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재는 단위는 상대적이다. 인간을 포함하여 지구에서 사는 생물들은 지구에서의 ‘날(日)’—지구가 한 번 자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년(年)’—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번 공전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기준으로 시간 감각이 맞춰져 있다. 1일과 1년이란 다른 규모의 시간을 주기로 환경(기온, 계절)은 변화하며 반복된다. 달의 공전 주기를 기준으로 하는 달(月)이란 시간 단위도 있다. 이런 시간 단위는 필연적 이유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태양의 질량과 태양을 적절히 떨어져 도는 지구 궤도의 크기, 그리고 달의 존재로 인해 우연히 정해진 것이다. 우리가 만약 다른 행성에서 살았다면 이런 시간 단위는 당연히 다르게 정의됐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태양계가 우리 은하의 중심을 공전하는 얘기가 나온다. 암흑물질을 설명하면서인데, 재미있는 설명이 있다. 태양계가 우리 은하의 중심을 공전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억5천만 년이라고 한다. 이를 새로운 1년—은하년galactic year—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은하년 단위로 시간의 흐름을 얘기하면 인간의 조상은 겨우 2주 전에 나타났다. 태양계의 나이는 16살이다. 미국에서는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 나이이다. 우주의 나이는 장년(長年)인 55살인데, 은퇴 후 어떻게 지낼지 고민을 시작할 나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은하년으로 비교해 보면 태양계의 나이와 우주의 나이, 그리고 인간의 조상이 나타난 때의 상대적 비율이 좀 더 감이 온다. 


다음은 원문:


Much as the Earth orbits the Sun, the Sun is in a long and slow trajectory around the center of the Milky Way. Over the next 250 million years or so—or one galactic year—our Solar System will complete an entire orbit around the Milky Way, returning to approximately the same place that it is in now. Measured in galactic years, our earliest hominid ancestors appeared only around two weeks ago, our sixteen-year-old Solar System is about to get its driver’s license, and our fifty-year-old universe may be just beginning to think about how it may want to spend its retirement. (p. 106)


인간이 80지구년을 산다고 하면 이를 은하년 단위로 환산했을 때 얼마일까? 10초이다! 55년 우주의 삶에서 10초, 이것이 인간 삶의 길이가 갖는 우주적 의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마다 우주 한 조각 - 매일 만나는 우주의 경이로움 날마다 시리즈
지웅배(우주먼지) 지음 / 김영사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문학자이자 유튜버인 지웅배(우주먼지)가 주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찍은 사진에 설명을 곁들인 책을 냈다[*]. 책은 양장판이고 사진들은 물론 컬러이다. 제목이 <날마다 우주 한 조각>이다. 날마다 사진을 한 장씩 보며 우주를 생각하자는 컨셉이다. 좋은 아이디어인데, 개인적 감상으로는 별 다섯에서 조금 모자란다. 사진과 설명에서 흥분과 감상이 뭔가 기대보다 덜하다. 한꺼번에 후루룩 훑어봐서인지도 모르겠다. '날마다 우주 한 조각'을 감상하고자 하는 분들에겐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겠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으로 관찰한 목성의 모습(이 사진은 책에 없다). 북극과 남극에서 보이는 푸른 빛은 오로라이다. 잘 보면 희미한 고리도 있다.>


---

[*] James Webb Space Telescope은 2021년 12월 25일 우주로 발사됐다. 약 100억 달러(약 14조 원)가 들어갔다고 한다. 적외선 대역을 관찰하는 망원경이다. Hubble Space Telescope은 가시광 대역을 관찰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칭성이란 물리학에서 매우 강력한 도구이다. 우주가 만족한다고 생각되는 대칭성을 가지도록 이론을 구성함으로써 올바른 이론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전기력은 전하에 대한 대칭성을 갖는다. 전하의 크기가 같다면, 양전하와 음전하 사이의 힘이나 음전하와 양전하 사이의 힘에 차이가 없는 것이다. (+1)x(-1)이나 (-1)x(+1)이 모두 똑같이 (-1)이다. 이를 원자에 적용해보자. 원자는 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핵이 양전하, 전자가 음전하를 띠고 둘 사이에는 인력이 작용한다. 하지만 왜 반대로 핵이 음전하, 전자가 양전하를 띠면 안 되는가? 이 경우에도 앞의 경우와 동일한 전기적 인력이 작용한다. 우주는 전하에 대해 대칭적이 아닌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디랙의 이론에 의해 밝혀졌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기본 입자는 대응되는 반입자anti-particle를 가지며, 반입자는 전하의 부호만 제외하고는 입자와 동일한 성질을 갖는다. 이 얘기는 음전하를 갖는 전자 말고 양전하를 갖는 반전자(보통 양전자라고 부른다), 양전하를 갖는 양성자 말고 음전하를 갖는 반양성자가 있다는 것이다. 반입자들로 구성된 원자들은 입자들로 구성된 원자들과 마찬가지로 분자를 이룰 수 있으며 동일한 화학 반응이 가능해 생명을 만들 수도 있다. 전하에 대한 대칭성이 우주에 있다는 사실의 결과이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으니, 입자와 그 짝이 되는 반입자가 만나면 에너지를 내며 소멸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입자와 반입자는 근처에 있을 수 없다. 만나기만 하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관측되는 결과에 따르면 우주에는 입자들만 있고 반입자들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태초에 우주가 탄생했을 때는 입자와 반입자가 동일한 수로 있었으리라 생각됨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은 반입자가 없는가? 무언가가 전하 대칭성을 깨서 입자만 남게 만들었는가? 그 무언가는 무엇인가? 이것이 현대물리학이 아직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입자-반입자 불균형의 미스터리이다. 저자에 따르면 다양한 아이디어는 있지만 어느 것이 맞는지 골라낼 수 있는 실험적 내용이 없어서 아직 답을 모른다고 한다. 


대칭성은 수학적 원리이다. 우리는 수학이라는 도구로 우주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한다. 하지만 우주가 반드시 수학적 원리에 따라야 하는가? 선후 관계가 뒤바뀌었음을 울프 다니엘손은 <세계 그 자체>에서 지적한 바 있다. 잘 작동하던 도구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면 도구의 유용성을 검토해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입자-반입자의 균형이 깨진다는 얘기는 입자만 사라지거나 반입자만 사라진다는 얘기이고, 이는 결국 지금 존재하는 입자들도 붕괴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저자는 쿼크로 구성된 양성자의 붕괴 가능성을 언급한다. 


For one thing, if quarks can be destroyed without destroying antiquarks, then in should also be possible for particles such as protons--which are made of quarks--to decay. In other words, Sakharov's first condition implies that every atom in our universe is ultimately unstable--at least slightly. Even atoms cannot last forever. (p. 97)


하지만 양성자 붕괴를 검출하고자 하는 실험은 그동안 계속 실패해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얇지만 좋은 책이다. 차세대 반도체에 대해 요즘 논의되는 많은 개념을 소개하고 정리해준다. 다음은 '반도체 3대장'이라는 로직, 메모리, 아날로그에 대한 설명이다. 


  오늘날 반도체 분야의 기술 혁신은 로직logic, 메모리memory, 아날로그analog의 3가지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두 트랜지스터transistor나 커패시터capacitor 등의 여러 소자device를 칩 하나에 집적하는 형태이지요. 이 외에 개별discrete 반도체라는 개념도 있는데, 고유 기능이 있는 소자 하나를 칩 하나로 구현한 것을 일컫습니다. 

  로직 반도체는 논리 연산을 수행하는 제품군으로, 마이크로 프로세서microprocessor, 그래픽 처리 장치(graphics processing unit, GPU), FPGA(field-programmable gate array) 등을 포함합니다. 시장에서 요구하는 기능이 날로 복잡해지기 때문에 이 반도체는 설계부터 제조까지 매우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지요. 설계자는 컴퓨터 아키텍처architecuture, 컴퓨터 지원 설계를 뜻하는 캐드(compurter-aided design, CAD), 소프트웨어 전반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야 하고, 생산에도 5나노미터nm(이하 나노로 표기), 3나노 같은 최신 공정이 필요합니다. 그만큼 연구 개발과 생산에 많은 기술 역량과 비용이 들어갑니다.

  메모리 반도체의 대표는 D램(dynamic random-access memory, DRAM)과 낸드 플래시NAND flash입니다. 단어 뜻 그대로 저장 기능을 담당하지요. 단위 면적당 저장 용량을 높이기 위해 갈수록 첨단 제조 공정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같은 구조가 반복되는 형태이기 때문에 로직 칩에 비해서는 설계하기 쉽습니다. 또한 로직 칩과 달리 설계 과정에서 컴퓨터 아키텍처, CAD, 소프트웨어와 관련한 제반 지식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아날로그 반도체에는 이미지 센서, 아날로그-디지털 변환기(analog-to-digital converter, ADC) 등이 있습니다. 빛, 소리, 온도, 압력 등 아날로그 형태로 들어오는 물리적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꿔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제품군은 생산 과정에 최신 공정이 필요하지는 않은 반면, 설계 노하우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설계자가 회로를 어떻게 그리는가에 따라서 칩의 성능과 특성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예술에 가까운 감각이 필요하지요. 아주 자세한 설계도가 없다면 모방하기도 어렵습니다. 로직 칩이나 메모리 칩과 구별되는 또 다른 점은 다품종 소량 생산이라는 점입니다. 메모리 칩과 비슷하게 아날로그 칩 설계에도 컴퓨터 아키텍처, CAD, 소프트웨어 관련 지식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12~13 페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리학자들이 지구 상에서 초기 우주의 상황을 실험하고자 사용하는 대형강입자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LHC). 이 LHC에 대한 수치들이 책에 나와 옮겨 놓는다. 저자는 이 실험장치를 "인류가 건설한 가장 거대하며 가장 복잡한 기계(the largest and most complex machine that humandkind has ever built)"라고 말한다. LHC는 보통 '유럽입자물리연구소'로 번역되는 CERN의 시설이다. 


먼저 크기.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에 걸쳐 있는 터널에 설치된 이 원형 입자가속기는 둘레가 27 km이다. 가속기 주변에 있는 1,600개 이상의 초전도 자석이 양성자들을 가속시킨다. 초전도 자석이 만드는 자기장의 세기는 지구 자기장의 100,000배 이상이다. 초전도 자석은 절대온도 1.9도(1.9 K)에서 작동한다. 이 온도를 유지시키기 위해 거의 100톤의 액체 헬륨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1.9 K는 우주 공간의 온도인 2.7 K보다 더 낮다. 


가속기 내에서 양성자들은 빛의 속력의 99.999999퍼센트까지 가속된다. 이 속력에서 양성자들은 27 km의 가속기 둘레를 1초에 11,000번 돈다. 양성자는 혼자 도는 것이 아니고 1천억 개 이상 무리 지어 돈다. 가속기 둘레의 4곳에는 이렇게 가속된 양성자들이 정면충돌하는 검출기 시설이 있다. 양성자-양성자 정면 충돌이 한 번 일어날 때에는 13,000 기가전자볼트(GeV)의 에너지가 방출된다. 


검출기 중의 하나는 ATLAS라고 불리는데, 이 장치의 길이는 46미터이고 무게는 7,000톤이다. 아주 작은 비율로 양성자-양성자 충돌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검출기 안에서는 1초에 약 7억 번의 비율로 충돌이 일어난다. 


이러한 숫자들은 사실 인간에게는 감이 잘 안 온다. 그냥 엄청나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입자가속기(또는 충돌기)들은 요새 영화에 종종 등장한다. 톰 행크스 주연의 '천사와 악마'에도 나왔고(CERN이 주무대였다),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에도 나온다. 


<Wikipedia에서 가져온 ATLAS 설치 당시 찍은 사진. 아래 쪽에 있는 사람을 보면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