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 스페이스 - 고리양자중력을 이해하는 거대한 여정 퀀텀 시리즈
짐 배것 지음, 배지은 옮김 / 반니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좋은 책이다. 초끈이론의 대안으로 언급되는 고리양자중력이론에 대해 관심 있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원저가 2018년 출간된 최근 책이라 초끈이론 및 현대 우주론이 처한 상황을 엿볼 수 있으며, 현재 입자물리학이 당면한 상황을 개관할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두 주인공인 리 스몰린과 카를로 로벨리의 인생과 우정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다. 간혹 이상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번역은 후하게 쳐서 90점은 줄 수 있을 것 같다.


책 속 몇 구절:

  m=E/c^2은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통찰이었다. 물체의 질량은 물체가 담고 있는 에너지의 척도라는 것이다. 이제는 질량이 물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즉,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체의 질량은 물체가 '하는' 것(성질이 아닌 행동)이다. (4장, 108 페이지)

... 우주론자들은 초기 우주의 암흑물질 분포 안에 균일하지 않은 부분이 10만분의 1ppm 정도만 있었어도 [현재 우주의 은하 분포와 같은 구조 생성에] 충분하다고 추정했다. 

   어떻게 이런 작은 불균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구스가 우주 급팽창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표한 후 오래지 않아, 구스 자신을 포함해 스티븐 호킹, 러시아의 이론물리학자 알렉세이 스타로빈스키Alexei Starobinsky 같은 전문가들은 작은 불균일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인플라톤장의 '양자요동'에 도달하게 되며, 이것이 급팽창에 의해 우주 규모로 증폭되었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이 내용이 정확하다면 이는 대단히 특별한 결론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거대한 우주는 빅뱅 직후 짧은 순간에 일어난 무작위적인 양자 요동 덕분에 탄생한 것이다. 

  ... 최근 잇달아 쏘아올린 COBE(1989년 발사), WMAP(2001), 플랑크(2000) 위성이 우주배경복사를 매우 정교하고 세밀하게 지도로 그리고 있다. (그림 14) 이런 지도들은 1억분의 1˚C 또는 10만분의 1ppm(놀랍지 않은가?) 정도의 아주 작은 온도 변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뜨거운 점들은 재결합 순간에 물질의 밀도가 아주 약간 높았던 지점이었고, 바로 이 지점이 암흑물질이 축적되고 궁극적으로는 별과 은하가 형성되는 씨앗이 되었던 것이다. 차가운 점들은 물질의 밀도가 낮은 곳이었으며, 이후 진공이 되었다.

  이 지도들을 분석하면 우주의 기원과 발전을 설명하는 이론들을 뒷받침하는 상당히 많은(그러나 전부는 아닌) 관측 증거들을 얻을 수 있다. (5장, 126~127 페이지)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과 빅뱅우주론은 인간 지성이 이룬 위업 가운데에서도 가장 특별하며, 자부심을 가질 만한 업적이다. 입자물리의 표준모형은 물질과 복사의 성질과 행동을 놀랍도록 상세하게 서술한다. 힉스 입자를 발견한 이래로 고에너지 입자물리학에서 설명하지 못할(아니면 적어도 수용하지 못할) 관측이나 실험적 결과는 없다. 빅뱅우주론은 우주의 거대 구조와 발전을 설명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스러운 문헌에서나 답을 찾아야 했던 거대한 질문들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질문의 답을 빅뱅우주론이 제시하고 있다.

  축하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만, 그래도 지나치게 들떠서는 안 된다. 이 두 이론에는 설명해야 할 구멍도 숭숭 뚫려 있다. 이 세상이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에 대해 이 이론들이 아직도 많은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경험으로부터 파생되는 지식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이상적인 이론을 추구한다. 그런데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과 빅뱅우주론은 이런 이상에 한참 못 미친다. 두 이론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썩 만족스럽지 않다는 느낌은 남아 있다. (6장, 135~136 페이지)

  ... LQG[loop quantum gravity, 고리양자중력이론]는 표준모형의 양자장이론과 전혀 닮지 않았다. 표준모형의 양자장이론은 배경 시공간을 가정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물질 입자와 힘 입자의 역학을 설명한다. LQG는 시공간의 발현을 서술한다. 그래서 LQG가 궁극적으로는 표준모형의 이론들과 어느 지점에서 만나야 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LQG처럼 표준모형 이론들도 시공간이라는 안전 그물망 없이 재구성되어야 한다.

  ... 표준모형의 양자장이론들을 시공간이 아닌 스핀거품 위에서 재구성하여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이점은, 양자장이론이 좀 더 질서정연해질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다. 시공간이 성공적으로 양자화되면 QED[quantum electrodynamics, 양자전기역학] 같은 이론들이 조금은 정리가 될 것이고, 그래서 더 이상 재규격화를 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는 가정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 QED방정식에서 일부 항들이 우후죽순처럼 무한대로 늘어나는데, 그 이유는 전자가 그 자신에 의해 자체적으로 발생되는 전자기장과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재규격화는 단순히 무한대 항들을 전부 상쇄시키고 물리적인 의미가 있는 결과만 남기는 수학적 조작이다. 그러나 당연히 애초에 무한대가 발생하지 않는 편이 훨씬 좋다. 결국 무한이라는 것은 순수하게 수학적인 개념이다. 현실 세계에는 무한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이 방정식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한다는 것은 본질적 측면에서 수학적 서술이 실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12장, 263~264 페이지)

  ... 끈이론은 근본적으로 '입자'의 이론이다. 끈이론에서는 입자가 무한히 작은 점에 질량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확장된 2차원 또는 다차원의 사물이라고 가정함으로써 골치 아픈 무한대들을 제거할 방법을 찾는다. 그 결과 끈이론은 연속적인 시공간 배경 안에 있는 끈에 관한 이론이 되었고, 추가적인 숨은 차원들을 필요로 하며,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추가로 초대칭도 가정해야 한다. 끈이론은 점 입자 질량 문제를 해결하지만, 연속적인 시공간을 가정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제거하지 못한다. 끈 우주 안에 사는 아킬레스는 여전히 거북이를 따라 잡으려고 몸부림칠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LQG는 시공간의 '기하'에 관한 이론이다. LQG는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시켜 시공간이 매끄럽지 않고 불연속적임을 입증함으로써 무한대를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12장, 266 페이지)

  10^500개 또는 무한개의 이론들이 존재할 가능성을 초끈 프로그램의 실패로 받아들이기는커녕, 일부(분명히 전부는 아니다) 이론학자들은 이렇게 다양한 이론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결국 다중우주를 서술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들은 우주론적 인간 원리라고 불리는 놀라운 순환론을 덧붙인다. 그렇다. 저 밖에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개수의 서로 다른 우주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물리법칙과 입자 스펙트럼의 골디락스 조합을 갖는, 즉 우리와 같은 생명 형태를 지원하는 조합을 갖춘 우주 안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더라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여기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라. 또다시 초끈이론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없다. 아직은. (15장, 33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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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2-29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멋진 분이시군요. 이런 책도 읽으시고...
저는 이런 쪽으로 무지해서 이런 책 보는 분들을 우러러보는 경향이 있죠. ㅋ
그래서 리뷰라도 꼼꼼히 읽으려 하죠.

와, 이 서재의 이미지인 하늘은 예술적으로 보이는군요. 마치 지금 음악이 흘러 나오고
그 음악에 맞춰 구름이 요동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베리 굿입니당~~~
좋은하루되십시오. ^^

blueyonder 2020-12-29 16:50   좋아요 1 | URL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관심 분야가 다를 뿐이지요. ^^
사진도 멋있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페크 님 글의 하늘 사진도 멋졌습니다. 말씀은 못 드렸지만...
페크 님도 오늘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scott 2020-12-29 1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욘더님 과학책 전문가세요 페크님 ㅋㅋ 전 은근히 욘더님 리뷰 쫒아다니면서 소소한 과학 정보도 얻어요^0^

blueyonder 2020-12-29 16:57   좋아요 2 | URL
관심 가는 책을 읽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과학책 전문가라기는... ^^;;
다른 책도 읽어야 하는데... ㅎㅎ
요새 연말이다 보니 조금 시간이 납니다만, 여전히 읽고 싶은 책은 많고 시간은 부족합니다. 평안한 연말연시 보내시기 바랍니다~

scott 2020-12-31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욘더님 2021년 새해 행복한일 가득 차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주머니 놓고 가여 ㅋㅋ

\-----/
/~~~~~\ 2021년
| 福마뉘ㅣ
\______/

blueyonder 2021-01-01 10:40   좋아요 1 | URL
산타가 다녀가신 것 같군요 ㅎㅎ
scott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1년에도 행복한 독서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초딩 2021-01-01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
건강하시구요~

blueyonder 2021-01-02 10:2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초딩 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최근 주류 입자물리학의 입장에 반기를 드는 입장의 책 2권이 번역 출간됐다. 짐 배것의 <퀀텀 스페이스>와 자비네 호젠펠더의 <수학의 함정>이다. 현재 입자물리학의 주류는 초끈이론인데, 아직 제대로 된 실험적 검증 방법을 내놓지 못하는 상태일 뿐만 아니라, 입자물리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중력의 양자이론으로서도 부족한 점을 지적 당하고 있다. <퀀텀 스페이스>는 초끈이론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고리양자중력이론에 대한 책으로서, 창시자 중 둘로 많이 언급되는 로벨리와 스몰린의 얘기와 함께 고리양자중력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수학의 함정>은 수학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론물리학의 실정을 비판하며 현재 주류 입자물리학이 이러한 함정에 빠져 답보 상태임을 지적하는 책이다. 


근래, 실험의 영역과는 동떨어져 존재하는 입자물리학의 상황을 비판하는 책들이 나오고 있는데, 국내에서도 차츰 번역 소개되고 있어 반가운 마음이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이론이 과연 주류를 대체할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입자물리학이 답보 상태라면, 여러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나와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 주기를 바라게 된다. 초끈이론이 아름답고 환상적이지만, 자연이 항상 아름다운 이론의 손을 들어준 것만은 아니다.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


다음은 주류 입자물리학을 비판하는 책들이다. 아직 일부만 번역됐다.











































이런 책들로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얘기를 읽는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입자물리학의 근원에 대한 책들은 대개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하므로, 그리고 글을 쓴 저자들이 대개 최고 물리학자들 중 하나, 또는 상당한 전문가이기 때문에,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더해 상당한 비판의식까지 공유하게 된다.^^


비주류는 여러모로 존경할 만한 측면이 있다. 편한 길을 마다하고 어려운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과연 성공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돌파구는 이런 곳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평생 비주류로, 영원히 비주류로 남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뭐,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데 누가 뭐랄까. 어쨌든 한 번 뿐인 인생 자기가 사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비주류에게 박수를 보낸다.


---

[*] <The End of Physics>는 <물리학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제목으로 1996년에 번역 출간됐는데 현재 품절되었다. 혹시 도서관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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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24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 욘더님 저는 초끈 이론만 읽었는데 물리학 항상 고딩때는 최악에 성적을 받았지만 대학에서 리포트는 에이로 받아서 글로 읽는 물리학은 좋아해요 ㅋㅋ욘더님 메리 크리스마스ᒄ₍⁽ˆ⁰ˆ⁾₎ᒃ♪♬

blueyonder 2020-12-24 11:12   좋아요 1 | URL
물리학이 참 매력 있는 학문입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scott 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몰리 2020-12-24 0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세상 모든 비주류에게 박수를 보낸다! Me too too too too!

앤드류 호지스의 앨런 튜링 전기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가 쓴 서문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도, 튜링이 보여준 바의 비-순응주의를 감당하는 법을 모르고 있다˝ 이런 문장 있더라고요. Turing‘s brand of non-conformism, 이 구절에 형광펜 칠하고 음 튜링을 알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과학자로서 튜링은 모르더라도, 비순응주의의 삶엔 어떻게든 경의를 표할 길을 찾아드리기로. ;

blueyonder 2020-12-24 11:22   좋아요 2 | URL
튜링은 사회가 박해한 대표적 천재로 종종 언급되는 것 같습니다. 불과 수백 년 전만 해도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화형까지 당한 사람이 있고, 수십 년 전의 튜링은 성적지향 때문에 박해를 받았지만, 사회가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을 갖습니다. 수백 년, 수천 년조차 지질학적 시간에 비하면 눈 깜빡할 사이라고 저 자신을 위로합니다. 물론 아직도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본능대로, 적이 될만한 사람에겐 무자비합니다.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 - 과학적 생각의 탄생, 경쟁, 충돌의 역사
리처드 드위트 지음, 김희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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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과학사 및 과학철학에 대한 소개서이다. 대학 교양과정의 교재 느낌이 충만하다.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과학철학의 기본 개념 소개, 2부는 인류 과학사의 중요한 전환점인,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서 뉴턴 세계관으로의 전환 설명, 그리고 마지막 3부는 현대 물리학의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그리고 생물학에서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는 진화론에 대한 논의로 이루어져 있다. 매우 적절한 구성과 내용이고, 내가 대학 다닐 때 이런 내용으로 수업을 들었다면 얼마나 개념이 잘 정리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 책의 단점은 너무 교과서적인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문장이 굉장히 건조한데, 원서도 아마 그렇겠지만, 딱딱 끊어 번역하는 역자도 이런 느낌에 한몫 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개념 정리 뿐만 아니라 특히 유용했던 것은,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 뉴턴의 천재들이 출현하는 1600년 무렵까지 서구의 세계관을 지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이마이오스의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다[1]. 특히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 체계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자세했다. 이후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를 거쳐 뉴턴에 이르러 정점에 다다르는 세계관의 혁명에 대한 설명은 알고 있는 부분이 있었음에도 매우 흥미로웠다.


양자역학이 우리의 실재 관념에 제기하는 문제에 관심이 있는데, 이 책의 3부는 조금 아쉬움이 있다. 벨의 부등식에 대한 논의도 생각만큼 엄밀하지 않다. 입문서가 갖는 한계일 수도 있겠다. 저자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특히 양자역학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인식의 전환을 강조하며, 현재 우리는 1600년대와 같은, 새로운 세계관을 찾는 전환기에 살고 있다고 얘기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은 우주가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유기체, 뉴턴의 세계관은 우주가 정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라는 이미지를 우리에게 그려주었다. 비국소성을 보여주는 양자역학의 세계관은 어떤 모습을 우리에게 그려줄까? 


---

[1] 코페르니쿠스(1473~1543), 케플러(1571~1630), 갈릴레이(1564~1642), 뉴턴(1643~1727)


  도구주의적 태도를 지킨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런 방정식이 물체가 운동하는 방식을 탁월하게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지만, 그 물체가 그런 방식으로 운동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불가지론을 고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방정식 특히 중력 방정식을 사용해 뛰어난 예측을 제시할 수 있지만, 중력이 '실재하는' 힘이냐 아니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것이다. (198 페이지)

  낙하하는 공과 연관된 방정식 같은 경우 틀림없는 사실은 우리가 대체로 동의하는 해석이 심지어 우리가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감춘다는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수학을 해석하지만,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수학을 해석하며, 수백 년 동안 그렇게 해온 결과 수학을 이용해 세상을 예측하려면 그 수학을 세상과 연관해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수학을 세상과 연결하는 방식은 수학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수학을 해석하는 것이다.

...

  다시 강조하지만, 양자론 수학은 절대 묘한 것이 아니다. 그 수학의 해석이 묘한 것이다. 이 책 앞부분에서 (8장에서 도구주의와 실재론을 논의하며) 언급한 요지를 여기서 다시 떠올리면 좋을 듯싶다. 그처럼 묘하게 해석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즉 어떤 이론, 이 경우 양자론에 대해 도구주의적 태도를 지키는 것은 일반적이고 부끄럽지 않은 일이다. 양자론에 대해 도구주의적 태도를 지키는 것은 이런 자세를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자론 수학이 있다. 그 수학을 대단히 유용하게 사용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그 수학을 이용하면 대단히 정확하고 신뢰성 있는 예측을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423~42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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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흥미롭고 좋은 책이다. 기록으로, 번역서와 원서의 방정식에 나온 오타를 지적해 놓는다. 번역서에서 오타를 먼저 찾았고, 번역서만의 오타인지 알았으나 원서에도 동일한 오타가 있음을 알게 됐다. 번역하며 원서의 오타를 교정했으면, 원서보다 더 좋은 번역서가 될 뻔했으나 기회를 놓쳤다. 이 책은 번역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다. 역자가 이공계 전공자가 아니라면, 반드시 감수자가 있어야 함을 이 번역서는 보여준다. 


번역서 374페이지에 문제의 방정식이 나온다.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field equation으로, 올바른 식은 다음과 같다.

원서와 번역서는 스트레스-에너지 텐서로 알려져 있는 T_mu-nu를 c^4과 함께 분모에 넣어버렸다. 비교적 명확한 오타이고 인터넷 검색만 해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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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12-20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자가 원서의 오류를 발견하고, 그 사실을 역주로 설명했으면 그 역자는 정말 칭찬받아야 합니다. ^^

blueyonder 2020-12-20 18:13   좋아요 0 | URL
네 가끔 그런 부지런한 역자를 만나곤 합니다. 더 자주 만나면 좋겠습니다.^^

파이버 2020-12-20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서에도 놓친 오타를 찾아내시다니... 전문분야 교양서는 역시 감수자가 필요한 것 같아요

blueyonder 2020-12-20 18:14   좋아요 1 | URL
제가 일반상대성이론을 잘 아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han22598 2020-12-22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ㅠ equation 오타는 저에게도 상처이기 때문에ㅠㅠ 이런 독자들이 많으면 안되는데 하는 노심초사의 마음뿐입니다.

blueyonder 2020-12-22 13:59   좋아요 0 | URL
혹시 학위논문이신가요? ^^ 학위논문이야 누가 자세히 교정봐 주는 경우도 드물고 오타가 있어도 다들 그러려니 할 겁니다. 돈 주고 사서 보는 것도 아니잖아요. 마음 편히 먹으시지요.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은 것은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han22598 2020-12-23 06:47   좋아요 0 | URL
학위논문오타는..그냥 잊지 쉬운데. 항상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이라...사실 예전에는 맘 편한 스타일이였는데, 저때문에 다른 사람이 불편해 하는것 같아서 ㅠㅠ

blueyonder 2020-12-23 10:06   좋아요 1 | URL
실수는 누구나 합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으니까요. 다른 사람이 실수를 지적하고 그 지적이 맞으며 고칠 수 있으면 그냥 고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요... 노력하는 속에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저는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han22598 2020-12-28 10:56   좋아요 1 | URL
˝노력하는 속에 가치가 있다˝ 위로가 되는 말이네요. 격려 감사해요 ^^
 
물질의 물리학 - 고대 그리스의 4원소설에서 양자과학 시대 위상물질까지
한정훈 지음 / 김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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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입자 물리학이나 우주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 '고체 물리학자'의 물리학 책이 반갑다. 새로운 시각, 새로운 내용은 언제나 필요하니까. 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고체 물리학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흥미유발 요소가 조금 떨어지리라는 점은 어쩔 수 없다. '양자 홀 물질'이니 '그래핀'이니 하는 것들은 아무래도 '우주'나 자연의 '기본' 입자 등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일반인들에게 덜 알려진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흥미로운 비유를 들어 물질의 성질과 그의 연구 분야를 설명하려고 한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책의 내용은 고등과학원에서 운영하는 과학 웹진 <호라이즌>에 저자가 연재했던 것을 상당수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일반인을 위한 글이어서 저자의 인생과 경험담도 상당히 녹아있다. 일정 부분 <김상욱의 과학공부>가 떠오른다. 글의 성격이 그렇다는 것이지 내용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이야깃거리는 물질이다. 물리학을 소재로 한 절대 다수의 대중 과학 서적은 우주와 입자를 다룬다. 그 중간 세계에는 인간이 있고, 일상이 있고, 일상을 점철하는 물질이란 것이 있는데, 그 물질을 대중에게 친근한 언어로 설명하는 책은 한글로도, 영어로도 찾아보기 힘들다. 물질 이론을 수십 년간 공부해온 사람으로서 참 아쉬웠다. 우리 분야의 대변서, 아니 항변서라도 한 권쯤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더 이상 대학교에서 승진의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될 나이, 30여 년의 연구 경험, 그리고 지난 수년간의 대중 강연과 글쓰기 경험, 이런저런 요소를 모아봤을 때 내가 책 한 권쯤 써도 좋을 시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책은, 그것이 소설이든 수필이든 과학 서적이든 인문 서적이든, 모두 자기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교에서 물리학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는데, 딱히 한두 마디로 대답할 방도가 없었다. 이제 누가 그런 질문을 한다면 두 손 모아 이 책을 한 권씩 드릴 작정이다. 이게 제 인생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책처럼 이 책은 필자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이 책을 쓰면서, 출판된 지 몇 년 안 된 내 전공 서적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알지 못할 수식이 가득 차 있어 읽기 버거웠다. 내가 쓴 책인데, 몇 해가 지나니 이젠 나에게조차 생소했다. 그래, 이래서 책을 써야 하는구나 싶었다. 기억은 생물학적 쇠퇴와 함께 스러져가지만, 기억이 정점에 달했을 때 정리를 해두니, 기억은 사라져도 기록은 남는구나 싶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 아닐까? 책은 기억의 기록이다. 동시에, 저자를 기억의 부담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통로이다. 이 책을 마무리했으니 이제 나의 생물학적 기억 공간에 새로운 걸 좀 채워볼 수 있을 것도 같다. (12~13 페이지)

이 책의 의의와 저자의 마음가짐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옮겨왔다. 고체 물리학은 사실 우리 주변에 있는 물질의 성질을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며, 그만큼 응용성이 크다. 물론 이 책은 우리 주변의 흔한 물질보다는 저자가 연구하는 '양자 물질'들의 세계를 다룬다. 우리 주변의 물질은 이미 이해를 잘 하고 있어서 연구할 거리가 별로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뒤 부분으로 가며 양자 물질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앞 부분에서는 물질 및 원자의 일반적 성질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니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원자를 소용돌이vortex로 이해하려고 했던 켈빈 경의 모델이나 핵자를 위상수학적 매듭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스컴Skyrme의 모델 등 과학사에서 잊힌 이론이 결국 고체 물리학에서 부활하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고 매우 흥미로웠다. 고체 물리학의 세계를 슬쩍 엿보기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블로흐는 지도교수가 제시한 두 번째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기로 했다. 금속 속에서 전자가 움직이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 숨이 턱 막힌다. 원자가 빽빽이 쌓여서 만들어진 게 물질이다 보니, 그 속에 사는 전자는 그저 텅 빈 공간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다. 물질 속의 실제 모습은 나무가 발 디딜 틈 없이 빽빽이 자라는 울창한 밀림에 가깝다. 전자가 과연 이런 밀림을 요리조리 잘 헤쳐가면서 물질 전체에 그 존재를 확산할 수 있을까? 만약 전자가 구슬처럼 단단한 공에 가까운 입자라면 이런 문제는 정말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전자가 애초부터 파동 형태로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중력 법칙의 지배를 받는 사과가 나무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만큼이나, 전자가 물질 전체에 퍼져 있는 꼴로 존재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다. 굳이 물질이라는 밀림 속에서, 원자라는 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헤치고 다니는 유리구슬 같은 전자일 필요가 없다. 그건 전자가 구슬 같은 알갱이라는 우리의 고정 관념에서 비롯된 착각일 뿐이다. 블로흐는 약간의 수학 지식만 있으면 금방 증명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자는 고체 속에서 애초부터 파동 형태로 편재하고 있으며, 각각의 전자 상태는 조금 전 소개한 (A, B, C)라는 3개의 마디 수로 표시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버렸다. 그가 하이젠베르크와 대면한 지 불과 1년 만인 1928년의 일이다. 이제는 (A, B, C)라는 명패가 붙은 각 방에 파울리 원리에 따라 남과 여, 두 가지 성의 전자를 차곡차곡 쌓기만 하면 고체 속의 전자 구조를 깔끔하게 이해할 수 있다. (101~102 페이지)

  입자의 대표 속성 중 하나를 꼽으라면 하나, 둘, 이렇게 셀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예견과 그 뒤에 일어난 실험적 검증에 따르면 빛도 하나, 둘 셀 수 있다. 빛도 입자다. 따라서 빛도 물질이다! (162 페이지)

  탁월한 물리학자는 어떻게 남들보다 한발 앞서는가? 내가 듣고 보고 대화해본 최고의 물리학자들은 그렇게까지 정보 취득에 민감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가장 뛰어난 물리학자들은 아마존에 투자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마존을 창업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안목이 있다. 자신의 안목을 믿고,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을 힘들게 덤불을 헤치면서 개척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자신이 개척한 숲속의 오솔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차츰 많아지기를. (29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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