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은 타인을 설득하지 않는다. 비판받을 만한 곳에 미리 가 있을 줄 아는 작가가 성공한다."

글은 화려하기보다는 솔직해야 한다. 100개를 다 가진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전략은 최악이다. 80~90개쯤 가진, 10~20개쯤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때 더 돋보이게 마련이다. 솔직함이야말로 타인들의 실시간 피드백을 얻는 글을 쓸 때 최선의 전략이다.

알랭은 또 "진정한 성공이란 평화로운 상태에 놓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평화로운 상태를 얻으려면 주체의 삶을 회복하고 타인이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기를 바라지 않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며 당신에게 화를 낸다고 해보자. 그의 얼굴을 천천히 살펴보라. 그는 당신의 이해 부족 때문에 화를 내고 있는 게 아니다.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자신의 불안 때문에 당신에게 못 되게 구는 것이다. 대부분의 화와 불안, 두려움은 이런 방식으로 세상에 존재한다.

그러니 당신의 타인의 반응보다는 자기 자신의 반응을 더 깊이 살펴야 한다. 타인에게 상처받는다는 건, 결국 자신에게서 상처받는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성공하려면 높은 리스크risk를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정작 큰 리스크를 감수하겠노라 결정하고 대담하게 뛰어들면, 생각보다 큰 리스크는 별로 없다. 정작 리스크보다 더 많이 만나는 것은 인생을 바꿀 만한 잠재력, 즉 다양한 ‘가능성‘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어떤 리스크를 선택할 것인지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던 가능성을 선택할 것인지, 더 큰 가능성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의 여부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알게 된다."

중간부터 시작해도 상관없다는 걸 알면, 즉 굳이 처음부터 반드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면 삶이 한결 단순해진다.

"당신이 낮에 들은 것, 경험한 것, 생각한 것, 계획한 것, 뭔가 실행에 옮긴 것들 가운데 새벽 한 시가 됐는데오 여전히 이야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것이 있는가? 그것이 당신에게 엄청난 성공을 안겨줄 것이다. 나아가 그것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누고 토론을 하고 당신을 반박해 줄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을 제외한 모든 말은 다 헛소리다."

가장 큰 도움과 위안은,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불멸의 위대한 작가들도 매일 나처럼 진흙탕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핵심은 ‘의지‘다. 작가를 만드는 건 문장력이 아니라 어떻게든 ‘쓰고자‘하는 의지다. 의지를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탁 풀려나가는 실마리를 잡게 된다.

"자신을 더 많이 알리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그 시간에 더 많이 알릴 수 있는 ‘능력‘을 키워라. 단순히 잘하는good 사람이 아니라 위대한great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뚜렷하게 깨닫게 된다. 이 세상에는 정말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은 많지만, 자신의 일에 영혼까지 쏟아 붓는 위대한 사람은 별로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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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과 논리 중심의 선형적線型的 지식은 지식이라기보다 지식의 파편입니다. 세상은 조각 모음이 아니고 또 줄 세울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강의는 여기 저기 우연의 점들을 찍어 갈 것입니다. 순서도 없고 질서도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런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날 문득 인연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연들이 모여서 운명이 되기도 합니다.

공부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세계는 내가 살아가는 터전이고 나 또한 세계 속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란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한 공부입니다. 자연, 사회, 역사를 알아야 하고 나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공부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것입니다. 세계 인식과 자기 성찰이 공부입니다.

고전 공부는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 온 지적 유산을 물려받는 것입니다. 역사와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대 사람들과도 소통할 수 있게 합니다. 언어를 익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전 공부의 목적은 과거, 현재와의 소통을 바탕으로 하여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공부란 세계 인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창조입니다.

고전 공부는 고전 지식을 습득하는 교양학이 아니라 인류의 지적 유산을 토대로 하여 미래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실천입니다.

모든 고전 공부는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 그 텍스트의 필자를 읽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독자 자신을 읽는 삼독三讀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텍스트를 뛰어넘고 자신을 뛰어넘는 ‘탈문맥‘脫文脈이어야 합니다. 역사의 어느 시대이든 공부는 당대의 문맥을 뛰어넘는 탈문맥의 창조적 실천입니다.

생각은 잊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어머니가 떠나간 자녀를 잊지 못하는 마음이 생각입니다. 생각은 가슴이 합니다.

생각은 가슴으로 그것을 포용하는 것이며, 관점을 달리한다면 내가 거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가슴 두근거리는 용기입니다.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애정과 공감입니다.

변화와 창조는 중심부가 아닌 변방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중심부는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보루일 뿐 창조 공간이 못 됩니다. 인류 문명의 중심은 항상 변방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전제가 있습니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합니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청산되지 않는 한 변방은 결코 창조 공간이 되지 못합니다.

언어나 문자는 추상적인 기호일 뿐만 아니라 문학, 역사, 철학 역시 세계의 올바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언어에는 분명 언어 자체의 개념적 의미와 함께 언어 외적인 정서도 함축되어 있습니다. 삶 속에서 경작된 그 사람의 인품과 체온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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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은, 당신이 그걸 어떻게 정의하든 간에, 올바른 경험으로 얻어진 믿음과 습관들을 쌓아가다 보면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

당신 마음에 떠오르는 슈퍼 히어로들(기업가, 억만장자, 최고의 하이퍼포머 등)은 모두 걸어 다니는 결점투성이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좋은 아이디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단순한 사실 한 가지만 깨달으면 인생의 폭이 훨씬 넓어질 수 잇다. 그건 바로 우리가 ‘일상life‘이라고 부르는 건 모두 우리보다 별로 똑똑할 것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바꾸거나, 거기에 영향을 미치거나, 자신만의 뭔가를 만들어 타인이 좀 더 지혜롭고 편하게 사용하도록 할 수 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다시는 세상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바야흐로 그 어느 때보다도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설득하고, 변화시키는 시대가 왔다.

"코드 시안code poet, 즉 우아하고 시적인 스타일을 지닌 프로그래머들이 미래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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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다. 은밀하게 자리를 잡고 앉은 ‘대리사회의 괴물‘은 그 누구도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서 행동하고, 발화하고, 사유하지 못하게 한다.

모두를 자신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는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주체라는 환상을 덧입힌다. 자신의 차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운전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국가 시스템에 효율적으로 통제되면서도 자신을 주체로 믿는, 동시에 사유하지 않고 모든 현상을 바라보는 국민은 지금의 국민국가가 지향하는 ‘대리사회‘의 이상향이다. 그렇게 ‘대리국민‘이 된 이들은 국가를 위한 싸움에 스스로 나선다.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국가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자신들의 국가‘를 위해, 그에 순응하지 않는 이들과 몸소 싸워나간다.

우리는 순응하는 몸에 익숙해진 개인들이다. 국가/사회 시스템에 편입되어 있는 한 그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욕망을 대리하는 ‘대리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을 둘렀나 구조와 마주하고, 주체가 되어 사유해야 한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불평해야 한다.

호칭은 한 인간의 주체성을 대리하는 수단이 된다. 자신을 그 공간의 주체라고 믿게 만드는 동시에, 그를 둘러싼 여러 구조적 문제들을 덮어버린다.

그 환각에 익숙해질 때, 우리 모두는 ‘대리‘가 된다. 그 공간에서는 더 이상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없다. 누군가의 욕망을 대리하며 ‘가짜 주인‘이 되어 살아가가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을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또 다른 을이다. 반드시 폭언이나 폭력을 수반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전쟁의 수행자가 된다. 내 주변의 목소리를 외면하거나 그와 나 사이에 선을 긋는 것 역시, 갑의 욕망을 대리하는 행위인 것이다.

분노는 주변의 을이 아닌 저 너머의 갑을 향해야 하고, 공고하게 구축된 시스템에 닿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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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는지는 은퇴 후의 모습에서 증명된다. 자신의 일을 즐기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면 정년과 동시에 평생의 관심영역을 버리는 일은 없다.

정상적인 스트레스는 성장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운동선수나 등산가는 다리에 일부러 스트레스를 줌으로써 신체능력을 발달시킨다.

정보는 인터넷으로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왜 나는 여전히 책을 구입하고 있는 것일까? 왜 비싼 돈을 주고 고서古書를 모으는 것일까? 그 이유는 책에서 얻어지는 것이 단순히 정보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인터넷이 가지고 있지 않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정성껏 만들어진 장정을 볼 때, 사각거리며 책장을 넘길 때, 나는 행복하다. 또한 수세기를 거듭하며 사람들에게 읽힌 책들을 만지며 지적 향수를 느낀다.

진정한 은둔자는 물질은 버리되 정신은 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모든 소유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지지만, 정신만큼은 팽팽한 긴장감을 놓지 않으며 더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은둔자의 삶이다. 그들의 일상에는 삶에 대한 긴장과 의욕이 여전히 살아 있다.

규칙적인 생활이 중요한 이유는 생명의 특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생명의 가장 큰 특성은 지속성이다. 삶이 계속되는 한 한순간도 호흡은 멈추지 않고, 심장박동 역시 멈추지 않는다. 두뇌도 마찬가지다. 줄곧 움직이게 해줘야 한다. 지적 자극을 가할수록 두뇌는 더 활발히 반응한다. 그렇게 건강해진 두뇌는 지적 여생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해준다.

스트레스는 무조건 피하고 보자는 식의 생활방식에서 당장 벗어나자. 우리가 역경과 불행을 극복하며 여생에 이르렀듯, 적당한 스트레스를 이겨내며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생의 과정이다. 삶의 원동력은 그렇게 얻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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