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오식이나 오역처럼 보이는 것들이 몇 개 나와서 기록해 놓는다.


"19세기 초 영국의 외과의사 겸 과학자 윌리엄 길버트1544~1603는 자기磁氣에 대한 소책자 『자석에 관하여 De Magnete』를 발표했다." (48 페이지)


길버트가 사망한 해가 1603년이라고 본문에 명백히 나오는데 "19세기 초"는 오식일 수밖에 없다. '17세기 초'가 맞다. 원문에는 당연히 '17세기 초'라고 나온다. 


"네덜란드의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 1629~1695가 발전시킨 이 이론은 빛을 연못의 물결 같은 파동으로 설명한다. 뉴턴의 입자설은 19세기 초까지 100여 년 동안 지배적인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뉴턴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인식되다 보니 감히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분위기였고, 하위헌스도 훅과 비슷한 시기인 1704년에 세상을 뜨면서 뉴턴에게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57 페이지)


첫 번째 오류와 비슷하게, 하위헌스 사망년도가 1695년이라고 나오면서 밑에서는 "1704년에 세상을 뜨면서"라고 다른 말을 한다. 원문을 찾아보면 오역임을 알 수 있다. 원문: "Huygens, like Hooke, was dead by 1704 and Newton had the last word." (p. 48) 올바르게 번역하자면 "하위헌스도 훅과 마찬가지로 [뉴턴이 광학을 출간한] 1704년에는 이미 세상을 떴으므로"라고 해야 한다.


"전투는 겨울 무렵엔 다소 약해졌지만, 슈뢰딩거가 오버루트넌트(중위에 해당하는 계급-옮긴이)로 승진한 직후인 1916년 5월에 고르츠 지역은 다시 포화에 휩싸였고, 오스트리아 측은 10만, 이탈리아 측은 25만 명가량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91 페이지)


용어가 조금 잘못 표기되어 있다. 슈뢰딩거는 1차대전 때 포병장교로 복무했는데, 계급이 "오버루트넌트"로 "승진"했다고 나와 있다. 독일어 Oberleutnant는 '오버로이트난트'로 적는 것이 맞으며, 군대에서는 "승진"이 아니라 "진급"했다고 한다. "슈뢰딩거가 오버로이트난트Oberleutnant로 진급한 직후인"이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Oberleutnant는 영어로 First Lieutenant로서 우리의 중위 계급이 맞다. 


"어려운 수학을 깊이 파고들지 않더라도, 하인즈 파겔스가 자신의 책 우주의 코드Cosmic Code에서 사용한 비유를 보면 디랙의 성과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한 그루의 나무를 여러 언어로, 이를테면 영어와 아랍어로 묘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두 언어가 묘사하는 나무는 완전히 달라 보일 수 있다. 심지어 두 언어는 문자조차 아예 다르다. 그러나 이 두 묘사가 가리키는 대상은 같은 것이며, 단어 사전이나 문법 규칙을 이용해 하나의 묘사를 다른 묘사로 변환할 수도 있다. 파겔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서로 다른 표현에 변환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은 심오한 발상이다. 불변성은 대상의 진정한 구조를 확립한다."" (191~192 페이지)


언급된 "하인즈 파겔스"의 책은 우리말로 번역된 바 있다. 지금은 절판됐지만 제목이 <우주의 암호>로 번역됐다. (저자 이름 Heinz Pagels는 출판 당시 "하인즈 페이겔스"로 표기됐다.) 


위 문단 바로 다음에는 아래의 문장이 있는데 고개가 갸웃해진다. 


"변환 이론은 양자역학의 완성된 이론이다. 그러나 1920년대에 소수의 평범한 물리학자들은(평범한 물리학자는 지금도 소수이긴 하다) 이 이론을 성가셔했다." (192 페이지)


위 문장은 '(평범하지 않은) 다수의 물리학자들은 성가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기에 더해 "평범한 물리학자는 지금도 소수이긴하다"라고 언급한다. 흠... 원문은 이렇다: "Transformation theory is the complete theory of quantum mechanics. But few ordinary physicists in the 1920s (and few since, for that matter) bothered about that." (p. 166) "few"가 있으니 사실 '신경 쓴 물리학자는 거의 없었다'는 의미이다. "ordinary"는 "보통의" 정도가 맞겠다. "1920년대에 보통의 물리학자들 중 [변환 이론]에 신경 쓴 이는 거의 없었다(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 


"훗날 핵융합 발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리제 마이트너1878~1968는 여성으로는 최초로 독일에서 물리학과 정교수가 되어 핵물리를 가르쳤다." (220 페이지) 


리제 마이트너가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이후 원자폭탄에 사용되는 "핵분열"의 발견이다. "핵융합"이 아니다. 핵분열을 의미하는 "nuclear fission"을 핵융합을 의미하는 "nuclear fusion"으로 잘못 본 듯 싶다. 


마지막으로, 책 앞뒤에 나오는 그래픽이다. 슈뢰딩거의 묘비에도 각인되어 있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사용했다. 파동함수 프사이psi(ψ)의 위에 점이 찍혀 있는데, 이는 시간에 대한 미분을 의미한다. 문제는 좌변 프사이 위의 점은 맞지만 우변 프사이 위의 점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점이 없어야 한다. 

 


이런저런 지적을 하긴 했지만 이 책의 번역 자체는 읽을 만하다. 조금 더 완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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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와 양자 혁명 어나더 사이언티스트
존 그리빈 지음, 배지은 옮김 / 세로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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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많은 책이 쓰인 20세기 초의 양자혁명에 대해 더 배울 것이 있을까 싶었지만, 슈뢰딩거의 삶을 따라가며 저자가 짚어주는 물리와 양자역학 내용을 읽으며 여전히 새로운 디테일이 많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됐다. 특히 이 책은 슈뢰딩거라는 과학자를 따라가므로, 그와 얽혔던 온갖 물리학자들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재미있게 읽었다. 


1927년 솔베이 회의에 참석한 물리학자들. 슈뢰딩거는 제일 뒷줄 가운데 부근 회색 양복을 입은 사람이다.

[출처: http://hyperphysics.phy-astr.gsu.edu/hbase/phyhis/solvay.html] 


다른 책에서는 자세히 읽지 못했던 슈뢰딩거의 애정사를 포함한 개인사를 꽤 상세히 다룬다는 점이 역시 이 책의 장점이다. 슈뢰딩거 애정사의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그는 세 명의 딸을 두었다—루스, 블라트나이트, 린다. 이 딸들의 엄마는 모두 달랐다. 이 엄마들 중 그의 부인 아니Anny(본명 Annemarie)는 없었다. 그는 평생 그의 부인과 해로했다. 부인 역시 다른 연인이 있었다(수학자이자 수리물리학자인 헤르만 바일). 부인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물론 경주마보다는 카나리아랑 같이 사는 게 훨씬 편하겠죠. 하지만 난 경주마가 더 좋아요." (98페이지) 슈뢰딩거는 연금 등 부인의 경제적 안정에 매우 신경을 썼다. 


책 후반부로 가면서 코펜하겐 해석이 틀렸다는 저자의 의견이 피력된다. 즉, 파동함수의 붕괴는 없다는 것이다. 슈뢰딩거도 코펜하겐 해석을 매우 싫어했다. 저자는 다세계 해석을 지지하는 듯 보인다. 슈뢰딩거가 다세계 해석을 제시한 휴 에버렛보다 먼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하기도 한다. 


요즘 ‘양자’ 얘기가 많이 나온다. 심지어 관련된 회사에 주식투자까지 열심히 한다. 이러한 얘기에는 거품이 끼어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양자’의 이해 없이는 이루지 못했을 세상에서 산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과학자도 인간일 뿐이라는 점을, 거기에 더해 20세기 초의 양자혁명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가끔 이게 무슨 의미일까 하는 기술적 내용이 있기도 하지만, 역사적 내용이 워낙 흥미롭다. 


저자인 존 그리빈은 물리학과 천문학을 전공한 영국의 과학저술가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프레드 호일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이 책 외에도 양자역학에 관한 대중과학서를 많이 썼다. 다른 책도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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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의 차이에 대해: 

  The difference is this: In space, a straight line describes the shortest distance between two points. In spacetime, by contrast, a straight path yields the longest elapsed time between two events. It's that flip from shortest distance to longest time that distinguishes time from space. (p. 145)


위에 더해 저자가 강조하는 오개념이 있다. 첫 번째, 시간이 천천히(또는 빨리) 흐른다는 얘기. 운동하는 물체, 사람에게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고 종종 얘기하는데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무엇의 속도는 단위시간당 변위로 정의되는데, 시간의 '속도'는 어떻게 정의하느냐, 시간을 시간으로 나눈 것이냐고 저자는 묻는다. 시간은 그냥 진행한다. 그 결과를 비교했을 때 차이가 나는 것일 뿐이다. 약간 미묘한 얘기이다. "You will sometimes hear that time can speed up or slow down according to the theory of relativity. That's a baloney. Or to be more polite about it, it's a misleading way to describe a real phenomenon. (p. 148)"


두 번째, 특수상대성이론은 등속운동을 하는 물체에만 성립한다는 얘기. 저자는 특수상대성이론이 평평한 4차원 시공간인 민코프스키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룬다고 강조한다. 등속운동이든 가속운동이든 상관없다. 반면, 일반상대성이론은 질량에 의해 시공간이 휘어지는 경우까지 다루는 것이다. "Sometimes people will suggest that special relativity works only for unaccelerated trajectories, and you need general relativity to handle acceleration. Rubbish. General relativity becomes important when spacetime is curve and we have gravity. As long as spacetime is flat--wehich it is in Minkowski spacetime, which we're sticking to in this chapter--special relativity applies, and you can consider any paths you like. (p. 153)"


"baloney", "rubbish" 등 저자의 표현이 강하고 재미있어서 기록해둔다. baloney, rubbish 모두 '헛소리',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의미이다. 


다음은 특수상대성이론이 주는 동시성의 의미이다. 


The nearest star to our sun, Proxima Centauri, is approximately four light-years away. For any particular event on Earth, there is an eight-year span of events on Proxima Centauri that could count as "simultaneous" with it, depending on your reference frame. (p. 166)


한 마디로, 기준틀에 따라서 "동시"라고 할 수 있는 사건들이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동시성은 의미가 없다, 혹은 모두가 동의하는 "동시"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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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에서 물체에 작용하는 힘에 의한 운동을 다루는 분야를 역학(力學, mechanics)이라고 부른다. 특히 운동을 강조할 때는 동역학(dynamics)이라고 한다. 역학에서 물체의 운동을 이해하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다. 첫 번째는 잘 알려진 뉴턴의 운동법칙(F = ma)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초기조건(물체의 위치와 속도)의 정보를 가지고 뉴턴의 운동법칙이 주는 미분방정식을 이용하여 매 순간의 이동을 더해(즉, 적분하여) 물체의 운동을 이해한다. 


또 다른 방법은 '최소작용의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작용(action)'은 운동에너지에서 퍼텐셜에너지를 뺀 양을 시간에 대해 적분한 값이다. 최소작용의 원리는 한 점에서 다른 한 점까지 물체가 이동할 때 이렇게 정의된 작용이 최소화된 경로를 따라간다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이렇게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정의된 두 방법이 동일한 결과를 준다는 것이다. 그럼 둘 중 어느 것이 맞다고 할 수 있나?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더 우월하다고 얘기할 수 있나?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So which is right? Does nature really start with some initial state and chug forward from moment to moment, as Laplace would have us believe? Or does nature have some kind of precognition, where it can visualize all the possible motion it might undertake between some initial point and some final point, and choose to move along the one that minimizes the action?

  Neither one. Nature just is nature, and it does what it does. We human beings do our best to understand it on our own terms. It might turn out that we discover different equivalent ways to conceptualize the same underlying behavior. In those cases, it's less important to fret over which one is "right" than to be ready to think in whatever terms offer the most insight into the situation at hand. (pp. 87-88)


"그럼 어느 방법이 맞는가? 자연은 정말 어떤 초기 상태에서 출발하여 매순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까? 라플라스가 주장했듯 말이다. 아니면 자연에게는 일종의 사전인지가 있는 것일까? 그래서 초기점과 최종점 사이에 가능한 모든 경로를 시각화해서 작용을 최소화하는 경로를 따라 운동하기를 선택하는 것일까?

  어느 것도 아니다. 자연은 그냥 자연일 뿐이고 그저 할 바를 할 따름이다. 우리 인간들은 그저 우리 자신의 방식으로 자연을 이해하고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동일한 자연의 모습을 개념화하는 상이하지만 등가인 방식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어느 쪽이 "맞는지"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당면한 상황에 대해 가장 많은 통찰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생각하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경우 캐럴은 기대보다 훨씬 너그러운(진보적인?) 의견을 피력한다. 그의 말은 장하석 교수의 과학적 다원주의를 긍정한다. 다른 경우에서도 그럴까? 물리학이 단순히 인간이 만들어낸 '모델'일 뿐이라는 점에 그는 동의할까? 어찌 보면 당연히 그럴 것 같은데, (캐럴을 포함한) 주류 이론물리학자들의 말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

[*] 테드 창은 최소작용의 원리에 기반하여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단편소설을 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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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 - 피터 틸, 일론 머스크, 알렉스 카프, J.D. 밴스, 이들은 미국을 어떻게 바꾸려 하는가 뉴 노멀 탐문 1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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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 책을 쓰기 전에, 분석하는 인물--피터 틸, 일론 머스크, 알렉스 카프, J.D. 밴스--가 되기 위해 그들에게 맞는 음악을 들으며 "빙의"를 했다는 저자. 재미있게 잘 읽힌다는 평도 있지만 내게는 맞지 않는다. 여기저기 문제적 발언이 튀어나온다. 예컨대 이렇다: [미국과 달리] "우리에게는 새로운 담론이 부재하다... 이번에는 내란 청산까지, 다시금 종식과 청산이 화두가 되고 말았다." 자유롭게 글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이 널을 뛰며 저자의 의도 파악이 힘들다. 전반적 분위기는 트럼프의 새로운 미국 찬양이다. 비꼬는 건가 싶은데 읽다 보면 또 그건 아니다. "적어도 저들에게는 AI혁명이 촉발하는 디지털 신문명의 운영체계(OS)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사람과 사상과 철학이 있다. 아직은 진행형, 비록 완성되지는 못했을망정 문제의식만큼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박사학위를 받은 역사학자라는데 학술적 글쓰기는 결코 아니다. 내가 기대했던 바가 아니어서 박한 평가를 내린다. (인용문은 모두 '머리말'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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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1-09 1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란 종식과 청산 말고 어떤 새로운 담론을 말하는 걸까요?🤔 미국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미국은 달랐을까 갑자기 궁금해 집니다😂

blueyonder 2026-01-09 19:19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저자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때때로 잘 모르겠더라고요. 민주주의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란 얘긴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