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의 종말 신학의 전제들에 관한 탐구 2
크리스틴 헬머 지음, 김지호 옮김, 김진혁 해설 / 도서출판100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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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한가운데서 살아갈 때 소통의 부재를 경험한다. 교회는 세상에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교회의 언어는 세상과는 동떨어져있는 듯 보인다. 교회의 언어는 교회 안에서만 머문다. 교회의 언어는 세상의 언어와 많이 다르다. 우리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까?


헬머(Christine Helmer)의 『교리의 종말』은 역설적이다. 교리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교리의 진정한 '목적'에 이르기 위해, 기존의 관점을 과감하게 바꿀 것을 요구한다. 저자는 닫혀 있고, 대화할 수 없는 교리는 생명력을 잃었다고 강조한다. 그러한 교리는 고정되어 있어, 외부와 소통할 수 없다. 기존의 세계관 안에서 견고하게 자신의 교리만 반복한다.  


하나님께서 살아가신다고 고백하면서 정작 살아계신 하나님의 현실을 담아내지 못한 교리는 의미와 영향력이 없다. 그렇기에 신학의 과업은 하나님의 현실을 포착하며, 말씀이신 하나님의 현실을 언급하는 것이다. 생동감 있는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신학은 비상 신호를 곤두 세우고 신적 현실을 증언하는 학문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언어와 개념이라는 렌즈를 통해 자신과  세계와 하나님을 바라본다(231).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 『교리의 종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지 린드벡(George Arthur Lindbeck, 1923 ~ 2018)의 『교리의 본성』(The Nature of Doctrine)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린드벡의 『교리의 본성』은 20세기 후반의 조직신학서 중 매우 큰 영향력을 끼친 책 중 하나다. 아쉽게도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교리의 본성』의 내용은 『교리의 종말』에 곳곳에 흩어져있어 있다. 따라서 명확하게 그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교리의 종말』에 말미에 삽입된 김진혁 교수의 해설은 우리를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린드벡의 『교리의 본성』에서 핵심 되는 종교와 교리의 이해 방식을 정리한다. 또한 린드벡의 제자들이 계승하고 발전시킨 교리도 자세하게 소개한다. 


더불어 『교리의 종말』의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재배치하고 설명함으로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그렇기에 책의 뒤편에 있는 해설을 먼저 읽고 책 전체를 읽는 것도 효율적인 독서를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되겠다.


헬머는 린드벡의 슐라이어마허 읽기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한다. 저자가 새롭게 읽는 슐라이어마허는 성경의 언어를 종교적 경험으로 대체한 신학자가 아니다. 오히려 슐라이어마허의 인식론은 사회와 상호작용하기 위한 주요한 도구다. 


헬머는 마르틴 루터와 슐라이어마허를 거쳐,  바르트를 관통하며 교리와 초월성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그리하여 교리는 사회문화적인 변화 앞에 능동적이고 역동적으로 변화함을 주장한다. 


저자의 놀라운 작업은 앞으로의 신학이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할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신학은 교회를 섬기면서도, 세상과 소통해야 하는 학문이다. 이는 신학이 개방적이며, 우리의 언어가 소통 가능해야 함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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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편안해지지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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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인정이나 칭찬을 받고 싶어 한다. 



반면 무시받거나 비난을 듣게 되면,

속으로 끙끙 앓는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도,

절대적 의인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좋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도,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된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 』의 저자 소노 아야코.

그녀는 우리에게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권한다.



타인으로부터의 자유는 단순한 해방감 이상이다.

자신을 지키고, 오히려 더 정직한 관계를 맺게 만든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

나 자신에게 더욱 신경 써보자.



비로소 내가 보이고 다른 사람이 보이고,

이 관계에 어느 정도 에너지를 써야 할지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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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의 평판에는 신경이 쓰이는 법이다. 그러나 평판만큼 근거가 없는 것도 없다. - P69

나 외에 나의 세세한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는데, 나를 모르는 타인이 나에 대해 말하고 있으므로 평판이 옳을 리 없다. - P69

그런데도 그런 평판에 동요되는 사람이 많다. 세상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 P69

인맥이란 그것을 이용할 마음이 없다면 거의 필요 없는 것이다 .그것을 연줄로 장사하거나 정치가로서 표를 모으는 일이라도 된다면 분명 인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이 사회의 한 구석에서 자신의 능력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데는 특별히 인맥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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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에서 온 편지 - 위로가 필요한 당신에게 크리스천 여성작가 시리즈 1
제행신 지음 / 세움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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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작은 불빛은 큰 도움이 된다.

무너지는 삶이 감당하기 힘들어, 작은 도움의 손길을 기다려본다.



내면과 관계를 다루는 많은 에세이들. 아쉬움이라면 정작 자신들도 답을 모른다는 것.

지혜로운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그 대안은 때로 한 책 안에서도 맞부딪힌다.



가령,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라고 했다가, 어떤 챕터에서는 그 관계를 과감하게 끊어내란다. 인생이란 정답이 없어 때로는 모호하고 울퉁불퉁하다. 



그 답답함이 때로는 동감되지만, 애타는 마음으로 도움을 구하며, 마지막 남은 힘으로 책장을 펼쳤는데, 뭔가 모를 공허함에 오히려 후회가 밀려올 때도 있다.



제행신의 글은 이런 우리들에게 오아시스 같다. 그녀의 글은 맑고 시원하다. 작가의 글이 빛나는 것은 어두움을 통과했기 때문이리라. 청량한 그녀의 글은 삶의 무게를 뚫고 나오며 주어진 지혜 때문이 아닐까?



때로는 위로를 주며, 우리를 토닥여준다. 어두워 길을 잃은 우리에게 작은 빛을 선사한다.

성급하게 답을 제시하지 않지만, 삶에서 길어 올린 지혜를 함께 나눈다.



또한 진실하게 우리를 독대하게 만든다. 과감하고 날카롭다. 다른 여지를 주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죄는 죄일 뿐. 솔직하게 고백하도록 우리를 독려한다. 그것이 지혜임을, 우리에게 최선임을 말해준다. 



우리를 표현할 수 있는 내면의 언어가 없을 때, 참으로 공허하다. 메마르고 허울뿐인 언어가 넘치는 세상이다. 그 한가운데서 우리의 언어를 찾게 한다. 우리의 존재가 어디에 자리매김해야 하는지 다시 알려준다.  



어쩌면 참 단순하다. 우리는 너무 복잡하게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본래의 자리로 우리를 돌아올 수 있게 우리를 초대한다. 그것이 행복이다. 덕분에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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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부분은 가릴 수 있어도 전부를 가릴 수는 없다. 오히려 자신의 추한 부분, 불쾌한 부분을 분명하게 의식하고 또 그것에 비애를 느낄 때라야 그 사람의 정신은 자유로워져 정신 자세도 자연히 건전해진다. - P25

최악의 인간 관계는 서로가 상대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고, 상대가 자신의 관심에만 주목해야 한다고 느끼는 인간 관계이다. 반대로 최고의 인간 관계는 자신의 고통이나 슬픔은 되도록 혼자 조용히 견뎌내며,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상대의 슬픔과 고통을 무언중에 깊이 헤아릴 수 있는 관계이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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