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를 연구하는 영국의 이론물리학자인 데이비드 도이치David Deutsch의 책이다. ("The Beginning of Infinity무한의 시작"이라는 책 제목은 뭔가 강한 인공지능의 도래를 알리는 '특이점singularity' 같은 느낌을 준다[*].) 저자는 지식--그는 '좋은 설명good explanation'이라는 표현을 쓴다--의 진보가 끝이 없다는 의미로 '무한'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서론에서 말한다. 이러한 지식--좋은 설명--에는 분야별로 시작--원인, 사건, 조건--이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시작들이 사실 연관되어 있으며 '실재'의 속성의 여러 단면일 뿐이라는 주장으로 책을 시작한다. 


우선 그가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지식을 어떻게 얻는지'이다(인식론). 중요한 구절을 다음에 인용해 놓는다(인용하면서 순서를 조금 바꿨다). 


Discovering a new explanation is inherently an act of creativity. (p. 7)

Its [experience's] main use is to choose between theories that have already been guessed. That is what 'learning from experience' is. (p. 4)


도이치는 경험으로부터 이론--설명--을 유추한다는 경험주의, 귀납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론은 창조성의 발현이며, 경험은 여러 이론으로부터 맞는 것을 선택하게 할 따름이라는 주장이다. 이 책이 과연 어떤 결론으로 나아갈지 궁금하다. 


---

[*] 국역판 제목: '진리는 바뀔 수도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하이닉스가 26년 1분기 매출 50조 원 돌파에 영업이익 37.6조 원, 영업이익률 72%의 창사 이래 최고기록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링크). 제조업에서 영업이익률 72%는 들어본 적이 없는 엄청난 비율이다. AI 때문에 그렇다는데, 새로운 산업분야가 생겨나는 것은 좋지만 엄청난 투자는 필연적으로 거품을 불러오는 법이다. 호황이라고 너무 확장하는 것은 곡괭이를 파는 입장에서도 좋지 않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에서 돈을 확실히 번 사람은 곡괭이 장사라기에 하는 말이다. 


그나저나 반도체로 이렇게 돈을 벌 수 있을지 초기 연구자들은 알았을까. 지금의 골드러시와 별 상관이 없는 나는 위의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6-04-23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26-04-23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업이익률 72%, 돈을 갈퀴로 긁는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군요. ㅎㅎ

blueyonder 2026-04-23 20:14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 엔지니어들도 성과급을 많이 받는다니 좋긴 합니다. 바라건대 협력 업체에게도 과실이 좀 나누어지면 좋겠네요.
 
실험실의 진화
홍성욱 지음, 박한나 그림 / 김영사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금술사의 부엌에서 시작된 화학 실험실이 어떻게 변화하며 다른 학문 분야, 그리고 대학과 기업 등으로 퍼져 나가는지에 대해 역사와 의의를 살펴본다. 실험실은 마치 동물을 가축화 하듯 자연을 인간의 통제 하에 두고 단순화하여 연구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나의 과학적 주장이 어떻게 과학자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지는지, 실험실을 대상으로 한 인류학적 연구 등 흥미로운 내용들을 읽을 수 있었다.


책의 제본과 삽화에 대해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특이한 제본(사철식?)이라서 책이 쫙 펼쳐져 일러스트가 잘 보이도록 했다. 그림이 엄청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문 내용에 맞도록 신경써서 그린 것이 나름 인상 깊다. 그림책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책 속 한 구절:

  실험실은 과학적 가설과 주장이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실험실 밖으로 나간 가설과 주장은 업그레이드되어 과학적 사실이 되거나 다운그레이드되어 소멸한다. 우리는 사실이 된 과학을 교과서나 고전적인 논문들을 통해 접할 뿐이다. (84 페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asters of the Air : How The Bomber Boys Broke Down the Nazi War Machine (Paperback)
Donald L. Miller / Ebury Publishing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차대전 중 영국을 기지로 하여 독일군 점령지역과 독일 본토를 폭격했던 미국 제8공군의 역사를 살펴본다. 다양한 증언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창설 후 1943년까지만 해도 엄청난 희생을 치렀던 제8공군은 1944년에 들어서며 독일 공군을 분쇄하기 시작하여 제공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후로는 독일 상공을 휘저으며 그야말로 독일의 여러 도시들을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미국 폭격기들은 주간 폭격을 하며 볼베어링 공장, 항공기 공장부터 시작해서 석유 시설, 철도 조차장 등 전략목표들을 지속적으로 폭격했다. 부정확한 폭격으로 인해 주변의 민간인 시설도 당연히 피해를 입고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들을 낳았다. 전쟁 막판에는, 그냥 도시의 중심지에 폭탄을 퍼붓던 영국공군과 합세해 엄청난 민간인 희생자가 날 것을 알면서도 지역폭격을 수행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사례가 1945년에 수행된 드레스덴 폭격이다. 


전쟁 전 폭격기 지상주의자들은 폭격만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전쟁은 지상군이 독일을 점령함으로써 끝이 났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유도미사일의 정확성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폭격만으로 끝나는 전쟁은 없다. 


읽으면서 계속 든 생각은 이렇다. '전쟁은 정말 미친 짓이다.' 왜 우리 인간은 교훈을 얻지 못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 육군항공대는 종전 후 독립하여 공군이 될 명분을 쌓을 목적으로, 전쟁 중 전략폭격의 효과를 독립적으로 조사하는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여기에는 여러 명망 있는 민간인들이 참여해서 전략폭격의 효과에 대해, 전쟁 중 독일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던 인사들과의 인터뷰와 남아 있는 자료들을 종합하여 여러 분야를 살펴보는 보고서를 냈다. 이것이 ‘미국전략폭격조사United States Strategic Bombing Survey’이다. 


여기에 참여했던 중요 인물의 하나가 하버드대학 교수였던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이다. 그는 전략폭격의 효과에 비판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의 전쟁—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서도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도널드 밀러는 이 문제가 잘못 알려진 바가 있다고 말하며 이를 바로잡고자 한다. 배경을 설명하는 사설이 길었는데, 국역판의 번역에 대한 마지막 글을 작성하고 싶어서이다. 폭격조사 보고서와 관련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문제가 되는 원문과 번역문 구절을 나열한다. 연속된 문단이지만 나눠서 살펴보며, 밑줄은 오역 의심 부분에 내가 추가한 것이다. 


  What significance does this new interpretation of the German war economy have for understanding the bomber war? If mobilization already was in full swing in 1942, then Spaatz and Tedder were at least partially right. Although Germany's entire economic fabric was not stretched tight by 1944, at least two vital areas were: oil and transportation. This made them perfect target systems when they were finally hit, Germany having no reserves of either gasoline or rolling stock to replace what was lost to the bombers. (p. 467) [rolling stock: 철도 차량]


  독일 전시경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폭격 전쟁을 이해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만약 독일이 1942년에 총동원 체제하에 들어갔다면 스파츠와 테더의 주장은 부분적으로 옳았던 셈이다. 그러나 독일 경제 중 최소한 두 가지 핵심 분야, 즉 석유와 교통은 1944년까지 총동원 상태에 이르지 못했다. 이 때문에 독일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잃은 석유와 철도를 대체할 수 없게 되었다. (2권 299 페이지)


밑줄 친 “Although Germany's entire economic fabric was not stretched tight by 1944, at least two vital areas were: oil and transportation.”를 직역하면 이렇다: ‘독일의 전체 경제 (체제)가 1944년에 팽팽히 잡아당겨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즉, 총동원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두 핵심 분야는 그랬다(즉, 총동원됐다): 석유와 교통이었다.’ 역자는 이를 “독일 경제 중 최소한 두 가지 핵심 분야, 즉 석유와 교통은 1944년까지 총동원 상태에 이르지 못했다.”라고 반대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때문에 독일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잃은 석유와 철도를 대체할 수 없게 되었다.”라고 한다. 총동원되지 않았기 때문에 폭격으로 잃은 석유와 철도(교통)를 대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문은 그렇지 않다. 폭격으로 잃은 석유와 철도를 대체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이들이 이미 총동원되고 있었으므로 비축했던 여분reserve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원문에 밑줄 그은 “having no reserves of either gasoline or rolling stock”의 의미인데, 역자는 이를 누락하며 잘못 번역했다. 


  In Galbraith's report for the Bombing Survey, he writes that prior to the summer of 1944, Allied bombing had "no appreciable effect either on German munitions production or on the national output in general." While this seems to support the idea that strategic bombing failed, Galbraith goes on to argue in his report that the oil and transportation campaigns eventually conjoined to deliver unrecoverable damage to the economy, dramatically reducing steel, oil, and aircraft production. He even concedes that bombing conducted prior to the summer of 1944 had placed a ceiling on Germany's production of combat aircraft, that it was "possible that production would have been 15-20% higher in the absence of bombing." (p. 467)


  갤브레이스는 1944년 여름에 작성한 폭격 조사 보고서에 연합군의 폭격이 독일의 탄약 생산과 경제 생산 전반에 눈에 띄는 타격을 주지 못했다고 기술했다. 이것은 전략폭격이 실패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갤브레이스는 보고서에서 석유 작전과 교통 작전은 독일 경제에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주었으며, 철, 석유, 항공기 생산량 저하에 크게 기여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그는 1944년 여름에 실시한 연합군의 폭격이 독일의 전투기 생산량을 15~20퍼센트 감소시켰다고 주장했다. (2권 299 페이지)


이번에는 번역문을 먼저 보자. “갤브레이스는 1944년 여름에 작성한 폭격 조사 보고서에 연합군의 폭격이 독일의 탄약 생산과 경제 생산 전반에 눈에 띄는 타격을 주지 못했다고 기술했다.” 이 문장이 이상한 것은 위원회가 1945년 초반부터 활동한 것으로 앞에서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원문은 이렇다: “In Galbraith's report for the Bombing Survey, he writes that prior to the summer of 1944, Allied bombing had "no appreciable effect either on German munitions production or on the national output in general."” 이를 보면 갤브레이스의 보고서에 적혀 있는 내용은 이렇다: ‘1944년 여름 이전에는 연합군의 폭격이 독일의 탄약 생산이나 전반적 국가생산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원문은 연합군 폭격의 1944년 여름 이전의 효과를 언급하는 것이다. 보고서의 작성이 1944년 여름에 이루어졌다는 것이 아니다. 원문은, 하지만 결국, 즉 1944년 여름이 지나, 전력폭격이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eventually”가 그런 의미이다. 하지만 번역문은 그냥 “그러나 갤브레이스는 보고서에서 석유 작전과 교통 작전은 독일 경제에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주었으며”라고 번역하며 갤브레이스가 앞과 뒤에서 서로 모순되게 기술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후에도 “1944년 여름에 실시한 연합군의 폭격”이 언급되는데 이를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1944년 여름 이전에 실시한 연합군의 폭격’이라고 해야 한다. 


이 책은 전쟁사 전문번역가가 번역해서 군사용어 등이 흠잡을 데가 거의 없으며,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잘 읽히는 편이다. 하지만 위에서와 같이 잘못되거나 부정확한 번역이 가끔 보인다는 점이 아쉽다. (잘된 번역이 많음에도 이렇게 지적하는 건 ‘주마가편’이라고 생각해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하나 있다. 원문의 문단이나 섹션을 누락하고 번역한 부분이 종종 눈에 띈다는 점이다. 아마 중요하지 않은 에피소드라고 판단했거나 분량을 줄이려고 했던 듯싶다. 역자의 판단인지 편집자의 판단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축약 번역본이 아니라면 저자의 허락 없이 이렇게 누락하며 번역하는 건 저자나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이제 <Masters of the Air> 독서도 끝을 향해 달려간다. 읽는 중에 미국-이란 전쟁 소식을 들으며 비극은 반복된다는 생각을 했다. 유도미사일 등으로 폭격이 훨씬 정확해진 지금도 폭격은 민간인 희생자를 낳을 수밖에 없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만약 목적마저 잘못됐다면, 이 희생은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가. 2차대전이나 지금이나 타당한 의문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6-04-21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