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주의는 우리가 자연에 관한 유일무이한 진리를 소유하고 있음을 증명하려는 공허하고 오만한 시도가 아니라, 실재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모든 현실적인 방법들을 추구하겠다는 결심이어야 마땅하다. (30 페이지)

  그런데 왜 다원주의를 채택하는 편이 더 나을까? 왜 여러 지식 시스템들을 살려두어야 할까? 즉각 떠오르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모든 필요들을 충족시키는 완벽한 단일 이론 혹은 관점에 도달할 개연성이 낮다는 직감이다. 이것을 비관론이라고 불러도 좋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근거 없는 비관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이것을 인간의 능력에 대한 합당한 겸양으로 여긴다. 우리가 완벽한 단일 시스템을 발견할 성싶지 않다면, 다수의 시스템을 보유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 시스템들은 제각각 다른 장점을 지닐 것이다. 다양한 지식 시스템들에서 다양한 실용적 지적 혜택들이 나올 것이다. (31 페이지)

다원주의와 상대주의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주의는 게으른 방임과 판단 포기를 함축한다. 다원주의는 판단을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단 하나의 가치 있는 시스템을 육성하는 것보다 다수의 가치 있는 시스템들을 육성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내가 말하는 다원주의는 지식의 육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3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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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농담을 통해 물리학의 기본적 접근 방법을 재미있게 설명한다. 이름하여 '공모양 젖소 철학spherical-cow philosophy'이다. 어느 농부가 우유 생산 문제로 고민하다가 근처 대학에 가서 해결책을 문의하기로 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이론물리학자(!)에게 갔다. 이론물리학자는 복잡한 계산을 한참 한 후 엄청나 보이는 방정식들을 보여주며 문제를 풀었다고 말한다. 농부가 흥분해서 물었다. "답이 뭐에요?" 이론물리학자의 대답: "자, 먼저 공모양 젖소를 가정해 봅시다..."


이 농담의 교훈은 물리학이 실제로 이렇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요소들은 모두 무시하고 좀 더 쉽게 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만 남겨두고 문제를 푼다. 이렇게 문제의 핵심에 대한 정보를 얻은 후, 여기에 무시한 요소들을 넣었을 때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고민한다. 저자가 드는 예는 운동에서의 마찰이다. 맞다, 마찰을 넣으면 문제가 복잡해지고 잘 풀리지 않지만 마찰을 무시하면 문제가 간단해지고 잘 풀린다. 이상적 운동에 대한 통찰을 얻은 후, 마찰의 역할--운동을 방해해서 속도를 줄임--을 추후 고려하여 실제적 상황에 가까이 가는 것이다. 


물리학의 위력은 물질세계의 이해에 이러한 방식이 잘 작동한다는 데 있다. 젖소에게는 잘 작동하지 않지만... 물리학의 이러한 측면, 또는 물리학자들의 이러한 성향을 저자는 "공모양 젖소 철학"이라고 부르고 있다. 물리학의 강점과 한계를 우스꽝스럽게 잘 요약하는 문구라는 생각이 들어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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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mperor's New Mind (Paperback, Reprint)
Penguin Books / 1991년 1월
평점 :
절판


이제는 노벨상 수상자인 로저 펜로즈[1]는 이 책에서 ‘의식’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해 길고 다양한 예를 들어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 전반부의 튜링 기계와 수학에 대한 얘기는 좀 어렵고 지루했으나 펜로즈의 박식함과 스타일을 엿볼 수 있었다. 이후의 물리 얘기는 좀 더 읽을 만했고 뇌에 대한 지식은 알아둘 만했으며 그가 생각하는 ‘의식’의 본질에 대한 내용에서는 새로운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은 출간된 지 이미 30년이 넘었다(1989.11.09 처음 출간). 이 당시에는 ChatGPT도 없었고 인공지능 연구는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펜로즈 주장의 핵심은 아직도 유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펜로즈는 의식 현상을 결코 알고리즘으로는 만들 수 없다고 주장한다. 컴퓨터는 알고리즘으로 돌아가므로 이는 인공지능이 결코 의식을 가질 수 없다는 얘기이다.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당연히 생각을 달리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의식을 가질 수 없다는 주장은 울프 다니엘손이 <세계 그 자체>에서 한 얘기이기도 하다. 펜로즈는 그가 CQG(correct quantum gravity)라고 부르는 양자중력이론이 의식을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할 거라고 추측한다. 이 이론이 무엇인지는 그도 모른다. 단지, 파동함수가 시간에 따라 중첩되어 진행하다가 그 차이가 중력적으로 커지면(한 개의 중력자 정도로?) 자연적으로 붕괴한다는 특성을 지니지 않을까 추측한다. 여기에 더해 비알고리즘적이라는 면모를 가질 것이다. 펜로즈의 이런 생각에 대한 물리학계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펜로즈는 수학자이자 수리물리학자이므로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수학적 개념이나 논리를 순식간에 깨닫는 경험은 이데아 세계를 인식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난 다니엘손의 주장에 더 끌리는 편이다. 수학적 개념은 인간의 머리 속에 있을 뿐이다. 완벽한 원이 어딘가에 있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 
[1] 2020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 95.06.16에 샀던 책의 독서를 이렇게 (30년 만에!)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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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델의 정리는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수학의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알려줄 수 없음을 얘기해 준다는 펜로즈의 지적. 펜로즈는 명제의 참/거짓 판단에 외부의 통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예는 의식이 알고리즘일 수 없음을 시사한다는 주장이다. 


In particular, a conclusion from the argument in Chapter 4, particularly concerning Gödel's theorem, was that, at least in mathematics, conscious contemplation can sometimes enable one to ascertain the truth of a statement in a way that no algorithm could... Indeed, algorithms, in themselves, never ascertain truth! ... One needs external insights in order to decide the validity or otherwise of an algorithm. I am putting forward the argument here that it is this ability to divine (or 'intuit') truth from falsity (and beauty from ugliness!), in appropriate circumstances that is the hallmark of consciousness. (p.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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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른바 '일반인을 위한' 물리교과서 시리즈들이 출간되고 있다. 스타트를 끊은 것은 스탠퍼드 대학교의 레너드 서스킨드 교수이다. '일반인을 위한'이라고 내가 뭉뚱그렸지만, 결국 이것은 비교적 쉽게 쓴 '교과서'임에 유의해야 한다. 아마 주 대상은 물리를 공부하는 대학생일 듯 싶고, 그 외에는 이공계 학과를 전공한 졸업생이나 아니면 정말 물리에 갈망이 있는 고등학생 정도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미적분 정도의 지식이 분명히 있어야 하므로, 이에 대한 지식이 없는 정말 '일반인'에게는 이해가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아마 보통 고등학생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먼저 서스킨드 교수의 <물리의 정석The Theoretical Minimum> 시리즈이다. 





























다음은 영문판 원서들.





























이 시리즈는 '고전역학', '양자역학', '특수상대성이론과 고전장론', '일반상대성이론'의 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스킨드 교수가 스탠퍼드에서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열었던 강의를 정리한 내용이다. 이론물리학자인 서스킨드 교수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이론theoretical minimum'이 이 정도이다. 


두 번째는 션 캐롤 교수의 <우주의 가장 위대한 생각들The Biggest Ideas in the Universe> 시리즈이다. 총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스킨드 교수의 책보다는 수식이 훨씬 적고 교과서 분위기가 덜 나서 '일반인'들이 그래도 시도해 볼만하다. 





























마지막으로는, 국내 정완상 교수의 <세상에서 가장 쉬운 과학 수업> 시리즈가 있다. 현재까지 19권 정도가 검색되는데, 앞으로 더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오리지널 논문으로 배우는 과학'이 부제로 붙어 있다. 실제로 책 뒤에는 영어로 된 논문이 있다. 신선한 시도이고 도전의식을 자극한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쉬운'이라는 말에 현혹되면 안된다. 아마 이론물리학자의 기준에서 '가장 쉬운'일 것이다. 앞에서 얘기했지만, 이 책도 거의 교과서에 준한다. 논문을 읽기 위한 내용을 앞에서 설명하므로, 표준적 교과서의 전개 방식과는 조금 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자세히 설명하려는 저자의 시도가 돋보이고, 설명을 통해 실제 어떻게 이러한 지식이 논문에 활용되는지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듯 싶다. 개인적으로, 매우 신선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19권의 책을 나열하고 보니, 참 저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웬만한 사명감이 없으면 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면에서, 관심 있는 '일반인'들에게는 축복과도 같다.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한번 시도해 봐도 좋겠다.


정리하고 보니, 션 캐롤 교수의 책을 다른 두 시리즈와 묶는 것이 적절할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좀 더 '딱딱하게', 정식으로 물리적 개념을 알고 싶은 이들은 캐롤 교수의 책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단 2권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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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5-11-09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숀 캐럴 3부작의 마지막 권이 나오길 고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3권 내용이 1, 2권보다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blueyonder 2025-11-09 09:58   좋아요 0 | URL
<우주의 가장 위대한 생각들> 시리즈가 3부작으로 계획됐군요. 역시 이론물리학자들은 할 얘기가 많은 모양입니다. ^^;

blueyonder 2025-11-09 09:58   좋아요 0 | URL
3권은 ‘복잡성과 창발’에 관한 책이군요. 다른 시리즈에서는 (아직?) 다루지 않은 흥미로운 내용일 것 같습니다.

blueyonder 2025-11-11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서 가장 쉬운 과학 수업> 시리즈는 총 20권으로 계획됐다고 한다. 마지막 20권은 ‘쿼크모형‘이다.

차트랑 2025-12-19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을 많이 가졌던 분야로군요..

blueyonder 2025-12-22 11:42   좋아요 0 | URL
방문 감사합니다. 물리학자들의 세계이해 방식에 관심 있으시다면 한번 시도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