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징벌과 교육의 수단으로만 여겨지는 학교에서 대다수의 학생들은 노동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노동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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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과 상담이 아닌 일상생활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곁이 사라진 자리를 편으로 메꾸며 악몽으로 만들어간다. 곁을 파괴하고 편을 강요하는 것, 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편의 언어는 공격적이고 맹목적인 경우가 많다. 편의 정치는 끊임없이 적대를 창조하고 그 적대로 사람들을 몰아가며 너는 누구 편이냐고 윽박지르며 ‘곁‘을 파괴한다.

다름과 차이를 차단하게 되면서, 서로의 경험을 참조하며 나누는 배움과 성장은 불가능해진 ‘사회‘. 곁을 만드는 언어는 소멸해 버리고 편만 강요하는 ‘사회‘. 책임은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 이 세계를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오로지 자신에게만 몰입해야 하는 우리들의 삶은 낯섦으로부터 설렘은 없애고 두려움과 피곤함만 남겼다.

나를 발견하고 가늠할 수 있는 타인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더이상 공포감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이 나를 방문하고 다가오는 것이 공포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의 안전을 도모하고 관계를 규율하는 원리는 환대가 아니라 ‘예의바름‘이 된다.

자유는 시장자본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그는 자율적 주체가 아니라 욕망의 노예일 뿐이다. 그 욕망이 자신에 의해 점검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자기가 선택한 것처럼 보였던 많은 것조차도 사실은 ‘선택‘이라는 이름의 강요였다. 진정한 자유는 그와는 반대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물러서는 것에서 나온다.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 자신이 선택한 것을 선택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에서 자유는 사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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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난 우리나라 행복 지수 순위가 몇 위고 하는 문제는 관심 없어. 내가 행복해지고 싶다고. 그런데 난 여기서는 행복할 수 없어."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낙하산 하나가 안 펴지면 예비 낙하산을 펴면 되지만,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한테는 그럴 시간도 없어. 낙하산 하나가 안 펴지면 그걸로 끝이야. 그러니깐 낮은 데서 사는 사람은 더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조심해야 해. 낮은 데서 추락하는 게 더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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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적 설교는 창조세계와 인류와 교회를 위해 하나님이 품으신 뜻과 의도를 중심 주제로 삼는다.

성경 전승의 단언대로, 하나님은 세상의 근본적이고 영속적인 안녕, 기쁨에 찬 순종을 통해 이루어지는 안녕을 바라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위해 품고 계신 의도, 곧 구원 서사와 예언자적 약속이라는 장대한 주제로 표현된 의도는 세상으로 하여금 자유와 정의와 평등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건네신 담화,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되풀이된 그 담화는 삶을 가능하게 하며, 하나님과의 친교 및 이웃과의 화해를 용이하게 하는 행동방식을 옹호한다.

하나님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건네신 담화는 고압적인 강요가 아니라 온전함을 가능하게 하는 선물이다. 하나님의 명령과 그 중개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이다.

나는 설교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충고가 아니라 설득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 이미 복음으로 받아들인 것을 담차고 기탄없이 권위 있게 실행에 옮기는 일이다.

설교자의 과제는 성경 자체가 복종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보여 주고, 그런 다음 회중에게 그 제한 없는 해석 작업에 참여하도록 권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참여는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복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지만, 신실하게 살고자 하는 회중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다.

이스라엘의 복종은 하나님이 주시는 쉼, 하나님이 자신의 활동 속에서 모범적으로 보여 주시는 쉼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과 관계있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근본적 정체성을 제시하는 모세오경에 이 규정을 포함시켰다. 희년 규정은, 성경의 다른 많은 이상적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이행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빚의 면제는 존엄성과 자유를 얻어 공공생활에 다시 들어서는 것을 허락한다. 희년은 하나님의 개입이다.

하나님은 토지, 세금, 빚과 관련된 비인간적 관행들로 지속되는 악순환(부채와 빈곤)의 고리를 끊으신다. 희년 계명은 탐심과 탐욕에 물들지 않은 삶을 보여 준다.

희년은 탐욕의 반대말이다. 탐욕은 죽음을 초래하고, 희년은 생명을 초래한다. 불균형의 포기는 우리에게 두려운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것은 생명에 이르는 길이다(참조. 막 10:17-22).

탐내지 말라는 계명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내주실 뿐, 우리를 움켜쥐려 하지 않으신다. 이 사실을 담고 있는 계명 속에는 분배의 권유가 담겨 있다. 그러나 그 권유대로 하려면, 심하게 축소된 세상을 거역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설교 행위는 변화를 상상하는 행위다. 시인은 설교 시간에 세상을 다르게 인식하고 표현하도록, 새로운 표현, 새로운 그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주제들을 새롭게 병치하는 것을 감행하도록 허락받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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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에 상관없이 대단히 성공한 사람들은 굳건한 결의를 보였고 이는 두 가지 특성으로 나타났다. 첫째, 그들은 대단히 회복력이 강하거 근면했다. 둘째,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매우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 삶에서 깨어 있는 매 순간 하나의 상위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은 투지가 아주 강한 사람에게도 바랄 수 없는 극단적인 이상일 뿐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목표의 달성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다수의 중간 목표와 하위 수준의 실천 목표들을 줄여나갈 수도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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