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l the End of Time: Mind, Matter, and Our Search for Meaning in an Evolving Universe (Paperback) - 브라이언 그린의 『엔드 오브 타임』원서
브라이언 그린 / Vintage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기 전에 초끈 이론가인 저자에게 편견이 있었다. 그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물리를 '확신에 차서'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는데, 책을 읽은 지금 그런 인상이 많이 사라졌다. 어찌 보면 영원을 동경하던 젊은이이기에는 그도 나이를 먹었는지 모른다. 그는 상당히 솔직하게, 가설은 가설의 영역으로 남겨 놓는다. 빅뱅 직후의 인플레이션 이론과 함께 그 경쟁자라 할 수 있는 순환 우주론도 논의하는 점에서 솔직히 놀랐다.


책 자체는 거의 빅 히스토리이다. 우주의 시작인 빅뱅부터 시작해서 생명, 정신, 언어, 종교를 거쳐 우주에 거의 아무런 구조도 남아있지 않게 되는 시간의 끝[10^(10^68) 년 정도]까지 다룬다[*]. 책에 초끈 이론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데, 이미 그의 이전 책에서 충분히 논의했다고 생각해서인지 모르겠다. 


물리학자인 그는 역시 물리 얘기를 할 때 가장 빛난다. 중간에 정신, 언어, 종교 등을 얘기할 때는, 솔직히, 지루했다. 나의 관심 부족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이들의 연구결과를 소화해서 얘기하는 그의 설명 방식 때문일 수도 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열역학 제2 법칙이 지배하는 우주에서 어떻게 태양이나 생명이 그 존재를 유지하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엔트로피의 2단계entropic two-step"라고 저자는 이러한 과정을 불렀는데, 태양이나 생명을 증기기관을 통해 얻은 개념으로 기술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시간의 끝에 대해 설명하는 후반부로 가면 다시 물리학의 영역으로 들어가며 잘 읽히는데, '생명도 어떠한 구조도 남지 않는 우주'란 불가피한 결론에 그는 꽤 허무적인 모습을 보인다.


---

[*] 10^(10^68) 년은 1 다음에 0이 10^68개 나오는 숫자이다.


So we must leave to future research, theoretical and observational, a more definitive answer for how a small region of space became uniformly filled with an inflaton field, thus setting off a burst of spatial expansion. For now, we will simply assume that one way or another, the early universe transitioned into this low-entropy, highly ordered configuration, sparking the bang and allowing us to declare that the rest is history. (p. 55)

Our experiments and observations support the view that when a quantum system is prodded--whether the prodder is a conscious being or a mindless probe--the system snaps out of the probabilistic quantum haze and assumes a definite reality. Interactions--not consciousness--coax the emergence of a definite reality. Of course, to verify this, or anything else for that matter, I need to bring my consciousness to bear; I can't be aware of a result without my conscious mind participating in the process. So there is no foolproof argument that consciousness does not play a special quantum role. (p. 145)

Much like Newton, Schrödinger leaves no room for free will. (p. 149)

  In recent years, cyclic cosmology has emerged as a main competitor to the inflationary theory. Although both can explain cosmological observations, including the all-important  temperature variations in the 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 the inflationary theory continues to dominate cosmological research. In part this reflects the uphill battle to interest physicists in an alternative to a theory that over the course of four decades has propelled cosmology into a mature and precise science. That ours is called the golden age of cosmology is largely attributable to the inflationary theory. Of course, truth in science is not determined by polls or popularity. It is determined by experiments, observations, and evidence. And the inflationary and cyclic theories do make one significantly different observational prediction, which may one day figure prominently in adjudicating between them: The burst of inflationary expansion at the big bang would likely have so vigorously disturbed the fabric of space that the gravitational waves produced might still be detectable. The more gentle expansion of the cyclic model results in gravitational waves too mild to be observed. In the not-too-distant future, observations may thus have the capacity to tip the balance between the two cosmological approaches. (p. 30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emiybk 2023-09-08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걸 원서로보는 님 영어실력이 더 대단한것 같아요 ㅎㅎ

blueyonder 2023-09-08 21:32   좋아요 0 | URL
^^;;
 















  인도에서 공사상을 선양해간 중관파의 시조 용수는 그의 저작 <인연심론석>에서 윤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윤회란 이전 생의 오온(정신과 육체)을 원인으로 하여 또 다른 오온이라는 결과가 생한다고 하는 태어남의 반복을 뜻하지만, 이 생에서 저 생으로 옮겨가는 것은 티끌만큼도 없다."

  인과관계에 의한 새로운 오온의 이어짐은 있으나, 아뜨만과 같이 다음 생으로 변함없이 영속하는 연속체는 없다는 말이다. (200 페이지)

  부파(=소승) 불교가 이상으로 하는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은 지혜에 의해 모든 번뇌를 끊은 결과, 육체와 정신이 완전히 소멸하여 이 세계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반면 대승불교는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을 이상으로 한다. 그것은 지혜에 의해 모든 번뇌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윤회의 세계에 있더라도 물들지 않고,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이 세계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열반의 경지에도 집착하지 않는 그러한 열반이다. 단적으로 말해, 윤회와 열반 그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열반이다. (206~207 페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의 모든 것에 자성이 있다면 생하는 것도 멸하는 것도 없이 일체는 항상 그대로 있게 된다. 따라서 자연의 변화라든가 눈앞에 펼쳐지는 생멸 현상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오류에 빠지고 만다. 자성을 인정하게 되면 불교의 기본 교리인 무상無常도 부정되며, 중생은 아무리 수행을 해도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는 과오도 범한다. 자성인 고苦와 번뇌를 무슨 수로 없앨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용수는 『중론』 제24장 제14게송에서 이렇게 말한다. "공이 타당한 자에게는 모든 것이 타당하다. 공이 타당하지 않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타당하지 않다." (180~181 페이지)


자연의 변화는 자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인데, 논리적으로 볼 때 꼭 그렇지 않다는 생각.


  하지만 이 색즉시공의 길 끝에서 공즉시색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한순간에 저절로 이루어진다. 색즉시공은 대사일번大死一番, 즉 한번 내가 크게 죽는 길이다. 본인이 자진해서 움켜쥐고 있던 모든 것을 철저히 놓아버리는 것이며, 백지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철저하고 완전하게 죽는 것에 의해 도리어 모든 것이 참된 진짜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이것을 선에서는 절후소생絶後蘇生이라고 한다. 공즉시생은 절후소생에 해당한다. 

  중생인 우리는 색즉시공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공즉시색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없다. 과거의 내가 죽지 않고는 만물은 진실한 모습으로 되살아나지 못한다. (183 페이지)


종교는 모두 '내'가 죽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를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기독교에서도 내가 죽고 다시 태어나야(born again) 한다고 말한다. 배경이 되는 철학은 다르지만, 겉모습의 결론은 같다. 하지만 뉘앙스는 다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사IN 제721호 : 2021.07.13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1년 7월
평점 :
품절


언론에서 이런 글을 보니 매우 신선하다. 다음은 <시사인> 이종태 편집국장이 권두에 독자에게 보내는 글("편집국장의 편지")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란 것'이 크게 두 가지 용도로 활용되어왔습니다. 하나는 국가와 사회를 조직하는 원리·이념입니다. 한국의 시민들 대다수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국가권력에 대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국가·사회를 재조직하는 '역사적 운동'에 참여해왔습니다. 1987년의 시민항쟁 이후 본격화된 이 운동의 이념적 지침은 자유민주주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이 국가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걸출한 아이디어의 모음이거든요. 예컨대 삼권분립은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가권력이라는 거대 괴물을 행정·입법·사법으로 분리해 서로 싸우게 하는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이죠. 법치주의 역시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에 대한 국가권력의 침해를 통제하기 위한 아이디어입니다. 이 운동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자유민주주의란 것'의 또 다른 용도는 정치적 선전선동의 수단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위해, 전두환은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명분 삼았습니다. 이후에는 주로 민주당 계열의 정당이 집권했을 때 흔히 '극우'로 불리는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나서곤 했습니다. 이분들의 자유민주주의는 '양심의 자유' '삼권분립' '법치주의' 같은 본래의 이념적 원리들과는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냥 정적이나 반대 세력을 '빨갱이'로 몰아붙이기 위한 정치적 수단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6월 2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자리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가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한다"라며 "이 정권은 도대체 어떤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입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윤 전 총장이 '자유를 뺀 민주주의'가 정말 뭔지 모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제가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인민민주주의'입니다. 북한이나 중국이 표방했거나 표방 중인 체제로, 공산당(노동당)이 인민 전체의 '진정한' 이익을 '알고' 대변한다는 사고방식을 주춧돌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공산당(노동당)이 법률 위에서 사실상 선거 없이 영구 집권하며 삼권분립도 법치주의도 대의제도 무시하고 있는 겁니다. 이건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윤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가 이런 체제를 시행 중이거나 앞으로 도입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계신 것일까요?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명망 높은 자유민주주의 매체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조사기관으로부터도 '완전한 민주국가'로 불릴 정도의 나라입니다. 저는 윤 전 총장이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는 장면을 보며 '저 이야기 또 나오네' 유의 지루한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3 페이지)


트럼프만 욕할 일이 아니다. 우리의 정치계에도 본인의 이익을 위해 레토릭만 남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이번 주 굽시니스트의 시사만화 '100년 중공':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0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재 중간 정도 읽고 있는데, 초반부에 그가 주 전공인 물리 얘기할 때보다 재미가 덜하다. 그의 문장은, 심하게 얘기하면, '잘난 척'이 배어 나온다. 미국은 '똑똑함'을 숭상하는 사회임을 다시 실감한다. 반면 우리는 '겸양'을 숭상하는 사회. 미국은 '재능'을 숭상하는 사회, 우리는 '평등'을 숭상하는 사회. 로벨리의 글을 읽어보니 유럽도 미국보다는 우리에 가깝다.


그의 글 한 구절. 


  "사실이나 상상을 다루든, 또는 상징이나 있는 그대로를 다루든, 이야기하는 충동은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며, 정합성을 추구하고 가능성을 상상하는 과정에서 패턴을 찾고 패턴을 발명하며 패턴을 상상한다. 이야기와 함께 우리는 우리가 발견한 것을 명확히 한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배열하고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지속하는 과정이다. 실제든 상상이든, 친숙하거나 비정상적인 상황에 반응하는 인물의 이야기는, 인간이 관여하는 가상의 우주를 제공하여 우리의 반응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행동을 정교하게 만든다. 먼 미래 언젠가, 만약 우리가 먼 세상에서 온 방문자를 드디어 맞이하게 된다면, 우리의 과학적 서사는 이들도 아마 발견했을 진실을 포함할 것이어서, 이들에게 별로 제공할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인간적 서사는, 피카드와 타마리안 사람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들에게 얘기해 줄 것이다."


  Whether dealing with fact or fiction, the symbolic or the literal, the storytelling impulse is a human universal. We take in the world through our senses, and in pursuing coherence and envisioning possibility we seek patterns, we invent patterns, and we imagine patterns. With story we articulate what we find. It is an ongoing process that is central to how we arrange our lives and make sense of existence. Stories of characters, real and fanciful, responding to situations familiar and extraordinary, provide a virtual universe of human engagement that infuses our responses and refines our actions. Sometime in the far future, if we finally host to visitors from a distant world, our scientific narratives will contain truths they will have likely discovered too, and so will have little to offer. Our human narratives, as with Picard and the Tamarians, will tell them who we are. (p. 181)


피카드는 미국의 SF 드라마 스타트렉에 나오는 함장의 이름이고 타마리안 사람들은 피카드 함장이 맞닥뜨리게 되는 외계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