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는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진리,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진리를 담은 성경 본문과, 그 본문을 환원주의 형식으로 들으려 하는 회중을 예술적으로 엮어 연결하라고 부름받은 사람이다.

예술적 수완을 갖춘 설교자는 죄책의 힘과 치유의 힘을 폭로하고 회중을 섬세한 처리로 유도하여, 치유가 죄책을 이기고 압도하게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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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은 모두 세상 사람들이 믿게 하려는 만큰 그렇게 쉽게 파악되는 것도, 말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개의 일은 말로써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말 따위는 전혀 뛰어든 적이 없는 세계에서 일어납니다.

당신은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무엇보다도 당신이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충고를 하거나 도와줄 수 없습니다.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단 하나의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십시오. 당신에게 글을 쓰라고 명령하는 근거를 찾아내십시오. 그것이 당신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펴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당신은 아직 매우 젊고,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입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당신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당신 마음 속의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서 인내를 가져주십시오. 그리고 물음 그 자체를 닫혀 있는 방처럼, 아주 낯선 말로 쓰인 책처럼 사랑해주십시오. 지금 당장 해답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육체적인 쾌락은 감각적인 체험으로서, 순수한 시각이나 혀를 가득 채워주는 맛있는 과일의 순수한 감각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크고 무한한 경험이며, 세계를 알게 되는 것이며, 모든 지식의 충일이며 광휘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맛보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나쁜 것은 대부분 사람이 이 경험을 오용하고 남용하는 데 있으며, 그것을 인생의 정점을 향한 집중으로 삼지 않고 인생에 지쳤을 때의 오락으로, 자극으로 삼는 데 있습니다.

고독의 성장은 마치 소년의 성장과 같아서 고통이 따르고, 봄이 시작될 때처럼 서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고독, 커다란 내면적 고독뿐입니다. 자신에게로 침잠하여 몇 시간이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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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나와의 관계에 대한 일차적 분석은 나를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이끈다. 즉 타인은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는 내가 메꾸어야 할 공허가 아니다.

나는 타인에게서 나에 대한 그 어떤 정당화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런데도 나의 행위 하나하나는 세계 속에 떨어지면서 타인에게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준다. 이 행위들을 나는 책임져야 한다.

우리가 세계 속에 출현시키는 이 새로운 충만성은 곧 인간의 자유이다. 그 충만성에 자리를 하나 만들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자유이다.

모든 부름, 모든 요구는 타인의 자유에서 나온다. 내가 만들어 낸 대상이 유익한 것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타인이 그것을 유익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어떤 형상形狀이 주어지기 전에 타인의 눈目 속에서 나를 찾는다면, 그러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다. 내가 하나의 형태, 하나의 존재를 취하는 것은 사랑 또는 행동을 통해 우선 나 자신을 세계 속에 던졌을 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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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결정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들의 행복이다.

타인 앞에 있는 나의 상황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다. 단지 여기서부터만 우리는 우리 행위의 근거를 찾아내려는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타인과 분리되어 있고, 타인을 초월하며, 타인이 내 앞에서 한갓 사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조용히 긍정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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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임무와 가능성은 복음이라는 기쁜 소식을 새로운 형식의 담화로 드러내는 것이다.

주일 오전의 교회는, 자신만의 색다른 담화에 빠져 있을 때조차도, 상상력 넘치는 담화로 사람들을 새로운 신앙의 세계에 들여보내 기쁨 넘치는 생활과 순종하는 생활에 참여하게 하는 곳, 즉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심하게 축소된 진리를 쟁점으로 거론하려면 산문의 세계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

비할 데 없이 유용한 최선의 것으로서 ‘소설’이 내게 주어진다. 그것은 내가 의지해야 하는 소설, 내가 목숨을 거는 소설이며, 하나님이 저술하신 은혜로운 ‘소설’이다. 하나님은 성경 본문과 이야기를 저술하시는 분이다.

말씀이 다시 한번 다가오면 우리는 우리 생의 따분하고 지겨운 나날을 거쳐 다시 부활절로 돌아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의혹에 빠지고, 그런 다음 의혹을 넘어 우리의 생에 놀라며 두려움과 전율에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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