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로서 우리는 이사야가 예수를 의식하며 예언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말은 우리가 신자로서 하나님께서 이사야의 예언을 그런 방식으로 사용하셨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의 예언을 그의 동시대인을 위한 당신의 음성으로 사용하시는 동시에(이것이 이사야가 의식한 뜻이었다).

마태가 깨달은 바를 통해 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다른 의미를 전달하신 것일 수도 있다.

이사야서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양자에게 거룩한 성경이기에 중요한 논점이 한 가지 더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성경 해석이 올바르다면 유대교의 해석은 오류여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이 이사야 7장의 예수에 대한 예언을 못 알아본다면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이런 태도는 기독교 신학에 맞지 않는다.

하나님은 같은 본문을 통해 다양한 신앙 공동체에 각기 다른 메시지를 전하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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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나님 나라"라는 정확한 문구는 성경과 유대교 문헌에 자주 나오지 않지만, 하나님을 왕으로 여기는 사상은 널리 퍼져 있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왕(히브리어: melek)이라고 불렀고, 그분이 다스리신다고(히브리어: malak) 표현했으며, 때로는 하나님 나라를 지상의 이스라엘과 동일시하기도 했다(대상 28:5).

하나님의 통치라는 개념은 지역에 매이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을 넘어 온 세상에 미치는 하나님의 강력한 행위 전반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예수는 토라에 철저히 순종하라고 요구한다. 여기서 그는 윤리적인 명령과 제의적인 명령을 구별하거나, 중요한 것은 율법의 정신이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사실 그는 하나님 나라에 사는 자라면 누구나 율법 전체 지극히 작은 조항까지라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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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지람 한 마디 없이 예수님은 제자들을 식구로 맞아들이신다.

옳고 그름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비판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마음이 무너진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를 일으켜 세울 수 있도록 해주는 타인의 지지와 사랑이다.

받아들여짐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자기 안의 상처를 보석으로 가꿀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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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모찌모찌 > 현대역사적예수 연구에 대한 훌륭한 입문서!

벌써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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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그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혈통으로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유대인이었으며 자기 민족의 성스러운 전통에 깊이 경도된 사람이었다.

예수가 동시대의 다른 유대인들과 빚었던 갈등은 "예수 대 유대교"의 구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갈등은 제2성전기 유대교 내에서 한 유대인이 동시대인들과 때로 의견이 일치하고 때로 불일치하는 상호작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런 갈등이 예수를 동시대 유대인들과 구분하는 차이점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를 유대인답게 하는 양자 간의 유사성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제2성전기 유대교는 그 신조와 행습에서 매우 다양한 형태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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