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행복은 빛을 유혹하지.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즐겁다고 생각해. 반면 불행은 멀리 숨어 있지. 그래서 우리는 불행이 없다고 생각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술적인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독창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정치적 글쓰기에도 예술성이 중요합니다. 예술성은 문장의 아름다움과 아울러 독창적인 논리의 미학을 요구합니다. 그런 글을 쓰려면 생각과 감정에 자유의 날개를 달아 놓아야 해요. 고정관념과 도그마에 갇히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글을 쓸 수 없거든요.

예술은 자유를 먹고 피어납니다. 돈과 권력만 사람의 생각과 감각을 얽어매는 게 아닙니다. 고정관념과 이념의 교조에 생각과 감정이 묶이면 글이 진부해집니다.

표현이 과격하다고해서 악플이 되는 것 역시 아닙니다. 일정한 근거와 논리를 갖추고 있다면 표현이 거칠어도 정상적인 의사표시로 인정해야 합니다. ‘악플도 존중해야 한다‘고 할 때의 악플이 바로 그런 댓글입니다.

자기소개서는 자기 자신보다는 그것을 읽을 사람이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여길 만한 사실을 중심으로 정해진 분량만큼만 써야 합니다.

글로 타인의 공감을 일으키려면 쓰는 사람이 독자에게 감정을 이입해야 합니다. 자신이 쓴 글을 타인의 눈으로 살펴보면서 읽는 이가 쉽고 명확하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지 점검해 보는 것이죠.

독자가 공감하는 글을 쓰고 싶으면 남이 쓴 글에 공감하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남의 글에 감정 이입하면서 독자의 감정 이입을 유도하는 방법을 체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통일統一을 ‘通一‘이라고 쓰기도 합니다. 평화 정착, 교류 협력만 확실하게 다져나간다면 통일統一 과업의 90%가 달성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평화 정착, 교류 협력, 그리고 차이와 다양성의 승인이 바로 통일通一입니다.

인간관계는 사회의 본질입니다. 사회에 대한 정의가 많지만, 사회의 본질은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근대사회, 자본주의 사회, 상품사회의 인간관계는 대단히 왜소합니다. 인간관계가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모든 고전은 과거와 현재가 넘나드는 곳입니다. 실제와 상상력, 현실과 이상이 넘나드는 역동적 공간이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당당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관대한 사람과 반대로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비굴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오만한 사람입니다.

연대는 위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추종이고 영합일 뿐입니다. 연대는 물처럼 낮은 곳과 하는 것입니다. 잠들지 않는 강물이 되어 바다에 이르는 것입니다. 바다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끝으로 당부하고 싶은 것은 연대는 전략이 아니라 삶의 철학이라는 사실입니다. 산다는 것은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만남이 연대입니다. 관계론의 실천적 버전이 연대입니다.

사람의 정체성은 노동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노동‘이란 표현이 어색하다면 ‘삶‘이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가 영위하는 삶에 의해서 자기가 형성되고 표현됩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소비와 소유와 패션이 그 사람의 유력한 표지가 되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해를 기반으로 하는 대화는 쉽게 풀리지 않기 때문에 나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험담하는 사람을 굳이 애써 붙잡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해를 풀 수 있는 가능성을 얘기하기도 전에 낮출 필요는 없다. 나에 대한 이미지 관리는 다수에게 정확한 견해를 밝히는 것과 소수에게 내 진심을 전달하는 일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자신의 약점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행위는 그들에게 비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니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존재하고, 지금 그들에게 보이는 화려한 모습 뒷면에는 ‘아픔‘이라는 그림자가 따라다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해봤자 상처만 받고 얻을 게 없다. 당신이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없듯이,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러니 나를 잃어버리면서까지 그들에게 모든 신경을 쏟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타인을 험담하는 것이 습관 되어 있는 사람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타인의 단점을 어떻게든 찾아내고, 자신의 결점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막고 있다는 것. 자신의 장점들은 어떻게든 부풀리려고 애쓰고 있지만 결국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이다.

말하기보다는 경청, 비판보다는 격려, 어쭙잖은 충고보다는 위로의 한마디가 그 사람에게는 힘이 된다.

가끔 보면 충고가 도움이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근데 문제는, 타인의 충고를 듣고 따를 만큼 성숙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사람이 좋은데 이유가 없듯 싫어하는 것도 이유가 없다. 갈등이 생겨서 먼저 말을 건네고 사과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화해를 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겉으로는 받아들인 척하면서 계속 마음에 담아두는 사람이 있다. 나를 못마땅하게 보는 사람과의 관계 유지의 여부는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신체능력이 발달하였다고 해서 운동이 힘들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내 여린 마음이 예전보다는 덜 상처받는 것일 뿐이다. 이성적이고, 강한 사람도 상처받는다. 애초에 상처받지 않겠다는 각오보다는 상처를 극복하는 시간을 줄여나가는 노력을 하는 편이 현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힘든 인생이든 행복한 인생이든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매 시기 주어지는 삶의 고민과 문제 앞에 우린 정답을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답을 찾기 위한 고민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럴 때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도, 저미어 오는 슬픔도, 되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삶의 흔적들도 발견할 수 있다.

문제를 바로 알아야 해답을 찾을 수 있듯이 현재의 삶이 이해돼야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행복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그럴 때 필연적으로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

글의 생명이 진실이라면 우리의 삶도 진실해야 한다. 삶이 곧 글이기 때문이다. 삶의 이야기가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진실한 하나의 문장을 찾는 여정과 같다고 말한다. 그러니 어찌 글이 사람을 참되게 한다고 아니하겠는가.

먼저 글을 잘 써야겠다는 부담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 삶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 하나로 시작하면 된다. 그것이 씨앗이 되어 수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다시 세팅해야 한다. 잘 써야 하는 글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킨다는 의미로서의 글, 그거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