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 in European History (Paperback)
Howard, Michael / Oxford Univ Pr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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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내 전쟁 양상의 변화를 통해 살펴보는 유럽 역사이다. 유럽 역사를 잘 모르는 나도 나름 재미 있게 읽었다. 얇은 책 안에 핵심이 잘 담겨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내공을 엿볼 수 있다. 초판은 냉전이 한참일 1976년에 발행되었는데, 2009년 재발행되며 에필로그에 '테러와의 전쟁' 내용까지 추가되었다. 


유럽이라는 좁은 지역에서 여러 말을 쓰는 사람들이 지지고 볶고 살다 보니 이들이 전쟁에 능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중앙집권적이고 비교적 나라 사이에 경계가 명확했던 동아시아의 상황과는 대비가 되는 듯 싶다[1]. 근세 들어오며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 된 것에 지리적인 요인이 크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나름 이해가 된다. 


결국 유럽에서의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핵무장과 함께 끝이 났는데, 핵보유 국가간의 전쟁은 너무 위험하므로 쉽사리 분쟁을 일으키기 어렵다는 측면이 핵무기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대신 전쟁은 약소국을 전장 삼아 일어나게 되었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역사도 연결이 된다.


동아시아의 역사도 이런 식으로 정리해서 보면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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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아시아에서 일본만이 유럽의 중세와 진정 비슷했다는 말이 있는데, 일본의 호전성을 유럽과의 유사성을 통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To suggest, as have some historians, that the frenetic and militaristic nationalism of the early twentieth century was caused by a reactionary ruling class successfully indoctrinating the masses in order to wean their support away from revolution and attract them to the established order is crudely mechanistic. It was in fact the most reactionary elements in the ruling class which mistrusted nationalism the most. The ideas of Hegel and Mazzini had a value and an appeal of their own, and democracy and nationalism fed one another. The greater the sense of participation in the affairs of the State, the more was the State seen as the embodiment of these unique and higher value system which called it into being, and the greater became the commitment to protect and serve it. Moreover, the Nation appeared as a focus of popular loyalty at a time when the power of organized religion was ebbing. It provided purpose, colour, excitement, and dignity to peoples who had outgrown the age of miracles and had not yet entered that of pop stars. But the Nation could only measure its worth and power against other Nations. However peaceful its purposes and lofty its ideals it became increasingly difficult to avoid the conclusion—and a growing number of thinkers at the turn of the century were making no attempt to avoid it—that its highest destiny was War. (pp. 1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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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다시 비가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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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 138억 년 전 빅뱅에서 시작된 별과 인간의 경이로운 여정 서가명강 시리즈 9
윤성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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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별에서 왔다” 이 문구만큼 우주에서 인간 존재의 의의에 대해 잘 요약해 주는 말은 없는 것 같다. 항성의 진화를 연구하는 천문학자인 저자는 본인의 전공을 잘 살려, 우리가 알게 된 우주의 모습과 우주 속 인간의 의미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한다. 늘 그렇듯 고대의 천동설부터 시작하지만, 우리가 현재의 우주관을 가지게 된 과정을 흥미롭게 설명해 주어 재미있게 읽었다. 이런 주제의 책은 많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좋은 책 중의 하나인 것 같다. 현대 우주론에 대한 매우 좋은 소개로 추천한다. 


저자가 그리는 현대 우주의 모습은 과거 인간이 이성만으로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다. 인간이 그렸던 우주의 모습은 정적이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번다한 세속과는 거리가 먼 천상... 하지만 과학은 우리 우주가 대폭발을 통해 탄생하여 진화하고 있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끔찍한’ 모습임을 알려준다[1]. 이러한 현대 우주론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주에는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현대 우주론은 우리가 우주 존재의 95%를 모른다고 알려준다(암흑 에너지 + 암흑 물질의 비율).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은 우주에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전체 에너지의 5%가 채 안 된다. 우리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 것이고, 우주는 앞으로 또 어떻게 인간의 기대를 배반할까. 


저자가 역사와 진화를 얘기하며 우연성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 인상 깊다. 우리가 여기 이 자리, 이 시간에 존재하는 것은 우연에 의한 것이다. 만약 우주 초기의 양자 요동이 조금만 달랐다면 지금의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주 전체로 볼 때, 조금 다른 양자 요동으로 인해 우리가 지금 여기 없더라도, 우주의 어디에선가는 지적인 생명체가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우주는 충분히 넓고 우주의 나이는 충분히 길다. 이러한 우주의 조건을 생각할 때 결국 무작위성 속에도 필연성이 있는 것이다. 우주는 어떤 방향을 향해 진화한다[2]. 우연과 필연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우연성에 더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종종 어떤 일(특히 사랑?)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필연, 운명, 영원 등의 말을 강조한다. 하지만 우연에 의해 탄생한 지구에서, 우주 전체로 보면 찰나의 순간에 일어나는 일들 자체가 기적 아닌가? 필연보다는 우연이 지금 우리에게 더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아닌가? 우연성을 통해 우리가 이 땅에서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또는 개인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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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끔찍함’의 기준은 물론 개인적 취향이다. 플라톤의 이데아 세상이 끔찍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여기서 ‘끔찍함’은 당시의 학자들에게 그랬다는 것이다. 특히, 아인슈타인은 본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정적인 우주가 아니라 동적인 우주를 예측하자 ‘끔찍’하다고 여겨 우주상수를 추가하여 이론을 수정하고자 했다. 

[2] 이 방향성에 목적이 있는지는 개인이 판단할 일이다. 목적성은 과학의 대상이 아니다.


  ... 호일은 빅뱅이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결코 직접적인 관측을 통해 검증할 수 없는 판타지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앞에서 콩트가 별의 구성에 관해 언급한 사례에서 지적했듯, 어떤 과학적 이론을 "절대 검증하기 어렵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현명하다. 역사적으로 그런 식의 발언은 대부분 반박되어왔기 때문이다. (129~13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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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4-19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연보다 우연이라는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우리 삶이 그렇듯이요...

blueyonder 2020-04-19 20:55   좋아요 0 | URL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극점에서 본 우주 - 실험 천문학자들이 쓰는 새로운 우주 기록
김준한.강재환 지음 / 시공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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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젊은 실험 천문학자의 남극점 기지 체류 경험담(1부)과 각자의 연구에 대한 소개(2부와 3부)를 담고 있다. 김준한, 강재한 2인은 미국에서 공부하며 2개의 거대 실험천문학 프로젝트에 각각 참여하고 있다. 초장기선 전파 간섭계(Very Long Baseline Interferometry, VLBI)를 이용한 사건 지평선 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과 바이셉3(Background Imaging of Cosmic Extragalactic Polarization 3, BICEP3)이 그것이다. 남극점에서 이러한 관측을 하는 이유는 남극점이 고도가 높고 매우 건조하여 물로 인한 전파의 흡수가 적으므로 전파천문학 연구에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1]. 또한 초장기선 전파 간섭계에서 지구 크기를 사용하여 각분해능(angular resolution)을 줄이려는 시도를 하는데 있어 남극점에서의 관측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 


읽으면서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현재 남극점에서 기지를 유지하며 과학 연구를 하는 나라는 미국 밖에 없다. 전 지구상에서 단 하나의 나라만이 이러한 경제적 여유와 과학에 대한 철학이 있는 것이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한 미국의 대응을 보며 의료 시스템의 후진성을 지적하지만, 그 기저를 파보면 미국의 엘리트주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재능을 크게 존중하는 나라이다. 재능 있는 사람은 커다란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문화, 그것이 이민자들의 나라로서 세계를 리드하는 위치에 오른 비결일 것이다. 반면, 재능이 없는 사람은 사회에서 낙오되기 쉽다. 이러한 문화가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아닌가 한다. 재능은 존중하지만 사회적 약자도 보살피는 너그러움, 이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닐까. 


한편, 최신 천문학 연구에 대한 여러 지식을 얻으며 의문을 풀 수 있어서 매우 유익했다. 사건 지평선 망원경 프로젝트란 블랙홀 사진을 직접 찍으려는 시도이다. 2019년 4월에 있었던 인터넷 기사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이 때 블랙홀의 사진으로 나왔던 이미지가 이것이다.



이 도넛 모양 중심의 검은 부분이 빛이 나오지 않는, 블랙홀의 ‘그림자’라고 한다. 주변의 밝은 부분은 블랙홀 주변을 도는 물질로 인한 복사이다. 은하 중심에는 태양 질량의 십만 배에서 십억 배에 이르는 질량을 갖는 초대질량 블랙홀(supermassive black hole)이 존재하는데, 이 사진은 지구로부터 5천 3백만 광년 떨어져 있는 M87 은하의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을 찍은 것이다. 빛의 속도로 가도 5천 3백만 년이 걸리는 거리이니 사실 상상이 잘 안 가는 거리이다. 이렇게 먼 거리의 영상을 찍고자 하니 초장기선 간섭계니 하는 기법이 나오는 것이다[2].


향후 또 다른 블랙홀 영상이 나올 때 저자의 이름(김준한)을 기억하면 좋겠다. 


책의 3부는 빅뱅으로 탄생한 우주의 잔향이라는 우주배경복사에 관해 연구하는 저자(강재환)의 이야기이다. BICEP3은 이 우주배경복사의 편광(B모드 신호)을 측정하여 우주 초기에 있었다고 논의되는 인플레이션이 실제로 있었는지를 검증하려는 시도이다. 사건 지평선 망원경 연구와 마찬가지로 측정 한계를 계속 향상시키며 연구가 진행되어 왔으며, 3은 3세대 바이셉 망원경을 의미한다. 저자가 우주의 비밀을 담고 있는 ‘추상화’라고 이야기하는 바이셉 측정 결과 그래프를 한 번 보자.



현대 과학은 고독하게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여 ‘유레카’를 외치는 모습과는 이제 거리가 멀다. 물론 아직 혼자서 외로이 종이 위에 계산하는 이론 연구자들도 있겠지만, 과학의 핵심이 실험이라고 할 때, 신문 지면에까지 오르내리는 의미를 갖는 실험은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명(심지어는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분업하여 수행하는 것이 이제 낯설지 않다[3]. 이것은 그만큼 현대 과학의 측정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만큼 우리가 우리 주변의 것들은 잘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우리 주변의 삶을 (현재로는) 변화시킬 가능성이 거의 없는 연구--심하게 얘기하면 인간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연구--에 이만큼의 ‘돈’을 쓰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비용이 너무 큰 것은 취소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력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더욱 고결하게 한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여기에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지만, 위의 연구에 바탕이 되는 과학적 사실들이 이해하기 ‘비교적’ 쉽게 다루어진다. 왜 기선(baseline)을 확장하여 간섭을 시키면 각분해능이 좋아지는지(줄어드는지), 우주배경복사의 ‘편광’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등을 연구에 직접 참여한 이들의 ‘육성’을 통해 듣는 즐거움이 있다. 현대 천문학, 더 나아가 현대 과학의 이면에서 어떤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엿보는데 이만한 책이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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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극은 사실 사막이다. 연간 강수량이 2 mm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남극점의 눈은 바람을 타고 온 것이 쌓인 것이다. 남극점의 고도는 9301피트(약 2800미터)이다(24~25페이지).  

[2] 우리가 인터넷 등에서 보는 우주 사진은 사실 실제 눈으로 보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사용하는 파장 대역만 해도 가시광이 아닌 적외선이나 전파인 경우가 많고, 이런 것들을 알고리즘을 거쳐 처리한 다음에 나오는 영상들을 우리는 본다. 

[3] 중력파의 검출을 시도하는 LIGO의 저자 리스트 사이트: <https://dcc.ligo.org/cgi-bin/DocDB/ListAuth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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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 평전 보리 인문학 1
한명기 지음 / 보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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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과 현실, 이상과 실제란 모든 인간이 처한 현실일 것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상을 위해 목숨을 거는 개인은 칭송 받을 수 있지만, 국가가 이상을 위해 온 백성을 거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이상을 얘기하는 것은 통쾌하고 선명하지만, 세상은 이상만으로 살 수는 없다는 지혜를 다시금 깨닫는다. "김상헌이 남한산성에서 곧바로 귀향한 것은 지조 높은 행동이었지만 그 또한 최명길이 열었던 문을 통해 나갔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이식이 했던 말이다. 


모두 현실에만 치우친다면 짐승들과 다름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지 않고 이상만 외친다면 그것도 참 난망한 일이다. 균형감, 전략적 사고가 더욱 필요한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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