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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디스트 윈터 -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
데이비드 핼버스탬 지음, 이은진.정윤미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한국 전쟁에 대해 우리가 모르던 부분을 알려주는 매우 좋은 책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좀 더 많이 이런 책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습니다.
출판사와 번역자의 노고를 치하하면서도 한 마디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십사하는 칭얼거림이라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번역이 매우 매끄럽습니다. 다른 독자가 지적했듯이 지하철에서 서서 읽어도 될 만큼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오역이 눈에 띄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 많은 문장 중에 오역 몇 개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번역자가 너무 서두른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문장을 조금만 더 생각했다면 실수하지 않았을 실수들이 눈에 띈다는 거지요. 제가 번역문을 일일이 원문과 대조한 것도 아니고 오역문이 몇 개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문맥과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제가 원문을 찾아본 몇 개는 오역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 몇 가지 예를 듭니다.
24페이지('제1장 중공군과의 첫 교전'의 첫 번째 문장입니다): 한국전쟁은 소규모 전쟁이 대규모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것에 개의치 않았던 미 극동군 총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사격이었다.
원문은 이렇습니다: It was the warning shot the American commander in the Far East, Douglas MacArthur, did not heed, the one that allowed a smaller war to become a larger war.
문장의 주어인 'It'는 운산에서 중공군과 맞닥뜨린 것을 의미할 것 같습니다. 번역된 대로 한국전쟁이라고 하면 문맥이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소규모 전쟁이 대규모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것에 개의치 않았던' 맥아더는 완전한 오역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맥아더에 대한 일반적 평가를 확대 적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the one'은 맥아더가 아니고 'it'(또는 'warning shot')이니까요. 문맥에 따르면 결국 중공군과의 교전이 소규모 전쟁을 대규모 전쟁으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중공군과의 첫 교전은 미 극동군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가 신경 쓰지 않았던, 소규모 전쟁을 대규모 전쟁으로 만든 경고 사격이었다.'가 더 정확한 번역이 되지 않을까요?
25페이지: 원래부터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한국전쟁에서 둘도 없이 가까운 전우가 되었다.
원문: They could not have been closer as friends, having been through so much together.
올바른 번역은 '수많은 일들을 함께 한 이들은 더없이 가까운 친구였다.'일 것 같은데요. '원래부터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지만'은 왜 들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37페이지: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적어도 목표가 무엇인지, 좌우 측면에서 누구와 교전하고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마치 눈을 감고 싸우는 것처럼 측면에 적이 있어도 도무지 식별할 수 없었다. 십중팔구는 인민군과 외양이 같은 남한군이었기 때문이다.
원문: In World War II, you always knew what your objective was and who was fighting on your left and right. In Korea, you were always fighting blind and were never sure of your flanks, because, likely as not, the ROKs were there.
이 번역의 가장 큰 문제는 '좌우 측면에서 누구와 교전하고 있는지' 입니다. 우리 편 누가 내 좌우 측면에서 싸우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지, 좌우에 있는 적과 싸운다는 뜻이 아니거든요. 제가 볼때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목표물이 무엇인지, 누가 좌우 측면에서 싸우고 있는지를 항상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항상 눈을 감고 싸우는 것 같았으며, 측면에 누가 있는지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대개 한국군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했으면 어땠을지. '인민군과 외양이 같은 남한군'은 너무 나간 거 아닌가요. 잘 모르겠네요.
원문을 찾다 보니 이런 번역도 있네요. '단지 애송이들이라서 형편없었던 것이 아니었다.'(36페이지) 원문은 'It was not that the kids had fought badly.' 여기서 kids는 '애송이'라기 보다는 그냥 병사들을 일컫는 구어체 표현으로 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왜 영화보면 장군이 병사보고 'son'하고 부르잖아요. 진짜 아들이 아니라도 말이지요. 그냥 '병사들이 형편 없이 싸웠던 것은 아니었다.'라고 하면 좋을 텐데요, 이것도 너무 의역을 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오히려 오역에 가까와진 것은 아닌지.
너무 트집만 잡는 것 같아 송구한 마음이 드네요. 좋은 책 낸거는 감사 드리지만, 앞으로는 좀 더 신경 써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적어 보았습니다. 쓰고 보니 이 책은 그저 윤문을 너무 심하게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번역서의 가독성과 정확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는 어려운 걸까요? 번역은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