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걸고 전쟁을 하는 이유'


"Blood is the same whether it spills on aluminum or Normandy mud. It takes guts whether you fly a million-dollar airplane or wade in slow with a fifty-dollar rifle...  Maybe some of the airpower fanatics will scream that the big brains didn't give us a chance to win it our way." But "the only thing that matters," Stiles wrote on the evening of D-Day, "is to win, win in any way so there is never another one." (p. 294)

그[스타일스]는 그날 일기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인간의 피는 알루미늄 기체에 흘리든, 노르망디의 진흙에 흘리든 모두 똑같다. 100만 달러짜리 항공기를 타든, 50달러짜리 소총을 들고 눈 속을 헤매든 모두 똑같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항공력을 광신하는 높으신 분들 중에는 자기 방식대로 전쟁에서 이길 기회를 놓쳤다며 불평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승리뿐이다.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 이기고 나면 그 방법은 중요치 않다." (72 페이지)


위의 국역판에서는 중요한 부분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았다. "so there is never another one."의 문구다. "one"은 '이런 일' 정도의 의미일 것이고, '전쟁'으로 봄이 올바르다. 또 다른 '전쟁'이 없도록 싸운다는, 병사의 의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승리이다. 다시는 이런 전쟁이 없도록 어떻게든 승리하는 것이다." 이것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병사들의 다짐이다. 승리는 승리 자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전쟁의 시작을 결정하는 사람과 실제 싸우는 사람이 다르다는 것이 늘 문제를 야기한다. 자기의 목숨을 걸고 직접 싸운다면 경제적 이유 때문에 전쟁을 시작하는 일은 사라지리라. 


하나 더 지적하자면 "wade in slow with a fifty-dollar rifle" 부분은 "50달러짜리 소총을 들고 눈 속을 헤매든"으로 번역됐는데 이상하다. "50달러짜리 소총을 들고 천천히 상륙하든"이 올바르겠다. 지금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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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와의 대면'


For him [William Wyler], the war had been, as he once said, "an escape to reality." On an airbase in England, "the only thing that mattered were human relationships; not money, not position, not even family. Only relationships with people who might be dead tomorrow were important. It is a sort of wonderful state of mind. It's too bad it takes a war to create such a condition among men." (p. 147)

그는 자신에게 전쟁이야말로 '현실로의 도피처'였다고 말했다.

  "오직 인간관계만이 중요했다. 돈도 지위도 가족도 내일 죽을지 모르는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정말로 경이로운 심리 상태였다. 그러나 그런 심리 상태를 만들기 위해 전쟁을 겪어야 한다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248 페이지)


전쟁에 종군하여 영화를 찍었던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얘기이다. 국역본에서 "escape to reality"를 "현실로의 도피처"로 번역한 것은 좀 이상하다. "도피"가 아니라 '탈출'이 낫겠다. "reality"는 사전적 의미로 하면 '실재'이겠으나 너무 철학적이므로, 문맥을 살리자면 '진짜'라고 하면 어떨까 싶다. '진짜로의 탈출' 또는 더 의역하자면 '진짜와의 대면'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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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3 18: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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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프랑스 등 독일 점령지의 군사목표를 타격하기 시작한 미국 제8 공군은 고고도 전략폭격의 이론을 실행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희생은 폭격기 승조원들의 몫이었다.


  By this time, the men of Morgan's 91st BG had begun to realize that they were "pawns in a great experiment being tried by the Army Air Forces.... The members of the group even referred to themselves as 'guinea pigs,'" wrote their official historian. This was an experiment in blood, not a theoretical debate, as it had been in the 1930s. "Is anyone scared?" a commander barked at his men. "If not, there is something wrong with you. I'll give you a little clue how to fight this war—make believe you're dead already; the rest comes easy." (p. 106)

  이제 모건이 속한 제91 폭격비행전대의 장병들은 비정한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부대의 공식 전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육군 항공대가 벌이는 거대한 실험에 쓰이는 실험동물에 불과했다. 일부 장병들은 스스로를 '기니피그'라고 불렀다." 

  이제 1930년대에 벌어졌던 이론 논쟁은 끝이 나고, 인간의 피를 재료로 하는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 지휘관은 부하들을 이렇게 꾸짖었다.

  "무섭나? 무섭지 않은 사람은 비정상이다. 이 전쟁에 어떻게 대처할지, 그 비결을 알려주겠다. 귀관들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라. 그러면 편해진다." (181~182 페이지)


조지프 헬러의 <캐치-22> 소설에 나오듯, 전쟁은 가해자와 피해자, 또는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비인간적 상흔을 남긴다. 참고로, 위 글에 나오는 로버트 모건은 영화로도 다뤄졌던 B-17 폭격기 "멤피스벨"의 조종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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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g with Paris, these Biscay ports had been the chief prizes of the Nazi conquest of France. With them under German control, U-boats no longer had to make the treacherous week-long trip from bases at Kiel and Wilhelmshaven, across the North Sea, and around the top of the British Isles to their hunting grounds in the North Atlantic. They could remain at sea longer and range farther while staying closer to their sources of supply, command, maintenance, and intelligence. In 1942, twelve U-boats based along the Bay of Biscay each sank more than 100,000 tons of shipping. No American submarine in the Pacific sank more tonnage than that during the entire war. (p. 74)

  비스케이만에 위치한 이 항구들은 파리와 함께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얻은 큰 성과로, 이곳이 독일 수중에 있는 한 유보트는 사냥터인 북대서양으로 나가기 위해 킬과 빌헬름스하펜 유보트 기지를 출항해 북해와 영국제도 사이를 지나는 일주일간의 위험한 항해를 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바다에서 더 오래, 더 멀리 이동할 수 있으며 보급, 지휘, 정비, 정보 측면에서 장점이 많았다. 1942년 한 해 동안 비스케이만을 따라 12척의 유보트가 배치되었는데, 이 유보트들은 각각 10만 톤 이상의 연합국 상선을 격침시켰다. 전쟁 기간 동안 이보다 많은 적함을 격침시킨 미국 잠수함은 없었다. (130 페이지)


영국에 주둔한 미국 제8 공군은 1942년 10월 말부터 프랑스 비스케이만 연안의 유보트 기지들을 폭격하기 시작한다. 관련하여 독일 유보트의 전과를 설명하는 부분인데, 우리말 번역에 조금 오류가 있다. "1942년 한 해 동안 비스케이만을 따라 12척의 유보트가 배치"됐다고 언급하는데, 번역문 그대로라면 숫자가 너무 작다. 원문은 '1942년에 비스케이만을 따라 배치된 유보트가 12척'이라는 것이 아니라 '비스케이만을 따라 배치된 유보트 12척', 다시 말하면 '비스케이만을 따라 배치된 유보트 중 12척'이라는 의미이다. 이 12척이 각각 10만 톤 이상을 격침하는 전과를 올렸다는 것이다. 


역자는 원문에 있는 "in the Pacific"을 누락했는데 간결함을 위한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넣는 것이 더 좋을 뻔했다. 태평양에서 일본을 상대로 미군 잠수함도 엄청난 전과를 거두었다고 종종 얘기되기 때문이다. "전쟁 기간 동안 태평양에서 이보다 많은 적함을 격침시킨 미국 잠수함은 없었다"라고 하는 것이 더 명확하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위의 언급은 잘못된 듯 보인다. 2척의 미군 잠수함(탱Tang과 플래셔Flasher)이 2차대전 동안 각각 116,454톤과 100,231톤의 격침 전과를 올렸다고 알려진다[*]. 물론 유보트의 전과는 1942년 1년 동안의 전과이고 미군의 전과는 전쟁 전 기간에 걸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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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most_successful_American_submarines_in_World_War_II


참고 - 유보트 잠수함별 전과 요약 웹사이트: https://uboat.net/ops/successful_boats.htm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most_successful_German_U-bo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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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urchill did not share Harris's confidence that bombing alone would bring down Nazi Germany, but in the absence of alternatives, he endorsed a bombing program of ruthless resolve, carried out by the man he called--half in admiration, half in abhorrence--the Buccaneer. (Harris's adoring crews, whom he supported unreservedly, called him Butcher, Butch, for short. And the prime minister had no moral reservation, then or later, about unrestricted air warfare. After the war, he wrote to a former officer in Bomber Command: "We should never allow ourselves to apologize for what we did to Germany." (p. 55)

  처칠은 폭격만으로 나치 독일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해리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해리스가 제안한 이 무자비한 폭격 계획을 승인했다. 처칠은 해리스를 '해적'이라고 불렀다. 이 표현에는 경의와 혐오의 의미가 섞여 있었다. 해리스가 총애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영국 폭격기 승무원들은 해리스를 '도살자'라고 불렀다. 처칠 총리는 그 당시에도, 그 후로도 이러한 항공전에 대해 양심의 가책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종전 후 그는 폭격기사령부 소속 전직 장교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독일에게 했던 일에 대해 절대로 사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10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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