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시사인) 제971호 : 2026.04.28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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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지로서 할 수 있는 최고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 


  노무현은 거의 명시적으로, 그리고 김대중도 잠재적으로, 우리가 '혁신주의' 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최초의 두 대통령 이다(그리고 지금까지는 후계자가 없다). 두 사람이 21세기 도약과 중산층 보존을 이끈 영웅이라는 뜻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거함의 항로는, 책임이든 영광이든 그들에게만 돌릴 수 없는 거대한 조류의 산물이다. 우리는 그들이 가졌던 세계관, 사상가의 일관성이 아니라 현실과 하루하루 투쟁하며 미끄러지듯 도착한 세계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당대에는 거리가 너무 가깝고 적절한 렌즈도 없어서 식별할 수 없던 세계관을, 거리와 지식을 확보한 후대의 특권을 활용해 재구성 하고 있다. (35 페이지, 천관율의 ‘오늘의 기원’)

  왜 쓸까? 무엇을 쓸까? 어떻게 써야 할까?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다만 글쓰기 비법을 따오기 위해 꺼내든 책에서 오히려 더 눈에 띄었던 건 세상을 향한 이들의 호기심과 애정, 헌신 같은 것이었다. 왜 그런지 책을 덮고 나니 '어떻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69 페이지, 기자가 추천하는 책 <논픽션 글쓰기 전설들>)

  나 역시 '저는 기자예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며 살고 싶다. 주식 이야기를 한참 듣다가 지쳐서 집에 돌아오던 어느 밤에는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어 이런 다짐을 적었다. ‘가난뱅이로 죽을게.‘ 동시에 나는 가진 자산과 무관하게 나를 둘러싼 사회적 자본이 나를 가난뱅이로 죽게 만들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노동하는 몸으로 스스로를 책임지다가, 국가의 도움을 기쁘고도 당연하게 받고 싶다. 그 믿음과 낙관이 나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중산층‘의 자리에 가져다 둔다는 것도 안다. 그 자리가 내게 주는 특권을 깊이 셈해 들어다보려 애쓰며 살고 싶다. (71 페이지, '프리스타일' 장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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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퓨터를 연구하는 영국의 이론물리학자인 데이비드 도이치David Deutsch의 책이다. ("The Beginning of Infinity무한의 시작"이라는 책 제목은 뭔가 강한 인공지능의 도래를 알리는 '특이점singularity' 같은 느낌을 준다[*].) 저자는 지식--그는 '좋은 설명good explanation'이라는 표현을 쓴다--의 진보가 끝이 없다는 의미로 '무한'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서론에서 말한다. 이러한 지식--좋은 설명--에는 분야별로 시작--원인, 사건, 조건--이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시작들이 사실 연관되어 있으며 '실재'의 속성의 여러 단면일 뿐이라는 주장으로 책을 시작한다. 


우선 그가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지식을 어떻게 얻는지'이다(인식론). 중요한 구절을 다음에 인용해 놓는다(인용하면서 순서를 조금 바꿨다). 


Discovering a new explanation is inherently an act of creativity. (p. 7)

Its [experience's] main use is to choose between theories that have already been guessed. That is what 'learning from experience' is. (p. 4)


도이치는 경험으로부터 이론--설명--을 유추한다는 경험주의, 귀납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론은 창조성의 발현이며, 경험은 여러 이론으로부터 맞는 것을 선택하게 할 따름이라는 주장이다. 이 책이 과연 어떤 결론으로 나아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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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역판 제목: '진리는 바뀔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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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이닉스가 26년 1분기 매출 50조 원 돌파에 영업이익 37.6조 원, 영업이익률 72%의 창사 이래 최고기록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링크). 제조업에서 영업이익률 72%는 들어본 적이 없는 엄청난 비율이다. AI 때문에 그렇다는데, 새로운 산업분야가 생겨나는 것은 좋지만 엄청난 투자는 필연적으로 거품을 불러오는 법이다. 호황이라고 너무 확장하는 것은 곡괭이를 파는 입장에서도 좋지 않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에서 돈을 확실히 번 사람은 곡괭이 장사라기에 하는 말이다. 


그나저나 반도체로 이렇게 돈을 벌 수 있을지 초기 연구자들은 알았을까. 지금의 골드러시와 별 상관이 없는 나는 위의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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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3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26-04-23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업이익률 72%, 돈을 갈퀴로 긁는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군요. ㅎㅎ

blueyonder 2026-04-23 20:14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 엔지니어들도 성과급을 많이 받는다니 좋긴 합니다. 바라건대 협력 업체에게도 과실이 좀 나누어지면 좋겠네요.
 
실험실의 진화
홍성욱 지음, 박한나 그림 / 김영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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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의 부엌에서 시작된 화학 실험실이 어떻게 변화하며 다른 학문 분야, 그리고 대학과 기업 등으로 퍼져 나가는지에 대해 역사와 의의를 살펴본다. 실험실은 마치 동물을 가축화 하듯 자연을 인간의 통제 하에 두고 단순화하여 연구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나의 과학적 주장이 어떻게 과학자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지는지, 실험실을 대상으로 한 인류학적 연구 등 흥미로운 내용들을 읽을 수 있었다.


책의 제본과 삽화에 대해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특이한 제본(사철식?)이라서 책이 쫙 펼쳐져 일러스트가 잘 보이도록 했다. 그림이 엄청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문 내용에 맞도록 신경써서 그린 것이 나름 인상 깊다. 그림책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책 속 한 구절:

  실험실은 과학적 가설과 주장이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실험실 밖으로 나간 가설과 주장은 업그레이드되어 과학적 사실이 되거나 다운그레이드되어 소멸한다. 우리는 사실이 된 과학을 교과서나 고전적인 논문들을 통해 접할 뿐이다. (8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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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s of the Air : How The Bomber Boys Broke Down the Nazi War Machine (Paperback)
Donald L. Miller / Ebury Publishing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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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중 영국을 기지로 하여 독일군 점령지역과 독일 본토를 폭격했던 미국 제8공군의 역사를 살펴본다. 다양한 증언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창설 후 1943년까지만 해도 엄청난 희생을 치렀던 제8공군은 1944년에 들어서며 독일 공군을 분쇄하기 시작하여 제공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후로는 독일 상공을 휘저으며 그야말로 독일의 여러 도시들을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미국 폭격기들은 주간 폭격을 하며 볼베어링 공장, 항공기 공장부터 시작해서 석유 시설, 철도 조차장 등 전략목표들을 지속적으로 폭격했다. 부정확한 폭격으로 인해 주변의 민간인 시설도 당연히 피해를 입고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들을 낳았다. 전쟁 막판에는, 그냥 도시의 중심지에 폭탄을 퍼붓던 영국공군과 합세해 엄청난 민간인 희생자가 날 것을 알면서도 지역폭격을 수행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사례가 1945년에 수행된 드레스덴 폭격이다. 


전쟁 전 폭격기 지상주의자들은 폭격만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전쟁은 지상군이 독일을 점령함으로써 끝이 났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유도미사일의 정확성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폭격만으로 끝나는 전쟁은 없다. 


읽으면서 계속 든 생각은 이렇다. '전쟁은 정말 미친 짓이다.' 왜 우리 인간은 교훈을 얻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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