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그 시먼즈 교수의 <World War II at Sea>가 <2차대전 해전사>로 번역되어 나왔다. 원서가 2018년에 나왔는데 2024년에 나왔으니 비교적 빨리 번역됐다. 그만큼 좋고 중요한 책이라는 방증일 터이다. 독자 평을 보면 대개 잘 읽고 있는 듯싶지만, 번역에 대한 지적들이 나온다. 내가 조금 살펴본 후 내린 결론은 번역에 아쉬움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번역은 현역 육군사관학교 교수가 했다고 하는데 특히 해군사와 해군 용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보인다. 번역의 아쉬움에 대해서는 다음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 오역: 완전한 오역이라고 지적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첫 장에 나오는 독일 해군 U보트 함장 귄터 프린의 계급이다. 독일 명칭은 Kapitänleutnant이고, 이전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이는 우리의 대위 계급에 해당한다. 번역서는 중위라고 지속적으로 적고 있다. 영어원서에서 Kapitänleutnant 다음 괄호 안에 lieutenant라고 해 놨음에도 이렇다. 해군의 lieutenant는 대위이다. 미군 계급 명칭은 해군과 육군이 다르며, lieutenant는 육군에서는 보통 중위(first lieutenant), 해군에서는 대위를 지칭한다. 해군 용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보인다는 말이 이런 뜻이다. 


그 다음 대표적 오역은 torpedo bomber에 대한 것으로서, 지금까지는 ‘뇌격기’로 번역돼왔다. 역자는 이를 ‘어뢰기’라는 말로 번역했다. 혹시나 어뢰기라는 말이 있나 싶어 사전을 찾아봤지만 나오지 않는다. 역자가 말을 새롭게 만들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장의 제목 중에는 ‘무역 전쟁’이 있다. ‘War on Trade’를 번역한 말이다. 2차대전 중의 War on Trade는 요즘 많이 언급되는 예컨대 관세 등을 이용한 무역 전쟁이 아니다. 잠수함 등으로 적의 수송선을 파괴하여 해상운송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역 전쟁’은 잘못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역’ 대신 ‘통상’이라는 말이 보통 많이 쓰이며, ‘통상 전쟁’, 또는 ‘통상 파괴전쟁’이 좀 더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것이다. 


- 명백한 오역은 아니지만 이전부터 전쟁사 읽었던 이들에게는 거슬리는 것들: 몇 페이지 넘겨보지 않다가 단박에 눈에 들어온 것은 ‘전투순양함’이다. battle cruiser를 번역한 말인데, 그보다는 ‘순양전함’이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battle cruiser는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장갑과 무장을 조금 희생한 ‘전함’이라고 보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또 일본의 항모 ‘기동부대’를 ‘기동 타격대’라고 번역한 곳들이 나오는데 어색하다. 경찰 기동타격대가 떠오른다. ‘기동 타격부대’라고만 써도 괜찮았을 것 같다. 일본해군 전함 ‘金剛’은 보통 ‘공고’라고 쓰는데 이를 ‘곤고’라고 쓴 것도 어색해 보인다. 모두 나열하지 않겠지만 이런 부분들이 종종 눈에 띈다. 


- 역자의 선택으로 용인가능한 것들: 일본의 ‘해군 대신’을 ‘해군 장관’으로, ‘해군 군령부총장’을 ‘해군 참모총장’으로, ‘해군 병학교’를 ‘해군 사관학교’ 등으로 번역한 것은 용인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서를 번역한 책들은 아마 거의 그대로 일본 용어를 썼을 터이지만, 대응하는 우리말 용어가 있기 때문에 역자의 선택으로 이렇게 번역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위의 일본 용어들을 고유명사라고 보는 이들이나 이전에 전쟁사를 많이 읽은 이들에게는 이런 부분들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질지 모른다. 


영어원문과 번역문의 문장을 꼼꼼히 비교하며 번역의 정확성을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위에서 지적한 용어 부분들을 감안하고 읽으면 그냥 읽을 만하는 느낌이다. 부정확한 용어의 번역에 대한 아쉬움을 이 정도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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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전쟁 일본 근현대사 6
요시다 유타카 지음, 최혜주 옮김 / 어문학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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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1941년 12월에 시작되어 1945년 9월에 항복문서 조인으로 끝난 전쟁을 '아시아·태평양전쟁'이라고 부르기로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본에서 당시 사용했던 '대동아전쟁'은 "너무나 이데올로기 과잉의 호칭"이고, 현재 많이 사용하는 '태평양전쟁'은 "미일 본위의 호칭으로, 중국전선이나 동남아시아 점령지의 중요성을 놓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거대하고 잔인했던 전쟁을 객관적 시선으로, 전황에 따라 일본 내부에서 진행됐던 정치적, 사회적 사실에 대해 담담하게 기술한다. 일본의 전쟁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며 전쟁에서 천황의 역할과 전쟁이 일본 민중과 사회의 변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하고 있다. 비교적 짧지만(257페이지까지가 본문) 여러 역사적 사실들을 다양한 사료를 이용하여 일본 내부의 관점에서 잘 요약 정리하고 있다. 


번역은 일본 용어를 거의 그대로 사용했다. 원서는 2007년에, 번역서는 2012년에 출간됐는데 요새는 이렇게 번역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한자 단어를 일본에서 수입한 우리로서는 한편 당연한 것들도 있지만 이제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와 일본이 사용하는 용어가 다른 것들도 꽤 된다. 대표적인 것이 항공모함을 줄여 부르는 단어이다. 우리는 이를 줄여서 '항모'라고 하지만 일본은 '공모'라고 한다. 역자는 일본 용어 그대로 공모라고 쓰고 있다. 굳이 장점을 찾자면 일본 단어와 일본어를 공부하는 느낌은 있다. 


'일본 근현대사 시리즈'의 제6권으로 출간됐는데, 시간이 나면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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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 me, one of the most striking lessons from precision cosmology is that simple mathematical laws govern our Universe all the way back to its fiery origins. For example, the equations that constitute Einstein's theory of general relativity appear to accurately govern the gravitational force over distances ranging from a millimeter up to a hundred trillion trillion (10^26) meters, and the equations of atomic and nuclear physics appear to have accurately governed our Universe from the first second after our Big Bang until today, 14 billion years after... So precision cosmology highlights the mysterious utility of mathematics for understanding our world. (p. 93)


계속해서 나오는 주제이다. 왜 수학이 우주를 이렇게 잘 설명하는가? 유신론이 지배하던 시기에는 '하느님은 수학자'라는 생각도 있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이 '우주 자체가 수학', 또는 '우주는 수학의 발현'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수학의 유용성 증거가 우주가 수학이라는 증거는 아니다. 우주가 운행하기 위해 수학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다니엘손]. 우주는 계산하지 않는다. 계산이 필요한 것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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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 and Ruins: The Last Imperial War, 1931-1945 (Hardcover)
Richard Overy / Viking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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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과 이후의 11개 장으로 이뤄져 있다. 처음 1~3장은 전쟁의 전개와 양상에 관한 보통의 전쟁사이다. 중요한 사건과 쟁점을 잘 정리해서 2차대전에 대한 꽤 좋은 요약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의 4~11장은 전쟁의 다양한 면모를 하나씩 떼어내서 다룬다. 지루할 때도 있었지만 아마 이 부분이 저자가 가장 하고 싶은 얘기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3월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거의 7달 만에 다 읽었다. 그의 다른 책 <The Bombing War>보다 읽기가 더 힘들었다. 그는 역사학자의 역사학자인 느낌이 있다. 그의 책은 쟁점을 잘 정리하며 기존에 간과됐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데 탁월하지만, 문체가 상당히 건조하고 딱딱해서 대중을 위한 역사서 같지가 않다. 2차대전에 대한 전쟁사를 처음 읽는다면 이 책 말고 앤터니 비버로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이 책으로 오게 될 것이다. 


전쟁사 책을 읽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무엇보다도 책에서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이 그렇게 한다. 인간들은 아직도 곳곳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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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도중에 번역판이 <피와 폐허> 1, 2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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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 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현재 MIT 교수이며 200편 이상의 논문을 썼고 이 중 12편은 500번 이상 인용됐다고 저자 소개에 나온다. 대단한 성취를 이룬 이론물리학자임에는 틀림이 없으며, 꽤 많은 이론물리학자들의 생각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는 이 책에서 '실재reality가 무엇인지'에 대한 그의 지적 여정과 생각을 보여준다. 매우 흥미로운 주제임에 틀림 없다. 책의 도입부인 1장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we'll explore the fascinating relations between computation, mathematics, physics and mind, and explore a crazy-sounding belief of mine that our physical world not only is described by mathematics, but that it is mathematics, making us self-aware parts of a giant mathematical object. We'll see that this leads to a new and ultimate collection of parallel universes so vast and exotic that all the above-mentioned bizarreness pales in comparison, forcing us to relinquish many of our most deeply ingrained notions of reality. (pp. 6-7)


그는 이 세상이 수학에 의해 기술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이 수학'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귀결은 (다양한 종류의) 평행우주이다. 그의 물리학에 대해 내가 뭐라고 할 위치는 아니지만, 수학만 바라보며 산 그의 삶이 이러한 세계관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세상은 수학'과 같은 류의 주장에 대해 울프 다니엘손은 <세계 그 자체The World Itself>에서 의미 있는 반론을 편 바 있다. 이 두 권의 책을 비교하며 읽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난 '세상이 수학'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한번 읽어보려고 한다. 


우주가 수학이라는 생각은 결국 '이 모든 변화가 환상illusion'이라는 결론을 낳는다(p. 13). 이런 주장에 동의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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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4-10-03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학이나 과학으로 우주나 자연 현상의 실체를 알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는 관점에 동의해요. 하지만 우주가 수학이라고 단정해버리면 여전히 풀지 못한 미스터리한 자연 현상과 과학적 난제(ex: 암흑 물질의 정체)가 왜 있을까요? ^^;;

blueyonder 2024-10-03 19:31   좋아요 0 | URL
수학을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저자의 주장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

공쟝쟝 2024-10-04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는 라깡의 실재 (ㅋㅋㅋ) 저 실재랑 상관있으려나요? ㅋㅋㅋㅋ, 이 페이처 보니 세계 그 잡채 읽어야하는데 라고 ㅋㅋㅋ 뜨끔 ㅋㅋ
우주가 수학이라는 건 꽤나 설득력있는 판타지인거 같습니다. 잘 만들어진 판타지 소설처럼요 :)

blueyonder 2024-10-04 12:39   좋아요 1 | URL
제가 라깡의 실재가 뭔지 모르지만, 단어가 똑같으니 아마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
판타지란 말 좋네요. 저도 판타지라고 생각합니다.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지요. ^^
‘세계 그 잡채‘ 읽어보시기를 강력 추천합니다~ 기존의 물리학적 통념을 깨는 내용이 많아서 저는 아주 좋았습니다.

공쟝쟝 2024-10-05 10:50   좋아요 1 | URL
기존의 물리학을 몰라서 통념먼저 깨고 들어가도 될까요? ㅋㅋㅋ
마침 읽고 있는 책 2권 66페이지에 이런 일화가 나오네요 ㅋㅋ
-엘렌느는 디너 파티를 주최하는 임무를 맡았다. 실비아가 자조 부인과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레온티예프와 라캉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자조는 가가린의 우주 비행과
‘우주 비행사들의 정신생리학에 관한 소련의 연구에 대해 얘기를 꺼냈 다. 그러자 라캉은 즉시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우주 비행사는 없습니다.˝ 그러자 레온티예프는 라캉이 인간의 첫 우주 비행의 성공을 부 정하면서 소련을 비방하려는 의도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확신하고는 분개하며 증거들을 내놓았다. 라캉은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이렇게 반 박했다. ˝다름아니라 우주가 없기 때문에 우주 비행사는 없습니다. 우 주는 지적 관점입니다.˝ 알렉상드르 코이레의 훌륭한 제자이자 친구인 라캉은 갈릴레오의 물리학적 관점에서 우주는 조화로운 체계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했을 뿐이었다. 확실히 우주라는 말은 분명 코페르 니쿠스 혁명 이전의 용어에 속했다. 자조는 오해를 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레온티예프는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 ˝당신의 친구 분 은 항상 이런 식으로 말합니까?˝ 라캉은 결코 그의 초대를 받지 못했다.

… 라캉 인성 ㅋ 좀 논란이긴 하지만, 우주라는 판타지는ㅋㅋㅋㅋ 이런 관점인 것 같죠? 그 판타지를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면 훈련이 필요하고요 ㅠㅠㅋㅋㅋ

blueyonder 2024-10-06 12:02   좋아요 1 | URL
알려주신 일화는 소련에서 우주비행사를 뜻하는 cosmonaut라는 말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조화로운 우주를 뜻하는 cosmos가 근대적 세계관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 cosmonaut도 없다는 것이 라캉의 주장(농담?)이고요. 라캉이라는 인물의 성격을 엿볼 수 있네요. ㅎㅎ

현대 과학이 얘기하는 우주도 충분히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조화‘라는 전근대적 개념이 들어가지 않아도요. 우리가 우주에 존재할 수 있는 확률은 극히 작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이렇게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지요. ^^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앗, 여기에도 cosmos란 단어가 쓰였네요. ㅋㅋ ‘조화‘가 전근대적이니 뭐니 해도 우리가 우주에 대해 느끼는 경이로움을 ‘조화‘라는 단어로 표현해도 된다는 얘기겠지요. ㅎㅎ

<코스모스> 책은 순서대로 읽지 마시고 흥미가 가는 아무 챕터나 펴셔 읽으시기 바랍니다. ^^

공쟝쟝 2024-10-07 14:10   좋아요 1 | URL
깨알 팁까지 감사합니다 ㅋㅋㅋ 코스모스를 사야겠군요. 일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