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님은 어떻게 아셨을까. 문득 생각나 찾아보니 로벨리의 생각이 바로 여기에...


  우리는 지금 '관계'의 담론을 인식의 문제, 사람의 문제로 논의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관계'는 '세계'의 본질입니다. '세계는 관계입니다.' 세계는 불변의 객관적 존재가 아닙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양자물리학이 입증하고 있는 세계상입니다. 세계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은 뉴턴 시대의 세계관입니다. 입자와 같은 불변의 궁극적 물질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입자이면서 파동이기도 하고 파동이면서 꿈틀대는 에너지의 끈(string)이기도 합니다... 불변의 존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존재는 확률이고 가능성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세계관입니다... 대상은 대상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합니다. 주체와 대상 역시 관계를 통하여 통일됩니다. 관계는 존재의 기본 형식입니다. 불변의 독립적인 물질성 자체가 그 존립 근거를 잃고 있습니다. 존재할 수 있는 확률과 가능성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존재의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식이 관계인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 역시 관계입니다. (281~28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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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ific Crucible: War at Sea in the Pacific, 1941-1942 (Hardcover)
Ian W. Toll / W W Norton & Co Inc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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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기습에서 미드웨이 해전까지 다룬다. 다양한 증언을 통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한다. 어떨 때는 전쟁사 책을 읽은 후 복잡한 전황과 숫자만 읽었다는 느낌만 남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다른 전쟁사 통사에서는 잘 접하지 못했던 참전자의 생생한 증언을 읽을 수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클라이맥스인 미드웨이 해전의 기술은 다른 미드웨이 해전만을 다룬 책만큼 자세하지 않아 살짝 아쉽다. 하지만 다른 책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해전 이후의 상황도 다루고 있어 좋다. 책에 전혀 오류가 없지는 않은데(예: 시간 표기 잘못), 혹여 있을 사소한 단점을 장점이 100배 상쇄한다.


미드웨이에서의 패전으로 인해,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공세에서 수세로 전환하게 된다. 이후는 인명과 물량의 긴 소모전이었다. 일본은 자신들의 정신이 미국의 물량을 압도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또는 희망했다. 잔인한 소모전이 계속되면 나약한 미국민은 전의를 상실하리라 생각했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그 희망은 부질없었다.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인 야마모토가 개전 전에 예측했듯이, 일본의 돌격은 6개월 만에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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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이 일인칭의 관점이냐, 삼인칭의 관점이냐, 즉 주관적 서술이냐 객관적 서술이냐고 했을 때, 당연히 객관적 서술이라고 우리는 이해한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객관적 서술이 불가능함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로벨리는 관계적 해석을 통해 객관성이 단지 환상이며, 세상의 본질은 '상호작용'임을 강조한다. 물리학도 본질적으로 주관적 서술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파동함수의 붕괴를 일으키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상호작용'이다. 문제는 (적어도 미시 세계에서) 객관적 실재라는 것이 없어진다는 것인데, 정말 그럴까. 세상은 실체가 없다는 차원에서 '공'이 본질인가? 


사실 의식은 양자역학과는 큰 관계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 의견이다. 물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 Typhoons and volcanoes, as far as we know, don't have subjective worlds of inner experience. We aren't missing first-person accounts. But for anything conscious, that is precisely what our objective third-party description lacks. (Greene, p. 126)

  Thomas Nagel, in a celebrated article, asked the question, "What is it like to be a bat?" He argued that this question is meaningful but escapes natural science. The mistake, here, is to assume that physics is the description of things in the third person. On the contrary, the relational perspective shows that physics is always a first-person description of reality, from one perspective. (Rovelli, p. 183)

... He [David Chalmers] argued that not only are we lacking a bridge from mindless particles to mindful experience, if we try to build one using a reductionist blueprint--making use of the particles and laws that constitute the fundamental basis of science as we know it--we will fail. (Greene, p.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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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사샤 세이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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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독실한 무신론자다......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종교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축제 없는 삶은 여인숙 없는 기나긴 길과 같다.

- 데모크리토스


사샤 세이건. 칼 세이건과 앤 드리앤의 딸이다. 극문학劇文學을 전공하고 글을 쓴다. 이 책은 그의 에세이 모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위의 '들어가는 말'에 나오는 인용문이 책의 내용을 잘 요약해 주고 있다. 저자는, 과학--이성--을 통해 바라보는 우주, 지구, 그리고 우리의 삶이 얼마나 놀라운지, 그리고 이러한 삶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종교적 의식ritual이 있어야 함에 대해 여러 주제--태어남, 봄, 매일의 의식, 성년, 여름, 결혼, 섹스, 가을, 죽음 등--을 논의하며 생각을 나누고 있다. 그의 종교에 대한 생각은 종교학자인 카렌 암스트롱의 의견과 일맥상통하는데, 종교의 기능은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의식'에 있으며, 우리는 '무엇이 됐든' 종교적 의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불가지론자-무신론자조차도 그렇다.


이 책이 "부모님 앤 드루얀과 칼 세이건에게 바치는 찬사이자 러브레터"라고 그는 마지막 '감사의 글'에서 밝히고 있는데, 매우 합당하다. 읽으며, 세이건과 드리앤이 어떤 부모였는지, 그 가정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책날개에 저자가 "인버스미디어그룹이 뽑은 '2020년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50인'으로 선정"됐다고 나오는데, 공감할 만하다. 옆에 이런 친구가 있다면 매우 기쁠 것 같다. 


평에서 별을 하나 뺀 것은, 책에 나오는 사례들이 너무 미국적이기 때문이다. 본인의 삶에서 찾은 사례를 인용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매우 개인적인 평이다.


다음은 책의 몇 구절이다.

  "마루하[사샤의 유모]는 죽으면 천국에 가고 천국에는 하느님이 있고 천사들이 하프를 연주한대. 그런데 엄마 아빠는 죽음이 영원히 꿈꾸지 않고 자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잖아. 누구 말이 맞아?"

  부모님은 입을 맞춘 듯이 바로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아무도 몰라!"

  그냥 그렇게 말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마치 그게 정말 좋은 일이라는 듯이 활짝 웃으며 열띤 목소리로 즐겁게 말했다.

  이 대화가 나에게는 정말 큰 깨달음을 주었다. 죽음이라는 미스터리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지는 않았지만 삶의 본질을 엿보는 창을 얻은 것 같았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불확실성은 실제로 존재한다. 얼버무리거나 덮어버릴 필요가 없다. 최대한 많이 알려고 애쓰는 도중이라도 불확실성이 있음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96~97 페이지)

  아버지는 1996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휴대전화를 쓴 적이 없다. 이메일 주소도 없었다. 가끔 아버지한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상상을 한다. 이 작은 직사각형 기계 안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스물 몇 권, 셰익스피어 전집, 세계지도가 통째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걸로 듣고 싶은 노래 전부 들을 수 있고 읽고 싶은 책 전부 읽을 수 있다고. 이 기계가 날씨도 알려주고, 뉴스 속보도 알려주고, 알바니아어나 우르두어로 대화할 수 있게 해준다고. 몇 번 두들기기만 하면 세계 곳곳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거나 휴가 사진을 구경할 수도 있다고. 아버지는 틀림없이 좋아하셨을 것이다. (107 페이지)

  "사실 우리도 시간여행을 하는 거야." 아빠는 말하곤 했다. "일 초씩 미래로!" (154 페이지)


세이건 부부가 함께 쓴 글의 인용도 있다.

책이란 얼마나 놀라운 물건인가. 나무로 만든 납작하고 잘 휘어지는 물건인데 그 안에 검은색 선이 꼬물꼬물 우스운 모양으로 찍혀 있다. 그런데 그 물건을 한번 들여다보면 어느새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 사람은 수천 년 전에 죽은 사람일 수도 있다. 저자가 수천 년의 세월을 넘어 조용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당신의 머릿속에서 말을 건다. 글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일 것이다.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 멀리 떨어진 시대에 사는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준다. 책은 시간의 굴레를 벗어난다. 책은 인간이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증거다. (156 페이지)


이렇게 칼 세이건을 추모한다. 나만의 방식으로...


---

[*] 34 페이지, "지구가 생겨난 지는 4억 5천만 년 이상 되었다."의 구절에서 "4억 5천만 년"은 45억 년의 오역으로 보인다. 32 페이지, 빅뱅이 일어난 시기 "13억 8천만 년 전"도 오역이다. 138억 년 전이 맞다. billion은 10억임을 착각한 모양.

[**] "For Small Creatures Such as We"의 원 제목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로 매우 잘 번역했다. 책 표지도 너무 예쁘다. 원서 표지보다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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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인Shane> 영화를 어제 케이블 TV에서 봤다. 우연히 채널을 돌렸는데 막 시작하고 있었다. 이런, 만사 제쳐놓고 보기 시작했다. 두 번의 긴 광고 시간을 잘 넘기고 셰인이 떠나는 마지막 장면까지 집중해서 봤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아마 처음 봤던 것 같고, 그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어 10년 쯤 전 마트에서 VCD를 샀었다. 그리고는 내 인생에서 3번째 본다.



수십 년 전 처음 보았던 영화의 여운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은, 돌아오라는 외침 속에서 아쉽게 떠나는 그 뒷모습 때문이리라. 3번째 보니 이전에는 잘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아마 아들 조이의 시각에서 봤던 것 같은데, 이제는 정착자들의 대표인 스타렛이나 새 인생을 살아보려고 했던 셰인, 그리고 스타렛의 아내인 마리안의 심정을 헤아리며 보게 된다.


그리고 악당의 대표인 라이커 일당이 왜 그렇게 정착자들을 괴롭혔는지도 조금 이해하게 됐다. 여러 명의 눈을 통해 상황을 바라볼 수 있고, 특히 서부영화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 아이가 극중 중요한 역할을 해서 더욱 명작의 반열에 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영화에 대해 인터넷에서 이런 저런 글을 찾아 읽었는데, 영화는 1953년 작이고, 셰인 역의 앨런 래드가 1964년에 50세로 세상을 떠난 것을 알게 됐다. 앨런 래드는 꽤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세파에 찌든 가난한 알콜 중독자였던 그의 모친은, 아들에게 돈을 받아 독약을 사서 그의 차 뒷좌석에서 그 독약을 마셨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아들의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밑바닥 출신의 앨런 래드가 냉정하지만 뭔가 우수한 찬 모습이었던 것은 이런 가정적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일이다. 지금 그 사람들은 모두 없고, 나는 그들의 살아있을 때의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이란 시구가 왜 떠오르는지...


영화 <로건>(2017년 작)에서는 <셰인>이 중요한 모티브로 반복해서 나온다. 직접 관련은 없지만 왠지 <인터스텔라>(2014년 작)도 떠오른다. 사라짐, 퇴락이 중요한 모티브이기 때문이리라. 뭔가를 이루고 떠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좋다. 열심히 즐겁게 살다가, 왔던 길 그냥 다시 가는 것이다. 셰인처럼, 그저 그 뒷모습이 아쉬움을 남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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