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의 전쟁 - 제2차 세계대전으로 송두리째 바뀐 소년병 코프의 인생 여정
에마뉘엘 기베르 지음, 차예슬.장재경.이하규 옮김 / 휴머니스트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잔잔합니다. 한 사람의 일생을 읽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터라 이런 얘기를 읽으면 귀 기울이게 됩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소중합니다. 우정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네요. 전쟁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결국 유럽에 정착한 앨런 코프는 쉰이 넘은 나이에 '지금까지 진정한 내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언제나 타인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깨닫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라는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는 자신과 인류가 '지성과 예술적 능력을 발전시키지 않고, 그 대신 독단 및 잘못된 가치관, 잘못된 생각들에 휘둘렸'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정신적 질병은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좋지 못한 습관을 가지고 있고, 이 땅의 모든 것을 비정상적으로 착취하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강박증 때문에 무능함이 나타났고, 그러다 보니 존재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정신세계를 알 수 없게 됐습니다. (288페이지)

 

우리 주변에 이런 스승은 항상 있는 것 같습니다. 나 자신도 항상 성찰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 자신의 이성과 사고의 힘을 믿고서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 역사를 관통하고 지식의 근원을 통찰하는 궁극의 수수께끼
짐 홀트 지음, 우진하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A Quick Proof That There Must Be Something Rather Than Nothing, for Modern People Who Lead Busy Lives 부분

 

세상에 무가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아무런 법칙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법칙도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용될 것이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면, 무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무가 존재한다면, 무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무는 그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무엇인가가 존재해야 한다. 증명 끝.

 

이 번역을 어떻게 이해하라고요... 원래 작가의 의도는 이렇게 말을 잘못 사용하면 엉뚱한 증명도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이에요. 번역하기 어렵다는 건 알지만 도저히 이해불가능이네요. 원문을 보세요.

 

Suppose there were nothing. Then there would be no laws; for laws, after all, are something. If there were no laws, then everything would be permitted. If everything were permitted, then nothing would be forbidden. So if there were nothing, nothing would be forbidden. Thus nothing is self-forbidding.

 

Therefore, there must be something. QED.

 

'모든 것이 허용된다면, 무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문제네요. 'If everything were permitted, then nothing would be forbidden.' 이 얘기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면, 금지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라는 얘기입니다. 'nothing'을 '무'로 사용하다가 여기서는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는 뜻으로 썼습니다. 영어로는 똑같은 nothing이지만요. 여기서 논리적 비약이 일어났고 저자도 본문에서 오류라고 지적합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ueyonder 2013-09-01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 것도 없다고 하자. 그러면 법칙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법칙도 결국 어떤 것이니까. 법칙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될 것이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면, 금지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아무 것도 없다면, 금지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무'는 자기부정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무언가 있어야 한다. 증명 끝?

이건 어떤가요? 번역은, 철학책 번역은 정말 어렵습니다. TT

blueyonder 2014-03-20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지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와 '[아무 것도 없다]는 '무'가 금지된다(허용되지 않는다)'는 분명 다른 말이지요. 하지만 영어에서 'Nothing would be forbidden'은 둘 다 될 수 있습니다.

blueyonder 2014-12-03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말은 영어에서 일어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더 좋은 언어네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 도스또예프스끼의 삶과 예술을 찾아서
이병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자신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에 의해 인간으로 창조된 형제들의 육체, 피, 영혼은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데 익숙한 사람, 더할 수 없는 모욕으로 신의 형상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을 멸시할 수 있는 권력과 그런 가능성을 경험해본 사람은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권력에 도취하게 된다. 포악함은 습관이다. 이것은 차차 발전하여 마침내는 병이 된다. 나는 아무리 훌륭한 인간이라 해도 이러한 타성 때문에 짐승처럼 난폭하고 우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피와 권력은 인간을 눈멀게 한다. 인간은 점점 거칠어지고 타락한다. 급기야 인간의 이성과 감정이 가장 비정상적인 현상들을 달콤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125쪽

폭군 앞에서 인권과 시민권은 영원히 박탈되고, 인간적 가치의 회복, 회한, 소생의 가능성은 거의 사라지고 만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횡포는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권력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런 현상에 대해 무관심한 사회는 이미 그 기초가 썩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이 다른 사람을 체벌할 수 있는 권리는 사회적 비리의 하나이며, 사회 안에 존재하는 모든 문명의 맹아와 시도들을 제거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며, 필연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사회 붕괴의 완전한 근거인 것이다. -12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의 위안 -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청미래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별 3.5개. 보통이 해석하는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의 철학. ˝인문학 분야에서 저자의 책임은 과학에 버금가는 정확도에 있지 않고 인류에게 행복과 건강을 주는 데에 있다˝는 그의 말을 실천한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의 위안 -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청미래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철학자들은 인간이 육체를 정복할 수 있고, 또 육체적이고 열정적인 자아에 결코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 암시했다.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가장 고매한 열망을 품도록 자극하는 고귀한 충고이다. 하지만 그 충고를 완벽하게 따르기란 불가능하며,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

어떤 인간도 정착할 수 없는 높기만 한 철학의 산봉우리들이 그리고 우리의 관습과 힘을 넘어선 곳에 있는 규율들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 <수상록> III
[인간이] 자신과는 엄청나게 다른 존재의 기준에 맞추어서 자신의 의무를 정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하지 않다. - <수상록> III -176쪽

인간의 지혜라는 것에 담긴 지적 우둔함을 간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놀랄 만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을 위대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그런 중요한 인물들에게서조차 엄청난 오류를 발견할 때,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 인간의 감각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의 이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 <수상록> II-196쪽

... 그들이 단어의 기원에 관한 책을 쓰고 보편적인 명제를 발견한 것은 명백한 업적이었다. 그런데 그런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철학적 논리에 대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들보다 결코 더 행복하지도 않았고, 약간은 더 불행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몽테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바로의 삶을 떠올리면서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바로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박학다식이 정작 그들 자신들에게는 어떤 소용이 있었던가? 그것이 그들을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했던가? 그것이 평범한 짐꾼에게 일어났던 불행을 덜어주었는가? 논리학이 그들의 통풍(痛風)에 위안이 되었던가......? - <수상록> II
-206쪽

그 두 사람이 그렇게 박식하면서도 무척 불행했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몽테뉴는 지식을 두 개의 범주로, 즉 학문(learning)과 지혜(wisdom)로 구분했다. 학문의 범주에는 논리학과 어원학, 문법, 라틴어와 그리스어가 들어갔다. 그리고 지혜의 범주에는 그보다 훨씬 더 폭넓고 이해하기 어렵고, 보다 가치 있는 지식의 종류를 넣었는데, 여기에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이를테면 사람들이 행복하게 도덕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해당되었다. -206쪽

전문적인 교수진과 교장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콜레주 드 기옌이 안고 있던 문제는 학문을 전달하는 데는 뛰어났지만, 지혜를 전파하는 데는 완전히 실패했다는 점이었다. 바로와 아리스토텔레스의 개인적인 삶을 망쳐놓았던 잘못이 이번에는 제도적 차원에서 되풀이되었던 것이다.

나는 기꺼이 교육의 부조리라는 주제로 돌아가겠다. 우리의 교육 목적은 우리를 행복하고 현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무엇인가를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목적이라면 성공한 셈이다. 교육은 우리에게 미덕을 추구하고 지혜를 포용하도록 가르치지 않았다. 그것은 단어의 기원이나 어원 같은 것들을 우리의 뇌에 각인시켰다....... - <수상록> II-207쪽

... 몽테뉴의 지식체계에서는, 한 권의 책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삶에서 유익하고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플라톤이 쓴 내용이나 에피쿠로스가 뜻한 바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그들의 말이 정말 흥미롭고 지금 당장 우리의 고민이나 외로움을 달래는 데에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하는 것보다 가치가 덜한 일이다. 인문학 분야에서 저자의 책임은 과학에 버금가는 정확도에 있니 않고 인류에게 행복과 건강을 주는 데에 있다. 몽테뉴는 그런 관점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짜증스러운 반응을 나타냈다.-216쪽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룬 성취의 스케일 자체가 우리에게 문제투성이의 유산을 물려주었다. 우리에게 이로운 존재가 되기에는 지나치게 똑똑한 저자들이 있다.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한 나머지 그런 저자들은 최종 결론까지 내려준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천재성은 후계자들로 하여금 창조적인 작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불경(不敬)을 저지를 용기를 가지지 못하게 한다. 역설적이게도,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가장 존경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자신처럼 행동하지 못하도록 막았는지도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단지 자신보다 앞서 축적되었던 지식의 상당 부분에 대해서 회의함으로써, 말하자면 플라톤이나 헤라클라이토스를 읽기를 거부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들의 취약한 부분에 대해서 비평을 가함으로써 위대한 인물의 반열에 올랐으면서도 말이다. 진정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신에 입각하여 행동한다는 것은, 몽테뉴가 깨달았던 반면에 피사의 그 남자는 깨닫지 못했는데, 어쩌면 가장 성공한 권위자들과도 어느 정도 지적 결별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220쪽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32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