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그마크는 이 책에서 곱씹어볼(동의가 안되는?) 얘기를 한다. 여러 물리 이론이 (다양한 의미로) 우주가 하나가 아니라는 이른바 '다중우주multiverse'의 가능성을 얘기하는데, 그는 다중우주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느냐는 비판을 의식한 듯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Parallel universes are not a theory, but a prediction of certain theories. 


다중우주(평행우주)는 이론이 아니라 이론의 예측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Parallel universes (if they exist) are things, and things can't be scientific, so a parallel universe can't be scientific any more than a banana can.


다중우주는 이론이 예측하는 '사물'일 뿐이므로 바나나가 과학적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과학적'이라는 말은 '반증가능함'과 동의어로 쓰였다. 많은 이들이 다중우주가 반증가능하지 않다고 과학적이 아니다 또는 과학의 대상이 아니라고 얘기하는데, 테그마크는 이론만이 과학적일 수 있으며, 이론의 예측은 사물과 마찬가지어서 과학적일 수가 (반증가능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위의 상자 안에 있는 말에 그런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론이 맞다고 생각하면 그 이론이 예측하는 '사물'도 맞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if they exist)"라고 한 발 빼는 문구를 넣어 두었다. 


이론이 지금까지의 시험을 모두 통과했다면(즉 성공적인 이론이면), 그 이론의 예측인 다중우주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되는가? 결코 그렇게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테그마크도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론은 언제나 임시적이니까.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는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다중우주는 상상의 나래를 펴기에 흥미로운 대상일지는 몰라도 과학의 범위를 벗어나는 듯이 보인다. 다시 테그마크는 다중우주는 '과학적일 필요가 없어'라고, 단지 이론의 '예측'이며 '사물'일 뿐이라고 얘기할 것이다. '바나나와 같다니까!' 결국 개인의 취향 문제인가? 


테그마크는 여러 다중우주를 다음과 같이 단계를 붙여 정리한다. 


이론 -> 예측

인플레이션 이론 -> 1단계 다중우주

인플레이션 이론 + (끈이론 등이 얘기하는) 우주의 '풍경' 이론 -> 2단계 다중우주

파동함수 붕괴가 없는 양자역학 -> 3단계 다중우주

외부 실재 가설 -> 4단계 다중우주


여러 물리학자들이 각자 다른 의미로 '다중우주'라는 말을 써서 테그마크가 정리하고자 '단계'를 도입했다고 한다. 2단계 다중우주 사이에는 적용되는 물리법칙도 다르다. 테그마크는 이 모든 다중우주를 믿는 듯하다(특히 그의 주장인 4단계!). 


사실 인플레이션 이론조차 실험적으로 '검증'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도입된 가설에 가깝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인플레이션 이론이 현재 주류처럼 보이지만 인플레이션 이론과 경쟁하는 다른 가설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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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124의 글을 그대로 옮겼다(책에도 위와 같이 상자 안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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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그 시먼즈 교수의 <World War II at Sea>가 <2차대전 해전사>로 번역되어 나왔다. 원서가 2018년에 나왔는데 2024년에 나왔으니 비교적 빨리 번역됐다. 그만큼 좋고 중요한 책이라는 방증일 터이다. 독자 평을 보면 대개 잘 읽고 있는 듯싶지만, 번역에 대한 지적들이 나온다. 내가 조금 살펴본 후 내린 결론은 번역에 아쉬움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번역은 현역 육군사관학교 교수가 했다고 하는데 특히 해군사와 해군 용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보인다. 번역의 아쉬움에 대해서는 다음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 오역: 완전한 오역이라고 지적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첫 장에 나오는 독일 해군 U보트 함장 귄터 프린의 계급이다. 독일 명칭은 Kapitänleutnant이고, 이전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이는 우리의 대위 계급에 해당한다. 번역서는 중위라고 지속적으로 적고 있다. 영어원서에서 Kapitänleutnant 다음 괄호 안에 lieutenant라고 해 놨음에도 이렇다. 해군의 lieutenant는 대위이다. 미군 계급 명칭은 해군과 육군이 다르며, lieutenant는 육군에서는 보통 중위(first lieutenant), 해군에서는 대위를 지칭한다. 해군 용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보인다는 말이 이런 뜻이다. 


그 다음 대표적 오역은 torpedo bomber에 대한 것으로서, 지금까지는 ‘뇌격기’로 번역돼왔다. 역자는 이를 ‘어뢰기’라는 말로 번역했다. 혹시나 어뢰기라는 말이 있나 싶어 사전을 찾아봤지만 나오지 않는다. 역자가 말을 새롭게 만들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장의 제목 중에는 ‘무역 전쟁’이 있다. ‘War on Trade’를 번역한 말이다. 2차대전 중의 War on Trade는 요즘 많이 언급되는 예컨대 관세 등을 이용한 무역 전쟁이 아니다. 잠수함 등으로 적의 수송선을 파괴하여 해상운송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역 전쟁’은 잘못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역’ 대신 ‘통상’이라는 말이 보통 많이 쓰이며, ‘통상 전쟁’, 또는 ‘통상 파괴전쟁’이 좀 더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것이다. 


- 명백한 오역은 아니지만 이전부터 전쟁사 읽었던 이들에게는 거슬리는 것들: 몇 페이지 넘겨보지 않다가 단박에 눈에 들어온 것은 ‘전투순양함’이다. battle cruiser를 번역한 말인데, 그보다는 ‘순양전함’이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battle cruiser는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장갑과 무장을 조금 희생한 ‘전함’이라고 보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또 일본의 항모 ‘기동부대’를 ‘기동 타격대’라고 번역한 곳들이 나오는데 어색하다. 경찰 기동타격대가 떠오른다. ‘기동 타격부대’라고만 써도 괜찮았을 것 같다. 일본해군 전함 ‘金剛’은 보통 ‘공고’라고 쓰는데 이를 ‘곤고’라고 쓴 것도 어색해 보인다. 모두 나열하지 않겠지만 이런 부분들이 종종 눈에 띈다. 


- 역자의 선택으로 용인가능한 것들: 일본의 ‘해군 대신’을 ‘해군 장관’으로, ‘해군 군령부총장’을 ‘해군 참모총장’으로, ‘해군 병학교’를 ‘해군 사관학교’ 등으로 번역한 것은 용인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서를 번역한 책들은 아마 거의 그대로 일본 용어를 썼을 터이지만, 대응하는 우리말 용어가 있기 때문에 역자의 선택으로 이렇게 번역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위의 일본 용어들을 고유명사라고 보는 이들이나 이전에 전쟁사를 많이 읽은 이들에게는 이런 부분들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질지 모른다. 


영어원문과 번역문의 문장을 꼼꼼히 비교하며 번역의 정확성을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위에서 지적한 용어 부분들을 감안하고 읽으면 그냥 읽을 만하는 느낌이다. 부정확한 용어의 번역에 대한 아쉬움을 이 정도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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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전쟁 일본 근현대사 6
요시다 유타카 지음, 최혜주 옮김 / 어문학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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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1941년 12월에 시작되어 1945년 9월에 항복문서 조인으로 끝난 전쟁을 '아시아·태평양전쟁'이라고 부르기로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본에서 당시 사용했던 '대동아전쟁'은 "너무나 이데올로기 과잉의 호칭"이고, 현재 많이 사용하는 '태평양전쟁'은 "미일 본위의 호칭으로, 중국전선이나 동남아시아 점령지의 중요성을 놓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거대하고 잔인했던 전쟁을 객관적 시선으로, 전황에 따라 일본 내부에서 진행됐던 정치적, 사회적 사실에 대해 담담하게 기술한다. 일본의 전쟁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며 전쟁에서 천황의 역할과 전쟁이 일본 민중과 사회의 변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하고 있다. 비교적 짧지만(257페이지까지가 본문) 여러 역사적 사실들을 다양한 사료를 이용하여 일본 내부의 관점에서 잘 요약 정리하고 있다. 


번역은 일본 용어를 거의 그대로 사용했다. 원서는 2007년에, 번역서는 2012년에 출간됐는데 요새는 이렇게 번역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한자 단어를 일본에서 수입한 우리로서는 한편 당연한 것들도 있지만 이제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와 일본이 사용하는 용어가 다른 것들도 꽤 된다. 대표적인 것이 항공모함을 줄여 부르는 단어이다. 우리는 이를 줄여서 '항모'라고 하지만 일본은 '공모'라고 한다. 역자는 일본 용어 그대로 공모라고 쓰고 있다. 굳이 장점을 찾자면 일본 단어와 일본어를 공부하는 느낌은 있다. 


'일본 근현대사 시리즈'의 제6권으로 출간됐는데, 시간이 나면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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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 me, one of the most striking lessons from precision cosmology is that simple mathematical laws govern our Universe all the way back to its fiery origins. For example, the equations that constitute Einstein's theory of general relativity appear to accurately govern the gravitational force over distances ranging from a millimeter up to a hundred trillion trillion (10^26) meters, and the equations of atomic and nuclear physics appear to have accurately governed our Universe from the first second after our Big Bang until today, 14 billion years after... So precision cosmology highlights the mysterious utility of mathematics for understanding our world. (p. 93)


계속해서 나오는 주제이다. 왜 수학이 우주를 이렇게 잘 설명하는가? 유신론이 지배하던 시기에는 '하느님은 수학자'라는 생각도 있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이 '우주 자체가 수학', 또는 '우주는 수학의 발현'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수학의 유용성 증거가 우주가 수학이라는 증거는 아니다. 우주가 운행하기 위해 수학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다니엘손]. 우주는 계산하지 않는다. 계산이 필요한 것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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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 and Ruins: The Last Imperial War, 1931-1945 (Hardcover)
Richard Overy / Viking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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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과 이후의 11개 장으로 이뤄져 있다. 처음 1~3장은 전쟁의 전개와 양상에 관한 보통의 전쟁사이다. 중요한 사건과 쟁점을 잘 정리해서 2차대전에 대한 꽤 좋은 요약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의 4~11장은 전쟁의 다양한 면모를 하나씩 떼어내서 다룬다. 지루할 때도 있었지만 아마 이 부분이 저자가 가장 하고 싶은 얘기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3월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거의 7달 만에 다 읽었다. 그의 다른 책 <The Bombing War>보다 읽기가 더 힘들었다. 그는 역사학자의 역사학자인 느낌이 있다. 그의 책은 쟁점을 잘 정리하며 기존에 간과됐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데 탁월하지만, 문체가 상당히 건조하고 딱딱해서 대중을 위한 역사서 같지가 않다. 2차대전에 대한 전쟁사를 처음 읽는다면 이 책 말고 앤터니 비버로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이 책으로 오게 될 것이다. 


전쟁사 책을 읽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무엇보다도 책에서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이 그렇게 한다. 인간들은 아직도 곳곳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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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도중에 번역판이 <피와 폐허> 1, 2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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