어와요. 방송은 인지도를 좀 높여서 자라나는 청소년들한테 강연을 다니기 위한 수단이죠."
2) 학자
우연히 만난 동료선생이 묻는다.
"저...제가 아는 사람이 그러는데, 그분은 연구는 대체 언제 하느냐는데요."
방송활동을 하면서 가장 두려워하는 게 바로 이런 시각,
방송 때문에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느냐는 질책 말이다.
그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난 평소보다 더 논문을 쓰려고 몸부림치는데,
예를 들어 일요일인 어제, 밤 10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동이 터올 무렵인 새벽 6시에 논문 한편을 마무리했다 (오늘 고쳐서 조금 전에 투고...)
이건 물론 자랑이지만, 이번에 투고한 논문이 내가 올해 쓴 8번째 논문,
그 바람에 아내와 강아지 세마리로 구성된 가정을 거의 팽개치다시피 하고 있는 게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연구 안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아야지 않겠는가.
인터뷰 때마다 이 말을 강조하는 이유도 거기 있다.
"저는 학자구요, 방송 정리되는대로 학계로 돌아갈 거예요."
학장님이 요새 방송 때문에 바쁘지,라고 물었을 때는 이렇게 대답했다.
"에이, 논문 쓰느라 바쁘죠, 방송은 암것도 아니에요."
이런 걸 보면 내가 천상 학자인 것 같은데, 과연 속마음도 그럴까.
엊그제 강연 때문에 지방에 가면서 옆사람한테 했던 말을 다시 복기해보자.
"로또만 되면 보스톤 가서 살 거야.
아침에는 테니스치고 낮에는 책읽고 밤에는 프로야구 보고!
근데 그놈의 로또가 계속 안맞네."
인지도 높여서 강의를 다닐 거라는 말이나 "저는 학자예요"라는 말과 심하게 배치되는 이 말,
대체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3) 인지도2
TV 프로에 나가니, 그것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방영되는 프로에 나가다보니,
알아보는 사람이 제법 많아졌다.
택시를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기생충박사님이시네요"라고 해서 놀란 적도 있는데,
과거의 삶이 그리 떳떳한 게 아니어서 한방에 훅 갈 수도 있지만 (다행히 혼외자식은 없다)
가끔씩 알아봐주는 게 그리 싫지는 않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날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야 나!"라고 외치고픈 마음은 없는데,
누군가가 날 제발 좀 알아봐줬으면 싶을 때가 딱 한번 있었다.
얼마 전 조사를 받으러 관공서에 갔는데,
그 담당자가 날 좀 알아봐줬으면, 하고 며칠 전부터 빌었다.
담당자가 몰라본다해도 다른 직원이 "어머 기생충박사님 아니세요?"라고 한다면
나에 대한 심문이 좀 부드럽지 않겠는가!
하지만 날 만난 미녀 담당자는 내 얼굴을 한번 보더니 이름을 물었고,
심지어 이런 말을 했다.
"이름이 참 독특하네요. 한번 들으면 안잊어버릴 이름이어요."
말인즉슨 내 이름과 얼굴을 처음 경험했단 뜻,
게다가 그날이 일요일이라 다른 담당자도 하나 없었기에 내 기대는 수포로 돌아갔다.
옆에 수갑찬 사람이 하나 있긴 했지만
그 사람은 자기 코가 석자라 내 얼굴을 보려 하지도 않았다.
결국 그날 조서는 비교적 날카롭게 진행됐고,
난 씁쓸한 표정으로 그곳을 떠나야 했다.
나오면서 든 생각, "인지도를 더 올려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