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류이치 사카모토 (Ryuichi Sakamoto) 저자, 황국영 역자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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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타계한 작곡가이자 연주자인 류이치 사카모토(1952~2023)의 마지막을 정리한 책이다. 암 진단을 받은 후 그의 심경과 경과, 그리고 자서전 형식으로 정리하는 마지막 나날들이다. 인터뷰를 통해 구술한 것을 책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2009년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라는 책을 통해 정리했던 그의 삶 이후가 나와 있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는 그의 절친이었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사랑>에 나오는 대사라고 한다. 암 진단을 받은 후 사카모토도 이 구절을 중얼거렸다고 한다. 영화의 이후 대사에 나오듯, 우리는 삶이 영원하리라고 생각하며 산다. 사실 모든 것은 유한하다. 문제는 그 '마지막'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책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왠지 나도 마지막을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 같다. 건강검진 결과를 보면 당장 병원에 뛰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몸의 이곳저곳이 이제는 낡아가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를 볼 수 있다. 


류이치 사카모토를 사실 잘 알지는 못했다. 부분부분 들어 알고 있는 내용이 있긴 했지만, 책을 통해 마지막을 앞에 둔 그의 삶에 대한 마음가짐과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배움이 됐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예술가--는 숨이 다하는 날까지 일--한편으로는 삶의 의미--를 지속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내가 직장에서 은퇴하면 세상에 무언가 내놓을 것이 있을까. 


책을 읽으며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찾아 들어 보기도 했다. 모르고 들어본 곡도 여럿 있고, 못 들어봤던 곡도 있다. 책에는 우리나라와의 인연도 몇 나온다. <남한산성>의 영화음악도 류이치 사카모토가 맡았었다. 


다음은 그를 널리 알린 영화음악 'Merry Christmas Mr. Lawrence'(1983)이다. <전장의 크리스마스>(오시마 나기사 감독) 영화에서 쓰였다. 그는 이 영화에서 배우로도 활약했다고 한다(영화는 보지 못했다). 그는 음악과 함께 하는 미술 전시나 공연을 기획하기도 하는 등 매우 다재다능했다. 동일본 대지진 후 핵발전 반대 등에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Ars longa, vita brevis.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그의 글 마지막 문장인데, 예술가에게 매우 적확해 보인다. 그의 평안한 안식을 빈다. 


책에 나오는 그의 말.

3.11 대지진 때에도 그랬지만, 세상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충격을 쉽게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강하게 듭니다. 100년에 한 번 겪을 듯한 이런 팬데믹은 분명 대부분의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 될 테고,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덧붙여, 세계적 규모의 코로나 감염 폭발은 인간이 과도한 경제활동을 밀어붙이고, 자연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지구 전체를 도시화한 것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반성을 미래의 자양분으로 삼기 위해서라도 자연이 보내는 SOS에 의해 경제활동에 급제동이 걸린 이 광경을, 확실히 기억해둬야 할 것입니다. (303 페이지)

다만, 지금의 저는 하루에 몇 곡을 제대로 치는 것만으로도 버겁기 때문에 오랜 시간 기다려주신 팬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라이브 콘서트를 해낼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은 아무래도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피아노 솔로는 13곡을 담은 60분 버전으로 12월에 먼저 온라인으로 공개된 후 NHK의 프로그램에서도 짧게 소개되었는데 언젠가는 총 20곡의 장편으로 편집된 ‘콘서트 영화' 버전도 선보이고 싶습니다.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한 탓인지 촬영을 마치고 한 달 정도는 확실히 기력이 없다고 할까. 계속 몸 상태가 저조했습니다. 그래도 죽기 전에 스스로 납득할 만한 연주를 남겼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습니다. (35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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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4-14 1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윽, 이 양반이 벌써 갔다고요? 음... 거 뭐 바쁘다고... 승질도 급하지 거 참.

blueyonder 2025-04-14 18:56   좋아요 1 | URL
네, 23년 3월 28일에 타계했다고 나오니 얼마 전에 2주기가 지났네요.
누군가의 부고를 듣는다는 것은 놀랍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한 일입니다...

yamoo 2025-04-15 1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류이치 사카모토는 이우환의 공간 전시장 음악을 담당한 적이 있었죠. 이우환의 제안이었지만 당시 사카모토는 아주 황송하게 작업에 임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사카모토는 이우환의 철학에 심취해 있었다고 합니다. 그도그럴것이 이우환은 일본 물파주의의 철학적 기조를 놓았던 사람..
어쨌거나 그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 앨범을 완성하고 앨범 자켓을 이우환에게 부탁했습니다. 이우환은 흔쾌하게 응했고, 그의 앨범 자켓을 그려줬습니다. 오일파스텔로 낙서같은 선으로 이루어진 형상이었죠. 검색하면 나오니 한 범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그 앨범 자켓을 액자화해서...사카모토는 그 그림 밑에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어제 읽었던 글인데....류이치 사카모토의 앨범 포스팅을 여기서 보게 되네요!!

blueyonder 2025-04-15 13:53   좋아요 1 | URL
제 글에 적지는 않았지만 말씀하신 내용도 책에 나와 있습니다.
이우환 화백이 그린 앨범 자켓도 찾아봤습니다. 제가 미술은 잘 모르지만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그림이네요.
 
격정세계
찬쉐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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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쉐殘雪(1953~). 우리 식으로 읽으면 잔설이다. 녹지 않고 남아 있는 눈. 필명인데, 읽기 전에는 남성 작가인줄 알았다. 소설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한 문단이면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스포일러일 수 있어 하지 않겠다.) 책은 본문만 681페이지이다. 문학가들의 이상향을 그린다는 평이 많은데, 동의하기도 하고 동의하지 않기도 하다. 이상향이란 실제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알라딘 서재를 보면 이 세계에는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 많지 않나. 


찬쉐가 남성 작가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을 때는 '이儀' 아저씨가 작가를 투영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문학으로 인해 생활에서도 횡재한다.) 중간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작가가 여성인 것을 깨닫게 됐다. 마침 '한마寒馬'가 소설의 중심 인물로 나올 때였는데, 그럼 한마가 작가 본인을 투영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의 삶이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 삶인가.) 


<XXXX>나 <XXXXX5>, <XX XX XX>와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고 감상을 나누며 삶에 적용하고자 애쓰는 문학청년들을 보면서 딴 세상 얘기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많이 언급되는 <XXXX>와 같은 책을 읽지 못한 나는 어떻게 삶의 '결계'를 풀고 그 수준 높은 '경지'에 들어가겠는가. (내가 과도하게 냉소적임을 인정한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삶을 통해 문학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소설을 한 문구로 요약하면 '문학청년들의 연애와 성장담'이다. 솔직히 기대보다 재미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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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5-03-23 2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보고 느낀 생각이 저랑 비슷하네요. 독서 모임 선정 도서 아니었으면 끝까지 안 읽었을 거예요.. ^^;;

blueyonder 2025-03-24 06:40   좋아요 1 | URL
저도 어떻게든 끝내야한다는 생각으로 읽었습니다. ^^; 독서 모임은 없었지만요.

그레이스 2025-03-24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ㅋ

blueyonder 2025-03-25 06:25   좋아요 1 | URL
네 이렇게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이상향에 대한 얘기인지 모르겠네요. ^^
 
시사IN(시사인) 제913호 : 2025.03.18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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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얘기들이 실려있다. 지금 우리 정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사부터 도대체 의대생, 전공의는 무슨 생각인지, 트럼프의 미국은 무슨 꿍꿍이인지까지.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어떻게 정신줄을 붙잡고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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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Things Like These : Shortlisted for the Booker Prize 2022 (Paperback, Main) - 『이처럼 사소한 것들』원서
Claire Keegan / Faber & Faber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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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위치에서, 어렵지만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이들로 인해 우리 사회는 좀 더 살 만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들이 단순한 칭찬이나 아니면 개인의 고난으로 끝날 수도 있고 사회의 변혁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이러한 양심의 목소리나 행동이 묻히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소설은 한 선한 인간의 내면을 잘 그려낸다. 거창하지는 않아도, 나부터,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친절과 배려를 실천할 수 있기를...


  As they carried on along and met more people Furlong did and did not know, he found himself asking was there any point in being alive without helping one another? Was it possible to carry on along through all the years, the decades, through an entire life, without once being brave enough to go against what was there and yet call yourself a Christian, and face yourself in the mirror? (p. 108)

  He thought of Mrs Wilson, of her daily kindnesses, of how she had corrected and encouraged him, of the small things she had said and done and had refused to do and say and what she must have known, the things which, when added up, amounted to a life. Had it not been for her, his mother might very well have wound up in that place. In an earlier time, it could have been his own mother he was saving - if saving was what this could be called. And only God knew what would have happened to him, where he might have ended up. (p.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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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5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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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다. 하루키가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지어내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그의 소설에는 역사나 사회가 거의 나오지 않거나 양념으로서만 나온다. 아마 사회는 그에게 친절했음이 틀림 없다. (혹시 나만의 착각일지도...) 그의 관심사인 음식과 음악 얘기가 나오고, 여자들은 주인공에게 친절하다. 익숙한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이게 모두 꿈인 것일까. 내가 그림자가 아닌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소설은 읽을 가치가 ...


  "... 어떨까, 본체와 그림자는 서로 교체될 수 있는 존재일까?"

  소년은 그 말을 잠시 생각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글쎄요, 그 문제는 저도 뭐라고 말하지 못하겠어요. 누가 뭐래도 당신 자신의 문제니까. 하지만 저 자신에 대해 말하자면, 어느 쪽이건 상관없지 않나 싶습니다. 내가 나 자신의 본체건, 그림자건. 어느 쪽이 됐건 지금 이렇게 여기 있는 내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내가 곧 나인 거죠. 그 이상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당신도 그렇게 생각해야 할 거예요."

  "어느 쪽이 본체고 어느 쪽이 그림자냐 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그렇습니다. 그림자와 본체는 아마 서로 교체되기도 할 겁니다. 역할을 교환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본체가 됐건 그림자가 됐건, 당신은 당신입니다. 그 사실은 틀림이 없어요. 어느 쪽이 본체고 어느 쪽이 그림자인가를 따지기보다, 각자 서로의 소중한 분신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오히려 맞을지도 몰라요." (751~752 페이지)

"천천히 생각하세요. 아시다시피 이곳에는 생각할 시간이 많으니까요.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여기에는 시간이 무한히 있습니다." (75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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