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nd of Physics: The Myth of a Unified Theory (Paperback, Revised)
Basic Books / 199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감탄하며 읽었다. 19세기, 고전물리학자들이 물리학의 끝을 말할 때—자연현상이 모두 물리 이론으로 설명되는 것처럼 보였으므로—부터 시작해서 현대 물리학—상대성이론, 양자역학—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의 ‘진화’에 대해 논의한다. 이제 더 이상 실험으로 테스트할 수 없는 영역을 다뤄야만 하는 물리학—좀 더 정확히는 입자물리학—에게 저자는 이제 또 다른 끝이 다가왔다고 말한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물리학의 끝’이다. 


입자물리학자들에게는 자연의 모든 힘과 입자들을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어서 우주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이러한 이론을 ‘통일 이론(unified theory)’ 또는 ‘만물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라 하는데, 이미 제안된 이론의 하나가 예측한 것은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으며(양성자 붕괴 실험), 논의하는 에너지 영역이 너무 높아서 더 이상 실험할 수 있는 영역에서 예측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물의 이론으로 논의되는 모든 이론들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서 책의 부제—‘통일 이론의 신화’—가 나왔다.


책은 1993년에 나왔는데, 우리말로는 1996년에 <물리학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책이 나온 이후에도 많이 회자된 주목할 만한 발견들이 있었다. 우주의 가속팽창(1998년), 힉스 보손Higgs boson의 발견(2012년), 중력파의 검출(2015년) 등이 그것들인데, 이러한 발견들도 이 책의 결론을 바꾸지는 않았으며 저자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진작 읽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입자물리학의 한계와 끝에 대한 여러 책이 있는데, 그 중 첫 번째로 꼽을만하다. 현대 물리학의 발전을 설명한 부분도 일품이고, 문장도 잘 읽힌다. 기술적 논의는 비교적 간략하지만 핵심을 잘 짚어 물리의 ‘영혼’을 엿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의 제일 마지막 문단:

... Modern physics was set on its present course by the pragmatic methods of Newton and Galileo and their many successors, and this effort, three centuries old, has led to the elaborate physical understanding we now possess. But this kind of physics seems to have run its course. Experiments to test fundamental physics are at the point of impossibility, and what is deemed progress now is something very different from what Newton imagined. The ideal of a theory of everything, in the minds of the physicists searching for it, is a mathematical system of uncommon tidiness and rigor, which may, if all works out correctly, have the ability to accommodate the physical facts we know to be true in our world. The mathematical neatness comes first, the practical explanatory power second. Perhaps physicists will one day find a theory of such compelling beauty that its truth cannot be denied; truth will be beauty and beauty will be truth—because, in the absence of any means to make practical tests, what is beautiful is declared ipso facto to be the truth.

  This theory of everything will be, in precise terms, a myth. A myth is a story that makes sense within its own terms, offers explanations for everything we can see around us, but can be neither tested nor disproved. A myth is an explanation that everyone agrees on because it is convenient to agree on it, not because its truth can be demonstrated. This theory of everything, this myth, will indeed spell the end of physics. It will be the end not because physics has at last been able to explain everything in the universe, but because physics has reached the end of all the things it has the power to explain. (p. 255)

... 뉴턴과 갈릴레오, 그리고 여러 후계자들의 실용적 방법이 현대 물리학의 진로를 결정해 왔으며, 3세기가 지나 이러한 노력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정교한 물리적 이해를 낳았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물리학은 이제 그 수명이 다한 것처럼 보인다. 근원적 물리를 시험하기 위한 실험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고, 현재 진보라고 여겨지는 것은 뉴턴이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만물의 이론을 좇는 물리학자들에게 그 이론은 범상치 않은 깔끔함과 엄격함을 갖춘 수학적 시스템이다. 만약 모든 것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그 이론은 이 세상에 대해 우리가 옳다고 알고 있는 물리적 사실들을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수학적 깔끔함이 우선이며 실제적 설명 능력은 두 번째이다. 물리학자들은 너무 아름다워서 그 옳음을 거부할 수 없는 이론을 언젠가 찾을지도 모른다. 진리는 아름다움이 될 것이고 아름다움이 진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적 시험을 할 수 있는 수단이 부재하므로 아름다운 것이 결국 진리로 선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만물의 이론은 글자 그대로 신화일 것이다. 신화란 그 체계 내에서 그럴듯한 이야기이며,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지만, 시험되거나 반증될 수 없다. 신화는 동의하는 것이 편리하므로 모든 이들이 동의하는 설명이다. 그 진실성을 증명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이러한 만물의 이론, 이러한 신화는 진정 물리학의 끝을 쓸 것이다. 그것이 끝인 것은 물리학이 마침내 우주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물리학이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끝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쓰기가 뭐라고 - 강준만의 글쓰기 특강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각이 있어 쓰는 게 아니라 써야 생각한다˝ 이 부분이 제일 마음에 와 닿는다. 그 외 이런저런 현실적 조언들. 일단 많이 써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부담 갖지 말고 일단 쓰기 시작하자. 어떻게 잘 쓰는가는 그 다음 문제. 이 책은 잘 쓰기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의 얘기도 많이 다룬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0-02-19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쓰자-는 글쓰기 책의 공통 조언 같네요 ㅎㅎ일단 씁니다. ㅎㅎㅎ

blueyonder 2020-02-19 19:29   좋아요 1 | URL
네 일단 쓰는 것이 우선일 것 같습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그리고 시작이 반입니다. 화이팅! ㅎㅎㅎ
 


2월 9일 (우리 시간으로 2월 10일) 진행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과 경합을 벌였던,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국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이 2월 19일 우리나라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은 현대 과학이 만든 잔혹한 살상무기들이 투입되어 전쟁의 면모를 바꾼 격변이었다. 탱크가 이 때 처음으로 전선에 투입됐고, 비행기도 제한적이지만 그 쓰임새를 증명했다. 그 외, 잠수함, 독가스, 기관총, 새로운 전함, 대규모 포격 등등 전쟁은 새로운 무기와 전술의 시험장이었다. 치명적 무기 때문인지 전선은 곧 정체되어 쌍방 모두 깊은 참호를 파고 대치했으며, 이러한 비인간적 참호전은 1차 세계대전의 집단적 트라우마로 인류에게 남아 있다. 4년 3개월 2주간의 전쟁을 통해 쌍방 합쳐 약 천만 명의 군인이 죽고 2천만 명의 군인이 다쳤다. <1917>은 독일군이 전선을 단축하기 위해 행했던 퇴각(알베리흐 작전Operation Alberich)을 배경으로 한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다. 


함정에 빠질 공격을 취소하라는 명령을 1,600명으로 이루어진 대대에게 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영국군 병사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인데, 실제 이러한 상황이 가능했는지에 대해서는 비판이 있다. 1,600명 정도의 손실에 고급 지휘관들은 눈도 깜빡하지 않을 정도로 당시 전쟁이 비인간적이었다는 것인데, 어찌 보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영국판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1917>이나,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사투하는 모습은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이건 좀 기술적인 얘기인데, 당시 총공격은 반드시 대규모 포격 뒤에 이루어졌으므로, 만약 포격이 없다면 당연히 부대는 공격 취소를 의심했을 것이라서 굳이 이렇게 힘들게 공격 취소를 알리러 갈 필요가 없다는 비판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알린 책 한 권을 다음에 리스트한다. 19살의 나이로 자원하여 참전했던 독일의 에른스트 윙어Ernst Jünger의 회고록이다. 





























원저는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20년 출간됐는데, 위의 제일 왼쪽 영문판은 Basil Creighton의 1929년 번역본으로서 2019년 출간됐다. 그 오른쪽 두 권은 Michael Hofmann의 번역본으로 2004년, 2016년 출간됐다. Michael Hofmann의 번역이 더 생동감 있는 번역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he Battle of Midway (Paperback)
Craig L. Symonds / Oxford Univ Pr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 말 개봉한 영화 <미드웨이>를 보고 바람이 불어서 미드웨이 해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며 읽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Craig Symonds의 책에 대한 평을 적는다. 이 책은 미국에서 2011년에 출간됐는데, 최근 우리말로 번역된 <Shattered Sword>(미국에서 2005년 출간)의 연구까지 포괄하여 미드웨이 해전에 대해 아주 균형 잡힌 설명을 해준다. <Shattered Sword>가 일본측 자료를 연구하여 전투에 얽힌 여러 신화를 깨는 주춧돌을 놓았다면, 이 책은 미드웨이 해전 자체에 대한 논의는 <Shattered Sword>만큼 자세하지 않지만, 그 이전의 둘리틀 공습이나 산호해 해전 등에 대해 좀 더 상세히 보여준다. 또한, 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암호 해독에 대해서도 한 개 장을 할애하여 설명한다. 논의가 전반적으로 간략한 편이지만 해전에 얽힌 여러 면모를 종합적으로 조망하게 해주며, 특히 미국 항공모함 호넷에서 발진한 공격기들의 항로에 대해 여러 자료를 검토하여 논란을 잘 정리하고 있다. 미드웨이 해전에 대한 또 하나의 훌륭한 참고도서라고 할 수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ew Scientist (주간 영국판): 2019년 12월 21일 - 영어, 매주 발행
New Scientist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국의 왕실천문학자(Astronomer Royal)인 마틴 리스가 이 2019 크리스마스 특집호에 글을 썼다(33 페이지). 제목은 "두 번째 거대한 도약(A second giant leap)"이다. 2019년은 인류의 달 착륙 50주년이 되는 해였는데, 2020년대에는 또 다른 우주 경쟁이 본격 시작될 조짐이다. 중국과 인도는 유인 달 탐사를 계획 중이고, 미국은 유인 화성 탐사를 위해 달에 기지를 세울 생각을 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조스는 SpaceX나 Blue Origin 사업을 통해 사람을 우주로 보낼 로켓을 개발 중이다. 


스티븐 호킹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우주로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마틴 리스는 스티븐 호킹과 의견을 좀 달리 한다. 인류가 언젠가는 지구와 가장 비슷하다는 화성으로 진출하긴 하겠지만, 대규모 이주는 어려우며 위험을 감수할 의지가 있는 극소수만이 화성으로 갈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렇게 진출한 극소수의 사람은 새로운 환경인 화성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기술의 도움으로 굉장히 빨리 '진화'할 터이고, 이렇게 진화한 인류는 지구에 남아 있는 인류와 비교할 때 새로운 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마 실험적 진화가 성공적일수록 점점 지구의 인류와는 생물학적으로 거리가 멀어질 텐데, 여기서 재미있는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더 이상 인류라고 볼 수 없는 화성인과 지구인 사이의 갈등--아마도 자원을 둘러싼?--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까? 웰즈의 소설처럼 화성인의 지구 침공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까?


마틴 리스의 생각은 부정적이다. 점점 진화한 화성인은 궁극적으로 유기물인 육체를 버리고 지성을 갖는 무기물로 진화할 터인데, 이들에게는 지구의 환경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다. 지구와 같은 행성에는 중력이라는 거추장스러운 힘이 있다. 반면 행성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 공간은 중력이 매우 작으며, 더 이상 호흡할 산소가 필요치 않은 무기 지성(inorganic intelligence)에게는 이러한 심우주 공간이 더욱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현재로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은하간 여행을 하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주 여행에 대한 생각--인간의 수명보다 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동면'을 하는 등과 같은--을 초라하게 만든다[1]. 어쩌면 이것은 물에서 살던 생물이 진화하여 뭍으로 올라온 후에는 더 이상 물이 필요치 않게 되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 



류츠신의 과학소설 <삼체>에는 '암흑의 숲' 가정이 나온다. 소설 내용을 스포일하지 않기 위해 간략히 적자면, 우주의 모든 지적 생명체가 적대적이라는 것이 이 가정이다. 마틴 리스의 생각은 이러한 가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이 크리스마스 특집호에는 류츠신의 단편 소설도 실려 있다(38페이지). 제목은 <2018-04-01>인데,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인간의 수명을 300년까지 늘릴 수 있게 됐을 때의 얘기를 다룬다. 중국도 류츠신을 애정하지만, 서구도 이 작가를 애정하는 것 같다. 그의 <삼체> 시리즈를 모두 읽은 나는 그를 크게 애정하지는 않는다.^^ 


---

[1] 영화 <패신저스>에는 새로운 행성으로 가기 위해 동면한 5000명의 이주자들 얘기가 나온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20-02-01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인간의 우주 진출 전망을 언급한 호킹의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호킹이 우주를 식민지처럼 여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인간의 우주 진출과 우주 사업에 대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blueyonder 2020-02-02 10:24   좋아요 0 | URL
만약 외계생명체가 있는 곳으로 이주한다면 지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주자와 원주민 사이의 문제가 발생하겠지요. 만약 외계생명체가 있다면 이들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지성까지 필요하다고 할지 등등 고민할 문제가 많을 것 같습니다. 외계생명체가 지성이 있건 없건, 이들의 입장에서 지구인은 침략자가 되겠지요. 실제 화성탐사에서는 외계생명체의 유무가 큰 관심사인데, 탐사선이 지구에서 모르고 싣고간 미생물을 화성 고유의 생명체로 오인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쓰는 모양입니다.
이래저래 우주를 우리 맘대로 써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인류중심주의를 벗어나기 힘든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