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형벌‘은 로마인이 선호했던 처형 수단이었을 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었다. 로마의 관습에서 십자가 형벌은 치욕을 의미했다. 십자가 형벌은 죄인을 철저하게 버리는 최후 수단이었고 특별히 제국의 권력과 권한을 보여 주는 악랄한 수단이었다.

예수의 고난이 구약 성경 특히 이사야 53장을 해석하는 길을 연다면 그 후에 이어지는 예수의 이야기는 교회를 해석하는 길도 열어 주는 것이다.

고난을 겪는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예수의 이야기에 참여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 자체가 구약 성경의 이야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세가지-성경, 예수, 교회의 제자도-는 함께 엮여서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는 이야기가 된다.

예수는 예언자의 숙명과 그리스도의 사명을 연결시키면서, 영광을 받기 전에 고난을 받아야만 하는 종말론적 왕이 올 것을 구약 성경이 예고했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관점에서 십자가의 치욕은 예수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명백한 반증이었으나 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런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예수는 굴욕 당하시고 영광 받으심으로 구원의 성격을 예증하셨고, ‘굴욕적인 상황‘에 처한 굶주린 자, 타락한 자, 소외된 자들에게 구원의 길을 여셨다.

그러므로 예수의 죽음은 굴욕과 자기 영광이라는 두 가지 삶의 양식을 두고 신성과 인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싸움에서 중앙의 자리를 차지했다.

메시아는 모세가 그랬듯이 자신이 제국의 폭정과 억압에서 민족을 해방할 참된 해방자임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입증해야 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십자가의 겉모습은 ‘복음‘이 아니라 부조리라고 말한다. 십자가의 메시지는 인습과 고정관념, 믿음, 행동을 뒤엎기 때문에 거대한 규모의 세계관 변화를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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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신이여, 나를 구하소서"하고 소리치는 이름 없는 희생자의 피맺힌 절규와 아무 상관이 없다면, 우리는 감히 이렇게 선포할 수도 없고 선포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형언할 수 없는 절망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에게 선포할 수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는 선포되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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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람 2020-03-13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둘러보다가 우연히 보게되었는데, 평신도가 읽어도 괜찮을 책일지 궁금하네요

모찌모찌 2020-03-14 06:48   좋아요 0 | URL
네~ 고난주간 설교문을 모아둔것이라서 평신도가 읽어도 좋을듯합니다^^

이 책도 좋고, 쉽고 얇은 책으로는 새라 코클리의 ‘십자가’(비아)도 무척 좋습니다^^
 

빨리 해야 할 것이 있고, 더디 해야 할 것이 있다. 이 둘을 바꿔놓으면 안 된다. 노함은 ‘더러움과 넘치는 악‘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많다. 그렇기에 분노가 속에 차오를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모시는 연습을 해야 한다. 살리는 말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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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집어삼킨 경험이 내면 가장 깊숙한 곳의 감각과 물리적 실재와의 관계, 즉 한 인간의 핵심이 되는 그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밝혀지기 시작했다.

트라우마는 그저 과거 어느 때 일어나 끝난 사건이 아니라, 그 경험이 마음과 뇌, 몸에 자국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리고 이 자국은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현재를 살고 살아남기 위해 애쓰면서 계속 발생하는 결과물이다.

트라우마는 마음과 뇌가 인지한 정보를 다루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편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 생각하는 것을 바꾸어 놓을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도 변화시킨다.

트라우마 희생자들에게 예전에 겪은 일을 말로 표현하도록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고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보통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신체가 자동으로 과도한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언제든 공격이나 폭력을 당할 태세를 갖추며 이에 따라 나타나는 신체와 호르몬 반응을, 당시 이야기를 말하는 것만으로는 바꿀 수없다.

실질적인 변화를 유도하려면, 위험 요소가 지나갔다는 사실을 신체가 깨닫고 주어진 현실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당사자를 회복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이 아닌 환자로 만들면 고통받는 사람들을 사회 공동체와 분리하고 내적으로 자기 자신까지 낯설게 느끼도록 한다.

100년 넘는 세월 동안 심리학과 심리 치료에 관한 모든 교과서가 고통스러운 감정을 이야기하여 그 감정을 해소시키는 방법에 대해 조언해 왔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트라우마라는 경험 자체가 말로 하는 표현 자체를 가로막는다.

통찰력과 이해 수준을 아무리 발전시키더라도, 현실감을 잃은 상태에서는 이성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뇌가 정서적 뇌와 대화를 나눌 수 없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을 겪은 사람들이 그 경험의 핵심을 전달하는 것을 얼마나 어려워하는지 보고 나는 지금도 놀랄 때가 있다.

이들은 내면이 경험한 일을 인지하고, 느끼고,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가해진 일, 즉 부당하게 괴롭힘을 당한 이야기나 복수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하다고 느낀다.

우리는 뇌 스캔을 통해 이들의 두려움이 어느 정도로 지속되고 있는지 확인했고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다양한 경험으로 그 두려움이 촉발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그 경험을 계속해서 흘러가는 현재의 삶과 결합시키지 않았다. ‘거기‘에 계속 머무른 채, 어떻게 해야 ‘여기‘에 머무를 수 있는지, 현재를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트라우마 치료에서는 과거의 사건에 대처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경험의 질을 높이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의 머릿속에 트라우마 기억이 우세한 이유 중 하나는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있는 곳에 온전히 머무르지 못하면 자연스레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 그 장소가 공포와 고통으로 가득한 곳이라도 마찬가지다.

트라우마 스트레스 치료에서는 환자가 과거에 대해 느끼는 감각을 없애는 데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트라우마 상황에 다시 노출되면 감정의 분출과 과거 재현 증상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에서 시도되는 방법이다.

나는 이런 시도가 트라우마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일어나는 일을 오인한 데서 비롯된 치료법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환자들이 현재를 온전하게,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감당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망가진 뇌 구조가 원상태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감각을 없애면 반응성을 줄일 수 있겠지만, 가만히 길을 걷거나 요리를 하고 아이들과 노는 거소가 같은 평범한 일상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삶은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린다.

몸에는 비극적인 경험의 흔적이 남는다. 트라우마의 기억이 내장 감각으로, 가슴을 찢고 속을 뒤틀리게 하는 감정으로, 자가 면역 문제와 골격계·근육계 건강 이상으로 암호화되어 남는다.

마음, 뇌, 내장기관의 커뮤니케이션이 감정 조절에 성공하는 지름길이라면, 환자를 치료하는 방식에도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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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마음에 쏙 드는 설교집을 만나다.

2011년에 『죽음의 취소』라는 제목으로 ‘대서‘에서 출간되었는데,
‘비아토르‘에서 새로운 옷을 입고 나왔다.
원제(The Undoing Death)에는 이전판이 더 가깝지만,
개정판의 제목이 더 매력적인 듯하다.
옷도 더 이쁘고 ㅋ

저자의 정보는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
책을 보고있으니 이 저자의 모든 책을 읽고 싶다.
특히 십자가 처형(The Crucifixion)은 번역되진 않았지만,
로고스바이블에 있어서 만지작거리고 있다. ^^
물론 알라딘에서도 바로 원서로 구매가능하다.

믿을 수 있는 새로운 저자를 만나는 기쁨.
아는 사람만 아는 기쁨. ㅋ

˝부활절은 역사상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날입니다. 기적 중의 기적은 그날이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졌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우리에게 그럴 가치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조건 없는 사랑, 무한히 큰 그 사랑 때문에 하나님이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흘리는 눈물은 대부분 감상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예수께서 흘리신 눈물은 하나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뜨거운 자비와 긍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메시아는 인류의 죄를 위해 우셨습니다(31).˝

#예수가선택한길
#플레밍_러틀리지
#비아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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