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공부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사이에 특정한 관련성이 있기 때문이다. - P111

어떤 것은 현재 유용하게 쓸 내용이어서 다시 찾아볼 수 있고, 어떤 것은 현재의 노고를 덜어 줄 수 있어서 찾아볼 수도 있다. - P112

진심으로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은 뭔가를 가르쳐 줄 수만 있다면 그 누구에게서든 그 무엇이든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 P112

진심으로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은 뭔가를 가르쳐 줄 수만 있다면 그 누구에게서든 그 무엇이든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 P113

나는 그가 그 지혜를 누구에게서 받았는지 기억하고, 일단 지혜를 받았으면 자신이 소유하게 된 그 지혜를 마치 빌린 물건인 것처럼 오직 신의 것으로 여기기를 바란다. - P115

만약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받고 있음을 알았다면, 자기만족이라는 위험에 빠지지도 말아야 하고,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으려 눈을 내리깔지도 말아야 하며, 오직 자신의 훌륭함만으로 업적을 이룬 듯 자화자찬해서도 안 된다. - P115

깊은 학식에는 타고난 역량, 판단력, 기억, 적용이라는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 P116

이 중 앞의 세 가지가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해 보라. 신이 아니라면 과연 배움이 어디서 온단 말인가? - P116

그러니 학식 있는 사람을 칭송한다면 마지막 요소인 적용에 대해서만 해야 할 것이다. - P116

이 요소는 넷 중 가장 낮고 가장 미미한 것이며, 그조차 무겁거나 둔하지 않고 건강한 신체를 지녔다는 사실에서 대단히 큰 덕을 보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신체 상태 역시 신의 선물이 아니던가? - P116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자신을 향한 찬사가 들려오더라도 스스로 거룩하고 신성한 지혜를 성찰하는 일로 나아가도록 방향을 잡을 것이다. - P116

사람들이 지혜의 작은 한 방울만 보고도 그렇게 크게 감동한다면, 모든 지혜의 물결이 흘러나오는 영원한 샘 전체를 볼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아야 한다. - P117

그러니 우리는 공부를 하려고 할 때마다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많은 성인이 그렇게 했듯이 기도부터 하고 공부를 시작하자. - P118

우리의 공부가 건전한 것이기를, 누구에게도 어떤 해도 입히지 않는 것이기를, 그리고 우리가 자신의 공동체 전체의 건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 P118

우리가 살면서 하는 행위들 각각의 목적을 정해 두어야 한다면, 공부에 관해서는 특히 더 목적을 확실히 해 두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노고를 어느 방향으로 향하게 할지 정할 수 있다. - P119

지식과 배움의 영광을 훼손하고 가치를 떨어뜨리는 모든 것 가운데, 누구에게나 그러지만 특히 군주에게 끊임없이 아첨하고, 오래 알았던 사람보다 새로 알게 된 사람에게 더욱 들러붙는 피상적 지식인의 경박만 한 것이 없다. - P122

군주를 칭송하는 것이 정당한 상황에서도 찬사는 다소 인색하게 해야 하고, 마치 그들의 삶이 이미 끝난 것처럼 찬가를 불러 주기보다는 행동에 자극을 주는 훈계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 P124

만약 그렇게 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경우라면 악덕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비판해야 하는데 단, 적개심이나 분노를 초래하지는 않을 정도로만 해야 한다. - P124

만약 그대의 말이 증오만 불러일으키고 있다면 그런 소용없는 일은 삼가는 편이 낫다. - P124

신께서 위대한 선물들을 나누어 주셨으니 그 선물을 받은 이들은 누구나 공동체 전체를 위해 쓰임이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 P130

신은 우리가 조건 없이 받은 것을 조건 없이 나눠 주기를 바란다. - P130

공부와 독서는 사유의 기쁨을 안겨 주고, 유창한 언변의 도구와 일을 더 잘 처리하게 도와주는 밑바탕을 마련해 준다. - P137

공부와 독서가 기쁨을 준다는 것은 무엇보다 홀로 물러나 있는 한가로운 시간에 가장 잘 느낄 수 있으며, 언변의 도구로 쓰이는 때는 친밀한 것이든 진지한 것이든 대화를 나눌 때이며, 일에 도움이 되는 것은 상황에 대한 더욱 정확한 판단과 일처리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 - P137

학문은 타고난 재능을 완벽하게 다듬어 주고, 경험은 학문을 완벽하게 다듬어 준다. - P138

더 깊이 배우고 신중하게 숙고하며 자신의 판단력을 사용하기 위해 책을 읽어라. - P138

가볍게 맛만 보듯 읽기에 적합한 책들이 있고 꿀꺽 삼키듯이 재빨리 훑어보아야 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아주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계속 곱씹고 낱낱이 소화하는 것이 적절한 책도 있다. - P139

다시 말해서 어떤 책들은 일부만 살펴보면 되고 어떤 책들은 끝까지 읽기는 하되 그 책을 읽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해서는 안 된다. - P139

반면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어떤 책들은 특별히 주의를 집중해 열심히 읽어야 한다. - P139

독서는 풍부한 지식과 훌륭한 가르침으로 보상하고, 토론과 대화는 언제나 쉽게 나서서 말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며, 글을 쓰는 일과 읽은 것을 요약해서 기록하는 일은 잘 검토된 내용을 정신 깊숙이 새겨 확고히 자리 잡게 해 준다. - P139

그러므로 글쓰기를 싫어해 게을리하는 사람이라면 기억력이 대단히 좋아야 할 것이고, 토론을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매우 총명하고 재치 있어야 할 것이며, 독서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무언가 속임수를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 P139

사람은 자신이 거의 직관적으로 진실이라고 파악한 것들이 다른 사람에 의해 완강히 부인될 수도 있다고는 잘 생각하지 못한다. - P154

너무나 명백한 명제조차 그 명제의 새로움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어쩌다 갖게 된 편견으로 그 명제에 강경한 반대 의견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려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 P154

하나의 입장을 다양한 형식으로 바꿔 볼 수 있는 힘은 오랜 습관과 빈번한 실험에서만 나온다. - P155

서로 다른 여러 관점에서 그 입장을 제시하고, 그것을 이미 알려지고 받아들여진 진리와 연결하며, 잘 이해될 수 있는 주장들로 그 입장을 보강하고, 적절한 비유를 들어 설명해야 한다. - P155

그러니 홀로 지식을 쌓은 사람이라면 사람들과 어울림으로써 그 지식을 적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P155

부정확과 혼란이 박식함과 재능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P156

생각을 글로써 확실히 기록해 두고 그것을 자주 검증하고 검토하는 것이 자기 정신의 궤변을 감지해 내고 틀린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 P156

대화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기의 생각을 퍼뜨리고, 글을 쓸 때는 생각을 모은다. - P156

글쓰기의 탁월함은 체계성이며, 대화의 장점은 자유로움이다. - P156

나는 타락한 인간 본성에 대한 형벌로 미흡한 언어, 의견에 사로잡힌 정신, 격정에 휘둘리는 영혼을 꼽았습니다. - P169

그러니 그에 대한 구제책은 유창함과 지식과 덕이겠지요. 학문과 지혜는 이 세 가지 점을 감싸는 하나의 구球와도 같습니다. - P169

모든 지혜는 가장 탁월한 이 세 가지, 즉 품격 있게 말하는 것, 확실히 아는 것, 바르게 행동하는 것 안에 들어 있습니다. - P169

자신의 착오에 대해 부끄러워할 일도, 악한 행동에 대해 뉘우칠 일도,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말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할 일도 없는 사람은 진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 P170

지혜의 의무는 바로 이 세 가지입니다. 유창한 말로써 어리석은 자의 성급함을 다스리는 것, 신중함으로써 그들을 오류로부터 이끌어 내는 것, 덕으로써 그들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이지요. - P170

배움의 진정한 기능은 정신을 진리에 익숙하게 만들어 그 진리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 P184

사람은 진리를 원하므로 진리에 익숙해지면 선을 더 쉽게 행할 수 있고, 선을 행하는 습관이 들면 다른 무엇보다 삶을 살아가면서 모든 좋은 일을, 다시 말해 덕과 정신의 선행을 선택하게 되며, 이를 통해 정신의 신성함을 함양하게 되고 바로 그러한 정신을 통해 신께 닿게 되는 것입니다. - P184

추상적 지식과 현명함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과학에서 빼어난 지성이란 다수의 자연현상에서 하나의 원인을 추론해 낼 수 있는 것인 반면, 현명함의 영역에서 탁월함이란 하나의 결과에 대해 그것을 끌어냈을만한 원인을 최대한 많이 찾아낼 수 있고, 또한 그중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 P190

지혜로운 사람은 인간 행위와 사건들의 모든 모호함과 불확실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진리에 시선을 굳건히 고정하고 있으며, 곧이곧대로 나아갈 수 없을 때는 언제나 우회로로 갈 수 있다. - P191

또한 그 과정에서 행위에 대한 결정들을 내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결정들은 자연히 허락하는 한 가장 유용한 결정이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 P192

영혼의 격동, 인간의 내면에서 욕망이라는 단 하나의 근원에서 나오는 그 병폐를 좋은 쪽으로 활용할 능력을 지닌 것이 딱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지혜로운 이들의 영혼에서 열정을 다스려 그 열정을 덕으로 바꾸는 역할을 하는 철학이며, 다른 하나는 평범한 이들에게 그러한 열정의 불을 붙여 그들이 덕의 의무를 행하도록 만드는 유창함이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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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것과 알고자 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 P18

모르는 것은 분명 빈약한 능력에서 비롯하지만, 앎에 대한 경멸은 사악한 의지에서 비롯한다. - P18

누구에게나 지식을 키워 가는 수단으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 이는 곧 읽기와 명상이다. - P19

물론 교육에서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읽기이며,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그 규칙들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 역시 읽기에 관해서이다. - P19

읽기를 위해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모든 사람은 자신이 읽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둘째, 어떤 순서로 읽어야 하는지, 다시 말해 무엇을 처음에 읽고 무엇을 나중에 읽을지 알아야 하며, 셋째, 어떤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 P19

추구해야 할 모든 것 가운데 첫째는 변하지 않는 완벽한 선의 현상을 담고 있는 지혜이다. - P20

지혜는 인간에게 빛을 비추어 그들이 자신을 인식하게 해 준다. - P20

오늘날의 학생은 무지해서든 의지가 없어서든, 적합한 공부 방법을 지속적으로 적용하지 못한다. - P22

공부하는 사람은 많으나 지혜로운 사람이 드문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학생들이 유용한 공부에 별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도 피해야 할 일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쓸모없는 공부에 노력을 낭비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P22

모든 학문에서 그대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그 학문에 고유하게 속하는 것이라고 확실히 인정된 것이다. - P28

나중에 그대가 그 학문들을 다 공부하고 또 논쟁과 비교를 통해 각 학문 고유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게 된 연후에야, 각각의 원리를 다른 나머지 원리에 적용해 보거나 각 학문을 서로 비교 검토함으로써 전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더 깊이 탐구해 보는 것이 적절하다. - P28

중심이 되는 큰길을 알기도 전에 여러 샛길로 들어가지 말라. - P28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없을 때라야 안전하게 길을 갈 수 있다. - P29

배움에 나설 때 우리는 더 잘 알려져 있고 더 잘 정의되어 있으며 더 포괄적인, 보편적인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런 다음 차츰 더 내려가면서 분석을 통해 개별적인 것들을 구별함으로써 보편적인 것 속에 포함된 개별적인 것들의 본성을 탐구해야 한다. - P33

미처 지혜로워지기도 전에 일찌감치 지혜로워 보이고 싶은 욕망에 현혹되는 이들이 많다. - P38

그래서 갑자기 자신의 중요성을 한껏 부풀리면서, 자신이 아닌 것을 흉내 내고 자신의 본모습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한다. - P38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정도만큼, 즉 지혜로운 정도가 아니라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정도에 비례해 그만큼 더 지혜에서 멀어진다. - P38

처음부터 모든 것에 대한 앎을 부여받은 이는 아무도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연에게서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을 부여받지 못한 이 역시 아무도 없다. - P39

그러므로 지혜로운 학생이라면 기꺼이 모든 것을 듣고 모든 것을 읽도록 하고, 어떤 글도, 어떤 사람도, 어떤 가르침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 - P39

어떤 차별도 두지 않고 모든 것에서 자신에게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구하며, 자신이 얼마나 많이 아는지가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생각하는 이가 지혜로운 학생이다. - P39

탐구하고자 하는 열의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공부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의미하지만, 꼼꼼한 탐구는 진지한 숙고를 뜻한다. - P49

공들이는 노력과 사랑은 그대가 과제를 끝까지 해내게 만들고, 염려와 경계는 그대를 신중하게 만든다. - P49

그대는 공들이는 노력으로써 공부를 지속하고, 사랑으로써 공부를 완벽한 경지로 이끌어 간다. 또한 염려로써 미리 조심하고, 기민한 경계로써 면밀히 주의를 기울인다. - P49

충분한 정도 이상으로 더 알고자 하는 이 욕망 역시 일종의 무절제라네. 왜 그럴까? 자유학문을 이렇게 지나치게 추구하는 사람은 불필요한 것을 배우느라 필수적인 것을 배우지 못한 탓에 성가지고 말 많고 시와 때를 가리지 못하며 자기만족에 빠진 따분한 자들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라네. - P75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은 물론 아주 좋은 일을 하는 것이지만, 의로움이 가져오는 좋은 일은 오직 자신에게만 이롭거나 기껏해야 함께 살아가는 몇몇에게만 이롭습니다. - P92

그 사람의 의로운 삶에 배움이 더해진다면, 그의 덕이 지닌 힘은 더욱 커질 것이고, 마치 그 앞에 횃불을 비춘 듯 더욱 찬란해지고 더욱 널리 알려질 것입니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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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바리새파의 것이라 언급하신 모든 관습들-손 씻기, 그릇 씻기-은 부정한 음식이 몸의 정결함을 침해하는 것에 관한 바리새파의 특정한 전통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 P202

밖에서 오는 부정함(문자적으로 할라카적 부정함)을 믿은 그러한 바리새인들 안에서 나오는 부정함에 관한 토라 규율의 종교적인 진의를 완전히 놓친 것이다. - P202

예수의 관점에서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례(부모 부양 문제)에서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도 토라를 완전히 왜곡했고 무시했다. - P202

예수께서 주장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오해하고 자신들의 전통에 따라 밖에서 오는 부정함이 가능하다며 율법을 바꾸었을 때, 그들은 또한 율법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 P202

밖에서 오는 부정을 추가한 것과 같이, 바리새인들은 토라 안의 의미는 무시한 채, 오직 〔토라〕 밖에서부터 토라를 읽었다. - P202

이처럼 할라카 문제는 더할 나위 없는 작은 비유와 같다. 예수께서 음식의 정결과 부정함을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코셔 체계에 관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정결 관습들에 대한 바리새파의 이해에 관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 P203

초기 유대인들의 주된 성경 주해 방식은 미드라쉬였다. 미드라쉬는 새로운 교훈이나 내러티브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성경 곳곳에서 관련 있는 (혹 심지어 겉보기에 연관되지 않는) 단락이나 구절들을 연결짓는 것을 말한다. - P226

이런 예언적인 텍스트들과 다니엘서의 그 사람의 아들과의 연결은 분명 고난받는 예수에 관한 연구〔기독론〕의 온전한 발전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예수의 죽음(과 승귀)도 이에 따라 해석되었다. - P226

다르게 표현하자면 예수의 고난과 죽음 이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것처럼, 유대인들이 죄인을 대신해 받는 메시아의 고난과 속죄하는 죽음이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가정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십자가 사건〕 이후에 〔그 이야기들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만큼이나 개연성이 있다. - P226

다시 말해 우리는 "사람의 아들은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개념이 이미 자리 잡힌 상태에서, 메시아 대망을 완전히 충족시키시며 자신을 살피시고 그리시며 나타내시는 예수를 보게 된다. - P227

우리의 죄를 속죄하려 고난받는 메시아는 유대인들의 종교 역사 동안 내내-심지어 기독교와 분리되고 난 한참 뒤에도- 친숙한 개념이었다. - P237

고난받는 메시아 개념은 고대 유대교, 중세 유대교, 그리고 근대 초기 유대교에도 존재한다. - P237

본질적으로 ‘(십자가에서 나온) 기독교인의 메시아 개념이냐 아니면 유대인의 (승리주의자) 메시아 개념이냐‘의 대결 같은 것은 없다. - P246

단지 하나의 복합적이고 경쟁적인 메시아 개념, 곧 마가와 예수께서 유대인 공동체 전체와 함께 공유했던 메시아 개념이 있을 뿐이다. - P247

자신이 받을 고난을 예언하신 그리스도, 수난 내러티브 속 바로 그 고난,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설명은, "기독교는 온전히 유대 토양에서 자랐다"는 마르틴 헹엘의 주장과 결코 어떤 점에서도 부딪히지 않는다. - P247

복음서의 유대교는 쉽게 말해 전적으로 유대-메시아 운동이었으며, 복음서는 유대적인 그리스도의 이야기이다. - P247

신약성경은 많은 이들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깊이 제2성전기 유대인의 삶과 사상에 뿌리박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P250

그분의 생애, 특권, 권세 심지어 승리 이전 고난과 죽음에 대한 내막들은 모두, 성경을 미드라쉬적으로 세밀하게 읽은 데에서부터 발전해 나온 것이며, 이것들은 결국 그분의 생애와 죽음 안에서 성취된다. - P253

예수를 따르던 자들이 체험한 승귀와 부활은 이 내러티브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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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마가는 토라와, 바리새인들에 의해 드러난 구전 전승들과 혁신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 P196

예수(마가)에게 있어서 기록된 토라는 신적인 것인 반면에, "장로들의 전통"은 인간의 창조물이다. - P196

이것은 단연코 율법의 폐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단지 율법을 제자리에 두는 것뿐이다. - P201

예수께서 말씀하신 설명은 토라의 규율들이 가진 깊은 의미를 해석한 것이지, 무시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 P201

예수께서 크게 기여하신 것은 율법을 이처럼 깊이 있게 해석한 것이지, 소위 말하는 율법에 대한 거부가 아니다. - P201

이는 토라를 버리라는 훈계가 아니라, 토라를 실천하고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 데에 진정으로 더 깊이 헌신하라는 부르심이다. - P201

예수의 유명한 이 말씀은 유대인들의 종교 세계 안에서 비로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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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 문헌에도 다니엘서와 거의 똑같은 표현으로 두 신적 존재가 나타난다. 곧 늙은 존재와, 사람의 모습을 가진 이-즉 "사람의 아들" 같은 이, 혹은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the Ancient One]과 대조되는 젊은 인물-가 언급된다. - P137

사람의 아들에 대한 생각과 기대는 제2성전기 말에 이르러, 널리 받아들여지는 유대인의 신앙 표현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P140

「에녹의 비유」는 어떤 고립된 분파의 산물이 아니라, 더 보편적인 유대인의 사고 체계와 저술의 일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 P140

그리스도 교리에 있어서 가장 놀라운 측면들 중 하나는 바로, 하나님과 인간이 한 존재로 결합〔combination〕된다는 점이다. - P144

하지만 이런 급진적인 개념조차 예수를 따르는 유대인들 사이에선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 P144

거의 동시대 문헌인 복음서에서와 마찬가지로 「에녹의 비유」에서도 하나님께서 사람으로서 지상에 나타나심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셨다는 (현현) 개념, 그리고 사람이 신의 수준으로까지 높아지게 되었다는 (신격화) 개념 사이에 강한 연속성 혹은 종합이 발견된다. - P146

본래 메시아 개념은 오랫동안 갈망했던 왕조를 회복시킨 다윗 가문의 한 평범한 인간 왕에 초점을 두었던 반면에, 신적인 구원자라는 개념은 이와 개별적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 P149

이제 우리는 두 개의 평행하는 에녹 전승 곧 『에녹1서』 14장과, 다니엘서 7장에서 발전해 나온 전승들을 보게 된다. - P151

한쪽에는 승귀하여 신격화된 인간에 대한 전승이 있으며, 또 다른 한쪽에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내려온, 제2위의 하나님 같은 구원자에 대한 전승이 있다. - P151

아직은 마가복음과 그 이후의 복음서들 가운데서 발견되는 인간화된 신〔anthropized divinity〕과 신격화된 인간〔divinized human〕의 통합 혹은 동일화까지는 발견하기 힘들다. - P152

이것이 한데 모이는 곳이 바로 「에녹의 비유」 70-71장이며, 이는 아주 오래된 전승의 독립적인 줄기로 봐야 한다. - P152

여기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과 하나님이 된 인간이라는 각각의 개념들, 본래 개별적이었던 두 개념이 합쳐진다. - P152

두 전승이 「에녹의 비유」에서 합쳐진다. 선재한 제2위의 하나님, 다니엘서의 구원자는 이제 그 사람의 아들처럼 묘사될 뿐 아니라, 그렇게 불리기까지 한다. - P154

그리고 노아 홍수 전 고양된 일곱 번째 현인〔sage〕 에녹은 하늘로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 P155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고 하나님께서 데려가셨으며, 〔세상에〕 있지 않다. 이 한 땀 한 땀이 때를 맞춰 꿰어졌으며, 따라서 우리는 이 문헌이, 에녹은 처음부터 메시아였고 처음에는 감춰졌던 그 사람의 아들이었으며 이후 인간의 형태로 지상에 보내졌다가 다시 그가 전에 머물던 곳으로 승귀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 P155

분명히 에녹 버전에서 강조점은 신격화에 있고 복음서에서 강조점은 신의 현현에 있는데, 이는 이후 이야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P156

하지만 내 생각엔 ‘유대적인 그 사람의 아들‘ 전승의 두 버전 모두에, 두 요소 모두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 P156

1세기와 2세기 초반-심지어 그 이후까지- 예수 운동이 보였던 개념들과 관습들 9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당시 유대교의〔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들과 관습들의 일부로 무리없이 이해될 수 있다. - P171

삼위일체와 성육신이란 개념 혹은 이 개념들의 기원은, 예수께서 성육신하여 직접 무대에 등장하시기 전부터-말하자면 예수께서 메시아적 소명을 시작하셔서 그러한 신학 개념들을 드러내 보이시기 전부터- 이미 유대인 신자들 가운데 존재했었다. - P171

예수께서는 토라의 관습들과 율법들을 버리신 것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바리새파로부터 오는 토라에 대한 위협에 대항하여 그것을 확고하게 지켜내셨다. - P173

예수의 유대신앙〔Judaism〕은 예루살렘의 서기관들과 바리새파에서 나온 율법에 대한 일부 급진적인 변화들을 거부하는 보수적인 반응을 보였다. - P174

기독교가 유대교 안에 있는 한 유형〔variation〕이라는 견해, 심지어 예수께서는 굉장히 보수적인 전통주의자이셨다고 말하는 견해는, 2세기, 3세기, 4세기 소위 유대 기독교〔Jewish Christianity〕와 그 초기 라이벌이었던 이방 기독교〔Gentile Christianity〕- 몇 세기 후 결국 승리를 거두는-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핵심적인 사안이다. - P175

탈무드에 따르면,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일-이는 부정하거나 오염된 음식을 먹는 것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든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을 도입한 것은 바로 랍비들(혹은 유명한 바리새인들)이었다. - P193

따라서 예수께서 꾸짖으신 것은 코셔를 지키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바로 바리새인들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억지로 떠맡기려 했던 혁신〔변화〕들이었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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