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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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다. 하루키가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지어내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그의 소설에는 역사나 사회가 거의 나오지 않거나 양념으로서만 나온다. 아마 사회는 그에게 친절했음이 틀림 없다. (혹시 나만의 착각일지도...) 그의 관심사인 음식과 음악 얘기가 나오고, 여자들은 주인공에게 친절하다. 익숙한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이게 모두 꿈인 것일까. 내가 그림자가 아닌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소설은 읽을 가치가 ...


  "... 어떨까, 본체와 그림자는 서로 교체될 수 있는 존재일까?"

  소년은 그 말을 잠시 생각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글쎄요, 그 문제는 저도 뭐라고 말하지 못하겠어요. 누가 뭐래도 당신 자신의 문제니까. 하지만 저 자신에 대해 말하자면, 어느 쪽이건 상관없지 않나 싶습니다. 내가 나 자신의 본체건, 그림자건. 어느 쪽이 됐건 지금 이렇게 여기 있는 내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내가 곧 나인 거죠. 그 이상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당신도 그렇게 생각해야 할 거예요."

  "어느 쪽이 본체고 어느 쪽이 그림자냐 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그렇습니다. 그림자와 본체는 아마 서로 교체되기도 할 겁니다. 역할을 교환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본체가 됐건 그림자가 됐건, 당신은 당신입니다. 그 사실은 틀림이 없어요. 어느 쪽이 본체고 어느 쪽이 그림자인가를 따지기보다, 각자 서로의 소중한 분신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오히려 맞을지도 몰라요." (751~752 페이지)

"천천히 생각하세요. 아시다시피 이곳에는 생각할 시간이 많으니까요.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여기에는 시간이 무한히 있습니다." (75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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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권력과 민주주의 - 대한민국 경제의 불편한 진실
최배근 지음 / 월요일의꿈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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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경제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내게 여러 가지 생각 거리를 던져준 책이다. 무엇보다 국가의 중앙은행이 어떻게 처음 생기게 됐는지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의 의미에 대해 알게됐다. 저자는 왜 민주주의(1인 1표)가 자본주의(1원 1표)와 함께 가야만 하는지를 역사와 논증을 통해 알려준다. 국가 부채(liability)와 채무(debt)의 차이라든지, 기타 깨알 같은 지식이 곳곳에 있다. 미국 국채와 관련한 내용은 좀 어려웠다. 사회소득과 사회금융이 새로운 화두로 제시되는데, 우리 사회의 소득과 자산 불평등이 극단적으로 심화하는 와중에 매우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과연 어디로 갈까. 부동산 카르텔을 깨고 일본을 따라가지 않을 수 있을까. 경제에 정치가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줬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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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3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03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포스트 트루스 - 가짜 뉴스와 탈진실의 시대
리 매킨타이어 지음, 김재경 옮김, 정준희 해제 / 두리반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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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truth, 탈진실이라는 단어는 미국에서 트럼프의 정치적 부상과 함께 떠올랐다. 2016년 11월,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이 단어를 2016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고 한다. 탈진실이라는 말은 어쩔 수 없이 탈근대(post-modern)라는 말을 상기시킨다. 이 책에서는 <개소리에 대하여>에서 논의됐던 주제가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좀 더 상세히 설명된다. 


이러한 모든 현상의 저변에는 객관적 사실이 없다는 탈근대주의의 주장과, 이로부터 파생된, 과학을 거부하는 과학부인주의(science denialism)가 있다. 해리 프랭크퍼트는 <개소리에 대하여>에서 '회의주의'를 배경으로 들었는데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이 (객관적 진리에 대한) '회의주의'를 '과학적 회의주의'와 혼동하지 말자. 과학적 회의주의는 과학(이성)이 밝혀낸 사실을 신뢰하며 그 외에 이성의 검증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믿음(유사과학과 미신 등)을 배격하는 태도를 말한다. 


'변함 없는 진리란 없다'는 철학적 언설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객관적 사실조차 없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장하석 교수가 진작에 지적했듯이, 영어에는 truth 한 단어가 조금씩 뉘앙스가 다른 채 쓰여서 많은 혼동을 야기하는 점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우리는 진리 뿐만 아니라 진실, 진상이란 단어가 있어서 조금씩 다른 뉘앙스를 잘 표현한다. 진리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지만 진실은 분명히 존재한다. '진실'을 거부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 사회를 거부하는 것이다. 사회와 동떨어져 혼자 살겠다는 개인적 선택은 존중할 수 있지만,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주장하는 이들이 사회에서 발언권을 얻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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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다정하진 않지만 - 카렐 차페크의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영국 여행기 흄세 에세이 5
카렐 차페크 지음, 박아람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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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작가인 카렐 차페크의 영국 여행기이다. 차페크는 1924년 펜클럽 등의 초대로 영국을 두 달 정도 방문하여 여행하며 당시 영국인들에게도 꽤 인기를 끌었던 이 여행기를 남겼다. 1924년은 1차 대전이 끝난 지 6년 정도 지난 후로 아직 대영제국의 위세가 남아 있던 때이다. 이 책에서 차페크는 직접 그린 펜 그림을 곁들이며 그가 여행하며 겪은 영국인과 영국의 자연, 도시 등에 대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영국이라고 뭉뚱그려 얘기하지만 차페크는 잉글랜드 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와 웨일즈도 여행했다. 아일랜드는 위험하다고 해서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글 속 그의 농담과 해학을 읽으며 그가 쓴 다른 책도 읽고 싶어졌다. (난 이 유명한 체코 작가의 다른 책을 읽은 것이 없다!)


영국인들의 근엄함, 그 속의 다정함, 유머, 영국의 자연, 문화, 산업 등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은 그였지만, 언제나 그의 관심과 애정은 그의 고국 체코로 돌아간다. 체코는 1939년 3월 나치 독일에 병합되며 사라지게 되지만, 차페크는 1938년 12월 크리스마스에 4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며 이 비극을 직접 목도하지는 않았다. 


조국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통찰이 묻어나는 한 구절을 다음에 옮긴다. 


  영국에서 저는 거대함과 막강함, 부유함, 번영, 비할 데 없는 발전상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아직 작고 미완성의 상태라는 사실이 결코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작고 어수선하고 불완전한 것은 그 나름대로 용감한 사명이거든요. 바다에는 세 개의 굴뚝과 일등석, 욕실을 갖추고 반짝거리는 황동으로 장식한 크고 호화로운 대서양 여객선이 있는가 하면, 공해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흔들거리는 작은 증기선도 있으니까요. 여러분, 이처럼 작고 불편한 고물 선박으로 살아가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가난하다고 불평하지 마세요. 감사하게도 우리나 대영제국이나 같은 우주에 존재하고 있잖아요. 작은 증기선은 대영제국처럼 커다란 배만큼 많은 짐을 실을 수 없죠. 하하, 하지만 작은 증기선도 큰 배와 똑같이 멀리까지, 혹은 그와는 다른 곳까지 항해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거기에 누가 타고 있느냐입니다. (186~18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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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시사인) 제904호 : 2025.01.13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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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검은 글씨로 된 '시사IN' 표제가 슬프다. 하지만 그래도 떠오르는 붉은 태양의 사진이 일말의 희망을 주는 것 같다. 지난 연말부터 이런저런 책을 읽어 젖혔다. 자꾸만 인터넷 뉴스를 켜 보게 되는 내게 다른 집중할 거리를 찾아주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현실이 너무 답답하지만 역사라는 긴 안목으로 바라보면 조급한 마음이 조금은 줄어들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 달이 길지만, 일 주일이 길지만 그래도 세월은 흐르며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 세상에 이상한 사람도 많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이 더 많기에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 국회가 64년 만에 "국민께 드리는 감사문"을 의결했다. "대한민국 국민과 이 시대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나도 우리 국민과 이 시대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 문득 외쳐본다. "영광입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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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5-01-13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lueyonder 2025-01-13 21:56   좋아요 0 | URL
친절한 공쟝쟝님, 감사합니다! 공쟝쟝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