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 - 개국에서 노벨상까지 150년의 발자취
고토 히데키 지음, 허태성 옮김 / 부키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士’라고 쓰면 보통 우리는 글 읽는 선비, 즉 ‘문사’를 떠올린다. 하지만 일본은 ‘士’를 보통 ‘무사’라고 받아들인다. 사실 무사도 ‘士’이다. 문반, 무반 합쳐서 양반이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士는 문사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문사는 아무래도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에 치우치기 쉽다. 반면 무사는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문사는 방안에서 글을 읽지만 무사는 전장에서 적과 마주친다. 글을 읽다가 죽는 일은 흔치 않지만 적과 싸우다가 죽기는 쉽다. 우리는 문사 우위의 사회였고 일본은 무사 우위의 사회였다. 결국 이러한 차이가 양국이 근대 서양과학을 받아들이는 자세에서도 차이를 가져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개국에서 노벨상까지 150년의 발자취”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로부터 시작한다. 유키치하면 보통 일본의 계몽사상가이며 1만 엔권 지폐에 초상화가 들어가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유키치 역시 하급 무사집안 출신이었다. 그는 1858년 네덜란드 학문을 배우는 난학숙蘭學塾을 세웠으며 이는 이후 명문 게이오대학慶應義塾大學이 된다.


1868년 후쿠자와 유키치는 <훈몽궁리도해訓蒙窮理圖解>, 요즘 말로 하면 ‘도해 물리 입문’이라 할 만한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궁리열窮理熱’이라 불리는 출판 붐을 일으켰고 이후 수십 권의 물리 입문서가 잇따랐다. (20 페이지)

  일본은 유사 이래로 모든 것을 중국에서 배웠다. 그러한 대국 중국이 아편 전쟁으로 영국에 유린당하자 유키치는 물론이거니와 마쓰시로松代의 사쿠마 쇼잔佐久間象山, 조슈長州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과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晉作, 도사士佐의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도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한학은 사상성에서는 뛰어나지만 새 시대의 역할을 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한시라도 빨리 사이언스(물리 등 실학)를 배워 일본도 서양의 군함인 흑선黑船을 가져야만 했다. 
  한편 조선에서는 개화파가 근대화와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도모하고 있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개화파 김옥균 등을 게이오 의숙에 받아들었다[원문 오타]. 하지만 그들이 일으킨 쿠데타 갑신정변은 청에 의해 실패하고 말았다. 일본인이 학살되고 제자도 무참하게 처형된 사실에 유키치는 충격을 받았다. 결국 그는 태도를 바꾸어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주장했다. 아시아 동포를 도울 여유 따위는 일본에 없다, 그들을 동포로 생각할 게 아니라 서양 열강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다시 말하면 일본도 제국 열강의 식민지 쟁탈에 나서지 않으면 자신들이 제국의 식민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지금도 일본 국내외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일본을 둘러싼 현실에 직면하여 휴머니스트인 유키치는 이상주의자이기보다는 현실주의자가 되는 편을 선택했다. 그 때문에 무장을 뒷받침하는 물리학이 필요했다. 유키치가 물리에 주목한 데에는 그러한 불가피한 사정도 있었다. (21 페이지)


유키치가 물리를 공부하고 책을 펴낸 동기가 인상 깊다. 자연에 대한 이치 탐구가 아니라 부국강병, 무엇보다도 강병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에 참여했다는 변명.) 결국 일본의 물리학자들은 현대물리학의 태동기부터 그 발전에 참여할 수 있었다. 책에 나오는 초창기의 일본 물리학자들은 다음과 같다. 


야마카와 겐지로山川健次郞: 1871년 예일대학에 입학, 3년간 물리학을 배운 후 이학사가 되어 귀국. 도쿄 대학에서 가르치며 물리학에서 첫 번째 일본인 교수가 됨. 일본 최초로 방전 램프와 뢴트겐 선 실험.


나가오카 한타로長岡半太郞: 오스트리아 빈 대학 볼츠만 교수 연구실로 유학. 1904년[Wikipedia에는 1901년으로 나옴] 귀국해 도쿄 대학에서 원자 물리학 연구. 우리가 보통 러더포드 모형이라고 알고 있는 원자 모형을 나가오카가 먼저 주장했다고 나온다(‘나가오카의 토성 모델’). 러더퍼드는 토성 모델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것이라고.


니시나 요시오仁科芳雄: 나가오카 한타로의 제자. 1921년 케임브리지에서 러더퍼드의 지도로 실험물리학 공부. 2년 후 러더퍼드의 제자인 덴마크의 보어에게로 가 6년간 양자역학 공부. 이화학연구소 최연소 정규 연구원. 1937년 일본 최초로 입자가속기인 사이클로트론 완성.


그 이후 세대는 우리가 많이 들어 알고 있는 도모나가 신이치로朝永振一郞,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등이 나온다. 도모나가는 1938년부터 하이젠베르크 밑에서 2년간 유학을 했다. 


일본 물리학자들이 유학해서 배운 학자들의 이름이 어마어마하다. 우리는 어땠나 찾아보니 연희전문에 수물과가 생긴 것이 1915년 4월이고 1919년에 최초로 4명이 졸업했다고 한다[1]. 이중 이원철은 1922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26년 미시간 대학에서 천문학 전공으로 한국인 최초의 이학박사가 된다. 일제시대에 이공분야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10여 명 밖에 안 된다는데, 이중 물리학과 천문학 분야는 단 4명이었다고 한다. 이 중에는 평양 숭실전문 문과를 졸업하고 1928년 미국 퍼듀대학에서 물리학 박사를 받은 조응천, 연희전문 수물과를 1926년 졸업하고 1932년(1933년?) 미시간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가 된 최규남, 연희전문 수물과를 1930년 졸업하고 1940년 교토 제국대학에서 물리학 박사를 받은 박철재가 있다. 경성 제국대학은 1924년 설립되었는데 법문학부와 의학부만 있다가, 중국과의 전쟁이 격화되면서 1938년 이공학부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교수진은 모두 일본인이었다. 우리가 처음 서양물리학을 받아들인 시기가 일본과 약 50년이 차이 나고 연희전문에 수물과가 생긴 이후 식민지배가 끝날 때까지 또 30년이니, 제대로 된 물리학의 시작이 일본보다 약 80년은 뒤처져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은 1949년에 유카와가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는데, 그렇게 보면 우리가 아직 노벨 과학상을 받지 못한 것이 이상하지 않다. 


책에는 물리학뿐만 아니라 다른 과학 분야에서도 일본인들의 자부심이 넘쳐난다. 일본인들은 정말 자신들이 ‘아시아의 유럽’이라고 생각한다. 식민지배에 나선 과거 때문에 경계심과 거부감이 들긴 하지만 일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일본 역사와 버무려져서 워낙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기 때문에 앞에서 나온 인물들을 자꾸 잊어 버리게 된다(그래서 책 뒤에는 간단한 인명사전도 있다). 


우리 물리학도 과거에 일본의 식민지배가 없었다면 적어도 발전이 30년은 당겨지지 않았을까. 다른 과학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해방 후에는 한국전쟁까지 있었으니 우리 과학기술계가 제대로 된 고민과 발전을 하기 시작한 것은 길게 봐야 60년 정도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이제 이만큼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과학기술도 적어도 겉으로는 외국에서 무시 못할 정도는 됐으니 자랑스럽게 여겨도 되지 않을까. 물론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멀겠지만…


재미있는, 하지만 현실적인, 교수 유형 구분이 나오는데 방목형과 군대형이 그것이다(79~80 페이지). 뜻은 말 그대로다. 야마카와 겐지로, 유카와 히데키, 난부 요이치로南部陽一郞는 방목형 교수였고, 나가오카 한타로, 도모나가 신이치로는 군대형 교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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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1205N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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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8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운전하면서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한다. 운전이란 A에서 B로 가는 수단일 뿐이고 그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는 생각이 들지만, 음악을 들으면 그 시간 자체가 의미 있게 느껴진다. 특히 어두운 밤에,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면 마음이 차분히 정리되고, 감상적이 되고, 추억도 생각나고, 외로움도 정겹게 느껴진다. 평소에 음악을 차분히 감상할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오늘도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고 있었다. 음악만 나와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이 듣는다는 MBC 라디오... MBC 라디오가 20일인 내일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한다. 음악 때문인지, 그 동안의 사연 때문인지, 왠지 눈가가 촉촉해졌다. 세상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그래도 조금씩 바뀐다. 어두움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이 왔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MBC의 정상화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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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20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퇴근 버스 탈 때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해요.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도로가 막혀도 참을 수 있어요. ^^

blueyonder 2017-11-20 13:37   좋아요 0 | URL
공감합니다. 음악이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대단하고 유쾌한’이란 가벼운 이름과 달리 여러 중요한 주제에 대해 정공법을 택하여 잘 다루고 있다. ('유쾌한' 이란 말은 저자가 중간중간 농담을 시도하기 때문에 붙인 것 같다.) 물질, 빛, 전자기학 등 핵심적 물리학 주제들이 다양한 학자들과 그 배경이 되는 역사와 함께 소개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물리학 주제로 들어가기 전에 과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기술하고 있다. 물리가 무엇인지, 그 개념과 배경, 역사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그림이나 사진은 별로 없다. 화려한 컬러 그림이나 사진과 함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장치들의 물리학적 원리를 찾아보는 <일상 속의 물리학> 류는 결코 아니다. 


다음은 과학에 대한 일반론이 논의되는 서론 부분:


  모든 난관은 실재(reality)가 우리가 만든 현실에 대한 이론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실재 세계에서는 지극히 사소한 사건도 무수히 많은 원인과 또 그만큼 무수히 많은 결과에 연관되어 있으며, 원인과 결과 사이에 불균형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른바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가 그런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실재 세계를 이론적 모형으로 만들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그래서 실재 세계를 이해하려면 우선은 그 실재 세계를 단순화시켜서 중요한 법칙들을 이끌어내고, 그런 다음 우리가 할 수 있는 관찰과 실험에 근거해서 그 법칙들이 유효한지 확인해야 한다… 과학의 속성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실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에 대한 모형(模型, model), 즉 일정한 틀 안에서 실재와 같은 방식으로 돌아가는 모형을 만드는 데에 있다. 어떤 분야의 것이든 과학은 근사치에 지나지 않으며, 실재 세계가 아닌 그 이론적 모형만을 제공한다. (21~22 페이지)

… 자연은 아무리 머리가 뛰어난 사람도, 아무리 어려운 계산을 할 수 있는 기계도 어쩔 수 없을 정도의 복잡성을 가지고 있다. 실재 세계는 우리의 능력 밖에 있으며,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23 페이지)

  과학은 끊임없는 단순화를 거치면서 모형을 만든다. 이 모형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실재와 혼동되면 안 된다. 모형은 특별한 조건이 부여된 일정한 틀 안에서 실재 세계를 설명한다. 그래서 모형은 저마다 한계가 있다. (2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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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11-1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리뷰를 읽지만 뭔말인지 이해가 잘안돼서 그냥 좋아요. 누르고 가는 1인 입니다. 어렵다고 생각해서 밀치는지 아님 진짜 어려워서 접근을 못하는지
과학서는 자꾸 안읽게 되네요. 아무튼 대단하세요^^

blueyonder 2017-11-18 16:01   좋아요 1 | URL
아이쿠 죄송합니다. ^^;; 그럼에도 읽어 주셔서 감사하구요.
과학 서적에는 아무래도 진입 장벽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용어라도 알아야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겠지요. 이공계가 아니어서 학교에서 배운 부분도 별로 없을 때는 정말 딴 세상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ㅠ

cyrus 2017-11-20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과학에서 말하는 ‘모형‘을 ‘가설‘과 조금 비슷한 의미로 보고 싶어요. 가설은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가정이니까 과학자들은 검증을 통해 가설이 진리가 될 수 있는지 아닌지 판단합니다. 그래서 유력한 가설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

blueyonder 2017-11-20 13:3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동의합니다. ‘모형‘과 ‘가설‘은 거의 교환해서 써도 괜찮을 것 같네요. ‘가설‘이라고 쓰면 그 임시성이 더욱 두드러지는 느낌이네요.
 
Seven Brief Lessons on Physics (Paperback) - 『모든 순간의 물리학』원서
카를로 로벨리 / Penguin Books Ltd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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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였다는 책. 글자도 큼직하고, 그래도 79페이지면 끝난다. 이탈리아인인 저자가 Il Sole 24 Ore라는 신문의 주말판 문화면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증보한 거라고 한다. 제목처럼 책은 7개의 짧은 lesson으로 이루어져 있다. 1강은 가장 아름다운 이론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 2강은 여전히 신비스러운 양자이론, 3강은 빅뱅 등의 우주론, 4강은 양자이론이 말해주는 기본입자들과 표준모델, 5강은 이 둘을 합치고자 시도하는 양자중력이론, 6강은 확률과 통계를 물리에 도입한 열/통계물리학으로 인한 시간의 방향성과 블랙홀에 대한 논의, 그리고 7강은 이러한 우주에 살며 탐구하고 모색하는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짧은 글 속에 이러한 생각을 담아낸 저자의 내공이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저자는 줄곧 우주가 simple한 법칙에 따라 기술되는 것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아마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simple’, ‘beautiful’, ‘beautifully simple’일 것이다. 사실 법칙 자체가 한 줄로 기술된다고 해도, 이 법칙을 실제 상황에 적용해 푸는 것은 매우 복잡하다. 그럼에도, 복잡한 자연현상 뒤에 간단한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현대물리학은 그 간단한 법칙들을 더 간단히 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과연 얼마나 성공적일지는 미지수이다. 저자는 겉보기에 불일치 하는 이론들을 통합하여 거둔 눈부신 예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뉴턴이 갈릴레오의 포사체 운동과 케플러의 타원 운동을 통합하여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것, 맥스웰이 전기와 자기를 통합하여 전자기 방정식을 찾아낸 것, 아인슈타인이 전자기학과 역학의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상대성 이론을 제안한 것(39 페이지). 과연 중력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여 그와 유사한 엄청난 진보를 이루어 낼 수 있을까. 그리하여 ‘세상에 대한 이해’를 바꿀 수 있을까.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에서 읽었던 과학의 다원주의와 관련하여 납득, 이해가 안 됐던 부분은 이런 것이다. 모든 이론에는 자연이 어떻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가령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이란 단지 시공간의 휘어짐이 나타나 보이는 현상일 뿐이다. 한편 양자역학에서는 시공간의 휘어짐은 없고 뉴턴 역학과 마찬가지로 그냥 주어져 있다. 물론 미시세계에서 중력은 매우 미미하므로 그 역할을 무시해도 별 문제가 없다. 어쨌던 이러한 상충된 점을 해결하여 블랙홀과 같이 중력과 양자역학적 효과가 동시에 큰 역할을 하는 현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양자중력 이론이다. 이러한 노력은 장하석의 관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순전히 도구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면 이미 잘 맞는 이론을 굳이 통합해서 더 복잡할 수 있는, 그리고 어차피 잘 써먹지 않을—우주론 계산할 때는 여전히 일반상대성이론을 쓰고 기본입자들 얘기할 때는 역시 양자역학을 쓸 테니까—이론을 만들어 내어 자연의 ‘본성’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여기에 대한 장하석의 답은 ‘쓸모 없다’에 가까울 것 같다. 각 이론이 다루는 현상이 다르니까. 단지 두 이론이 모두 필요한 블랙홀이 문제가 될 뿐이다. 장하석 교수는 그냥 자연의 일면을 각각 기술하는 여러 이론들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일까. 모든 면을 포괄하는 이론은 그냥 인간의 욕심인 것일까. ‘하나’에 대한 인간의 집착?


다음은 양자역학에 대한 몇몇 구절들이다. 


… The equations of quantum mechanics and their consequences are used daily in widely varying fields: by physicists, engineers, chemists and biologists. They are extremely useful in all contemporary technology. Without quantum mechanics there would be no transistors. Yet they remain mysterious. For they do not describe what happens to a physical system, but only how a physical system affects another physical system.

  What does this mean? That the essential reality of a system is indescribable? Does it mean that we only lack a piece of the puzzle? Or does it mean, as it seems to me, that we must accept the idea that reality is only interaction? Our knowledge grows, in real terms. It allows us to do new things that we had previously not even imagined. But that growth has opened up new questions. New mysteries. (p. 18)


위 구절들에서 보는 것처럼 물리학자들은 ‘reality’, ‘실재’에 집착한다. 현상 뒤에 있는 본질을 보고 싶어한다. 이러한 집착은 헛된 욕심인가? 우리는 이론을 통해 단지 우리 마음 속에 자연에 대한 이미지, 모델만을 만드는 것인가?


양자역학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세상의 모습을 저자가 표현한 문구: 


A world of happenings, not of things. (p. 31) 


다음은 블랙홀 속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고 블랙홀 밖에서 이것이 어떻게 보일까에 대해 저자가 설명해 주는 부분이다. 새로운 우주의 씨앗이 될 수 있는 블랙홀의 가능성을 여기저기서 읽게 된다. 


… The entire matter of the sun condensed into the space of an atom: a Planck star should be constituted by this extreme state of matter.

  A Planck star is not stable: once compressed to the maximum it rebounds and begins to expand again. This leads to an explosion of the black hole. This process, as seen by a hypothetical observer sitting in the black hole on the Planck star, would be a rebound occurring at great speed. But time does not pass at the same speed for her as for those outside the black hole, for the same reason that in the mountains time passes faster than at sea-level. Except that for her, because of the extreme conditions, the difference in the passage of time is enormous, and what for the observer on the star would seem an extremely rapid bounce would appear, seen from outside it, to take place over a very long time. This is why we observe black holes remaining the same for long periods of time: a black hole is a rebounding star seen in extreme slow motion. (pp. 44-45)


저자가 이탈리아어로 쓴 것을 다른 이들이 영어로 번역했는데, 솔직히 잘 안 읽힌다. 시처럼 읽히고 싶었는지 모르겠는데 amongst, whilst, learnt 등을 쓰는 것도 익숙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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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9-01-04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생각해보니 amongst, whilst, learnt 등의 단어는 영국판이라서 그런 모양이네요...
 


영화 <Loving Vincent>를 봤다. 매우 훌륭하고 놀라운 시각적 경험이었다. 이렇게 영화를 만들 수도 있구나... 영화의 모든 프레임은 빈센트 반 고흐의 화풍대로 유화로 그려졌다고 한다. 영화의 여러 장면에는 고흐의 그림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보통 고흐하면 '광기에 사로잡혀 자기 귀를 자르고 결국 자살하고 만 불운한 천재'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그를 훨씬 더 잘, 혹은 더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하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그를 괴팍한 이라기보다는 예의 바른 이로, 사회 부적응자라기보다는 사회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한 이, 그리고 엄청나게 열심히 산 이로 그린다. 하지만 그가 결국 고독했다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는 날마다, 직장에 출근하는 사람처럼, 정해진 시간에 그림을 그리러 나가고 들어왔지만, 그가 그린 수많은 그림들--화가로 활동한 십 여 년의 기간 동안 2,000점 이상을 그렸다--중 단 하나만 그의 동생 테오는 팔았다고 한다. 


그는 과연 자신을 쏘았을까. 영화는, 그리고 연구는, 그가 다른 사람이 쏜 총에 맞았을 가능성에 대해 말해준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고독하고 괴로웠을지에 대해서도--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을 만큼...


그렇게 찬사를 받았다는 그의 그림이 죽기 전에 단 한 점 밖에 안 팔렸다는 사실은, 미술계에 대해 얘기하는 바도 크지만, 모든 위대한 업적은 시대를 앞서 가기에 당대에는 인정 받기 힘들다는 역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는 것 같다.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은 통계학을 물리학에 도입하는 획기적인 일을 했지만 당대에는 냉대만 받다가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천재는 불운하고 고독하다는 사실은 역사에서 여러 번 반복된다. 볼츠만의 삶과 업적에 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다음의 책을 봐도 좋겠다.

 















영화는 폴란드 영화인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감독으로 리스트 되어 있는 Dorota Kobiela가 폴란드인이다. 


반 고흐하면 빠질 수 없는 명곡을 다음에 리스트 한다. 영화에서도 마지막에 이 노래가 흐른다. (영화에서는 다른 사람이 부른 버전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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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13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포스터가 멋져요. 항상 정면을 응시하는 자화상에 익숙해서 그런지 자화상을 응용한 포스터가 좋게 느껴졌어요. 고흐 빠돌이라서 저 영화 포스터를 방에 걸어두고 싶어요. ^^

blueyonder 2017-11-13 15:39   좋아요 0 | URL
네 그리고 깊은 눈도 무엇을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고흐 화풍과 자세가 어우러져 굉장히 역동적으로 보이는 포스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